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40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40화
40화
냉정한 좌소천의 말에 장하경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어깨의 상처를 싸맨 천을 풀었다.
지혈하고 급히 싸매어서인지 쩍 벌어진 어깨에는 엉겨 붙은 피가 그대로 있었다. 그대로 두면 깊은 곳까지 곪을 듯했다.
장하경은 품에서 가루로 된 금창약을 꺼내고는, 피를 닦아낸 후 그곳에 골고루 뿌렸다.
이를 악다물고 푸들푸들 떠는 것이 극심한 고통을 동반하는 약인 듯했다.
하지만 그는 좌소천이 옷을 찢어 어깨를 싸매줄 때까지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다.
상처를 다 싸매자 좌소천이 말했다.
“나는 동쪽으로 가서 강을 따라 내려갈 거요. 당신은 서쪽으로 간 다음 다시 강을 건너 북으로 가시오. 그럼 저들의 추적을 뿌리치기가 좀 더 쉬울 거요.”
장하경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나 장하경, 이미 한 번 죽은 목숨이오. 죽어도 원망하지 않을 테니, 괜찮다면 나도 좀 데려가 주시오.”
“미안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소.”
좌소천이 냉정하게 딱 잘라 말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었다. 제갈세가로 가는데 부상당한 그를 데리고 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장하경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 죽이고 가시오.”
부상이 심한데다 얼굴마저 알려진 상황. 어찌 어찌 도망친다 해도 제갈세가의 끈질긴 추적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어차피 당신이 살려준 목숨, 죽여도 절대 원망하지 않겠소.”
한마디 더한 장하경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때 좌소천이 갑자기 손을 뻗어서 장하경의 맥문을 잡았다.
‘진짜 죽이려고 그러나?’
아무렴 어떤가. 죽일 테면 죽이라지!
장하경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좌소천의 손을 그대로 놔두었다.
그사이 좌소천은 장하경의 맥문을 통해 진기를 움직여 봤다. 외상은 심하지만 생각보다 내상은 심하지 않은 상태였다.
좌소천은 진기를 움직인 김에 두어 군데 막힌 부분을 억지로 뚫어주었다.
이를 악문 장하경이 부르르 몸을 떨고는 눈을 꽉 감았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이제 진짜 죽는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기만 했다.
‘씨불! 나 장하경이 이렇게 죽다니!’
그런데 이상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고통이 사라지고 시원한 느낌마저 드는 게 아닌가?
장하경은 슬그머니 눈을 떠봤다.
그때 맥문을 놓은 좌소천이 말했다.
“어두워지면 떠날 거요. 그동안 운기를 해서 몸을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리시오.”
한때 신월맹 제일의 무력 단체 초혈단의 제일조장이었던 장하경은 가슴이 울컥해서 목이 메었다.
왜 그런지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좌소천은 어둠의 장막이 세상을 뒤덮자 산신당을 나와서 동쪽으로 향했다.
행여나 놓칠세라 장하경은 눈을 부릅뜬 채 그의 뒤를 따라갔다.
사십여 리를 걷자 강이 나왔다. 좌소천은 작은 어촌을 앞에 두고 걸음을 멈췄다.
“내가 배를 몰 줄 아오. 조금만 기다리시오. 작은 배를 하나 가져올 테니.”
마침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겨서 기쁘다는 듯 장하경이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좌소천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마침 강가에 지어진 창고가 눈에 띄자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창고에서 쉬며 새벽어스름이 몰려올 때까지 기다렸다.
장하경은 의아했지만, 일체 묻지 않고 좌소천의 옆에 앉아서 몸을 다스리는 일에만 최선을 다했다.
몸이 성하지 않으면 언제든 자신을 버리고 갈 수 있는 사람이 좌소천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어스름이 몰려오고, 강가에 낀 안개가 창고를 하얗게 엄습할 즈음, 몸을 일으킨 좌소천은 창고를 나섰다.
강가에는 작은 배가 서너 척 있었는데, 그중 한 척에 새벽 고기잡이를 위해서 길을 나선 어부가 손질한 그물을 올리고 있었다.
좌소천은 곧바로 그에게 다가갔다.
뒤따라가던 장하경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부가 저들에게 우리 행적을 알려줄지 모르는데, 차라리 배만 빌리는 게 낫지 않겠소?”
그러나 좌소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어부에게 다가가 물었다.
“사례를 드릴 테니 아래쪽으로 태워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부는 고개를 들어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장하경의 상처투성이 얼굴을 보고는 하얗게 질린 표정을 지었다.
“지, 지금 말씀이십니까요?”
“그렇습니다.”
좌소천은 담담히 대답하며 품속에서 한 냥짜리 은자 세 개를 꺼냈다.
그걸 본 어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하경도 의아한 표정으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한 냥도 과한데 석 냥의 은자를 내미는 좌소천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저희를 태워다 주시고 모레 아침까지 이곳으로 돌아오시지 않겠다면 석 냥의 은자를 더 드리겠습니다.”
합이 여섯 냥이다. 그 정도면 한 달 이상 고기잡이를 해야 만져 볼 수 있는 돈이었다.
다만 어부로선 그래야 하는 이유가 마음에 걸려서 불안했다.
상대는 무사. 더구나 꿈에서 볼까 두려운 얼굴을 한 자는 부상을 당했다.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뜻.
“가족들에게는 사람을 태우고 하류로 내려간다고 말씀하십시오. 그리고 누가 와서 묻거든, 사실대로 말하라고 하십시오. 그럼 아무런 일도 없을 겁니다.”
좌소천은 어부가 불안해하는 이유를 짐작하고 안심시켰다.
장하경은 좌소천의 뜻을 눈치채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차피 제갈세가가 수소문하면 어부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될 거고, 그럼 우리가 강을 따라 내려갔다는 것을 짐작하겠지.’
그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 또한 그들도 사실대로 말한 어부의 가족을 닦달하지는 못할 거다.
‘정말 철저하군!’
한편으로는 허튼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좌소천이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어부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똥멍청이 같은 장하경! 감히 뱁새도 되지 못하는 네놈이 황새의 생각을 쫓아가려 했다니.’
그때 어부가 결정을 내렸다. 은자 여섯 냥의 유혹이 불안감마저 이겨냈다.
“좋습니다. 태워다 드립죠.”
* * *
좌소천과 장하경이 어부의 배를 타고 한수를 따라 내려갈 즈음, 제갈승이 벌겋게 변한 얼굴로 바위산 아래 산신당에 들어섰다.
그는 산신당 안에 남아 있는 핏자국을 보더니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젠장! 겨우 몇 십 리를 쫓기 위해서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니!”
“정말 여우 같은 놈입니다, 형님!”
제갈청의 분노에 찬 일갈에 제갈승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는 강한데다 머리마저 뛰어난 자다. 제갈세가의 추적을 농락할 정도로.
그 생각을 하자 스멀거리는 두려움이 제갈승의 어깨를 짓눌렀다.
‘절대 함부로 부딪치면 안 된다. 지원대가 오기 전에는.’
문제는 그자가 어디까지 도망갔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장하경과 무슨 사이기에 그를 구한 것인지도 걱정이 되었다.
장하경의 친구들과 식솔을 죽인 사람이 바로 자신이 아닌가 말이다.
“웅 아우, 지원대는 언제쯤 올 거 같은가?”
“오후쯤이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형님.”
“오후라……. 어쩔 수 없지. 일단 놈의 행적을 쫓으면서 지원대를 기다리는 수밖에.”
“저… 꼭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저희만으로도…….”
제갈웅이 머뭇거리며 말하자 제갈승의 눈매가 날카롭게 번쩍였다.
“너는 우리가 모두 합공한다 해서 광 아우를 오 초 안에 눕힐 수 있다고 보느냐?”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아무 소리 말고 함부로 움직이는 일이 없도록 해라.”
“예, 형님.”
하지만 제갈웅의 불만은 여전했다.
머리 쓰는 거라면 제갈승에 못 미쳐도 무공에 있어선 제갈세가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자신이 아니던가.
‘흥! 놈은 내가 죽일 것이오, 형님! 광 아우의 복수는 반드시 내가 하겠소!’
그 시각.
좌소천은 배에 몸을 맡기고 남쪽으로 계속 내려갔다.
장하경은 내심 불안해졌다.
남쪽으로 가면 제갈세가가 있는 융중산과 가까워진다.
겨우 적을 따돌리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적의 아가리 속으로 달려가는 꼴이 아닌가.
그러나 목줄이 매인 그는 좌소천이 지옥으로 간다 해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옷을 갈아입고 머리에 초립을 써서인지 그의 모습은 많이 달라진 상태였다. 이제는 적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기만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3
다음날.
제갈승은 뒤늦게 도착한 지원무사와 함께 어촌에 도착했다.
어부 하나가 수상한 자들 둘을 태우고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갔다는 말이 들린 것이다.
그는 곧장 그 어부의 가족을 찾아갔다.
“두 사람을 태우고서 강을 따라 내려갔다고?”
“그렇습니다요, 나으리.”
“어떻게 생긴 자인지 아는가?”
“저희는 못 봤습니다만, 강씨가 멀리서 봤다고 합니다요. 한 사람은 얼굴이 험상궂었고, 한 사람은 잘 생긴 청년이었다고 했습니다요.”
제갈승은 미간을 좁혔다.
장하경과 동행한 놈은 누굴까?
제갈광과 두 명의 조카를 죽인 고수는 어디로 갔을까?
설마 그 젊은 놈이 그 고수는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천하에서 이십대의 나이에 제갈광과 두 조카를 오 초 안에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아마 놈은 그 고수의 제자나 일행일 확률이 컸다.
그런데 왜 놈들은 한수를 따라 내려갔을까?
시간을 벌어놓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기 위해서 그랬을까?
그럴지도 몰랐다. 하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이 그걸 인정하지 않고 계속 의문을 제기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어떤 얼굴 하나.
“그 청년이 어떤 무기를 지녔는지 아느냐?”
“듣기로는 옆구리에 칼이 매달려 있었다고…….”
순간, 제갈승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혹시 그놈이……?”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일제히 제갈승을 주시했다.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객잔에서 봤던 젊은 놈.”
“예?”
제갈승은 그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정신이 없었다.
“최대한 서둘러서 본가로 돌아간다! 웅 아우, 즉시 우리가 타고 갈 배를 찾아봐라!”
다급히 소리를 내지르는 와중에도 그의 귓전에선 청년의 목소리가 왱왱 울리고 있었다.
“혹시 제갈 성에 진 자, 우 자 이름을 쓰시는 분이 지금도 제갈세가에 계시는지요?”
7장 제갈세가에 부는 바람
1
한수를 끼고 있는 양양성 서쪽.
소나무와 대나무로 뒤덮인 융중산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일천 척이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름다운 산, 융중산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강호인들은 융중산이라는 이름이 들리면 일단 두 가지를 떠올렸다.
제갈량, 그리고 제갈세가.
자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忠武). 흔히 와룡선생이라 불리는 제갈량은 본시 미천한 신분으로, 난세를 피해 융중산에서 밭을 갈고 농사를 지으며 때를 기다리던 일개 학사였다. 그런 제갈량을 신야에 머물던 유비가 세 번이나 찾아가서 삼고지례(三顧之禮)로 맞이했다.
천하를 삼국으로 나눈 천하삼분지계가 바로 그곳에서 나왔음이니, 천하가 제갈량의 지략에 일희일비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제갈량이 뜻을 펼친 곳, 어쩌면 제갈량의 후예라는 제갈세가가 융중산 자락에 그 터를 잡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삼월의 봄 햇살이 따사로이 쏟아지던 날 오시 초.
좌소천은 장하경을 양양에 남겨놓고 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융중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촌의 배 세 척을 징수한 제갈승이 정신없이 한수를 따라 내려올 무렵, 제갈량이 자주 올랐다는 낙산 위에서 융중산 자락을 넓게 차지한 제갈세가를 내려다보았다.
‘제갈세가는 아니나 제갈세가라 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은 융중산에 세 곳이 있다. 하나 제갈진우가 사람의 눈을 피해 있을 만한 곳은 단 한 곳뿐이다.’
생각이 정해진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좌소천은 낙산의 절벽 위에서 계곡 아래로 몸을 날렸다.
저 멀리 북쪽에서 날아든 전서구 한 마리가 제갈세가를 향해 내려앉는 것과 동시였다.
드넓은 측백나무 숲을 지나가자 저만치 초옥이 보였다.
‘그곳에 있느냐, 제갈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