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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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화
1화
서(序)
사월 사일.
마주 앉은 두 사람이 뚫어지게 바둑판을 노려보고 있었다.
흑백이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이백오십여 수가 진행된 상태였다. 혼전에 혼전을 거듭한 바둑은 후반을 향해 치달리더니 싸움이 절정에 이른 상황이다.
그런데 흑돌을 쥔 자는 한참 동안 다음 수를 놓지 못하고 바둑판의 중앙 근처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흑돌이 바둑판 정중앙 천원에 떨어졌다.
“졌네. 사석지계(捨石之計)에 완전히 당했어. 허어, 설마 그 요석(要石)을 버릴 줄이야……!”
왜소한 체구의 중년인이 백돌을 가려내며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때로는 제아무리 중요한 돌도 버려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군.”
그때까지도 바둑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장대한 체구의 중년인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댔다.
“그래도 그렇지, 아마 자네가 아니라면 천하의 누구도 버리지 않을 요석이었네.”
“아마 선우 대협이었다면 한 점 망설임 없이 버렸을 겁니다.”
“그 친구 욕심없는 거야 나도 알지. 그렇게 붙잡아도 떠돌이 생활이 좋다고 돌아다니더니, 이제는 동정호 한가운데에다 터전을 만든 인간이 아닌가?”
그 말에 왜소한 체구의 중년인이 빙그레 웃었다.
그는 바둑알을 다 쓸어 담고는 고개를 들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석지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버릴 돌과 때를 잘 택해야 하는 법이지요. 저라면… 저를 버리겠습니다.”
난데없는 말인데도 무슨 뜻인지 아는 듯 장대한 체구의 중년인이 눈을 부릅떴다.
“안 되네! 그건 절대 안 돼!”
“지금이 버릴 때입니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군사!”
“선약당의 황 당주 말로는 잘해야 석 달 정도 남았다 했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너무 마음 쓰실 것 없습니다, 주군.”
장대한 체구의 중년인이 이를 악물고 잇새로 말했다.
“자네 정말… 나를 몹쓸 사람으로 만들 작정을 했구먼.”
“대신 제 집사람과 자식을 부탁하겠습니다.”
그날, 자신의 죽음을 말하며 조용히 웃는 그의 얼굴에는 그늘 한 점 보이지 않았다.
1장 사석지계(捨石之計)
1
퍽!
발길질에 나가떨어진 소년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한 놈이 안 되겠으니 비겁하게 두 놈이 덤빈다. 그것도 자신보다 나이가 두어 살 많은 놈들이.
소년은 입가의 피를 소매로 훔쳐 내며 전면을 노려보았다.
“비겁한 새끼들. 한 놈씩은 자신이 없어? 그러고도 대제천신궁의 무사가 될 생각이야?!”
“흥! 죄인의 자식 놈이 말이 많구나!”
“우리 아버지는 죄인이 아니야!”
“그럼 왜 너희 엄마랑 외성으로 쫓겨난 건데? 소천이 네 아버지 때문에 수백 명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곳에서 실종되었다는 걸 몰라? 그중에는 우리 삼촌도 있단 말이야!”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함부로 말하지 마!”
“건방진 새끼! 군사의 아들이라고 해서 봐줬더니 주둥아리만 살아가지고…….”
“봐줘? 누가 누굴 봐줘?! 네놈들이 언제 봐주고 싸웠어? 덤벼! 덤벼봐!”
두 소년이 와락 덤벼들더니 소년을 두들겨 팼다.
처음에는 제법 격식을 갖춘 초식을 쓰다가도, 조금만 지나면 서로 엉킨 채 마구잡이 싸움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소년, 좌소천은 눈을 빤히 뜨고 두 소년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세 대 맞을 것을 두 대, 두 대 맞을 것을 한 대만 맞았다. 그러더니 조금 지나자 가끔씩 상대 소년들을 한 대씩 때리기도 했다.
하지만 소년들은 좌소천보다 훨씬 컸고, 둘이나 되었다.
게다가 자신은 아버지에게 심법만 배웠을 뿐 초식은 몰래 훔쳐 배운 것이 다였다. 하지만 두 아이는 무공을 정식으로 오 년 이상 배운 아이들이었다.
바닥을 구르길 몇 번.
좌소천은 손이 닿는 곳에 곤봉처럼 길쭉한 돌이 보이자 재빨리 집어 들었다.
“어디 계속해 봐!”
순간 두 소년은 뜨거운 물이라도 등에 끼얹어진 듯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비겁하게 돌을 들기야!”
“둘이서 덤비는 너희들이 더 비겁해! 하나씩 덤벼! 그럼 돌을 버릴 테니까!”
좌소천은 물러선 소년들을 씩씩거리며 노려보았다.
눈을 치켜뜨고 독기를 뿜어내는 좌소천의 기세에 두 소년은 기가 질린 듯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만 가자. 저 독종 새끼도 이제 함부로 까불지 못할 거야.”
“에이, 퉤! 생각 같아서는 확 뼈를 부러뜨리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두 소년은 뒤돌아서지 못하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두 소년은 아는 것이다.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좌소천은 절대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한 번 싸움이 벌어지면 정신을 잃을 때까지 달려들었다.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런 독기가 뿜어져 나오는지, 한두 번 싸워본 아이들은 다시는 좌소천과 싸우려 하지 않았다.
무공을 몇 년씩 배웠다는 아이들도 혼자는 좌소천과 싸우길 꺼려할 정도였다.
자신들 역시 평소라면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가는 좌소천이 요즘 와서 기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않았다면.
어쨌든 두 소년이 뒤로 물러서자, 좌소천도 돌을 바닥에 내던지며 피 섞인 침을 뱉어냈다.
“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핏물 섞인 침보다 더 진한 눈물이었다.
“아버진 죄인이 아니야! 절대로!”
분명 그럴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믿음에 금이 가고 있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나고 눈물이 나왔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죄인이 아니란 말이야. 치잇!”
끼이익.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자 어머니가 보였다.
여느 때보다 싸늘해 보이는 표정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가자 어머니가 말했다.
“가서 씻고 오너라. 점심 먹어야지? 아버지는 내궁에 들어가셨으니 우리 먼저 먹자.”
“예, 어머니…….”
좌소천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우물이 있는 뒤쪽으로 돌아갔다.
이상하게 어머니만 대하면 주눅이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 때문인지, 아니면 어릴 때부터 냉정한 모습만 봐서인지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하고 싶은 말이 가슴속에 쌓여 저 뒤쪽의 황강산보다 더 높아진 지가 오랜데.
왜 어머니는 나에게 저리도 싸늘한 걸까?
어머니는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어느 덧 열셋.
생각을 할 수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좌소천은 늘 그게 궁금했다.
사실 무공을 정식으로 배우지 못한 것도 어머니 때문이다.
아버지가 군사이기에 뛰어난 무공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도 무엇 때문인지, 다른 것은 다 아버지에게 양보하면서도 자신이 무공을 배우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그나마 기초적인 심법을 배우는 것에 대해서 관여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쳇, 몰래 배운 것 가지고는 애들에게 당할 수 없단 말이야…….’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눈이 있으니 내궁을 지키는 호성당 무사들의 연무를 가끔 훔쳐보며 초식을 익혔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정식으로 몇 년씩 무공을 배운 아이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에 좌소천의 눈이 반짝였다.
‘근데 아버지는 왜 내궁에 들어가셨지? 이제야 죄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나?’
그럴지도 몰랐다. 그러니 근신하는 분을 내궁으로 불렀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좌소천은 환해진 얼굴로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머리에 쏟았다.
‘그럼 그렇지! 아버지는 죄가 없어!’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은 곳이 멍은 들었지만 아무런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내궁에 들어가셨다잖아! 와하하하!’
2
백 년 전만 해도 강호인들은 강호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대문파를 꼽으라 하면 대부분이 스물세 곳을 꼽았다.
정도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마도의 팔대마세.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의 천하에 등장해 팔대마세 중 다섯 곳을 밀어내고 패권을 이룬 거대 세력이 있으니, 강호인들은 그들을 천하오패라 불렀다.
그중 하남성 남단 신양 서쪽 황강산의 백만 평 대지에 둥지를 튼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제천신궁(帝天神宮)이었다.
칠월 초하루.
천하오패 중의 북패(北覇), 제천신궁의 내궁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주요 간부들은 정오까지 모두 제천전으로 모이라는 제천무제 혁련무천의 명이 떨어진 것이다.
느닷없는 명령에 제천전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마흔네 명.
이원, 사전, 사단, 십당의 주인들과 일선에서 물러난 장로들까지, 신궁의 오천 무사를 다스리는 최고위급 간부들이 모두 모였다.
그리고 정오 정각.
“의견을 말해보라!”
제천신궁의 궁주 제천무제 혁련무천의 일갈이 삼백 평 대전을 쩌렁쩌렁 울렸다.
“폭풍전야라는 말을 알 것이다. 팽팽한 세력 간의 균형이 깨지려 하고 있다. 이 위기를 헤쳐 나갈 해법이 있는 자는 말해보라!”
장로인 비월수 유지청이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신월맹(新月盟)과 전마성(戰魔城)이 연합한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대로 놔둬서는 아니 되옵니다, 궁주!”
제천신궁은 신양에서 오십 리 서쪽에 위치해 있다.
북쪽은 소림과 화산, 황보세가.
서쪽은 무당과 제갈세가.
동쪽은 남궁세가와 황산검문, 해왕방이 수백 년 동안 기틀을 다져 놓은 곳이어서 세력을 뻗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기에 지금까지 호북과 호남성 쪽으로 부챗살처럼 세력을 뻗쳐 왔다.
그런데 제천신궁 정남쪽 황파(黃坡)에 있는 신월맹과 형주(荊州)의 전마성이 연합해서 자신들을 견제하면, 호남 쪽으로 내려가는 수로와 육로가 동시에 차단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되면 그 피해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뿐만 아니라, 결국은 안위조차 위협을 받게 될 터.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하면 그들의 연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사자를 보내 연합을 방해하면 어떻겠습니까? 비록 근래 들어 사이가 벌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신월맹주 초동강은 궁주님과 사돈지간이 아니옵니까?”
“그들이 본 궁주의 말을 들을 거라 생각하는가? 그들을 설득시킬 묘안이라도 있는가?”
“그게…….”
그가 머뭇거리자 다른 자가 일어섰다.
“궁주께 아뢰옵니다!”
“말해보게.”
“저희도 다른 곳과 연합을 하면 어떻겠사옵니까?”
“다른 곳과?”
“당금 오패 중 해왕방은 너무 멀고, 남은 곳은 사천련이옵니다. 그들과…….”
“설마 그대는 본 궁과 사천련이 말보다 검을 먼저 들이대는 사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한데도 손을 잡으라 이 말인가?”
“꼭 손을 잡으라는 것이 아니옵고…….”
“앉아!”
적의 적은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은 부류도 있다. 제천신궁과 강서성의 패자 사천련이 그런 사이였다.
이후로도 몇 사람이 일어서서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타 세력의 연합으로 인해 압박감을 느낀 제천신궁의 위기를 구할 뚜렷한 묘책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상석의 거대한 태사의에 몸을 묻은 혁련무천만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를 때였다.
“속하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조용히 앉아 있던 왜소한 중년인이 일어섰다.
혁련무천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자네가? 그러고 보니 자네가 여기는 왜 왔는가? 근신하라 하지 않았는가?”
“제천무령이 궁주님의 명을 전하였는데 어찌 오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궁주?”
“뭐라? 제천무령이 죄인인 그대에게도 전갈을 보냈다고? 이런, 이런…….”
“아직 군사의 지위를 박탈당하지 않다 보니 그만 실수를 한 듯합니다. 하나, 어차피 왔으니 속하의 의견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자가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그냥 앉으시오, 좌 군사. 죄인이면 죄인답게 굴어야 하지 않겠소? 최근만 해도 그대로 인해 본 궁 최강의 무사단인 제천단 이백여 고수가 실종되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그들의 한 맺힌 원성이 들리지도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