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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35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59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절대천왕 35화

 

35화

 

 

 

 

 

 

십이정한녀는 창백하게 굳은 표정으로 혼신을 다해서 마지막 남은 힘까지 짜내 소영령에게 주입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십이정한녀가 자신들의 진기로 소영령의 모든 혈을 열기 시작한 지 사흘이 되었을 때다.

 

갑자기 소영령의 몸에서 뿌연 백색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옥대가 하얀 서리로 뒤덮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고, 소영령에게 진기를 쏟아 넣던 여인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커억!”

 

십이정한녀 중 손방(巽方)에 있던 여인이 먼저 피를 토하며 무너진다.

 

뒤이어 이방(離方), 감방(坎方), 진방(震方), 간방(艮方), 태방(兌方)의 여인이 무너지더니, 곤방(坤方), 건방(乾方)의 여인이 무너졌다.

 

남은 여인은 넷. 그녀들은 팔방을 점하고 있던 여덟 여인 사이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여덟 명의 여인이 무너지자 갑자기 주름이 지며 백 살은 된 노파처럼 변해 버렸다.

 

“신녀시여, 부디 저희들의 한을…….”

 

순간이었다.

 

소영령의 몸에서 차갑고도 영롱한 백색 광채가 눈부시게 쏟아져 나왔다.

 

그 모습에 한령파파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절을 올렸다.

 

“마침내 삼백 년간 닫힌 정한동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으니, 신녀시여, 부디 모든 것을 얻어 만천하 여인들의 한을 풀어주소서!”

 

 

 

 

 

4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승허암에 가끔 손님이 찾아왔다.

 

그중에는 은거해 있던 무당파의 제자도 있었고, 무당파의 제자가 아니면서 무당산에 기거하는 이름 모를 도인들도 있었다.

 

영허는 그들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개중에는 영허와 비슷한 나이의 도인도 몇 있었다. 그리고 두어 명은 영허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았다.

 

그중 하나가 우송(愚松)이라는 도인이었다.

 

그가 계단을 오를 즈음 영허는 맨발로 방을 나와 그를 맞이했다.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다.”

 

“클클클, 선기가 빤히 보이는데 엉덩이에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선인(仙人)의 수행을 방해한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선인은 무슨 얼어 죽을, 그저 죽지 못하고 나이만 먹은 늙은이라오.”

 

“들어가시지요.”

 

 

 

우송 도인은 한 시진가량 지나서야 방을 나섰다.

 

그는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마치 모든 것이 다 보인다는 듯 말했다.

 

“참으로 기구한 아이로다.” 

 

지금까지의 세월이 그렇다는 건지, 앞으로 살아갈 날이 그런 건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영허 진인은 빙그레 웃었다.

 

“역행할 아이가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클클, 하긴 그래서 한 조각 마음을 전한 거겠지.”

 

“말코로 죽을 거 같아 하나를 전했는데, 그게 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대에게 선기가 흐르는 게야. 나 같으면 고민을 하다 머리만 희어질 텐데, 자네는 먼지 한 톨 던지듯 내놓지 않았는가?”

 

“어떻게 보이십니까?”

 

“폭풍이 불면 세상이 혼잡해지지. 그러나 지나가고 나면 그 어느 때보다 하늘이 맑아진다네. 그리 안타까워할 것도, 마음 쓸 것도 없네. 오지 말라고 한다고 오지 않을 폭풍도 아니지 않은가?”

 

문득 우송 도인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시 오기는 힘들 것 같고, 온 김에 손에 든 먼지나 털고 가야겠구먼.”

 

 

 

계곡 아래에서 고요히 좌정해 있던 좌소천의 머릿속으로 뜬금없는 몇 마디가 스며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우주(宇宙)가 무엇이더냐?>

 

자신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무한한 시간과 만물을 공유한 공간입니다.”

 

<그걸 알면서 무엇을 하지 못해 그리 고민하누? 네가 곧 우주이거늘.>

 

좌소천의 눈이 서서히 뜨였다.

 

어디서 들려온 목소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좌소천은 눈을 뜨고 그림을 응시했다.

 

보이지 않던 손끝의 무언가가 보이는 듯했다.

 

그것은 검이고, 도이며, 또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 아무것도 아닌 것에 너무 얽매인 거였어.’

 

자신이 검이라 생각하면 검이었고, 도라 생각하면 도였고, 창이라 생각하면 창이었으며, 그저 빈손이라 생각하면 빈손일 뿐이었다.

 

거기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했으니 아무리 봐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좌소천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심상 속에서 그림을 떠올렸다.

 

그 그림에는 그의 생각에 따라 빈손에 검이 들리고, 도가 들렸다.

 

마침내 석벽에 새겨진 그림의 실체가 한 꺼풀 벗겨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었다.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몰랐다.

 

분명한 것은 시작을 했다는 것이다.

 

 

 

 

 

5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렀다.

 

그림을 바라보며 수련을 한 지 어느 덧 이 년.

 

그 이 년을 좌소천은 고독과 싸우며 하루 열두 시진 중 여덟 시진을 계곡에서 보냈다.

 

서쪽 절벽의 그림 세 개만을 남긴 채 암벽이 갈기갈기 찢기고 그물처럼 갈라진 것도, 근처의 바위가 곰보처럼 파이고 파이다 모래처럼 부서진 것도 모두 그로 인해서였다.

 

그는 지난 이 년 동안 자신이 아는 무공을 수천, 수만 번 반복해서 익힌 끝에 그 모든 것을 두 가지 갈래로 나누었다.

 

그 첫 번째가 무연만상무(無然萬象武)였다.

 

봉 대신 묵령기환보로 펼치는 천붕칠절, 매일 아침 기본 무공처럼 펼치는 건곤신권, 거기에 검왕 위지승정의 검결까지.

 

그는 그 무공들을 무연칠식을 기반으로 나름의 해석을 해냈다. 그러고는 선우궁현이 만상검이라는 이름을 붙였듯이 무연만상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금라천무(金羅天武)다.

 

금라천황공이 칠성에 이르자, 마침내 금라천의 세 가지 무공을 금라천황공으로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그 경지가 칠, 팔성에 머물러 완성되지는 않았으나, 내력만 뒷받침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완성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함에도 금라천경의 운용결과 묵령기환보에 대한 것을 얻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좌소천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노력하다 보면 나머지도 언젠가는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다!’

 

영허 진인이 남긴 그림이 없었다면, 가끔 영허 진인에게서 선문답처럼 들리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지금 도달한 경지 역시 몇 배의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거기다 나중에 들었던 우송 도인의 심어가 없었다면 아마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을 것이다.

 

좌소천은 신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그림을 올려다봤다.

 

자신의 무공을 두 가지로 압축하고도 그림은 아직 지울 정도가 되지 않아서 지우지 못했다. 

 

그러나 머지않은 시간 안에 지울 수 있을 듯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그림만 깨닫게 된다면…….

 

‘그때쯤이면 승허암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겠지.’

 

그리고 복수를 시작할 것이다.

 

피를 뒤집어쓴 아수라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하지만 하늘이, 영허 진인이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백 일 후.

 

좌소천은 그림을 지우고도 승허암을 떠나지 못했다.

 

 

 

6

 

 

 

이 년을 생각했던 영허 진인의 삶은 넉 달을 더 이어졌다.

 

마음도 몸도 공(空)이 되기 직전, 영허 진인은 좌소천의 방을 찾았다.

 

삼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히 무당산을 울리는 시각이었다.

 

영허 진인은 잠들어 있는 좌소천을 바라보며 아무런 머뭇거림도 없이 침상에 올랐다.

 

영허 진인이 침상에 오르는데도 좌소천은 깨어나지 않았다.

 

마치 먼지가 내려앉는 듯했다. 얇은 홑이불이 조금의 구김도 일지 않았다.

 

스스로가 한 줌 대기가 된 듯 보이는 모습.

 

그렇게 침상에 오른 영허 진인은 은은한 웃음이 깃든 표정으로 좌소천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순간 영롱하고 은은한 기운이 영허 진인의 두 손에서 쏟아졌다.

 

좌소천의 몸이 꿈틀거리며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곧 고요해진 좌소천의 몸에 영롱한 빛이 스며들고, 이내 좌소천의 온몸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러한 일은 무려 두 시진에 걸쳐 일어났다.

 

 

 

좌소천은 자신의 몸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느껴진 기이한 기분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럴지도 몰랐다.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잠을 자던 중에 각오(覺悟)했다면 모르지만.

 

좌소천은 의아함을 누르고 누운 채 운기를 해보았다.

 

순간 천천히 운공을 하며 기운을 돌리던 좌소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자신의 몸이 전날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그제야 느낀 것이다.

 

찬찬히 하나하나 시간을 거슬러 가며 몸에 각인된 모든 것을 더듬어봤다.

 

그러길 일각여. 소스라치게 놀란 좌소천이 벌떡 일어나 방을 나섰다.

 

덜컹!

 

영허 진인의 방문을 연 좌소천은 앞을 바라보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어르신!”

 

영허 진인은 눈을 감은 채 고요히 앉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짐을 털어낸 듯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맺힌 채로.

 

그런데 숨소리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슬퍼 말아라.>

 

갑자기 머릿속이 울렸다. 심령이 울리는 소리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제게 이런 짐을 지우시는 겁니까?”

 

영허 진인의 웃음이 짙어진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느니라. 결국은 가는 길까지도 떨치지 못했음이니, 나는 그저 말코로 죽나보구나. 흘흘흘.>

 

앞으로는 절대 울지 않으리라 작정했던 좌소천의 눈이 뿌옇게 가려졌다.

 

이를 악문 좌소천이 고개를 들자, 영허 진인의 감긴 눈이 천천히 뜨였다.

 

<어설픈 힘으로 도끼질을 하면 나무에 많은 상처가 나지만, 제대로 된 힘으로 도끼질을 하면 단숨에 자를 수가 있단다. 그러면 나무도 고통을 덜 느끼고 도끼질을 한 사람도 편안해지는 법이지. 내가 티끌 같은 힘으로나마 너를 도운 것은, 어차피 휘두를 도끼라면, 네가 완벽한 도끼질을 했으면 싶어서다. 그러니 네가 단숨에 나무를 자를 수 있을 때 이곳을 떠났으면 싶구나.>

 

그때 무릎에 얹어져 있던 한 권의 책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좌소천을 향해 날아왔다.

 

<그것은 내가 삼십 년 전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을 때, 나에게 목숨을 잃은 사람의 집에서 얻은 것이다. 너무 패도적인 무공이라 없앨까도 생각했지만, 죄를 지은 내가 그의 물건을 함부로 없앨 수도 없는 일이어서 지니고 있었지. 갈 때 가져가려 했거늘, 우송 도인의 말을 듣고서 지난 세월 지켜본 바, 너라면 그것을 적절히 쓸 수 있을 거라…….>

 

영허 진인의 목소리가 잦아든다.

 

숨소리도 잦아든다.

 

천천히 감기는 영허 진인의 눈 속에 세상이 모두 담긴 듯하다.

 

<결국 무상인 것을…….>

 

그 말을 끝으로 머릿속의 울림이 멎었다.

 

동시에 환한 광채가 영허 진인의 전신에서 뻗치는 듯 느껴졌다.

 

“어르신?!”

 

좌소천이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그러나 두 번 다시 영허 진인의 눈은 뜨이지 않았다.

 

너무 고요해 있는 듯 없는 듯 그 자리에 있는 영허 진인이다.

 

멍하니 영허 진인을 바라보던 좌소천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당신은 저의 스승이셨습니다. 어설픈 손자의 마음을 잡아준 조부셨습니다. 영원히, 영원히… 그러할 것이옵니다.’

 

 

 

다음날.

 

어떻게 알았는지 현고자가 노도인 십여 명과 함께 조용히 승허암을 찾았다.

 

그들은 사흘간 승허암에 머물며 영허 진인의 등선을 비는 진언을 외웠다. 그리고 나흘째가 되던 날, 영허 진인의 유해를 조사동에 안치했다.

 

좌소천은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의 해가 떠오르고 나서야 방을 나섰다.

 

영허 진인은 가고 없지만, 세상은 여전히 어제 그대로였다.

 

 

 

 

 

 

 

5장 내가 있음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1

 

 

 

 

 

태양이 무당산의 주봉인 천주봉 위로 치솟는다.

 

고요한 아침의 태양을 반기며 수목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켠다.

 

무당이 잠에서 깨어 비상하는 시각이다.

 

천주봉 서쪽으로 세 개의 봉우리를 넘어가야 보이는 곳, 깎아지른 절벽 중간의 평평한 곳에 세워진 한 채의 작은 암자 앞.

 

이제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석상처럼 우뚝 서서 아침의 태양을 품에 끌어안았다.

 

마른 듯 보이는 체격, 허리까지 늘어진 긴 머리, 바위를 닮은 무표정한 얼굴, 꺼칠하면서도 짙은 턱수염.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청년은 좌소천, 바로 그였다.

 

유수와 같이 흐른 세월이 벌써 사 년 사 개월.

 

그는 어느새 완연한 청년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후우우우우…….”

 

길게 내쉬는 좌소천의 숨소리에 아침 햇살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순간, 두 팔을 벌린 채 석상처럼 서 있던 좌소천이 느릿하니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는 천천히 앞을 향해 내뻗었다.

 

우르르릉!

 

암자 옆, 거북이를 닮아 구암(龜岩)이라 이름 붙은 이 장 직경의 거대한 바위가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서서히 가라앉는 바위의 울음소리.

 

좌소천은 그 소리가 완전히 그치고 나서야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제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노도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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