신마 연비강 2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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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37화
제237화. 마지막 만남(1)
약추완은 상황이 불리해지면 황곡으로 피신을 할 것이다.
“약가와 악가의 본가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백리혈이 그렇게 한 이유는 약추완을 괴롭히기 위해서입니다. 약추완은 절대로 백리혈을 당해 낼 수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행군 속도를 늦춰야 하오. 내가 직접 발 빠른 수하들을 불러 이쪽으로 오고 있는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에 전하게 할 것이오.”
‘이 자가 감히…….’
치솟는 노기로 인해 오진권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갈곤도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머리를 숙이며 얼른 말을 고쳤다.
“맹주께서 분명히 허락을 해 주실 거라 믿소이다.”
“그렇게…… 하십시오.”
“고맙소이다.”
제갈곤이 밖으로 나가자 오진권은 홀로 분기를 삭였다.
‘그래. 며칠만 견디자.’
“어서 오시오, 맹주.”
자신의 방을 찾은 오진권을 맞이한 남궁휘는 손수 차를 내왔다.
“어떻게 되었소? 부맹주.”
초조한 탓인지 오진권은 값비싼 군산은침조차 거들떠보지 않았다.
남궁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약 일백오십 명 정도가 우리를 따르기로 했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맹주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요.”
하하…… 하하하하…….
오진권은 무척 기뻐했다.
이 무림맹에서도 자신처럼 작금의 상황을 답답하게 여기고 있는 이들이 짐작보다 많다는 뜻이었다.
그제야 오진권의 눈에 군산은침이 들어왔다.
“정말 좋은 차요.”
차를 조금 마시고 내려놓는 그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가득했다.
“출전 날짜는 잡혔소?”
“서안 약림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소. 소식을 받자마자 바로 출전할 생각이오.”
남궁휘의 목소리에 언뜻 걱정이 어렸다.
“출전이 늦어지면 자칫 정보가 새어 나갈지도 모르오. 군사가 이번 일을 알아차린다면 분명히 분란을 일으킬 것이오.”
오진권도 바로 그 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비강이 보낸 서신에 의하면 지금쯤 서안의 약림은 그의 손에 끝장이 나고 있을 것이다.
***
늦게 아침상을 받은 비강은 약추완이 사용하던 회의실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밖은 아직도 시신을 찾아 태우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신을 태우는 역한 냄새가 회의실까지 스며들어왔다.
하지만 비강은 별다른 내색 없이 식사에만 열중했다.
막 술병을 잡아가던 비강은 문 쪽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들어와!”
삐걱.
문이 열리며 뜻밖의 인물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황옥이었다.
황옥은 희미한 등불 아래서 식사를 하고 있는 비강을 향해 주저 없이 걸어왔다.
비강 또한 황옥을 죽일 마음이 없었는지 술잔에 술을 채워 오른쪽으로 밀어 놓았다.
주저 없이 걸어온 황옥은 탁자 오른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술잔을 들었다.
“나를 왜 죽이지 않지?”
“죽고 싶나?”
“그럴 리가.”
황옥이 잔을 비우자 비강은 빈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축하해. 드디어 아버지의 복수를 완성했군.”
비강은 말없이 병째 술을 들이켰다.
벌컥, 벌컥……
반병 넘게 술을 비운 비강은 남은 술을 황옥 앞에 내려놓았다.
“내가 천하제일인이 되었을 때 복수를 완성하고 싶었어. 그래서 그렇게 한 것이고.”
술잔을 비우고 앞에 놓인 술병을 잡아가던 황옥은 비강의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해 멍하게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방금…… 뭐라고……?”
그러나 곧 그 의미를 깨닫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내 인생 최고로 재미있는 말이었어.”
벌컥…… 벌컥……
대소를 터뜨린 황옥은 남은 술을 전부 비웠다.
술을 비우는 그의 표정은 웃을 때와 달리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술병을 내려놓은 황옥이 물었다.
“정말이냐?”
“그래.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곧 산서로 달려갈 생각이야.”
화들짝 놀란 황옥은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얼른 표정을 추슬렀다.
산서에는 태청산이 있다.
그리고 그 태청산에는 강호 무림의 앞날을 준비하고 있는 고수들이 있었다.
주공의 말에 의하면 그곳은 황곡이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라고 했었다.
“산서에는 왜 가려고 하는 것이냐?”
비강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지어졌다.
황옥은 그 미소가 참으로 무섭다고 생각했다.
“내가 시천세라면 그곳을 아주 중요하게 여길 테니까.”
“그곳이라니?”
황옥은 끝까지 시치미를 잡아뗐다.
그러자 비강은 그저 웃기만 했다.
“술 잘 마셨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는 황옥을 지켜보던 비강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흘러나왔다.
“시천세에게 안부나 전해 줘.”
저 황옥이라는 자로 인해 번거로운 일이 줄게 되었다.
저자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자신이 산서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을 시천세의 귀에까지 전하기 위해 꽤 여러 날을 이곳에서 지체했을 것이다.
황옥이 방을 나가자마자 희끗한 그림자 하나가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자를 저대로 돌려보내실 작정이십니까? 교주님.”
그는 다름 아닌 살가였다.
“그렇소. 아주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자이니 그냥 보내 주시오.”
“알겠습니다, 교주님.”
“추호법과 육호법이 이곳에 도착하면 살각주는 그들에게 이곳을 넘기고 무림맹으로 가시오. 무림맹에서 반드시 죽여야 할 자는 제갈곤이라는 자요.”
“존명.”
“수고해 주시오.”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몇 술, 밥을 뜨지도 않고 상을 물린 시천세는 방을 나와 마당을 거닐었다.
마당 한쪽 햇볕이 잘 드는 곳에는 봉분 네 개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봉분은 풍천양과 도운패, 당백요, 남궁악이 누워 있었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그들을 찾아 이곳에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술 한잔할 수 있겠느냐?”
시천세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그는 바로 몸을 돌려 땅바닥에 엎드렸다.
“잘 있었느냐?”
아아……
사부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시천세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역시 사부는 자신을 미워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을 하느냐? 어서 술상을 차려오지 않고?”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행여 사부가 눈앞에서 사라질까 봐 두려웠는지 시천세는 황급히 몸을 움직였다.
“종예, 어서 술상을 봐 오라!”
방으로 뛰어 들어간 시천세는 손수 탁자와 의자를 밖으로 내왔다.
봉분 옆으로 탁자와 의자를 가져다 놓은 그는 사부를 의자로 청했다.
“어서 앉으십시오, 사부님.”
봉분들을 지켜보고 있던 사부가 자리에 앉자 시천세도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 종예는 술과 급하게 만들어 낸 소채볶음을 내왔다.
그녀는 감히 독고일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못했다.
“자, 잠시만 기…… 기다리십시오. 고…… 곧 제대로 된 요리를 내오겠습니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네 녀석은 여전하구나.”
“가, 감사합니다.”
종예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시천세가 술병을 잡으려 했지만 독고일의 손이 먼저 술병을 낚아챘다.
술병을 잡은 독고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봉분에 차례로 술을 부었다.
“술을 더 내오너라.”
몇 병의 술을 무덤에 부어 버린 독고일은 그제야 자리에 앉아 술잔을 잡았다.
술이 채워지고 술잔을 비운 독고일은 시천세의 잔에 술을 채웠다.
“강호 무림을 네 마음대로 움직여보니 어떠하더냐?”
시천세는 얼른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졌다.
설사 일만 명의 젊은 여인들을 원한다면 그대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특히 즐거운 일은 강호 무림의 암투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서로 힘을 합쳐 대항하기에도 한참이나 모자란 판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견제를 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강호 무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천하제일의 헛된 야망을 키우고 있던 어리석은 강호인들도 세월이 흐를수록 자신들의 처지를 깨달아가고 있었다.
“즐거운가 보구나.”
시천세가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자 독고일은 그의 마음을 짐작해 대신 대답을 내놓았다.
“나는 하루라도 즐거운 날이 없었던 것 같구나. 그나마 너희들을 거둬들이고 나도 그 즐거움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느니라. 그래서 너희들이 고맙구나.”
“사부님…….”
시천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것은 거짓이 아닌 진정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이었다.
“너희들 중에 나의 후계자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었다. 때문에 너에게 이십 년이라는 제약을 걸어 둔 것이고. 하지만 역시 그 녀석들은 너를 넘지 못했구나.”
기뻤다.
오늘처럼 기쁜 날은 또 없을 것이다.
드디어 사부에게 진정으로 후계자라는 인정을 받았다.
시천세는 비어 버린 사부의 잔에 공손하게 술을 채웠다.
“비강은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그 녀석은 그저 연민으로 키우게 되었고 혹시나 하는 의심에 무공을 가르쳤느니. 하나 그 의심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 커져 가더구나. 그 녀석은 너희들보다 그렇게 많은 무공을 가르치지 않았지만 스스로 길을 만들어갔느니라. 해서 그 녀석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었다.”
사부의 입을 통해 연비강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시천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청산을 원래대로 복구를 했더구나.”
“그곳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지 않습니까? 사부님.”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것이겠지.”
시천세는 사부의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독고일은 손수 제자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술잔을 들어 술을 받고 있는 시천세의 두 손이 잘게 떨렸다.
“네 힘으로 비강을 죽일 수 있다면 죽여도 좋다. 그 녀석을 죽이고 내 후계자가 되려 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사부님.”
떨리는 목소리와 두 손으로 인해 잔을 채우고 있던 술이 흘러 넘쳤다.
“마지막으로 너의 얼굴을 보려고 들렀느니라. 네가 내 후계자가 되든 아니든 이제 너는 나를 볼일이 없을 것이다.”
“어디로…… 어디로 가십니까? 사부님.”
독고일은 흐릿한 미소를 제자에게 보여 주었다.
“이제 흙으로 돌아가야지 않겠느냐.”
“사부님…….”
말을 잇지 못하는 시천세를 바라보던 독고일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잘 마셨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시천세는 사부를 올려다보다가 두 손을 모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안녕히…… 안녕히 가십시오, 사부님.”
시천세가 인사를 끝내고 고개를 들었을 때 사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후우……
그는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격정을 추슬렀다.
이제 사부의 시대가 끝이 났다.
이 순간부터 진정한 자신의 강호가 시작되는 것이다.
***
“약림이 일월신교의 교주 연비강의 손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단잠을 깨우는 급보에 제갈곤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걸쳐 입었다.
집무실로 들어와 보니 벌써 국원이 자리에 앉아 서안에서 날아온 전서를 살피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소? 마안자.”
“나오셨습니까? 군사. 서안의 약림이 연비강의 손에 떨어지고 림주 약추완이 그의 손에 죽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렇게 되었구려. 나는 남하하고 있는 일월신교를 기다려 약림을 함락시킬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소이다.”
크게 놀랄만한 소식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그로 인해 큰일이 벌어질 것이다.
“어찌 생각하오? 마안자. 우리가 어떻게 움직였으면 좋겠소?”
“무림맹의 무인들을 동원해 약림이 아닌 일월신교의 본거지인 십만대산을 직접 쳐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남하하고 있는 일월신교와 연비강은 물러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다음에 황곡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사교를 멸할 수 있습니다.”
제법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아니,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나 연비강이 있는 약림과 남하하고 있는 일월신교를 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오. 알겠소. 나 또한 마안자와 같은 생각이니 맹주와 의논을 해 보겠소.”
“서둘러 주십시오, 군사.”
“알겠소이다.”
제갈곤이 막 방을 나가려는데 장룡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오? 장 대협.”
“아닙니다. 잠시 마안자와 의논을 할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장룡은 마안자 국원과 함께 무림맹에 투신한 사람으로 제갈곤도 처음에는 그를 의심했으나 지금은 크게 신뢰하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맹주를 만나야 하니 두 분은 말씀을 나누고 계시오.”
“알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제갈곤이 방을 나가자마자 장룡의 표정은 자못 심각하게 변했다.
“부맹주와 젊은 무인들 사이에 오간 이야기를 알아냈소. 그자들은 어이없게도 황곡을 직접 공격하려 하고 있소.”
어이없어하기는 마안자도 마찬가지였다.
“미친놈들. 죽으려고 환장을 했군.”
“하나 맹주나 부맹주는 성질이 급하기는 해도 심기가 깊은 자들이오. 그자들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황곡을 공격할리 없소.”
그것은 장룡의 말이 맞았다.
이에 마안자도 조금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믿을 만한 자를 골라 황곡으로 보내 총관에게 알리시오.”
“그렇지 않아도 믿을 만한 자에게 지시를 내려놓기는 했으나, 며칠 후에나 무림맹을 나갈 빌미를 마련할 수 있소.”
“최대한 서둘러 주시오.”
“알겠소.”
말을 맞춘 장룡이 밖으로 나가자 마안자는 여느 때와 같이 여러 서류들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