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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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33화
제233화. 가자! 강호로(3)
스아아악……
도망치는 자들의 목을 베어 내고 돌아온 검을 잡아챈 비강은 저 멀리 높이 보이는 산을 흘깃 바라보았다.
‘저위에서 누군가 이곳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데.’
“뭐가 그렇게 신경이 쓰이시나요? 교주님.”
꽃무늬가 화려한 신녀의 모습은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전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아. 나를 지켜보고 있는 시선을 느꼈소.”
“당신이 끊어 내지 못한 인연이 있는 것이겠지요. 가 봐요.”
비강은 바로 언짢은 안색을 드러냈다.
“내가 당신을 멀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오.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알고 있는 듯한 당신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소.”
강무화는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전장과는 상반된 미소였다.
“당신의 앞날조차 모르는데 세상의 일들을 어찌 알겠어요?”
강무화와의 말싸움은 언제나 끝이 나지 않는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비강은 바로 저 멀리 보이는 산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비강의 모습이 눈앞에서 꺼지듯 사라지자 강무화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안타까운 죽음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산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던 자들은 비강의 모습이 사라지자 움찔 놀랐다.
“놀라지마, 원래 그런 놈이니까. 언제나 내 예상을 벗어났지.”
전장을 내려다보던 여인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녀가 몸을 돌리자 옆에 늘어섰던 자들도 전부 몸을 돌렸다.
그들이 몸을 돌리자마자 눈앞에 비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들이었군.”
비강은 놀라지 않았다.
이들이라면 이번 싸움에 모습을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철빙, 공손황, 지선방, 춘일, 춘이들이었다.
“오랜만이오, 연 대협.”
공손황이 먼저 두 손을 모야 예를 표하자 지선방이나 춘일, 춘이들도 예를 표했다.
“다들 오랜만에 뵙소.”
비강도 손을 모아 그들에게 예를 표했다.
약철빙은 물끄러미 비강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연 대협, 완벽하게 대승을 했으니 도망치고 있는 자들은 살려 주는 게 어떻소?”
공손황은 비강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 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비강은 그렇게 모질고 잔인하지 않았다.
“내가 왜 그래야 하오?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소.”
“연 대협…….”
공손황은 망연한 얼굴로 비강을 쳐다보았다.
“공손 대협도 저들이 내게 다시 칼을 들이밀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소?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오. 저들을 살려 보낸다면 내 수하들이 피해를 입을 거요. 전에도 수없이 말했지만 나는 협객이 아니오, 공손 대협.”
전부터 비강은 자신이 협객이 아니란 말을 수없이 밝혔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설마 이대로 강호로 쳐들어가기라도 할 생각인가?”
비강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던 약철빙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렇소.”
짧은 대답이었지만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강호가 나와 일월신교를 죽이기 전에 내가 강호를 죽일 거요. 나는 나를 해하려는 자를 용서하지 않소. 그럼 잘들 돌아가시오.”
처음부터 끝까지 차가운 비강의 응대였다.
“잠깐.”
약철빙의 목소리는 몸을 돌려 산을 내려가려는 비강의 발을 멈추게 했다.
“말하시오.”
“너는 절대로 시천세를 이길 수 없어. 네 수하들은 그자의 수하들에게 전부 죽게 될 거야. 넌 다시 혼자가 되겠지.”
“그걸 어찌 장담하시오?”
“그자는 오래전 황곡에서처럼 고수들을 양성하고 있으니까. 새로운 황곡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어디서 양성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중천에서 활약하던 자들이 황곡에서는 더 이상 모습을 볼 수가 없으니까.”
비강은 여전히 몸을 돌린 채 그녀의 말을 받았다.
“내가 당신보다 그자를 더 잘 알고 있소.”
이미 담수연으로부터 시천세가 있는 황곡의 움직임은 어느 정도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 정보조차 하오문의 장경주로부터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중천의 인물들이 황곡에 보이지 않는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 일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어찌 강호제패를 입에 올릴 수 있을까?
“그래? 그렇다면 내가 실수를 한 것 같군. 네게 부탁이 하나 있어. 약림주를 죽이고자 한다면 한 번에 죽여 줘. 이런 식으로 질질 끌지 말고.”
낄낄낄…….
“불가하오.”
참으로 잔인한 웃음에 두려운 대답이었다.
그제야 약철빙은 비강이 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눈앞에 서 있는 비강은 예전의 그 모습이었으나 그 속은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비강은 멈췄던 발을 옮겨 산을 내려갔다.
“예전의 연 대협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공손황도 약철빙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 그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야.”
으아악! 아아악! ……!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전각들이 불타올랐다.
주궁패궐과 같던 마가는 약림의 일월신교에 대한 공격의 근거지가 되었다는 죄목으로 멸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약추완과 함께 일전에 참여했다가 마가로 도망쳐 온 약림의 일부 고수들도 살아남지 못했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마가의 가인들과 약림의 고수들을 차례로 베어 넘긴 담정천은 직접 횃불을 가져다가 전각에 불을 질렀다.
전각이 불에 타고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죽음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일월신교의 고수들은 마가의 패물들과 쌀섬들을 수레에 옮겨 싣고 있었다.
그 패물들과 쌀섬들은 앞으로 이어질 전쟁에 사용될 것들이었다.
“무각주.”
비강이 부르는 소리에 담정천은 불을 지르다 말고 얼른 달려갔다.
“찾으셨습니까? 교주님.”
“이제 나는 먼저 떠나야겠소. 앞으로의 일은 전에 말했던 계획대로 무각주가 진행해 주시오. 내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은 무각주가 내 대신이오.”
“알겠습니다. 그럼 강호에서 뵙겠습니다.”
담정천에게 자신의 일을 일임한 비강은 뒤를 따르고 있는 담혁수로부터 행낭을 건네받았다.
“상자는 발 빠른 수하들을 시켜 악가로 보냈습니다.”
“수고하셨소, 호각주, 강호에서 봅시다.”
“제가 옆에서 모셔야 하는데…… 조금 아쉽습니다.”
비강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행낭을 챙긴 비강은 바로 불타오르고 있는 마가를 나섰다.
발이 움직이는 방향은 약림이 자리 잡고 있는 동남쪽이었다.
***
“예상대로 약림이 패하였습니다.”
“자세히 말해 봐.”
황옥은 감숙을 돌아다니며 긁어모은 여러 정보를 시천세에게 보고했다.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운 전투였습니다. 먼저 연비강은 약림의 후미를 맡고 있던 백호대를 쳐 전멸시켰습니다. 그 와중에 악추산이라는 등신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연비강에게 덤벼들었다가 중상을 입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약추완과 염후룡이 뒤늦게 그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마찬가지로 부상을 당했습니다. 약추완은 한 팔까지 잘리고 난후에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고 합니다. 제 짐작인데 아마도 연비강은 일부러 그놈을 살려 놓아준 것 같습니다.”
보고를 받고 있는 시천세는 인상을 찌푸리며 탁자를 두드렸다.
탕! 탕!
“사심 없이 보고해, 사심 없이.”
“예. 그로부터 닷새 후에 전면전이 벌어졌는데 약림은 우월한 머릿수를 이용해 협공을 선택했습니다. 뭐, 도망치는 것 말고는 다른 뾰족한 방법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연비강은 협공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본진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 싸움에서 악추산과 염후룡이 전사했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약추완은 그 상황에서 최악의 선택을 했습니다. 후퇴를 하더라도 견제를 하면서 해야 하는데 무작정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고수들까지 어이없는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끄응……
시천세는 기묘한 신음성을 발했다.
여전히 사심 가득한 보고를 올리고 있는 황옥을 노려보다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총관을 쳐다보았다.
“염후룡이 바로 그놈이지?”
“예. 주공의 무공을 받은 자였습니다.”
흥.
“그걸 무공이라고 할 수 있나? 그래도 조금 아깝군. 약추완의 뒤를 이을 놈이었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은 표정이었다.
약추완이나 염후룡을 대신할 자들은 많고 많았다.
“그래서 연비강은 지금 무얼하고 있느냐?”
황옥은 보고를 이어 갔다.
“약림에 협조한 무가와 무문들을 멸문시키며 빠르게 남하하고 있습니다. 겁을 집어먹은 무가와 무문들이 미리 피신을 하는 바람에 남하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아, 무가와 무문들을 멸문시키는 와중에도 충실히 재물을 축척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었습니다. 듣기로는 빼앗은 패물과 양곡이 몇 개의 산을 이룰 정도라고 합니다.”
“약추완은 어떻게 되었나?”
“수레에 실려 약림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워낙 큰 피해를 입어 예전의 힘을 되찾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아니, 그놈은 이제 끝났어. 곧 서안에서 전서가 날아오겠군.”
시천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종예가 안으로 들어섰다.
“서안에서 급전이 올라왔습니다.”
끌끌끌끌……
시천세의 웃음은 전서를 받아 읽어 보기도 전에 이미 내용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종예는 전서를 바쳐 올렸다.
“약림이 살수들의 기습을 받아 약추완의 아들이 사망하고 전각들이 불에 탔다라…….”
끌끌끌…….
“이제 남은 것은 약가와 악가인가? 정말 세상에 다시없을 지독한 놈이로다.”
시천세는 이미 비강의 속내를 꿰뚫고 있었다.
“총관, 무림맹에 전서를 보내 약림을 접수하라 이르게. 무림맹은 물론이고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무인들을 전부 출전시켜야 한다고 전해.”
“존명.”
총관이 명을 받아 밖으로 나가고 종예도 약가와 악가의 일을 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이제 회의실 안에는 시천세와 황옥만이 남게 되었다.
시천세는 물끄러미 황옥을 쳐다보았다.
“너는 왜 안 나가?”
“밖에 나가봤자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럼 연비강이 지금 뭐하고 있는지 찾아 봐.”
“알겠습니다.”
황옥마저 내보낸 시천세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무림맹은 약림을 차지하지 못한다.
일월신교와 부딪쳐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니 후퇴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후에 약림을 대신할 다른 세력을 세워 놓으면 되는 것이다.
‘누구로 대신할까? 그래도 약추완이 만한 놈은 없었는데 조금 아쉬워.’
시천세는 산서에 있는 자들 중에 욕심과 야망이 큰 적당한 자를 떠올렸다.
무림맹의 정문을 지키던 무인들은 땅에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오고 있는 노인을 유심히 살폈다.
저 노인은 도대체 무슨 볼일로 무림맹을 찾아오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보아도 강호 무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행색의 노인이었다.
“멈추시오. 이곳은 무림맹이니 중요한 볼일이 아니라면 돌아가시오.”
정문을 지키던 무인들 중에 하나가 노인의 앞을 막아섰다.
노인은 꾸부정한 허리를 억지로 펴더니 무인에게 물었다.
“혹시 맹주님을 뵐 수 있겠는지요?”
“맹주님을? 노인이 말이오?”
“예. 실은 전해 드릴 것이 있어서…….”
품 안을 주섬주섬 뒤지던 노인은 누런 봉서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뭐요? 누가 보낸 거요?”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반드시 맹주님께 전해야 한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정문을 지키던 무인들은 그제야 이 노인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노인을 붙잡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순간 노인은 지팡이로 땅을 밀었다.
툭.
지팡이로 땅을 미는 순간 노인의 신형은 바람처럼 뒤로 날아갔다.
“서라!”
“잡아라!”
무인들이 급히 뒤를 쫓았지만 노인은 점점 더 멀어지더니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