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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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34화
제234화. 복수의 끝(1)
오진권은 홀로 봉서를 뜯어 안에 들어 있는 서신을 펼쳤다.
놀랍게도 이 서신은 연비강이 보내온 것이었다.
서신을 전부 살펴본 오진권의 안색은 심각할 정도로 굳어 있었다.
“들어가도 되겠소?”
문밖에서 남궁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시오.”
남궁휘는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으며 오진권의 손에 들려 있는 서신을 힐끗 살폈다.
“보시오.”
오진권은 서신을 남궁휘에게 건네주었다.
서신을 읽은 남궁휘도 오진권처럼 안색이 심각할 정도로 굳어졌다.
서신 안에는 비강이 앞으로 벌일 일들을 소상히 밝히고 있었다.
또한 시천세가 어떤 요구를 할지도 짐작하여 써놓았다.
“어찌하면 좋겠소?”
오진권은 물음에 남궁휘는 잠시 고심을 하다가 대답했다.
“나는 맹주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따르겠소. 하나 만약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무림맹은 물론이고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까지 그대로 끝장이 날 것이오. 그러하니 신중하게 움직였으면 하오.”
“며칠 두고 봅시다. 과연 이대로 흘러갈지.”
며칠 두고 볼 것도 없었다.
저녁때가 되자 군사 제갈곤이 급하게 맹주의 방을 찾아왔다.
“급보외다. 감숙에서 급보가 날아왔소이다.”
오진권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제갈곤을 맞이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약림이 십만대산의 일월신교와의 싸움에서 대패를 하였소이다. 지금 일월신교는 약림에 협조한 감숙의 무가와 무문들을 멸문시키며 남하하고 있다하오.”
“정말 놀라운 소식이로군요. 자세히 말씀을 해 보십시오.”
“아직 자세한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으나 약추완은 팔이 잘린 채 수레에 실려 약림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소이다.”
오진권은 잠시 고심을 하는 것 같더니 슬쩍 본심을 드러내 보였다.
“그렇다면 무림맹이 약림을 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갈곤은 당연히 반대를 하고 나섰다.
“아니 되오. 우리 무림맹만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오.”
“그렇다면 시천세가 그 일을 우리에게 요구한다면 어찌 대처할 생각이십니까?”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하오이다. 만약 시천세가 그런 일을 우리에게 요구한다면 그건 분명 일월신교와 상잔을 시키기 위함 일 것이오.”
확실히 제갈곤은 군사로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주변을 살폈다.
무인으로서 마음껏 자신을 드러내 야망을 펼치고 싶은 오진권으로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알겠습니다. 군사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소이다. 곧 하늘이 기회를 내려 주실 것이니 참고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소. 감숙에서 다른 소식이 올라오면 또 찾아뵙겠소이다.”
군사가 방을 나가자 오진권은 홀로 중얼거렸다.
“다른 소식? 곧 약림이 불에 탔다는 소식이 올라오겠지.”
그의 말대로 한밤중에 군사가 찾아와 약림의 일을 알렸다.
약하림을 태운 마차는 약림을 앞에 두고 멈춰 섰다.
마차에서 내린 약하림은 성벽 너머로 보이는 약림을 올려다보았다.
시커멓게 불에 탄 여러 채의 전각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단 하나뿐인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마차 안에서 전해 들었다.
“하늘이…… 원망스럽구나. 하늘이…… 원망스러워.”
그녀가 타고 온 마차는 감숙 마가에서 얻은 것이었다.
약하림이 도망칠 때만 해도 약추완의 이름으로 불가능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마차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며 들려오는 소식들은 전부다 그녀를 충격에 빠뜨리는 것 들 뿐이었다.
손으로 눈물을 훔친 그녀는 마차에 올라 마부를 재촉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마부는 아무 소리 없이 말을 몰았다.
마차 옆에는 말을 타고 있는 마가의 가인들이 열 명이나 붙어 있었다.
그들도 마가의 멸문을 전해 들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황급히 말머리를 돌리려던 그들은 약하림의 약속을 듣고는 약림까지 호위를 하게 되었다.
그녀의 약속은 다름 아닌 마가의 재건이었다.
불에 탄 전각들을 올려다보며 약림 안으로 들어서는 가인들의 얼굴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약하림은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악가의 가모시오!”
가인의 외침소리에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렸다.
아무리 살수들의 습격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약림에는 아직 꽤 많은 무인들이 남아 뒷수습을 하고 있었다.
약림을 오가는 무인들의 표정은 전부 어두웠다.
그들도 십만대산으로 출전한 약림의 패배를 전해 들었다.
더군다나 림주 약추완을 대신해 약림을 지키고 있던 약무한이 살수의 손에 죽었다.
약림은 생기를 완전히 잃은 공동묘지와 같았다.
약가를 찾아오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북림 순찰단에 있을 때에도 약가를 찾아보고 싶었으나 나중을 위해 참고 또 참았었다.
담 너머로 연기가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식솔들이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담을 따라 걷던 비강은 정문이 보이기 시작하자 걸음을 늦췄다.
약가의 가인들 두 명은 정문을 지키다가 담을 따라 걸어오고 있는 비강을 발견했다.
처음 보는 낯선 자라 가인들은 은근히 경계를 하며 말을 걸었다.
“뉘시오?”
비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연비강.”
낯선 자의 대답을 듣자마자 가인들은 화들짝 놀라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잡았다.
투툭…… 떼구르르…… 털썩. 털썩.
놀란 눈의 가인들의 머리는 바닥을 굴렀고, 머리 없는 몸은 힘없이 널브러졌다.
콰르릉! 콰당!
정문을 십자로 베어버리고 안으로 들어선 비강을 맞이한 것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전각과 누각들이었다.
크크크크…….
과연 약추완의 수완은 알아줘야 한다.
어떻게 건물들이 북림의 그것들보다 더 대단하단 말인가.
규모는 북림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전각과 누각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오히려 더 대단했다.
정문이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온 가인 하나가 비강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적이.”
아니, 가인은 끝까지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스아아악……
희뿌연 기운이 가인을 지나 뒤쪽에 서 있는 전각의 기둥을 반으로 쪼개놓았다.
쩌쩌적!
기둥은 반으로 갈라지고 그 기둥 앞에 서 있던 가인도 반으로 갈라졌다.
꽈드드드드……,
기둥이 반으로 갈라지자 전각은 고통 가득한 비명 소리를 내지르며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적의 습격이다!”
전각 안에서 문을 박차고 가인들이 줄줄이 뛰쳐나왔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것은 하얀 악마였다.
콰콰콰콰…… 쾅!
밖으로 뛰쳐나온 자들과 낭하를 달리던 자들을 휩쓸고 지나간 악마는 전각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고 쓰러져 갔다.
콰드드드…… 쿠쾅!
전각이 무너져 내리며 안에 있던 자들의 비명 소리가 비강의 귀로 들려왔다.
땅을 가볍게 차고 날아오른 비강은 풀썩 주저앉은 전각의 지붕 위에 사뿐히 내려섰다.
뒤쪽에 늘어선 전각에서 달려 나온 약가의 가인들은 경악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감히 맞설 수 없는 고수였다.
강호의 어느 누가 약가를 찾아와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늙은 장로는 비강의 손가락을 감싸고 있는 검은 반지를 발견했다.
“백리……혈.”
비강은 입가를 길게 늘이며 사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우…… 웅!
주변의 공기는 비강을 중심으로 빨려 들어갔다.
뒤이어 하얀 악마들이 검신을 빠져나와 약가의 가인들을 휩쓸었다.
콰콰콰콰…… 콰쾅!
악마들은 땅을 뒤집어 놓으며 다섯 갈래로 나뉘어 내달렸다.
피어오르는 흙먼지는 하늘을 가리고, 천지를 떨게 하는 악마의 하얀 이빨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전각과 누각을 집어삼켰다.
콰드드드…… 콰쾅! 쾅!
흙먼지와 함께 사방으로 뿌려진 붉은 핏물과 살점들은 전각의 잔해들과 뒤섞여 약가를 붉게 물들였다.
으으으……
살아남은 가인들은 공포에 몸을 떨었다.
“사, 살려…….”
누군가의 입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걱.
비강은 목숨을 구걸하는 자의 목을 치며 지나갔다.
서걱. 서걱……
연달아 가인들의 목을 쳐 낸 비강은 남아 있는 전각을 향해 검을 뿌렸다.
콰앙!
담이 부서져나가고 그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검을 든 강호인이 그 구멍을 통해 걸어 나왔다.
몰려든 구경꾼들이 주춤주춤 물러나며 길을 열어 주자 강호인은 그 길을 통해 약가를 빠져나갔다.
구경꾼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빠져나가던 강호인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구경꾼들 사이에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은 강호인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에 강호인도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강호인이 멀리 사라지자 구경꾼들은 무너진 담을 통해 하나둘씩 안으로 들어갔다.
우웩! 우웩!
안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은 갑자기 바닥에 엎드려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마주한 것은 한 폭의 지옥도였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토막 난 시신들과 뒤엉킨 살점, 사방을 물들이고 있는 붉은 피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세…… 세상에…… 그 대단한 약가가 하루아침에 몰살을 당하다니…….”
“도대체…… 그 강호인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마인이야. 세상에 다시없을 마인이 출현했어.”
약추완을 태운 수레가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곁에는 약 이백여 명의 무인들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원래는 더 많은 수가 살아남았으나 뿔뿔이 흩어져 도망친 탓에 곁에 남은 무인들은 이백여 명이 고작이었다.
약추완이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약하림이 달려 나와 그 앞에 엎드렸다.
“아버님…….”
바닥에 엎드린 약하림이 눈물을 보이자 약추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수하들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어느새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도 아들 약무한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아들이 죽고, 외손자가 죽고, 약림은 싸움에서 대패했다.
그러나 아직 포기하기에는 일렀다.
자신이 누구이던가?
그 황곡에서도 살아남았고, 풍천양 아래에서도 권력을 누렸으며, 그를 죽인 시천세의 손에서도 살아남았다.
“울지 마라. 아직 악가와 약가가 있고, 여기 약림이 있느니라.”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약림은 다시 일으켜 세우면 되고 아들은 다시 가문에서 똑똑한 놈을 골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당장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남하하고 있는 일월신교의 무리를 막는 것이었다.
일월신교를 막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다시 황곡으로 찾아가 시천세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고 빌어야 한다.
치욕스럽기는 하지만 그 방법밖에 없었다.
“아버님…… 그것이 아니오라…….”
눈물을 흘리며 뭔가 말을 하려는 약하림을 내려다보던 약추완은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약가의 가인들도 전부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더냐?”
불길한 느낌을 받은 약추완이 물었다.
“림주님!”
그제야 약가의 가인들은 대성통곡을 하며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무슨 일이냐니까?”
약추완은 제발 그 일만은 아니기를 바라며 소리쳐 물었다.
“본가가…… 본가가…… 몰살을 당했습니다.”
커억!
약추완은 그 대답을 듣자마자 피를 한사발이나 토해 냈다.
“림주님!”
약가의 가인들이 놀라 달려왔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미 수레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다.
“연…… 연비강…… 이놈!”
낄낄낄……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약가의 일을 들어 알고 있을 자들이 도망은 치지 않고 가문을 지키고 있었다.
도망을 치지 않은 것인지, 도망을 치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과는 같을 것이다.
악가의 정문은 이십여 명의 가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비강은 악가의 정문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가인들과 이십여 장쯤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담 위에 수많은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손에는 활과 화살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