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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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2화
12화
충격을 받은 두 사람은 주르륵, 뒤로 물러섰다.
“크읍!”
검은 그림자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반면에 동방선유는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뜬 채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어디 덤빌 테면 덤벼보라는 듯.
좌소천은 재빨리 서너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고는 냉정한 눈빛을 싸늘히 빛내며 동방선유의 옆에 나란히 섰다.
뭉툭한 나무토막을 곤처럼 쳐든 그의 눈빛이 칼날처럼 싸늘하다.
‘아직 새까맣게 어린놈이 어떻게 저리도 냉정하단 말인가.’
검은 그림자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바로 그때, 밖에서 쩌렁쩌렁한 호통 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누가 감히 태군사의 집에서 소란을 일으킨단 말이냐! 모두 잡아라!”
마침내 궁내의 무사들이 이곳의 상황을 알고 몰려온 듯했다.
검은 그림자는 동방선유와 좌소천을 노려보고는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오늘은 그냥 가지. 하지만 더는 도망갈 수 없을 것이다, 계집.”
말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 부서진 창문 쪽으로 다가간 그는 훌쩍 몸을 날리더니 순식간에 어둠에 동화되어 사라져 버렸다.
“안에서 한 놈이 나왔다! 놓치지 마라!”
누군가가 그를 발견한 듯 소리쳤다.
곧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놈이 도망친다! 서쪽을 막아!”
하지만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이 그를 놓친 듯했다.
좌소천은 그제야 동방선유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불길한 느낌에 좌소천은 다급히 동방선유의 몸을 잡고 다시 물었다.
“어머니, 어디 다치셨…….”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방선유의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어머니! 어머니!”
좌소천은 대경해 소리치며 동방선유를 끌어안았다.
핏물이 손 안에 가득 찼다.
자신의 어깨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아니다. 어머니의 겨드랑이 쪽에서 흘러나온 핏물이다.
“으음…….”
그때 동방선유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 어머니!”
“조용… 내 아들……. 조용…….”
좌소천은 핏물이 흘러나오는 어머니의 겨드랑이를 손바닥으로 눌러 막고는, 제학전에서 배운 대로 주위의 혈도를 눌러 지혈을 했다.
하지만 피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아무래도 동맥을 다친 듯했다.
“어머니, 어머니, 조금만 참으세요. 곧 의원을 불러올게요.”
그때 방문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좌 공자,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는가?”
좌소천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이든 상관이 없었다.
“의원을 불러주십시오! 어서요!”
그는 다급히 소리치며 동방선유의 겨드랑이 쪽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자신이 아는 대로 혈도를 막았는데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뜨거운 선혈이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상처가 깊다는 말.
덜컹!
그때 방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조철신과 사십대 후반의 흑염이 풍성한 중년인이었다. 그들은 난장판이 된 방 안을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어찌 된 일이냐?”
우측의 흑염의 중년인이 황급히 다가오며 물었다.
그는 좌소천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부터 가끔씩 들렀던 명혼당주 오증환이었다.
“어머니께서 크게 다치셨습니다.”
어두운 방 안의 바닥이 붉은 피로 검게 변해 있다. 상황의 다급함을 인식한 오증환이 주위를 치우며 말했다.
“의원을 빨리 데려오라고 하기는 했다만……. 안 되겠다, 일단 어머니를 침상으로 옮겨라.”
좌소천은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안아 들었다.
어머니의 몸이 유난히 가볍게 느껴졌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겨우 침상에 어머니를 눕히자 오증환이 물었다.
“대체 그놈들이 누구기에 너희 모자를 노린 것이더냐?”
좌소천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말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좌소천은 확실한 대답을 나중으로 미루었다.
“일단 어머니가 깨어나셔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어, 감히 본 궁의 내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어느 놈들인지 몰라도 잡히기만 하면 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좌소천은 분노에 찬 오증환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를 악물었다.
상황을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조용한 것을 보니 아직까지 한 사람도 잡지 못한 듯했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도 잡기 힘들다는 말이다.
천외천가.
그들의 무서움을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도 남음이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강하게 느껴질수록 좌소천의 가슴에선 분노의 불길이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용서치 않을 것이다, 천외천가! 어머니의 가슴에서 흘린 피의 천배만배 피를 흘리게 할 것이다!’
좌소천의 생각대로 단 한 명의 침입자도 생포하지 못했다.
죽은 자는 셋. 조철신의 말에 의하면 모두 열 명쯤 된다 했으니 일곱 명이 도망갔다는 말이다. 게다가 호성당의 무사 넷이 죽고, 밀천단의 삼유 중 한 사람이 중상을 입었다.
제천신궁으로선 치욕적인 일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안방에서 습격을 당하고, 그나마 한 사람도 생포하지 못하다니.
최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일 중 최악의 결과였다.
그렇게 일각이 지났을 즈음 한 사람이 헐레벌떡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선약당의 당주 황연송이었다. 아마도 태군사의 부인이 다쳤다는 말에 그가 직접 온 듯했다.
그는 아버지의 병 때문에 두어 달에 한 번씩 집으로 찾아왔었는데, 아버지를 은인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들은 말로는, 황연송이 모함을 받아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걸 아버지가 도와줘서 일가족이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그 일로 인해서인지 황연송은 아버지의 죽음을 누구보다 슬퍼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주님.”
황연송은 손사래를 치며 침상으로 다가갔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네 어머니 먼저 봐야겠다.”
황연송의 입이 열린 것은 일각가량이 지나서였다.
천천히 몸을 돌린 그가 말했다.
“다행히 출혈은 멈췄다만, 아무래도 혈맥을 몇 군데 다친 것 같다.”
무인에게 혈맥의 원활한 유통은 목숨과도 같았다.
좌소천은 굳은 얼굴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무공의 유무는 상관이 없었다. 그저 건강하기만 하면 되었다.
다행히 조금 전보다 평온해 보였다.
“상처만 나으면 이상 없겠죠? 그렇죠, 당주님?”
좌소천이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물었다.
그런데 황연송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좌소천이 바라보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일단 선약당으로 모시고 가서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좌소천의 창백하게 굳은 얼굴이 덜덜 떨렸다.
왠지 불안했다.
“어, 얼마나 크게 다치신 건가요?”
“…아마 서 있기가 힘드실 거다. 척추를 다쳤어. 그리고…….”
4
“뭐야?! 태군사의 부인이 중상을 입었다고?”
“적들 중 하나가 안으로 침입했는데, 그자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주군.”
“대체 호성당과 밀천단은 뭐 하고 있었던 건가!”
혁련무천의 분노한 일성이 제천전을 뒤흔들었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보물을 손상시킨 침입자에 대한, 그것을 지키지 못한 수하들에 대한 분노였다.
하지만 무릎을 꿇은 채 보고를 올리는 사공은환의 표정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아무래도… 천외천가가 움직인 것 같습니다.”
그가 믿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범인이 천외천가라는 것. 그들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당위성.
아니나 다를까, 당장 세상을 허물어 버릴 것 같던 혁련무천의 표정이 서서히 잔잔한 호수처럼 가라앉았다.
사공은환이 말을 이었다.
“태부인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
혁련무천이 태사의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들이 천외천가의 사람들이라는 증거는?”
사공은환이 품속에서 유지에 싸인 뭔가를 꺼내 펼쳤다.
다섯 겹으로 된 유지가 다 펼쳐지자, 붉게 물들어 있는 손바닥만 한 살점 세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혁련무천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치켜 올라갔다.
살점에는 날아갈 듯이 정교한 용 문양이 글자의 형태를 갖추고 새겨져 있었다.
하늘 천(天) 자.
세상에 알려진 전형적인 천외천가의 표식이었다.
“어깨에서 떼어냈다 합니다.”
세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살점도 세 개다.
물어볼 것도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터.
사공은환의 행사에 만족한 혁련무천이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이 왜 그녀를 노렸다고 생각하나?”
“과거 군사의 부인이었던 만큼 태부인의 출생에 대한 것이 적혀 있나 알아봤습니다만, 인사록에는 군사의 부인이 호북 출신이라는 것만 적혀 있었습니다.”
“출생을 알아보려한 의미는?”
“천외천가와 개인적인 원한이 있지 않았나 해서 조사했습니다.”
“그녀는 십사 년간 이곳에서 살아왔네. 아무리 원한이 깊다 해도 그들이 그렇게 악착같이 쫓을 이유론 약해. 더구나 그녀가 이곳에 왔을 때 나이가 겨우 스물이 갓 넘었을 때네.”
“만일 그들이 원하는 뭔가를 그녀가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으음…….”
혁련무천은 깍지 낀 양손을 턱에 괴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공은환은 말을 멈추고 주인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혁련무천의 입이 열린 것은 반 각이 지나서였다. 그가 혼잣말 하듯이 중얼거렸다.
“뭘까? 뭔데 천외천가에서 십수 년 동안 포기하지 않은 걸까?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십오 년 전 천비삼역 중 하나인 금라천이 천외천가에 의해 멸망했다는 것은 주군께서도 아실 것입니다.”
혁련무천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자네 말은 혹시 그녀가……?”
“방 안에서 금라비화검이라는 말이 들렸다 했습니다. 그리고 삼십여 년 전, 촉산혈전에서 금라천이 환상마궁을 멸망시키고 신비의 천무서(天武書)를 얻었다는 소문이 돌았었지요.”
촉산혈전(蜀山血戰).
촉산에 근거를 둔 환상마궁과 금라천 간의 대혈전을 말했다.
삼 년에 걸친 그 싸움에서 금라천은 환상마궁을 멸망시키고 촉산의 지배자가 되긴 했지만, 오백여 명의 고수를 잃고 말았다.
어쩌면 천외천가에 당한 것도 그때의 피해가 너무나 엄청났기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건 나도 들어본 것 같군.”
무저의 늪처럼 가라앉은 혁련무천의 눈에 붉은 기가 스쳤다.
사공은환은 보고도 못 본 척 마지막 못을 박듯이 말했다.
“그 정도면 천외천가가 십오 년간 그녀를 쫓을 이유가 되지 않겠습니까?”
“천무서라…….”
5
동방선유는 일단 선약당으로 옮겨졌다.
좌소천의 상처도 상당히 깊은 편이어서 황연송은 보름 정도 어깨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다음날 정오 무렵, 동방선유가 힘겹게 눈을 떴다.
“어머니, 정신이 드세요?”
좌소천은 몸을 기울이며 바짝 다가앉았다.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 흐트러진 머리, 입술조차 바짝 마른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솟았다.
“울지… 마라.”
“안 울어요.”
말은 그렇게 하는데 주책없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동방선유가 희미하게 웃으며 물었다.
“어깨는… 괜찮으냐?”
“참나, 어머니도. 지금 제 어깨가 문제예요?”
몇 마디 말하는 것도 힘이 드는지 동방선유가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었다.
“선약당이냐?”
“예. 황 당주님이 선약당의 별실을 내주셨어요.”
“뭐라 하시든? 걷기 힘들 거라고 하지?”
이미 알고 계신 듯했다. 하긴 어디에 상처를 입었는지 맨 먼저 느끼셨을 것이다.
좌소천은 황연송의 말을 살짝 돌려서 말했다.
“아니에요. 오래 서 있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어요.”
“그래? 다행이구나. 우리 아들 힘들게 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저는 걱정 마시고 어머니 몸이나 돌보세요.”
동방선유가 천천히 눈을 떴다.
“궁주님은 아직 오지 않으셨지?”
“예, 어머니.”
“그럼 가서 내가 좀 뵙고자 한다고 말씀드려라.”
좌소천의 눈이 커졌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