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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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8화
8화
"네놈 때문에 내가 어제 제학전에서 어떤 치욕을 당했는지 알아? 그런데 왜냐고? 형님과 비교당하며 바보 취급 받는 것도 서러운데, 네깟 놈 때문에 내가 왜 치욕을 당해야 한단 말이냐! 그런데… 왜냐고?”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상처 입은 늑대가 울부짖는 것만 같다.
그제야 어렴풋이 독사처럼 자신을 몰아붙이는 혁련호승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혁련호정과 비교당하며 살아왔을 터다. 그것도 서러운데 거기다 대고 어제 제학전의 스승들이 심하게 면박을 준 듯했다.
“그게 원인이라면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습니다.”
혁련호승이 세 걸음 앞까지 다가왔다.
“크크크, 이미 늦었어. 네놈이 병신이 되기 전에는 소용없는 일이야. 나는 나보다 뛰어난 하인은 필요없거든.”
좌소천은 다시 한 걸음 물러섰다.
물러서며 다리를 정 자로 벌리고 자세를 잡았다.
자신이 저항하면 어머니에게까지 피해가 갈지 모른다. 혁련호승은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자니까.
그러나 자신이 크게 다치면 당장 어머니가 가슴 아파할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어머니를 위한 길인지 확실치는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대로 가만히 서서 당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은 피할 수 있는 데까지 피해보는 수밖에.’
혁련호승이 눈초리를 치켜뜨고 독사의 혓바닥처럼 혀를 내밀어 입술을 적셨다.
“어쭈? 대항하겠다고? 어디 한번 해봐라. 아버지에게 혼나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네놈을 걷지도 못하는 앉은뱅이로 만들어 버리고 말 테니까.”
이를 악문 좌소천의 주먹이 바들바들 떨렸다.
두려워서가 아니다. 분해서다.
‘어디 해봐라! 당장은 나를 몇 대 때릴 수 있을지 몰라도 네깟 놈은 영원히 나를 꺾을 수 없을 거다!’
순간 혁련호승이 두 손을 앞세우고 달려들었다.
좌소천은 두 팔을 휘둘러 혁련호승의 손을 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따닥!
손과 팔이 부딪치며 나무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크읍!’
제령수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맹했다.
강렬한 충격에 두 팔이 부러지는 듯하다.
좌소천은 이를 악물고 두 걸음을 물러서서 다음 공격을 대비했다.
“크크크, 발 병신에 팔 병신까지 되고 싶은가 보지?”
혁련호승이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다시 덮쳤다.
좌소천은 비연신법으로 정신없이 혁련호승의 공격을 피했다. 혁련호승은 생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좌소천을 놀리며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킬킬킬, 꼭 생쥐새끼 같군!”
삼 초, 사 초, 오 초.
“쥐새끼, 갈비뼈를 뽑아내 주마!”
휘익!
갑자기 몸을 날린 혁련호승이 제령수를 뻗는다.
좌소천은 재빨리 옆으로 세 걸음을 갈지자로 걸으며 구석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면서도 눈은 한시도 혁련호승에게서 떼어놓지 않았다.
그때 쭉 뻗어오던 혁련호승의 손이 꺾어지며 옆구리를 훑어온다.
좌소천은 혁련호승의 내력이 흐르는 것과 같은 방향으로 다급히 몸을 한 바퀴 돌리며 제령수의 힘을 약화시켰다.
찌이익!
혁련호승의 손길에 옷이 다시 찢어지며 옆구리로 바람이 스며든다.
직접 맞지 않았는데도 살점이 뭉개지는 고통이 밀려든다.
이를 악문 좌소천은 주르륵 두 걸음을 더 물러섰다.
“요것도 받아봐라!”
순간 혁련호승이 땅을 박차고 독수리처럼 좌소천을 덮쳤다.
우족이 하늘에서 벼락처럼 떨어진다.
좌소천은 몸을 뒤로 살짝 눕히면서 두 손을 가위처럼 엇갈려서 혁련호승의 일퇴를 막아냈다.
퍽!
“흡!”
하지만 내력이 실린 일퇴는 커다란 몽둥이와도 같았다.
팔이 부서질 것 같은 충격!
전신이 그 충격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떨렸다.
그 순간이었다.
“뒈져라, 벌레새끼!”
뒤로 몸을 반쯤 눕힌 좌소천의 얼굴로 혁련호승의 발길질이 다시 한번 떨어져 내렸다.
이가 보이도록 하얗게 웃으며 어깨를 떡 펴고 발을 뻗는 그다. 세 살짜리 아이를 상대하는 듯 오만한 자세다.
좌소천은 급히 몸을 옆으로 돌리고,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발을 휘둘렀다.
휘익!
상대의 빈틈이 보임과 동시에 나온 거의 무의식적인 동작이었다.
순간 좌소천의 발뒤꿈치가 혁련호승의 턱으로 날아갔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반격!
혁련호승은 사각을 비집고 날아든 발길질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뺐다.
핏!
찰나간 좌소천의 발뒤꿈치가 혁련호승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헛!”
방심하다가 턱이 날아갈 뻔한 혁련호승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때, 좌소천의 발끝이 스쳐 간 코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코… 피?”
쓰윽 소매로 코피를 닦아낸 혁련호승은 시뻘게진 얼굴로 눈을 부라리며 공력을 배로 끌어올렸다.
얼굴 좀 뭉개고 팔다리 한두 개 부러뜨리는 것으로 끝내려 했다.
그런데 감히 반격을 하다니!
감히 주인의 몸에서 피를 흐르게 하다니!
“이 벌레새끼가!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쥐새끼 같은 놈! 내 오늘 반드시 네놈을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병신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혁련호승의 손에 맺혔던 푸르스름한 기운이 밖으로 흘러나온다.
좌소천은 급히 몸을 일으키고는 땀을 닦을 생각도 못한 채 혁련호승을 노려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공격을 하고 말았다.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이제 갈 때까지 간 상황이 되었다.
‘제길, 조금 더 참았어야 하는데!’
그런 한편으로는 턱을 아예 부숴 버렸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저놈의 피를 보니 기분은 괜찮군. 크크크.’
좌소천은 미약한 내력이나마 모조리 끌어올리고 혁련호승의 공격에 대비했다.
호성단의 무사들은 절대 이곳으로 오지 않는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까.
그러니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 막아내야 한다.
몇 초나 막을 수 있을까?
혁련호승이 분노한 이상 삼사 초도 막지 못할 것이다.
방법은 하나였다. 기회가 오면 반격하고, 그사이 이곳을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 기회가 올지는 알 수가 없지만.
‘어떻게든 빠져나갈 기회를 잡아야 돼.’
좌소천은 이를 지그시 깨물고 몸을 낮췄다. 혁련호승이 살기 띤 눈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흐흐흐, 병신이 되어서 땅을 박박 기어 다녀봐라, 거지새끼야!”
그때였다. 승허담 저쪽에서 나직한 노성이 들려왔다.
“악독한 놈! 만일 네놈이 한 번만 더 손을 쓰면 내 혁련 형과 사이가 멀어지는 한이 있어도 네놈의 손모가지를 분질러 버릴 것이다.”
좌소천은 갑자기 가슴이 찡해졌다.
선우궁현의 목소리다. 죽기 직전 하늘에서 구원의 사자가 내려온 기분이다.
반면에 혁련호승은 다 된 밥에 모래가 한 주먹 들어간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선우궁현이 건물을 돌아 나오고 있었다.
“숙부님, 이 일은 제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관여치 말아주십시오.”
“뭐라? 알아서 할 일? 관여치 말아?”
휘익!
옆으로 바람 한줄기가 스쳐 간다 느껴진 순간,
쾅!
“커억!”
혁련호승의 몸이 붕 떠서 날아갔다.
가공할 빠르기, 엄청난 위력의 발길질이었다.
“다시 한번 말해봐라. 네가 알아서 한다고 했더냐? 관여치 말라 했더냐?”
“으으으…….”
신음만 흘리는 혁련호승을 향해 선우궁현이 다가갔다.
“어디, 혁련 형에게 가서 물어보자. 과연 이 일이 네놈이 알아서 해도 되는 일인지.”
“수, 숙부……?”
“네놈이 마음대로 태군사 좌유승의 아들을 병신으로 만들어도 되는 일인지 내가 한번 물어봐야겠다.”
“숙부, 왜 저 거지새끼를 두둔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말하는 네놈의 그 말투가 싫어서다, 버르장머리없는 놈!”
퍽!
선우궁현의 기이한 발길질에 혁련호승의 몸이 다시 떼굴떼굴 굴러갔다.
열아홉 살 혁련호승의 덩치는 선우궁현보다도 컸다. 그러나 선우궁현은 결코 그가 상대할 수 없는 초절정의 고수였다.
“그만 하십시오, 아저씨.”
좌소천이 다급히 말렸다.
선우궁현이 말리는 좌소천을 돌아다보았다.
“왜 그러느냐? 이놈은 더 혼내줘야 정신을 차릴 놈이다.”
“제 일은…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뭐라?”
“말려주신 것은 고맙습니다만, 그 이상은 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선우궁현이 한 번은 혁련호승을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일은 오늘만 넘긴다고 끝나지 않는다. 선우궁현이 떠나가면 전보다 더 악랄하게 나올 사람이 혁련호승인 것이다.
선우궁현도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철검판관이라는 별호가 붙었을 정도로 냉정하고 사리 분별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좌소천의 말을 듣고서야 이상함을 느끼고 혁련호승과 좌소천을 번갈아보았다.
그때 혁련호승의 눈가로 스치는 살기가 눈에 띄었다.
‘아직 스물도 안 된 어린놈이 저리도 살기가 짙다니. 수십 명을 죽여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놈이로구나. 응? 가만, 혹시 다른 사람이 다칠까 봐……?’
처음에 좌소천이 가만히 서서 맞는 것을 보고 참 배알도 없는 놈이구나 싶었다. 나중에는 그럭저럭 피하기는 했지만.
그런데 맞고도 참았던 것에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그가 아는 한 좌소천이 염려할 만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 그리고 혁련호승의 사악한 눈빛은 충분히 그가 염려하는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는 반증이었다.
선우궁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랬구나. 너는 어머니 때문에 맞고도 참았던 것이구나. 그러다가 호승이란 놈이 제령수를 쓰니까 그제야 피한 것이고.’
상황을 빠르게 유추한 선우궁현이 좌소천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오해한 것은 오해한 거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줘야 했다.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지금 너의 행동이다. 설마 너는 네가 힘을 가질 때까지 맞고 다닐 생각은 아니겠지? 그때까지 너나 네 어머니가 안전할 거라 생각하는 거냐? 만일 그리 생각했다면 너는 정말로 바보멍청이다. 내가 만일 나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거라 생각하느냐?”
좌소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도 모르지 않았다.
어머니야 어떻게 되든 말든 무작정 대들 수도 없고, 어머니를 쫓는 자들이 있을지 모르는데 제천신궁을 도망치듯 떠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진짜 하인처럼 생활하기도 싫었을 뿐이다.
그래서 차라리 몇 대 맞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혼자만 아프면 되니까.
“저는…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선우 대협.”
선우궁현이 눈에 힘을 주고 소리쳤다.
“가르쳐 달라고? 좋아! 그럼 먼저 대협이라는 말부터 고쳐라!”
“예? 예, 아저씨.”
“이제는 그냥 아저씨로도 안 된다. 내가 네 선친보다 서너 살 많으니 백부라 불러라.”
“예… 배, 백부님.”
그제야 선우궁현은 홱 고개를 돌려 혁련호승을 향해 냉랭히 말했다.
“들었느냐? 이 아이는 내 조카다. 한데 네가 감히 내 조카를 병신으로 만들려고 해?”
혁련호승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 너구리같은 작자가!’
억지라는 것을 모를 그가 아니다. 그런데 억지라 할 수만도 없다. 아버지도 좌소천에게 백부라 부르라 했으니 아버지의 친구를 백부라 부른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숙부님, 그거야…….”
“그만! 네가 또 토를 달겠다는 거냐? 안 되겠다. 혁련 형에게 가자! 진심으로 사죄하면 모를까, 꼭 너를 데리고 가서 혁련 형에게 따져 봐야겠다.”
“죄송합니다, 숙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흥! 입에 발린 소리는 듣기 싫다. 잘못을 인정할 때는 그렇게 빳빳이 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선우궁현의 뜻을 깨달은 혁련호승은 이가 부서지도록 악물고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에게 갈 수는 없었다. 남의 눈을 생각해서라도 엄벌이 내려질 터다.
더구나 선우궁현의 말이라면 자신의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숙부님.”
하지만 이번에도 선우궁현이 고개를 저었다.
“방향이 잘못되었다. 용서를 빌려거든 소천이에게 빌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