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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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5화
15화
점점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져 간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도 떨리는 듯 느껴진다.
좌소천은 차마 어머니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기에 떨리는 손을 들어 제왕신단을 입에 넣었다.
어머니가 조용히 웃으신다.
그것만으로도 잘한 것 같았다.
“단약의 기운이 퍼지거든 천천히 내력을 돌려라. 그리고 황 당주님께서 너를 도와주실 것이니 동요하지 말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 방문이 열리고 황연송이 들어왔다. 그는 처연한 표정으로 동방선유를 바라보고는 좌소천의 뒤로 가서 앉아 좌소천의 웃옷을 벗겼다.
그는 좌소천이 복용한 약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좌소천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태부인이 그걸 원했기 때문이다.
“네 어머니의 말씀대로다. 그 약은 네 어머니에게 아무 소용이 없단다. 그러니 마음 편히 하고 어머니가 바라시는 대로 해라.”
그래도 그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좌소천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황연송이 품에서 작은 옥함을 꺼내 서른여섯 개의 침을 늘어놓았다.
“조금 있으면 약기운이 거세질 것이다. 지금의 네 몸으로는 절대 약기운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그 기운을 단전으로 몰아넣는 데 최선을 다해라. 그리고 나중에 네가 더 크면, 뭉친 기운을 녹여서 네 것으로 만들면 된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그 기운이 헛되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것뿐이니라.”
말을 마친 황연송은 세 치에 달하는 장침을 집어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한 치 길이의 단침부터 네 치 길이 장침까지, 서른여섯 개의 침이 좌소천의 몸에 꽂히기 시작했다.
근 일각에 걸쳐 침이 모두 꽂히자 황연송이 좌소천의 명문혈에 손을 얹었다.
기운이 헛되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황연송은 ‘고작해야’라고 하며 해야 할 일이 별것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의학적인 지식이 없고 오십 년 이상의 내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하는 김에 좌소천의 혈맥에 쌓인 탁기를 씻어줄 생각이었다.
원래 그의 능력만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제왕신단의 약기운이 요동치면서 혈맥을 휘돌 터, 그걸 이용한다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어쩌면 그로 인해 황연송은 적지 않은 내력을 손해 볼지도 모르지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을 시작했다.
‘좌 군사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거늘, 내 무엇을 망설일까?’
좌소천이 정신을 차린 것은 근 두 시진이 지나서였다.
눈을 뜨자 곤히 잠든 어머니가 보였다. 황연송은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좌소천은 옷을 걸치고는 침상 아래로 처진 어머니의 손을 가슴에 얹으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사랑해요, 어머니.”
주무시는 어머니의 입가로 가느다란 미소가 번진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좌소천은 왈칵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약 때문인지 어느 때보다 기운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동방선유도 황연송도, 심지어 좌소천 본인도 짐작하지 못했다.
몸에 퍼져 있던 대환단의 기운과 제왕신단의 기운이 상생작용을 일으켜서, 알려진 것보다 뭉쳐진 기운이 더욱 강해졌다는 걸.
좌소천은 한 번 더 어머니를 쳐다보고는 몸을 돌렸다.
‘쉬세요, 어머니.’
탁.
방문이 조심스럽게 닫혔다.
그리고 엿새가 지났다.
“오! 안 돼! 어머니! 어머니!!”
통곡이 선약당을 뒤흔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이 년 만에 또 하나의 하늘이 무너졌다!
“저 혼자 남겨놓고 돌아가시면 어떡합니까, 어머니! 제발 눈을 뜨고 일어나세요! 어서요, 어머니!!”
누구도 좌소천의 통곡을 막지 못했다.
아니, 막을 수가 없었다.
광기마저 보이는 좌소천의 눈빛은 세상 모두가 적인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자신을 막는 자는 누구든 베어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으아아아아! 어머니이이이!”
그렇게 하루 종일 통곡을 하다 기혈이 역류되기 직전, 대기하고 있던 황연송이 재빨리 좌소천의 혈을 점하고 기를 다스렸다.
그러고는 좌소천이 정신을 잃은 틈을 타서 동방선유의 장례 치를 준비를 했다.
다음날 아침.
좌소천이 눈을 떴을 때는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좌소천은 멍하니 앉아서 어머니가 누워 있는 관을 바라보았다.
혁련무천을 비롯한 제천신궁의 모든 간부들이 선약당의 앞마당에 마련된 제단에 향을 피우고 좌소천에게 힘을 내라는 말을 하고 돌아갔다.
뒤이어 수천에 달하는 제천신궁의 무사들이 어머니의 위패에 절을 올렸다.
좌소천은 장례 기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어머니의 관만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닷새.
좌소천은 어머니를 황강산 묘역에 아버지와 나란히 묻고 모두를 돌려보냈다.
마지막으로 황연송이 떠나가자, 좌소천은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에 절을 올렸다.
그날, 그의 가슴에 화인이 찍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에 관계된 자는 그게 누구든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이 했다면 하늘을 무너뜨릴 것이고! 땅이 했다면 땅을 쪼갤 것입니다!’
절을 마치고 고개를 쳐든 좌소천의 두 눈이 하늘을 향했다.
‘일단 나를 강하게 만들겠다. 하늘조차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그날 이후, 좌소천은 사흘에 한 번 내궁에 들어가는 것을 빼고는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는 꼭 필요한 말을 제외하고는, 자신을 돌봐주는 두 명의 시비나 열 명의 호성당 무사는 물론이고, 네 스승에게조차 말을 아꼈다.
말이 없어진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좌소천조차 알지 못했다.
자신이 그렇게 생활함으로써 천외천가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열 달이 살같이 흘렀다.
그리고 그날, 운명처럼 선우궁현이 제천신궁을 방문했다.
5장 세상 밖으로
1
혁련무천은 눈살을 찌푸린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분노한 것 같기도 하고 어이없어하는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은선향으로 알고 있는 동방선유와 약속을 했다. 좌소천의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기로.
그런데 좌유승이 죽은 지 삼 년이 되는 날, 좌소천이 오더니 소원을 말했다.
“제천신궁을 떠나겠습니다, 백부님.”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단단히 각오한 눈빛을 보니 잘못 들은 것이 아닌 듯했다.
혁련무천은 한참 만에야 좌소천에게 물었다.
“정말 떠날 생각이더냐?”
“예, 백부님.”
“이유가 뭐냐? 내가 너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 것 같으냐? 아니면 제천신궁의 무공이 마음에 들지 않느냐?”
“천하제일의 세력을 지니신 백부님이십니다. 어찌 어린 제가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럼 왜 떠나겠다는 것이냐?”
좌소천이 고개를 들었다.
“제가 어려서 그런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곳에선 더 이상 마음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해서 보다 더 넓은 세상을 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에 돌아올 생각입니다.”
“돌아온다? 그래,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삼 년이 걸릴지 오 년이 걸릴지는 소질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십 년 안에 돌아온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돌아올 것이다. 반드시!
알아봐야 할 것이 있으니까!
어쩌면 제천신궁에 있으면서 알아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또한 혁련무천에게서 무공을 배우면 짧은 시일 안에 절정의 고수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뿐, 깊은 것은 쉽게 알아낼 수 없다. 절대 하늘을 무너뜨릴 수 있는 무공을 익힐 수 없을 것이다. 금라천경상의 무공 역시.
혁련무천이 항상 자신을 주시할 테니까.
하기에 나가려는 것이다.
혁련무천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 좌소천의 태도에 파르르 눈을 떨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평정을 되찾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정 네 뜻이 그렇다면 내가 어찌 막을까? 더구나 네 어머니와 약속한 바도 있으니……. 하나 이것만은 알아라. 이곳이 너의 고향이라는 것을. 이 백부가 항상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좌소천의 고개가 깊숙이 숙여졌다.
“어찌 소질이 그걸 잊겠습니까?”
좌소천이 대전을 나서자 호운과 미려가 다가왔다.
“정말 떠나려는 거야?”
“예, 누님. 이미 제학전의 스승님들께도 말씀드렸습니다.”
“왜?!”
미려가 빽 소리쳐 물었다.
좌소천은 무심한 눈으로 미려를 바라보았다.
“좀 더 넓은 하늘을 보고 싶어서 떠나려는 겁니다.”
“바보같이.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눈물을 글썽이는 혁련미려를 보고 좌소천은 고개를 돌렸다.
더 보고 있으면 떠나려는 마음에 금이 갈 것 같았다. 그래도 떠나겠다고 작정했으니 떠나기는 할 테지만, 앙금을 남기고 떠나기는 싫었다.
“호운, 좀 더 커서 보자. 너는 멋진 대장부가 될 거야.”
“형도 멋진 남자가 될 거야. 벌써 멋지게 떠나잖아. 천하제일패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마다하고 떠날 사람이 하늘 아래 몇이나 되겠어?”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다.”
턱!
좌소천이 혁련호운의 어깨를 잡았다.
혁련호운도 좌소천의 어깨를 잡았다.
두 사람이 씨익 웃었다.
그 모습에 혁련미려가 다시 빽 소리를 질렀다.
“뭐가 좋아서 웃어! 멍청이들아!”
2
“놈이 제천신궁을 나왔습니다, 단주.”
황의중년인은 수하의 보고를 받고 이마를 찌푸렸다.
“젠장, 이렇게 급작스럽게 나오다니. 그래, 현재 위치는?”
“선우궁현과 둘이서 남하하고 있습니다.”
찌푸려진 이마에 골이 깊게 파였다.
“만패철검 선우궁현이라……. 끄응, 꽤 골치 아픈 자가 끼어들었군.”
“어찌하시겠습니까?”
“어찌하긴? 만패철검이 무서워 불씨가 될지 모르는 놈을 그냥 놓아줄 수는 없는 일. 교 장로님은 어디 계시느냐?”
“거처에 계실 것입니다.”
“가서 교 장로님을 모셔와라. 그리고 태백산에 전서구를 띄워 이공자께 이곳의 상황을 전해라.”
“예, 단주.”
좌소천이 황강산 입구에서 마지막으로 제천신궁을 바라보며 이를 지그시 깨물 때, 신양 선안객잔의 별원에서 전서구 한 마리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3
사십대 후반의 중년인과 열대여섯 살의 소년. 두 사람이 황사바람이 불어대는 길을 걷는다.
중년인이 걸어가며 물었다.
“그래,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느냐?”
소년이 대답했다.
“이미 떠나왔지 않습니까?”
“많이 힘들 것이다. 하나 네가 택한 길, 모든 걸 감수해야 할 거야.”
“저는… 어떤 고난도 겪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소년 좌소천의 대답에 중년인 선우궁현은 빙그레 웃음 지었다.
“후후후, 앞으로는 제천신궁에 가서 밥 얻어먹기는 다 틀렸구나. 혁련 형은 너를 내가 빼돌렸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야.”
“궁주님께서 아실까요?”
선우궁현이 고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는 천하제일패, 제천신궁의 주인이다. 너는 그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좌소천은 가슴이 무거워졌다.
“죄송합니다, 백부님.”
“죄송할 것까진 없다. 내가 원하지 않았다면 네가 아무리 부탁했어도 들어주지 않았을 테니까.”
좌소천은 뿌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의 마음도 황사가 낀 하늘처럼 뿌옇기만 했다.
이틀 전.
제천신궁을 방문한 선우 백부가 집으로 찾아왔다. 궁주에게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듯했다.
찾아온 선우궁현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백부님, 저는 이곳을 나가 구만 리 창천을 바라보며 살고 싶습니다.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