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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14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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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절대천왕 14화

 

14화

 

 

 

 

 

 

진정 목패에 쓰여 있는 화영검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검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탁! 좌소천은 검신을 밀어 넣고 검대에 올려놓았다.

 

‘화려한 보검은 무인의 정신을 무디게 한다고 했지.’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검은 아니었다.

 

두 번째로 잡은 검은 백설처럼 하얀 검이었다.

 

 

 

백학(白鶴).

 

 

 

검병에 정교하게 새겨진 학 문양으로 인해 그러한 이름이 붙은 것 같았다.

 

검을 뽑자 흠 하나 없는 푸르스름한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을 베어도 피 한 방울 묻어나지 않을 것 같은 예리함에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정말 멋진 검이군!”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별다른 감흥도 느낌도 전해오는 게 없었다.

 

이후로도 좌소천은 검을 하나하나 뽑아보았다.

 

마치 검들이 자신을 택하라는 듯 예기를 자랑하며 날카로움을 뽐냈다. 하지만 그것도 계속 보다 보니 그게 그것처럼 느껴질 뿐, 마음에 진정으로 와 닿는 검이 없었다.

 

좌소천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도대로 발길을 옮겼다.

 

도는 모두 이십여 자루.

 

그런데 검보다도 더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같은 모양이 거의 없었다.

 

반월처럼 휘어진 도, 도신이 한 뼘도 더 되는 넓은 도, 칼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기형도.

 

좌소천은 도의 모양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뽑아도 보고 휘둘러도 봤다. 새로운 장난감 앞에 선 어린아이마냥.

 

그러던 어느 순간, 칼 하나를 집어 든 좌소천이 움직일 줄을 몰랐다.

 

 

 

무진(無瞋).

 

 

 

미미하게 휘어진 검은 도신이 짙푸른 도집에 들어 있었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도병까지 다해봐야 두 자 반 정도. 도신의 넓이도 두 치에 불과했다.

 

화려한 장식도 없고 눈에 확 들어오는 특별함도 없었다. 그런 칼이 좌소천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무거웠다.

 

두 배 크기의 도보다도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뽑히는데 소리가 나지 않고 날이 없었다.

 

무인도(無刃刀). 뭉툭한 것은 아닌데 날이 서 있지 않았다. 마치 피를 거부하는 듯.

 

마지막으로, 도신에 새겨진 칼의 이름이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았다.

 

무진(無瞋).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성내지 말라니, 흔들리지 말라니.

 

칼의 이름치고는 기이했지만, 어머니의 부상으로 인해 마음이 불안한 좌소천으로선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우, 내가 일개 칼보다도 못한 것 같구나. 그래, 네가 내 곁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다오.”

 

더 좋은 무기가 있을지 몰랐다. 언뜻 봐도 무진도의 가치는 중간에도 미치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좌소천은 망설이지 않고 무진도를 옆구리에 꽂았다. 그러고는 보다 편한 표정으로 나머지 무기들을 살펴보았다.

 

자신의 권리인 무기 하나를 택해서 그런지 별다른 욕심은 생기지 않았다.

 

수십 종의 병기를 들었다 놓으며 신기한 듯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들어올 때보다 훨씬 밝아 보였다.

 

그렇게 병기대의 끝에 이르렀을 때다. 십여 개의 무기가 흐트러진 채 놓여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해서인지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좌소천의 눈이 먹처럼 시커멓고 뭉툭한 봉에 멎었다. 심지어 목패도 봉에 눌려서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좌소천은 봉을 밀어내고 눌려 있던 목패를 집어 들었다.

 

 

 

묵령기환보(墨靈奇幻寶).

 

 

 

“이게 묵령기환보?”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봉을 집어 들었다.

 

겉면 전체에 얕게 새겨진 뭔지 모를 복잡한 문양을 빼면 너무나 평범했다. 길이도 짧아서 봉보다는 곤에 가까운 물건. 정말로 묵령기환보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왜 이것에 묵령기환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아무리 봐도 단순한 봉에 지나지 않았다.

 

길이는 두 자 정도. 굵기는 오리 알보다 조금 굵은 듯 느껴졌다.

 

그냥 곤이라 하면 그러려니 할 수 있을 듯했다. 문제는 단순한 곤이 아니라 묵령기환보라는 이름이 붙은 기병이라는 데 있었다.

 

좌소천은 손에 쥔 묵령기환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묵령기환보를 바라보는 좌소천의 시선이 겉면의 문양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한참만에야 좌소천의 입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새어 나왔다.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같은 거였어. 그래서 어머니가 원했던 건가?”

 

언뜻 보면 용처럼 보였다. 그러다 다시 보면 한 마리 붕조처럼 보이기도 했다.

 

금라천경의 덮개에 그려진 것과 같은 그림이다.

 

‘가만, 덮개를 빼고 준 이유가 혹시……?’

 

덮개를 빼고 준 이유가 덮개의 그림에 금라천경의 묘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그런데 어머니는 또 다른 이유 때문에 덮개를 뺀 듯했다.

 

혁련무천이 덮개의 그림을 보면 묵령기환보의 가치를 알아볼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어머니…….’

 

좌소천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르고 옷자락으로 조심스럽게 묵령기환보를 닦아냈다.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았지만,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자 왠지 은은한 묵빛이 고풍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기환(奇幻)이라 했다. 그러한 이름이 붙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때다.

 

쿠르르릉.

 

석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경비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다 되었소이다, 좌 공자.”

 

좌소천은 묵령기환보를 옆구리에 꽂아 넣고 몸을 돌렸다.

 

‘급할 건 없지. 나중에 천천히 살펴보자.’

 

 

 

동방선유는 좌소천이 내민 묵령기환보를 보더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특별하게 생겼으면 남들이 벌써 눈여겨봤겠지.’

 

너무 평범해서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을 거다. 그나마도 재질이 특이하지 않았다면, 새겨진 무의가 섬세하지 않았다면 비고가 아닌 일반 병기고에서 뒹굴다가 사라졌을지도 몰랐다.

 

“어떻게 사용하는 것입니까, 어머니?”

 

“나도 확실하게는 모른다. 다만 네 외조부께서 말씀하시길, 본래부터 금판과 한 쌍이었는데, 제천신궁으로 들어간 이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라 하더구나. 해서 혹시나 했는데, 궁주가 있다고 해서 찾아보려 했던 것이다.”

 

역시 생각대로 어머니는 묵령기환보와 금판과의 관계를 알고 계신 것 같았다.

 

“아마 금라천경의 무공을 익히다 보면 이것의 용도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만.”

 

그럴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당장은 금라천경을 익힐 수도 없는 상황. 일단은 마음을 느긋이 먹고 알아보기로 했다.

 

“참, 어머니, 이것은 제가 그 안에서 가져온 도입니다. 한번 보세요.”

 

동방선유는 누운 채 좌소천이 내민 무진도를 빼보았다.

 

그러다 날이 서 있지 않은 무인도임을 알고 조용히 미소 지었다.

 

“너다운 것을 가져왔구나.”

 

좌소천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좋은 기회를 너무 쉽게 보내 버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어요.”

 

동방선유가 눈을 흘기며 도를 건네주었다.

 

“녀석, 공짜를 너무 좋아하면 안 된다. 그리고 내 자세히는 몰라도 네 생각처럼 볼품없는 칼은 아닐 것 같구나. 제천신궁의 비고에 볼품없는 칼을 넣어두었겠느냐?”

 

좌소천도 그렇게 생각했다. 보이는 것만으로 따지면 평범한 칼이어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니 제천비고에 넣어놨을 것이 안니가.

 

하지만 좌소천에게는 무진도에 숨어 있는 비밀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칼이 자신의 마음에 든다는 것, 그거 하나면 족했다.

 

좌소천은 칼을 받아 들고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이제 좀 쉬세요, 어머니.”

 

“그래, 우리 아들하고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자꾸 눈이 감기는구나.”

 

동방선유의 마지막 목소리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약기운 때문인지 눈을 감자 금방 잠이 드신 것 같다.

 

좌소천은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어머니를 바라보다 방을 나섰다.

 

딸깍.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 동방선유의 눈 가장자리로 물기가 맺혔다.

 

‘내 아들, 어느새 정말 많이 컸구나.’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황연송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동방선유의 맥문을 잡고 눈을 지그시 감더니 일각이 지나서야 눈을 떴다.

 

그때 잠든 것처럼 조용히 있던 동방선유가 입을 열었다.

 

“얼마나 남았을까요?”

 

나직하면서도 고요한 목소리에 황연송의 눈이 미미하게 떨렸다.

 

그는 동방선유의 손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소천이에게도 알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미리 말해서 좋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황연송은 착잡한 표정으로 동방선유를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아, 정말 태군사님이나 부인이나, 참 독하신 분들입니다.”

 

동방선유의 입가로 미미한 웃음이 번졌다.

 

“그런 우리 두 사람의 아이가 소천이에요. 보기보다 훨씬 강한 아이죠. 궁의 아이들이 독종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러니 너무 염려 마세요.”

 

그녀는 알고 있었다. 소천이가 궁의 아이들과 자주 싸웠다는 것을. 어린 게 어찌나 독하게 달려드는지 다른 아이들이 소천이를 독종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하지만 한 번도 그 일을 따져서 소천이를 야단치지 않았다. 소천이가 불의를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내 아들은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강한 아이니까…….’

 

너무나 고요한 동방선유의 표정에 황연송은 쓴웃음을 지었다.

 

“노력을 해봤습니다만, 다친 심장이 점점 약해져서……. 이대로라면… 열흘을 버티기 힘들 것 같습니다, 부인.”

 

동방선유의 입가에 번진 웃음이 짙어졌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생일날 아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은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죄송하지만, 황 당주님께 부탁 하나 할 게 있어요.”

 

 

 

 

 

3

 

 

 

 

 

구월 구일.

 

동방선유는 어느 때보다 환해진 얼굴로 좌소천을 끌어안았다.

 

“우리 아들, 생일을 축하한다.”

 

좌소천은 동방선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아무 말도 못했다.

 

한참 만에 좌소천이 가슴에서 벗어나자 동방선유는 좌소천의 손에 뭔가를 쥐어주었다.

 

“옜다, 생일 선물이다. 이 어미가 보는 앞에서 복용하여라.”

 

손에 쥐어진 것은 엄지손톱보다 조금 큰 단약이었다. 단약은 금박으로 싸여 있었는데, 은은한 향기가 나는 것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좌소천은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설령 손에 쥐어진 것이 천고의 영약이라 해도 그에게는 다른 선물이 더 필요했다.

 

“저에게는 어머니가 건강한 것이 제일 큰 선물이에요. 그러니 이것은 어머니가 드셔요.”

 

동방선유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먹어서 내 몸에 좋을 것 같으면 진작 먹었지 왜 안 먹었겠느냐? 이 어미의 몸은 그 약의 약효를 감당할 수가 없단다. 황 당주님 말씀이, 거꾸로 독처럼 작용해서 혈맥이 터질지도 모른다고 하더구나.”

 

“어머니.”

 

“이 어미는 우리 아들이 강해지는 걸 원한단다. 그래야 남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다치지 않지.”

 

왠지 말끝이 가늘게 떨리는 어머니다.

 

좌소천은 글썽이는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모르는 뭔가를 알기에 저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아들을 걱정해서 하시는 말씀일까?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어머니가 직접 말씀을 하지 않으실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좌소천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굳센 어조로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해질 거예요. 천하의 누구보다도 말이에요!”

 

동방선유가 손을 들어 좌소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그럼. 누구 아들인데……. 그러니 어서 복용하거라.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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