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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4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61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절대천왕 4화

 

4화

 

 

 

 

2장 제학전(提學殿)

 

 

 

 

 

1

 

 

 

 

 

혁련무천에게는 세 명의 아들과 딸이 하나 있었다.

 

큰아들인 혁련호정은 좌소천보다 열 살이나 많았고, 둘째인 혁련호승은 다섯 살 많은 열여덟이었으며, 막내아들인 넷째 혁련호운은 오히려 좌소천보다 한 살이 어렸다.

 

그리고 딸인 셋째 혁련미려는 좌소천보다 세 살이 많았다.

 

혁련호정이야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는데다 제천동의 삼차 수련에 들어가 있어서 만나볼 수도 없었지만, 혁련미려와 혁련호운은 좌소천과 제학전에서 함께 배우게 된 것을 즐거워했다.

 

문제는 둘째아들인 혁련호승이었다. 그는 성격도 괄괄한데다 다섯 살의 나이 차이만큼 체격도 컸다. 그런데 좌소천을 아주 싫어했다.

 

처음에는 좌소천이 자신의 아버지를 백부라 부른다며 몰아붙였다.

 

“비천한 놈이 어디서 감히! 네가 어떻게 나와 형제란 말이냐?”

 

그러다 나중에는 제학전의 스승들이 좌소천의 자질이 뛰어나다며 치켜세우자 질시하며 괴롭혔다.

 

“건방진 새끼, 거지새끼면 거지새끼답게 시늉만 하다 말 것이지! 네가 정말 그렇게 잘해? 이리 와봐! 나랑 붙어보게!”

 

그는 기회만 되면 비무를 핑계로 좌소천을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겉으로 거의 표가 나지 않게 두들겨 팼다.

 

좌소천이 아무리 독종이어도 그에게는 역불급(力不及)이었다.

 

게다가 좌소천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독기마저 가슴속에 묻은 터였다. 군사였던 아버지가 안 계신 이상 자신이 독종처럼 행동하면 어머니가 더 힘들어질 테니까.

 

그렇게 시련은 사흘에 한 번씩 벌어졌다. 좌소천이 사흘 간격으로 내궁의 제학전(提學殿)에 가기 때문이었다.

 

세 달, 네 달…….

 

좌소천은 말도 안 되는 비무를 묵묵히 견디어냈다.

 

맞고 왔다는 표도 내지 않았다. 자신이 맞고 왔다는 것을 표내면 어머니께서 가슴 아파하실 테니까.

 

그렇다고 매일 혹독한 시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호운과 미려는 그를 좋아했다.

 

미려는 멋진 남동생이 하나 더 생겼다고 좋아했고, 호운은 친구나 다름없는 형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미려는 가끔씩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했고, 호운은 자신이 배운 바를 자랑 삼아 펼쳐 보이기도 했다.

 

혁련호승이 보이지 않는 날은 제학전에서의 배움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궁에 드나든 지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뜻밖의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그날도 좌소천은 제학전에 가기 위해 내궁으로 향했다.

 

이제 혁련호승과의 일은 평범한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힘든 건 여전했지만, 속 편하게 수련의 일환으로 생각하며 상대하다 보니 맞아도 가슴까지 아프지는 않았다.

 

그놈의 거친 주둥이만 아니라면.

 

‘후우, 오늘도 저번처럼 무사히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좌소천은 저만치 내궁의 입구가 보이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제발 혁련호승이 없기를 바라며.

 

그런데 내궁의 입구가 가까워질 즈음, 좌소천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 저분은?’

 

반대쪽에서 한 사람이 마주 온다.

 

허름한 마의, 옆구리에서 덜렁거리는 철검 한 자루.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다 못해 영락없이 삼류무사로 보이는 자였다.

 

하지만 그를 보는 순간, 좌소천은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도 아는 사람이었다.

 

외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혁련무천의 몇 안 되는 죽마고우 중 하나였다.

 

천하제일패 제천신궁주의 친구!

 

그는 이삼 년에 한 번씩 제천신궁을 찾아오곤 했는데, 듣기로는 동정호에 산다고 했다. 혁련무천이 아무리 사정해도 그는 절대 사흘 이상을 머무는 법이 없었다.

 

좌소천은 이 년 전, 궁주인 혁련무천의 생일날 아버지를 따라 내궁에 갔다가 먼발치에서 그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선우궁현.

 

강호에서는 그를 만패철검(萬敗鐵劍)이라 불렀는데, 혹자는 철검판관(鐵劍判官)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가 나서면 강호의 어떤 난제도 풀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중원칠기 중의 한 사람, 만패철검 선우궁현.

 

그는 강호제일의 해결사였으며, 가장 많은 친구를 둔 강호의 기인이었던 것이다.

 

“삼가 선우 대협을 뵙습니다.”

 

좌소천은 거리가 적당해지자 재빨리 인사를 했다.

 

선우궁현이 좌소천을 보더니 불쑥 물었다.

 

“너는 누구지?”

 

좌소천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좌소천이라 합니다.”

 

“좌소천? 좌 씨?”

 

선우궁현은 흥미가 인 눈으로 좌소천을 바라보더니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띠고 물었다.

 

“그럼 네가 바로 일 년 전에 돌아가신 좌 군사의 아들인가 보구나?”

 

“맞습니다, 선우 대협.”

 

“대협이라……. 하하! 나는 그렇게 불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대협이 아니거든. 봐라, 어디서 나처럼 볼품없는 대협을 본 적이 있느냐?”

 

그가 팔을 활짝 펼치며 찡긋 웃었다.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왠지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선친께선 선우 대협이야말로 대협이라 불릴 강호의 몇 분 중 한 분이라 하셨습니다.”

 

“응? 네 아버지가 그랬다고?”

 

“예, 대협. 하니 선친께서 대협으로 인정한 분을 제가 어찌 대협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언뜻 선우궁현의 눈이 웃는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내가 거북하니 그렇게 부르지 마라.”

 

그러더니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는 대협이라는 말을 들으면 몸이 근질거리거든.”

 

“하오면 어찌 불러야 하는지요?”

 

선우궁현이 힐끔 좌소천의 전신을 훑어봤다.

 

문득 그의 눈 깊은 곳에서 이채가 스쳤다.

 

빼빼 말라서 힘도 못 쓸 것 같은 가냘픈 체구, 평범한 가운데 곱상해 보이는 얼굴.

 

언뜻 보면 길가의 돌멩이만큼이나 많아 보이는 평범한 자질을 지닌 아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우궁현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강호의 일류고수들도 자신과 눈이 마주치면 눈길을 돌린다. 그런데 이제 겨우 열서너 살 먹은 아이가 눈이 마주치고도 한 점 흔들림이 없다.

 

그런 눈을 가진 아이가 어찌 평범한 아이일까.

 

‘묘한 아이군.’

 

선우궁현은 좌소천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앞으로는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라. 대협보다는 그게 낫겠다.”

 

“하지만 제가 어찌…….”

 

“싫으면 아는 체를 말든지.”

 

장난기 가득한 말투에 좌소천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 저씨.”

 

그제야 기분 좋은 웃음을 배어 문 선우궁현이 물었다.

 

“그런데 내궁 안으로 들어가던 길이냐?”

 

“예, 사흘에 한 번씩 제학전의 다섯 스승님께 무공의 기초를 배우기 위해 갑니다.”

 

“호, 그래? 그럼 들어가자.”

 

두 사람이 다가가자 내궁의 입구에 서 있던 호성당의 무사가 절도있게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대협!”

 

좌소천은 슬쩍 선우궁현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킁! 그놈의 대협은…….”

 

선우궁현의 콧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왠지 모든 일이 즐겁게 풀릴 것 같았다.

 

 

 

좌소천은 선우궁현과 함께 내궁으로 들어가 정원을 가로질렀다. 그때 우측의 건물 옆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숙부님을 뵈옵니다.”

 

혁련호승의 목소리였다.

 

‘제길, 운이 좋은 날일 줄 알았는데…….’

 

좌소천은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역시나 혁련호승이 선우궁현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흠, 너는 둘째 호승이구나.”

 

선우궁현의 담담한 말에 혁련호승은 허리를 폈다.

 

“예, 숙부님. 저 그런데… 숙부님께서 왜 저놈과 함께 오시는 겁니까?”

 

말로만 숙부님이라 할 뿐, 결코 숙부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선우궁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들어오다 만났다. 제학전에 가는 길이라더구나.”

 

혁련호승은 선우궁현은 안중에도 없는 듯 좌소천을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제학전에 간다고?”

 

“예, 호승 형님.”

 

“형님?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내가 어째서 네 형이란 말이냐?”

 

혁련호승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좌소천은 말다툼하기가 싫어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옮겼다.

 

“죄송합니다. 스승님께서 기다리실 테니 저는 그만…….”

 

“누가 맘대로 가는 거냐? 그리고 뭐? 스승? 네 스승이 여기에 누가 있단 말이냐?”

 

좌소천을 바라보는 혁련호승의 눈에서 악독한 빛이 일렁였다.

 

그때 선우궁현이 물었다.

 

“혁련 형은 안에 계시느냐?”

 

혁련호승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예, 숙부님. 제천전에 가시면 계실 것입니다.”

 

선우궁현은 좌소천을 바라보고 씩 웃더니 몸을 돌렸다.

 

“앞장서거라, 호승. 오랜만에 왔더니 길이 헷갈리는구나.”

 

“예?”

 

“어서 가자. 비가 올 것 같다.”

 

순전히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모를 그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숙부라 해도 천하의 제천무제가 인정하는 사람이 아닌가.

 

아무런 명분도 없이 그의 말을 거부할 수는 없는 일. 혁련호승은 좌소천을 슬쩍 노려보고는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모시지요, 숙부.”

 

그러고는 좌소천의 곁을 지나며 으르렁거렸다.

 

“오늘은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듣고도 못 들은 척 선우궁현은 좌소천을 향해 슬쩍 손을 흔들고는, 혁련호승을 앞세우고 제천전으로 향했다.

 

선우궁현이 멀어진다.

 

좌소천은 그리 넓지 않은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벼락같이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구름처럼 편안해 보였다.

 

‘나도 저분처럼 살아가고 싶다.’

 

갑자기 든 생각에 입가로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생각하고 보니 정말 그러고 싶다.

 

어머니를 모시면서 부지런히 공부하는 것. 그 외에는 앞으로 뭘 할 것인지 뚜렷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선우궁현의 모습이 그에게 잔잔한 충격을 주었다. 어머니만 허락해 주신다면 제천신궁을 벗어나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전에 나 자신을 먼저 다듬어야겠지. 어머니가 걱정하시지 않을 정도로.’

 

좌소천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황금빛 햇살이 그의 얼굴을 덮었다.

 

문득 선우궁현의 말이 생각나자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큭, 이런 날씨에 비가 올 것 같다라니…….’

 

좌우간 기분 좋은 하루였다.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한 달 정도는 어떤 시련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아직은 운이 좋은 날이군.’

 

 

 

 

 

2

 

 

 

 

 

검왕(劍王) 위지승정.

 

제학전 승검각의 주인인 그는 곤혹스런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한 아이가 검을 펼치고 있었다.

 

모두 합해봐야 열여덟 개의 연환 동작.

 

열 살 먹은 아이라 해도 반나절이면 모두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해 보였다.

 

그런데 연결되는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나 깨끗했다. 자신이 펼친다 해도 그 이상은 펼칠 수 없을 것처럼.

 

완벽하다는 것.

 

그것은 결코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자질이 없으면 천 번 만 번 반복해도 완벽한 동작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완벽에 접근할 수 있을 뿐.

 

그런데 눈앞의 아이 좌소천은 세 번을 반복하면 완숙한 동작이 나오고, 열 번을 반복하면 흠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동작을 취한다.

 

‘후우, 정말 아까운 아이로다. 누가 이 아이를 일 년 배운 아이라 할 것인가?’

 

지난 일 년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가 수백 번을 반복해서 연습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위지승정은 아쉬움을 털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궁주의 자식보다 자질이 뛰어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타고난 문제니까.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 규율이 무너지고 기반이 흔들리게 될 터. 주인보다 나은 수하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라리 내 제자로 들일까?’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혁련무천의 말만 아니었다면 그랬을지도 몰랐다.

 

 

 

“좌소천이란 아이, 너무 깊은 마음은 주지 마시구려.”

 

 

 

혁련무천이 그러한 말을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어쩌면 그래서 더 아쉬운 위지승정이었다.

 

“됐다. 그만 하고 이리 앉아라.”

 

“예, 스승님.”

 

목검을 거둔 좌소천은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서 의지승정의 앞에 공손한 자세로 앉았다.

 

위지승정이 무릎을 꿇고 앉은 좌소천을 향해 담담히 입을 열었다.

 

“검을 무엇이라 했더냐?”

 

“검이 곧 마음이라 하셨습니다.”

 

“그래, 항상 그런 마음으로 검을 써야 할 것이니라.”

 

“예, 스승님.”

 

원론적인 말이었다. 절정의 고수라 해도 검을 마음으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 것인가. 하물며 이제 일 년이 갓 넘은 좌소천에게는 뜬구름 잡는 말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좌소천은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한 가지를 깨달은 그다. 자신이 배우는 무공과 혁련무천의 자식들이 배우는 무공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우연한 일로 인해서였다.

 

제학전에 출입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다. 혁련호승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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