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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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37화
37화
“나는 누구도 무시한 적 없소. 다만 귀하를 상대하고 싶지 않을 뿐이오.”
“뭐야?”
그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나가던 무당의 제자들이 정수와 좌소천을 주시했다.
상황이 점점 험악해지자 정은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정수 사형, 오늘로 무당산을 떠나려는 친굽니다. 그냥 보내주시지요.”
정수가 눈꺼풀을 가늘게 떨며 정은을 노려보았다.
어쨌든 상대는 영허 사백조의 의손이다. 좀 전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무당의 어른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마지못한 듯 코웃음을 치며 좌소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흥! 떠나려 한다니 오늘은 그냥 보내주지. 하지만 다음에 만나면 조심해야 할 거다.”
뭔지 모를 음침함이 느껴지는 표정이다. 하지만 좌소천은 더 상대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 자. 좌소천에게는 정수가 그런 자였다.
3
지난 사 년 사 개월간, 승허암에서 매일같이 무당의 거대함을 보며 살아온 좌소천이다.
그러나 직접 두 발로 걸어 내려가는 무당산은 생각보다 넓고 보기보다 더 험난했다.
떠나는 길, 구경 삼아 천천히 걸어서인지 한 시진을 걸어도 여전히 첩첩산중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산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지도 모르는 일. 좌소천은 걸음을 조금 빨리 해 무당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옥허궁이 보이는 곳까지 내려갔을 즈음,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 여기서 또 보는군.”
고개를 돌리니 느물거리는 표정의 정수가 길이 꺾어지는 곳에서 걸어나오는 게 보였다.
무당산의 길을 잘 아는 그이기에 지름길을 통해 한 걸음 먼저 온 듯했다. 좌소천이 물끄러미 바라만 보자 그의 눈이 한광을 발하며 가늘어졌다.
“흠, 이번에도 무시하겠다는 건가?”
“무슨 일이오?”
“무슨 일? 그야 어떤 건방진 도우 하나 교육시키려고 내려왔지.”
“나는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소.”
솔직한 마음이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자신을 구해준 영허 진인의 은혜를 생각해 무당의 제자들과는 다투고 싶지 않았다.
“싸우고 싶지 않다? 누가 싸우자고 했나? 내가 어떻게 감히 영허 사백조의 의손과 싸운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공력을 끌어올리고 다가오는 정수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과장된 표정을 짓는 그의 눈이 점점 싸늘해진다.
좌소천은 이마를 찌푸렸다 펴고는 그가 다가오는 것을 그대로 놔두었다.
순간, 어깨를 쳐들었던 정수가 손을 들어 그를 향해 흔들었다.
퍽!
찰나, 둔탁한 소리와 함께 좌소천의 가슴 옷자락이 들썩였다.
부드러우면서도 바위를 부순다는 무당의 면장이 정통으로 가슴에 작렬한 것이다.
하지만 좌소천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정수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 바람에 놀란 것은 오히려 정수였다.
‘헛! 저 자식이!’
설마 피하지 않을 줄은 생각도 못한 그였다.
미처 손을 거두기도 전에 바위도 부서질 장력이 정통으로 상대의 가슴을 후려쳤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급히 공력을 낮추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피를 토하며 뒤로 나가떨어져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어깨만 가볍게 들썩였을 뿐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당황이 오기로 변했다.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정수는 벼락같이 달려들며 삼 장을 연이어 뻗었다.
겹겹이 겹치며 위력을 더한 장력이 좌소천의 가슴 한가운데로 밀려들었다.
그제야 좌소천의 주먹이 들리고, 밀려드는 장력 한가운데에 쐐기 같은 일 권이 정통으로 꽂혔다.
쿵!
“흐읍!”
정수는 단 일 권에 비틀거리며 뒤로 세 걸음을 물러섰다.
좌소천의 무심한 눈이 그를 응시했다.
“다시 손을 쓴다면 나 역시 적으로서 당신을 상대할 것이오.”
정수는 이를 악물고 눈만 부릅떴다.
그러든 말든 좌소천은 다시 걸음을 옮겨 그의 일 장 옆을 스쳐 지나갔다.
완벽한 무시.
정수의 눈에서 새파란 독기가 넘실거렸다.
대무당파의 이대제자인 그가 언제 이런 꼴을 당해봤던가.
“건방진 놈!”
노성을 내지른 정수가 등 뒤로 손을 뻗어 검병을 잡았다.
쨍! 쒜엑!
순간 검을 빼 든 정수가 곧장 좌소천의 어깨를 찔러왔다.
무당파의 대표적인 검 아홉 가지 중 네 가지를 익힌 정수였다. 그의 검은 빠르고 날카로워서, 한 번 휘두름에 찰나간 일곱 개의 검화를 피우며 칠성의 방위를 점했다.
‘죽이지는 않으마! 하지만 그냥 보내지도 않겠다!’
허공에 피어오른 검화를 바라보며 멀뚱히 서 있는 좌소천을 보며 정수는 냉소를 머금었다.
이미 자신의 장력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것을 본 터다. 그는 자신의 검이 좌소천의 두 자 앞에 이르자 검을 더욱 강하게 찔렀다.
‘이제 죽으면 네 탓이다, 놈!’
쒜에엑!
검화가 더욱 현란해지며 좌소천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찰나였다!
좌소천이 고개를 돌리는가 싶더니, 단순히 어깨를 비트는 것만으로 그의 검을 흘려냈다. 어깨를 통해 흘려낸 기운이 검을 밀어낸 것이었지만, 그것이 정수의 눈에는 검이 스스로 미끄러져 가는 듯 보였다.
‘어헛!’
대경한 정수가 칠성검을 구궁검으로 변화시켜 옆으로 그어 내렸다.
그때다. 좌소천의 좌수 검지가 변화되기 직전인 정수의 검면을 찍었다.
따앙!
그 충격에 변화가 끊기고 검신이 파르르 떨며 튕겨졌다.
뒤이어 좌소천의 우수 일 권이 정수의 가슴을 향해 뻗었다.
다섯 자의 거리. 피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다.
정수는 급히 좌수로 가슴을 막았다. 순간,
쾅!
“커억!”
비틀거리며 주르륵 물러선 정수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급히 신형을 세우고 이를 악문 채 좌소천의 다음 공격을 대비했다.
하지만 좌소천은 물러선 그를 쫓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죽고 싶소?”
자존심이 상하는지 정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너… 네놈이 감히……!”
한데 정수가 부들부들 떨며 분노에 찬 눈으로 좌소천을 바라볼 때다.
“무슨 일이오?”
위쪽에서 소리가 나더니 십여 명이 내려왔다.
좌소천은 이미 그들이 내려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수를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 번 더 정수를 바라본 좌소천은 묵묵히 고개를 돌려 내려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언뜻 선두에 선 사람 중 눈에 익은 자가 보였다.
검을 찬 자, 자소궁에서 만난 호정단의 무사였다.
한데 그들 일행 중에 장로 급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숫자도 자소궁에 있던 호정단의 전체 무사 중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회합이 끝나고 호정단 중 반이 먼저 내려온 듯했다.
“자네는 자소궁에 찾아왔던 자가 아닌가?”
그가 먼저 좌소천을 알아보았다.
싸늘한 목소리.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
‘귀찮게 될 거 같군.’
그가 좌소천을 향해 다가가는데, 그의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던 장한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남궁 아우, 무슨 일인가?”
검을 찬 자, 남궁호가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별거 아닙니다, 대주. 자소궁의 경비를 서고 있을 때 만난 자인데, 자소궁 안을 엿보고 있기에 쫓아낸 적이 있었지요.”
당시 상황을 앞뒤 자르고 말하니 잘못 들으면 오해 사기에 딱 좋은 말이었다.
정수가 그 말을 이용해서 좌소천을 몰아붙였다.
“나는 무당의 정수라 하네.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가로막았다가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네. 한데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니, 수상하다 생각한 내 짐작이 맞는 것 같군.”
무당의 제자는 없는 상황. 거기다 정수는 무당의 이대제자가 아닌가.
그의 말에 호정단 무사들의 표정이 굳어지고, 남궁호는 잘되었다는 듯 검을 뽑아 들었다.
쨍!
“이제 보니 첩자가 아닌가!”
좌소천은 무심한 눈으로 남궁호를 응시했다.
상대를 다 때려눕힐 수도 없는 일. 귀찮았지만 사정을 먼저 설명했다.
“무당산에서 사 년을 넘게 살다 내려가는 길이오. 그냥 보내주시오.”
“사 년 넘게 첩자로 있었단 말인가?”
얼토당토않은 말이었지만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당파가 그렇게 안이한 곳은 아니라 생각하오만.”
“흥! 첩자가 첩자라 말하고 지내던가?”
자꾸 억지에 가까운 말투로 몰아붙이는 남궁호다.
그런데도 다른 호정단의 무사들은 반신반의하면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때 정수가 다시 끼어들었다.
“한두 달에 한 번 나타났으니 본 파의 제자들이 모를 수도 있었겠지.”
호정단의 무사 중 몇이 그 말에 동요하고 좌소천을 에워쌌다.
“후회할 일은 하지 마시오.”
“후회?”
남궁호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만큼 자신있단 말이겠지?”
중단으로 들어 올린 그의 검에서 싸늘한 검기가 뿜어졌다.
자소궁에서 잃은 자존심을 만회하겠다는 생각인 듯했다.
그때 도를 찬 자, 팽교가 칼을 느릿하게 옆으로 흘리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옥허궁으로 가서 사정을 알아볼 것인즉 일단 칼을 내려놓아라!”
정수가 다급히 나섰다.
“저자는 상당한 무공을 소지한 자요. 나도 저자를 무시했다가 내상을 입었소이다. 잡으면 반드시 내공을 못 쓰게 해야 하오!”
무당의 이대제자가 자신의 자존심을 상하면서까지 한 말이다.
좌소천을 에워싼 다섯 명의 무사가 일제히 기운을 뿜어냈다.
대항하면 망설이지 않고 손을 쓰겠다는 표정들이다.
좌소천도 슬며시 짜증이 났다.
그는 한쪽을 뚫고 그냥 떠날 생각으로 정수를 바라보았다.
흠칫한 정수가 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이놈! 내 비록 내상을 입었다 하나 뚫고 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이 재빨리 정수의 옆으로 다가갔다.
“도장, 뒤로 물러서시지요! 저희가 맡겠소이다!”
정수는 좌소천을 노려보며 마지못한 듯 물러섰다.
“그럼 내 내상이 안정될 때까지만 부탁하겠소.”
좌소천은 어이가 없는 한편으로 정수의 간교함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떠나더라도 정수만큼은 그냥 놔두고 싶지 않았다.
‘죽이진 않더라도 팔다리 하나는 부러뜨려 주마!’
작정을 한 좌소천은 정수가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갑작스런 그의 움직임에 호정단의 무사들이 대경해 소리쳤다.
“놈을 막아!”
정수의 앞을 막고 있던 두 사람이 함께 손을 쓰며 좌소천의 공격을 막았다.
떠덩!
단 일격에 두 사람이 비틀거리며 물러선다.
좌소천은 물러서는 두 사람을 향해 쌍장을 흔들어 밀치고는 곧장 정수를 향해 쌍권을 휘둘렀다.
콰아아아!
회오리치며 정수를 향해 밀려가는 두 줄기 권풍이다.
그때 남궁호와 팽교가 좌소천을 향해 달려들고, 지켜보고 있던 대주라는 장한이 쌍장을 휘두르며 좌소천의 공격에 맞섰다.
“어림없다!”
콰광!
“크읍!”
대주라는 자가 눈을 부릅뜨며 밀려났다.
그사이 정수가 몸을 홱 돌려 호정단의 무사들이 있는 곳으로 물러섰다.
좌소천은 일단 정수를 놔둔 채 뒤에서 밀려드는 남궁호와 팽교의 공격을 해소시켰다.
가볍게 휘젓는 손에 남궁호의 검이 옆으로 밀려나고, 손을 세워 후려친 일수에 팽교의 도가 튕겨진다.
땅!
좌소천은 균형을 잃은 두 사람의 가슴으로 달려들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 모든 동작이 너무나 빨라 다른 사람 눈에는 그저 청영이 번쩍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퍼벅!
“헉!”
“커억!”
좌소천은 바닥을 뒹구는 남궁호와 팽교를 보지도 않고 정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정수는 호정단원의 뒤쪽 숲 속으로 몸을 감춰 버린 후였다. 정수가 그리 쉽게 도망갈 줄 몰랐던 좌소천은 어이가 없어 손을 멈췄다.
그때였다.
호정단원들이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악적! 순순히 무릎을 꿇어라!”
“정의의 검을 받아라!”
좌소천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정수도 도망친 마당이니 그냥 떠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면서 상대를 핍박하는 호정단의 멍청이들을 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멍청한 자들!”
찰나였다!
좌소천의 쌍권이 교차하는가 싶더니, 권풍이 회오리치며 달려드는 호정단원 넷을 휘감았다.
콰과광!
굉음과 동시에 달려들던 호정단원들이 일제히 이 장 밖으로 튕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