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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33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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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절대천왕 33화

 

33화

 

 

 

 

 

 

현오자는 가슴에서 뭔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사백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거늘, 안에서 나온 자는 이제 스물도 안 된 소년이 아닌가 말이다!

 

“도우는 누군가? 누군데 감히 이곳에 머무르는 것인가?”

 

순식간에 열망이 분노로 변했다.

 

현오자는 몸을 날려서 계단을 단숨에 올라갔다.

 

그러고는 자신을 응시하는 좌소천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조금 전, 영허 진인이 말했다.

 

“손님이 오나보구나. 네가 나가보아라.”

 

“예, 어르신.”

 

공손히 대답한 좌소천은 방을 나서서 계단 쪽을 쳐다보았다.

 

승허암에 머문 지 삼십 일째.

 

그동안의 방문자는 하늘을 날아다니다 잠시 쉬어가는 새들이 전부였다. 무당산에 있다는 수천의 무당 제자들과 은거한 채 수도하는 수백의 도인 중 영허 진인과 자신이 승허암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마침내 첫 번째 방문자가 승허암을 찾아온 것이다. 자신을 향해 두 손을 뻗으면서.

 

‘방문 인사 한번 고약하군.’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히 제압하기 위함인 듯했다. 하지만 좌소천은 순순히 제압당해 줄 생각이 없었다.

 

몸도 그럭저럭 복구된 상태. 좌소천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삼 권을 쳐냈다.

 

우르릉!

 

“헛!”

 

뜻밖의 강력한 반발에 현오자도 두 손에 내력을 쏟아 넣었다.

 

쿠구궁!

 

승허암의 좁은 공간이 두 사람의 기운으로 파동 쳤다.

 

주르륵 뒤로 세 걸음을 물러선 좌소천은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현오자를 노려보았다.

 

백의청년과의 일전 이후 자신의 무공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은 그였다. 

 

그렇다 해도 현오자를 상대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내상도 완벽하게 낫지 않은 몸이 아니던가.

 

하지만 굴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천천히 전신으로 내력을 흘려보내며 건곤신권의 기수식을 취했다. 

 

한편, 현오자는 좌소천을 바라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얼굴에 희미한 흉터가 서너 군데 보였다.

 

아무리 봐도 막내제자만큼이나 어릴 듯했다. 

 

그런데 그런 소년이 자신의 오성 공력이 실린 장력을 별 무리 없이 맞받아내고, 그도 모자라서 침착하게 대응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대체 누구의 제자일까? 왜 이곳에 있는 걸까?

 

의문이 더해지면서 현오자의 표정이 보다 더 신중해졌다.

 

“다시 묻겠다. 너는 누군데 이곳에 있는 것이냐?”

 

“있으라 해서 있는 것뿐입니다.”

 

“있으라 했다고? 누가 너에게 그런 말을 했단 말이냐?”

 

현오자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그때였다. 영허 진인이 고개를 내밀고 혀를 찼다.

 

“내가 있으라 했다. 쯔쯔쯔, 그놈의 성질머리 하곤…….”

 

“흡!”

 

현오자의 신형이 홱 돌더니 두 눈이 커지며 파르르 떨렸다.

 

온통 주름으로 덮인 얼굴이다. 그러나 삼십 년 전에 보았던 모습이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 사, 사백?”

 

“일단 안으로 들어오너라.”

 

 

 

철퍼덕!

 

무너져 내리듯 무릎을 꿇은 현오자가 격동을 참지 못하고 울부짖듯 소리쳤다.

 

“사백 어른을 뵙습니다!”

 

영허 진인은 그런 현오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 빠진 웃음을 흘렸다.

 

“흘흘흘, 너도 이제 많이 늙었구나.”

 

“사백 어른!”

 

“그리 소리칠 것 없다. 죽지 않았으니 돌아온 것인데 뭐 그리 호들갑을 떠는 것이냐?”

 

“제가 호들갑을 떨지 않게 생겼는지요? 대체 어이 된 일입니까?”

 

“어이 된 일이기는, 그냥 죽을 때가 다 된 것 같으니 돌아온 거지.”

 

“왜 본 파로 찾아오지 않으신 겁니까? 장문 사형도 모르고 계십니까? 다른 두 분 사숙은 만나 뵈셨습니까?”

 

“클클클. 그것참, 어째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성격이 그대로더냐? 세월이 흘렀으면 조금 더 진중해져야지.”

 

“사백 어른 앞에서는 그저 천방지축이던 현오이고만 싶을 뿐입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현오자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무당의 누구도 믿지 못할 모습이었다.

 

하지만 과거 영허 진인이 무당에 머무를 때 수발을 들던 사람이 현오자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가 한쪽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좌소천을 슬쩍 일견하고 물었다.

 

“저 아이는 제자로 거둔 아이인지요?”

 

영허 진인이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저놈이 그리하지 않을 것이야.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이 늙은이의 손자처럼 생각해라.”

 

영허 진인의 제자라면 자신의 사제가 된다는 말. 그로선 좌소천이 영허 진인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새파란 사제는 아무래도 부담이었다.

 

“예, 사백 어르신.”

 

“그리고 다음부터는 저 아이가 식량을 가지러 갈 게야. 소문내지 말고 식량이나 챙겨주어라.”

 

현오자가 움찔해서 영허 진인을 올려다봤다.

 

“하면 제자들에게 알리지 않을 생각이신지요?”

 

“알리며 뭐 하누? 어차피 오래 전에 잊힌 사람인데.”

 

“그래도 장문 사형과 사숙들에게는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때가 되면 내가 알리마. 잔소리 말고, 그때까지는 입 다물고 있도록 해라.”

 

 

 

 

 

3

 

 

 

 

 

끼이이익!

 

거대한 제천신궁의 정문이 굉음을 발하며 열렸다.

 

네 개의 문이 모두 열림과 동시에 십여 명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문을 넘어섰다.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선두에서 걷는다. 그의 좌우를 사십대 중년인 넷이 보좌하고, 네 명의 중년인과 두 명의 삼십대 장한이 뒤를 따라 걷는다.

 

일직선으로 뻗은 드넓은 길 저쪽의 내궁을 향해서이다.

 

그들이 내궁의 전면에 섰을 때다.

 

“천외천가의 순우무종 대공자가 입궁했습니다!”

 

안쪽에서 그들의 입궁을 알리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구구구궁!

 

동시에 내궁의 문이 열리고 외침이 이어졌다.

 

“해검하고 들어오라는 궁주님의 명이시다!”

 

선두에 서 있던 청년 순우무종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이미 각오하고 온 바, 그는 순순히 등에 메고 있던 검을 풀었다.

 

“대공자.”

 

옆에 서 있던 위맹한 얼굴의 중년인이 순우무종을 부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호랑이 굴에 들어왔을 때는 그만한 각오가 있기에 온 것 아니겠소? 모두 무기를 풀어놓으시오.”

 

열 명의 무인은 못마땅한 표정이면서도 모두가 각자의 무기를 풀어놓았다.

 

안에서 무사 셋이 나오더니 천외천가 무인들의 무기를 수거해 갔다.

 

그제야 순우무종이 걸음을 옮겼다.

 

‘오늘의 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내궁의 제천전에 마련된 제단에 향이 꽂혔다.

 

순우무종은 천외천가 무인들과 함께 삼배를 하며 선우궁현의 명복을 빌었다.

 

멍청한 아우 때문에 치욕적인 굴욕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러나 당장은 힘이 없으니 어쩌랴.

 

그는 훗날의 영광을 위해서 한 번은 굽히기로 했다. 굽히기로 한 이상 망설일 것이 없었다.

 

“무궁의 일은 결코 본가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 어찌 되었든 본가의 핏줄이 저지른 일, 본가의 대표로서 선우 대협께 용서를 비옵니다!”

 

경건한 태도로 죄를 비는 순우무종이다.

 

혁련무천이 그를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본 궁의 삼천 무사를 이끌고 태백산으로 달려가고 싶은 본좌다! 하나 가주의 뜻이 아닌, 망나니 같은 아들 짓이라는 것을 알고 강호의 안녕을 위해 가까스로 참은 터다! 너는 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어찌 궁주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모르겠습니까? 가주이신 아버님께서도 선우 대협과 궁주님께 지은 죄로 인해 사흘간 곡기를 끊으셨사옵니다. 부디 본가를 용서하소서!”

 

“그대들은 사흘 후 해가 떠오를 때까지 선우 형의 위패 앞에서 참회토록 하라! 정성을 봐서 용서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니라!”

 

순우무종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예, 궁주!”

 

 

 

사흘.

 

순우무종과 열 명의 천외천가 무사는 입에 물 한 모금 대지 않고 선우궁현의 위패 앞에서 무릎을 꿇고 버텼다.

 

사흘이 지나 해가 밝아오자 순우무종이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그의 얼굴이 창백하다.

 

두 다리는 가늘게 떨리고, 움켜쥔 두 주먹은 당장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처럼 손가락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가 있다.

 

사흘간 내력을 운기하지도 못한 채 순전히 육신의 힘만으로 버텨야 했다. 혁련무천이 그걸 바라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철혈의 인간이라도 육신의 힘만으로 사흘을 무릎 꿇고 버틴다는 것이 어디 보통 일이랴.

 

‘크윽!’

 

그가 몸을 일으키자 열 명의 무인도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막힌 혈관 속으로 개미가 기어가는 고통이 그들의 몸에 엄습했다. 진저리를 치며 일어서는 그들의 이가 절로 악다물렸다.

 

그때였다.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혁련무천의 뜻을 전달했다.

 

“궁주님께서 대공자를 안으로 모시라는 명이시오! 다른 분들은 빈전으로 가서 쉬고 계시오!”

 

순우무종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혁련무천, 우리가 그대의 뜻을 아는 이상, 쉽게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일각 후.

 

순우무종이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두 손으로 받들어 내밀었다.

 

사공은환이 서신을 받더니 태사의에 앉은 혁련무천에서 올렸다.

 

다시 일각.

 

혁련무천의 입에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걸쳐졌다. 하지만 너무 빨리 사라진데다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아무도 보지 못했다.

 

“가서 그대의 부친께 전해라. 선우 형도 그대의 정성을 받아들였을 터, 나 역시 더 이상 이 일로 무사들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감사하옵니다, 궁주!”

 

“하나… 약속을 어기면 나의 분노가 태백산을 향할 것이니라.”

 

“어찌 강호의 하늘이신 분과의 약속을 어기리까. 걱정하지 마소서!”

 

고개를 깊게 숙인 순우무종은 뒷걸음질로 제천전을 나섰다.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혁련무천이 서신을 사공은환에게 넘겼다.

 

“제법이군. 조심해야 할 놈이야. 우리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어.”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그 정도도 눈치 채지 못하는 자들과 어찌 천하를 논할 수 있겠사옵니까?”

 

“하긴…….”

 

버릇처럼 팔걸이를 톡톡 치던 혁련무천이 어느 순간 손짓을 멈추고 서신을 건넸다.

 

“준비하는데 얼마나 걸리겠나, 은환?”

 

서신을 빠르게 훑어가던 사공은환의 입가로 조용히 미소 한 가닥이 떠올랐다.

 

“삼사 년이면 될 것이옵니다.”

 

“일 년을 더 늘려라. 대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라.”

 

“예, 주군.”

 

 

 

한편 제천전을 나선 순우무종은 몸이 굳은 듯 움직일 줄을 몰랐다.

 

언뜻 보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숨을 가다듬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한곳에 고정된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구석진 곳에 조성된 정원의 귀퉁이. 그곳에 한 여인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넋이 빠진 듯 보이는 표정.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모습.

 

누군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정체를 짐작하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순우무궁이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용했다는 여인. 이 년을 사귀고도 마음을 완벽히 얻지 못했다는 제천신궁 제일의 미녀.

 

‘혁련미려…….’

 

바로 그녀였다.

 

‘정말 아름답군.’

 

그는 순우무궁과 여인을 보는 눈이 달랐다. 하기에 그는 순우무궁이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혁련미려에게서 볼 수 있었다.

 

많은 것을 가지고도 순수가 남아 있는 모습, 혁련미려에게서 모란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멍청한 놈. 차라리 저 여인이나 차지할 것이지.’

 

둘째는 광인처럼 변해서 태백산으로 돌아왔다.

 

분노한 아버지는 둘째를 가문의 원류인 천해(穿海)에 집어넣었다. 몇 년간 지옥에서 생활하며 제정신을 차리라는 질타와 함께.

 

만일 둘째가 혁련미려를 차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상을 받았을 것이다. 천하제일패의 사위가 되어 왔다면 말이다.

 

그때 문득 기이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아니지. 차라리 잘된 건가?’

 

덕분에 혁련미려에게 아직도 순수함이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른 생각에 순우무종의 입꼬리가 살짝 치켜지고, 혁련미려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항상 여인에게 있어서만큼은 자신보다 앞섰던 둘째다. 그런 둘째조차 마음을 얻지 못한 여인이 아닌가.

 

‘그렇군. 그것도 괜찮겠어. 본가의 정부인이라면 적어도 저 정도는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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