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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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9화
19화
오교홍이 나서자 광한십팔객 중 세 사람이 검병을 쥐었다.
“선배, 나설 자리를 보고 나서지요.”
“흥! 네깟 놈들이 감히 우리를 막을 수 있다고 보느냐?!”
점박이인 백사 오교상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흘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촤르륵!
그때 주렴이 걷히더니 철립인 셋이 더 안으로 들어왔다.
“막지 못할 건 또 뭐 있소?”
객잔 안이 순식간에 살기로 뒤덮였다.
식사를 하던 양민 대여섯 명이 벌벌 떨며 한쪽 구석으로 도망쳤다.
구포봉은 그 사람들을 주방을 통해 내보내고 선우궁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선우궁현이 아무런 내색도 않고 앉아 있는 걸 보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고개만 내밀었다.
‘미친놈들. 이곳에 누가 있는 줄도 모르고…….’
그사이 광한십팔객 중 먼저 일어섰던 철립인이 소년이 있는 탁자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소광섭의 등에 메인 보따리를 보고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물건을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준다.”
소년과 함께 있던 중년인들은 이를 악물고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철립인은 홍백쌍사도 들으라는 듯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도망갈 생각은 마라! 밖에도 우리 동료들이 지키고 있으니까!”
그 말에 홍백쌍사가 움찔했다.
기회를 엿보던 형산의 세 제자도 주위를 둘러보며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세운산장의 사람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은 동시에 일어나서 소년을 감싸며 검을 뽑았다. 소광섭이 이를 빠드득 갈고는 소리쳤다.
“이미 죽을 각오를 한 우리다! 물건을 주면 살려준다고? 흥! 그런 개도 안 믿을 소리는 하지 마라!”
이미 보물을 빼앗겠다고 가솔 일백여 명을 도살한 자들이다. 믿을 게 따로 있지, 어찌 그런 말을 믿는단 말인가.
“믿지 못한다면 귀찮아도 죽이고 거두어들이는 수밖에.”
철립이 비릿한 조소를 흘리며 검을 천천히 빼 들었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지 뒤로 처져 있던 세 명의 철립인이 갑자기 몸을 날렸다.
그러자 형산의 제자들이 자리를 박차고 그들의 뒤를 쳤다.
매미를 노리는 버마재비를 참새가 노리는 격이다.
홍백쌍사는 세 명의 철립인과 대치한 상황. 장내의 상황이 묘하게 맞물려 돌아갔다.
차창! 따당!
“감히 어디서!”
“흥! 마도 놈들이 어딜!”
순식간에 난전이 벌어졌다.
세운산장의 사람들은 소년을 보호하며 철립인과 격전을 벌이고, 형산의 제자들은 다른 철립인 셋과 맞붙어서 신랄한 검초를 쏟아냈다.
그들이 세운산장의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 역시 욕심이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로 인해 상황은 더욱 혼잡해졌다.
홍백쌍사와 대치해 있던 철립인 하나가 급히 소리쳤다.
“선배! 우리 일은 나중에 처리합시다!”
홍백쌍사도 마냥 대치 상태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들창코 홍사가 몸을 돌리며 대꾸했다.
“좋아! 일단 물건을 얻고 나서 보자!”
좌소천의 귀에 다시 선우궁현의 목소리가 울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즉시 주방 쪽으로 가라. 어서!>
좌소천은 주춤 일어서려다 선우궁현을 바라보았다.
선우궁현의 눈은 어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껏 봐온 소탈하던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한 자루 검이 눈에 담긴 듯했다.
그 눈빛이 어서 움직이라고 종용한다.
좌소천은 입술을 씹으며 주방 쪽으로 몸을 피했다.
‘지금은 힘이 없어 피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절대 피하지 않을 것이다!’
소년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만 있을 뿐 힘이 없었다.
그것이 한스러웠다. 어머니를 구하지 못했을 때처럼.
그런데 좌소천이 막 주방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펑! 퍼펑!
갑자기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시커먼 연기가 객잔 안에 퍼져 나갔다.
그러자 기둥에 달려 있던 유등잔도 소용없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객잔 안을 뒤덮었다.
그리고 곧이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웬 놈이……! 커억!”
“허억!”
“캐애액!”
좌소천은 깜짝 놀라서 안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하지만 뒤에서 당기는 손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구포봉이 다급히 좌소천을 끌어당겼다.
<빨리 따라와라, 꼬마야. 곧 어르신께서도 따라오실 테니까.>
객잔의 주인이 일류고수들이나 시전 할 수 있다는 전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전하다니.
좌소천은 대항할 새도 없이 구포봉의 손에 이끌려 주방의 구석으로 갔다.
덜컹!
구포봉은 바닥의 두꺼운 판자를 들어 올리더니 그 안으로 좌소천을 밀어 넣었다.
“먼저 들어가 있어라.”
그러고는 좌소천이 엉겁결에 사다리를 내려가자 대답할 틈도 없이 판자를 덮었다.
잠시 망설인 좌소천이 이대로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다리를 올라가는데 판자가 다시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다급히 내려왔다.
급히 옆으로 몸을 피한 좌소천은 내려온 사람이 누군지 알고 눈을 크게 떴다.
소년. 자신을 보고 웃던 소년이 눈물을 글썽이며 몸을 떨고 있었다.
“너는……?”
하지만 질문할 시간도 없었다.
뒤이어 내려온 선우궁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따라와라.”
“아저씨, 숙부님은요?”
소년이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선우궁현에게 물었다. 선우궁현이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 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일단 따라와라.”
연기가 빠져나간 객잔 안은 난장판이 되다 못해 참혹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탁자는 부서진 채 사방으로 넘어져 있고, 바닥은 시뻘건 피로 도배가 되었다. 그 사이에 쓰러져 있는 시신만도 무려 열 구였다.
“아이고! 나는 망했다! 이를 어째! 무서워서 손님들도 안 올 텐데! 아이고!”
와장창!
뒤늦게야 칠팔 명의 철립인이 창문을 부수고 객잔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하지만 그들은 객잔 주인인 구포봉이 벗어 든 신발로 바닥을 치며 통곡하는 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철립인 중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를 갈았다.
“이,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철립인 일곱은 모두가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백사도 죽어 널브러져 있고, 홍사는 보이지 않았다.
팔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는데, 붉은 옷자락과 주름진 손을 보니 홍사의 것인 듯했다.
형산의 제자들은 모두가 도망갔는지 한 사람도 없었다. 세운산장의 사람들도 시신 두 구를 남겼을 뿐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일곱 명이 죽고 물건도 사라진 상황. 철립인은 눈에서 불길을 토해내며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물건을 가진 연놈들이 도망쳤다! 일대를 뒤져라!”
2
지하 통로는 제법 길었다.
오십여 장은 족히 가서야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왔다. 중간에 두 군데 다른 곳으로 빠지는 길이 있는 걸로 봐서 나가는 곳이 한 곳만은 아닌 듯했다.
계단을 올라간 선우궁현이 문에 귀를 가까이 대더니 고리를 풀고 문을 밀었다.
덜컹.
문을 열리자 선우궁현이 손짓을 했다.
밖으로 나간 좌소천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문밖은 방이었는데 제법 넓은데다 침상까지 있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고, 내일 아침에 일찍 떠나자.”
좌소천은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묻지 않았다.
알려줄 것이라면 선우궁현이 알려주겠지.
하지만 소년은 좌소천처럼 참을성이 많지도, 선우궁현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다.
“아저씨,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설명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소년이 선우궁현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다행히 객잔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을 때보다는 많이 진정된 상태였다. 눈물은 이미 말라서 눈 가장자리에 얼룩이 져 있었다.
“상황이 급해서 너를 구하긴 했다만, 다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포봉이 사람을 보내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봐라.”
소년의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그보다 어떻게 된 것이냐? 세운산장이 멸문당했다는 말은 들었다만, 어쩌다 이곳까지 온 것이냐?”
끝내 소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흑흑! 다 죽었어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숙부들도……. 흑흑흑…….”
“광한방이 한 짓이냐?”
소년이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잘 몰라요. 밤중에 쳐들어왔는데, 복면을 해서……. 흑흑흑…….”
어깨를 들썩거리며 우는 소년의 말에 선우궁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세운삼걸 중 한 사람인 소광섭이 있었다. 그라면 적이 복면을 했어도 누군지 알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도 아이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정말 몰랐을까?
‘아이가 한을 가지기에는 너무 강한 적이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그조차 모를 적이었나?’
두 가지 다 가능성이 있었다.
“갈 곳은 있느냐?”
소년이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디를 가던 길이었지? 네 숙부와 함께 이곳까지 왔다면 어딘가를 가려고 했던 것 같은데.”
소년이 억지로 눈물을 닦으며 쉬어서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숙부님과 함께 철검판관 선우 대협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어요.”
좌소천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서 선우궁현을 쳐다보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선우궁현의 얼굴이 묘하게 이지러져 있었다.
“크음, 그를… 잘 아느냐?”
“몰라요. 무작정 만나서 부탁을 하려고 했어요.”
“무슨… 부탁 말이냐?”
“원수를 갚아달라고요. 쩨쩨한 분이 아니라고 들었거든요. 아저씨, 혹시 그분에 대해서 아세요?”
소년이 고개를 번쩍 쳐들고 가련한 눈빛을 한 채 선우궁현을 올려다봤다.
그 바람에 뒤로 묶었던 머리가 풀어지더니 기다란 머리가 허리까지 출렁이며 늘어졌다.
그걸 본 좌소천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어? 여자잖아? 어쩐지…….”
포봉이 온 것은 반 시진가량이 지나서였다.
그의 말을 들은 소년, 아니, 소녀 소영령은 반색을 했다.
“정말 숙부님께서 무사하신가요?”
“그건 잘 모르겠고, 다만 객잔에서 몸을 뺀 것만은 분명하단다.”
그때 선우궁현이 나섰다.
“밖은 지금 어떤가?”
“광한방 놈들이 쫙 깔렸습니다. 어찌나 살벌한지 악양의 주인처럼 행세하던 적가장이 찍소리도 못하고 있습죠.”
“음, 날이 밝기 전에 떠나려 하네만, 놈들이 그때까지 철수할지 모르겠군.”
“걱정 마십쇼. 어르신하고 우리 도련님 빼내는 것쯤이야, 뭐.”
“저 아이도 내가 데려갈까 하네.”
“저 아이를요?”
“놈들이 어떻게든 찾으려 할 텐데, 일단 피해야 하지 않겠나?”
그때였다. 소영령이 발딱 일어서더니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안 돼요! 저는 못 가요!”
포봉이 별로 크지도 않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저는 철검판관 선우 대협을 찾아가야 하거든요.”
입이 쩍 벌어진 포봉이 튀어나올 것 같은 눈으로 선우궁현을 바라보았다.
선우궁현은 헛기침을 하며 탁자의 찻잔을 잡아 입으로 가져갔다.
나중에 말해줄 테니 잠시 쉬라고 했다. 어차피 갈 곳도 없는 아이, 섬으로 데려가려고 했으니까.
그런데 소영령이 거부를 하니 꼴이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자신의 입으로 ‘내가 선우궁현이다’ 하기도 어정쩡한 상황.
마침 가까스로 웃음을 참은 포봉과 시선이 마주치자 선우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포봉은 행여나 소영령이 놀랄까 봐 최대한 편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야, 저분이 누군지 아냐? 바로… 네가 찾는 철검판관, 만패철검 선우 대협이시단다.”
소녀가 포봉보다 두 배는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선우궁현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금방 눈을 가늘게 하고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누가 속을 줄 알고요? 그분은 중원칠기 중 한 분이신데, 저렇게 삼류무사처럼 생겼을 리가 없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