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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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4화
24화
그곳은 육중한 바위로 입구가 막혀 있는데다, 오십여 장을 들어가야 수련을 할 만한 광장이 있었기에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던 곳이었다.
임독양맥이 뚫린 좌소천에겐 앞으로 일 년가량이 가장 중요한 때. 선우궁현은 당분간 좌소천을 그곳에서 수련하게 할 생각이었다.
바위로 막아놓기만 하면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이었으니까.
음식은 지금처럼 하루에 한 번 소영령이 입구에 놓으면 될 듯했다.
참연동에 간 소영령은 이각 만에 좌소천과 함께 돌아왔다.
“부르셨습니까, 백부님.”
“음, 어서 와라.”
다른 말은 일체 배제한 채 선우궁현은 좌소천에게 수련동을 옮기라 했다.
좌소천은 의아했지만 토를 달지 않았다. 백부가 그리 말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좌소천에게 백부는 절대적인 믿음의 대상 그 이상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백부님.”
8장 누구도 그를 막지 못할 것이다!
1
십일월 열하루 새벽.
두 척의 배가 어스름을 헤치며 동정호의 물살을 갈랐다.
한 척당 이십여 명. 배를 모는 선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무사들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안개가 보이기 시작하자 배의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그때 선두를 나아가던 배의 선수에 학창의를 입은 오십대 후반의 초로인이 올라섰다.
“저긴가?”
“그렇습니다, 제갈 노사.”
그 옆으로 백의청년이 나란히 섰다.
초로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안개를 노려보더니 진심이 담긴 감탄성을 터뜨렸다.
“정말 굉장한 진세군! 천하에 이런 진을 펼칠 줄 아는 자가 있었다니!”
“닷새를 뒤져서 이곳을 찾아냈는데, 저 안개로 인해서 되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으음, 당연히 그랬을 거네. 저 진은 천승운무진이라는 오래전에 절전된 진세네. 아마 저 진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천하를 통틀어도 셋을 넘지 않을 거야.”
초로인이 자부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셋 중 하나가 제갈세가의 원로인 제갈진우,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내가 말해주는 곳에서 배를 멈추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일러서 그 밑의 물속으로 들어가 보라고 하게. 아마 기둥이 박혀 있을 거야. 그걸 부수라 하게.”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기둥은 모두 백스물여덟 개네. 하지만 내가 일러주는 곳 다섯 개만 순서대로 부수면 길이 열릴 것이야.”
잠시 후, 한 사람이 동정호 속으로 들어갔다.
참연동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 섬의 뒤쪽이었다.
2
“어머? 배가 들어오네?”
두 번째 운기를 마치고 숨을 깊게 내쉬는데 소영령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벌떡 몸을 일으킨 선우궁현은 철검을 손에 쥐고서 방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둔덕 위에서 소영령이 돌아선 채 동정호를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선우궁현이 달려가며 급히 소리쳤다.
“영령아! 이리 내려오너라!”
고개를 돌린 소영령이 의아해하면서도 천천히 둔덕을 내려왔다.
“스승님, 배가 들어와요. 어떻게 진을 통과한 거죠?”
선우궁현은 일일이 대답해 줄 정신이 없었다.
둔덕 위에 오르기도 전에 배가 보였다. 보름 전에 봤던 세 사람 역시.
배가 백사장 근처에 이르자 무사들이 뱃전으로 쏟아져 나온다. 언뜻 봐도 삼사십 명에 이르는 숫자다.
그중 보이는 절정의 고수만도 다섯. 혼자 상대하기는 적이 너무나 많았다. 더구나 자신은 내상이 완치되지 않은 상태.
그는 즉시 소영령에게 빠르게 말했다.
“너는…….”
처음에는 좌소천이 있는 암운동에 가 있으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봉우리를 올라가다 보면 자칫 적에게 들킬지도 몰랐다. 소영령이 들키면 좌소천까지 위험해질 터.
“작년에 네가 발견한 작은 동굴로 가서 깊숙이 들어가 숨어 있어라.”
섬에서 수십 년을 산 자신조차 발견하지 못한 동굴을 소영령이 작년 이맘때 발견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기 전에는 그저 길게 갈라진 틈으로만 보이는 곳이었는데, 입구가 워낙 좁아서 체구가 조금만 커도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스승님……?”
“어서 가라!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어서!”
“저도 싸울게요. 내공이 좀 딸려서 그렇지 저도 검법을 세 가지나 익혔다구요!”
선우궁현은 답답한 마음에 눈을 부라렸다.
“어서 가래도! 네가 가야 내가 마음 놓고 싸울 수 있단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소영령은 멈칫거리면서도 선우궁현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뒤로 물러났다.
선우궁현이 급히 손을 흔들었다. 빨리 가라며.
그때 배에서 무사들이 몸을 날렸다.
선우궁현은 그들이 다가오기 전에 먼저 앞으로 나갔다. 그가 백사장 쪽으로 걸어가며 물었다.
“손님을 받지 않는 곳에 웬 손님들이시오?”
백의청년 순우무궁이 앞으로 나섰다.
“사람을 좀 찾으려고 왔습니다, 선우 대협.”
“사람? 누구 말인가?”
“좌소천이라는 사람이지요. 대협과 함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아! 소천이 말인가? 이거, 자네가 한발 늦었군. 저번 달에 사천에 사는 친구에게 보냈는데 말이야.”
선우궁현은 동굴로 향하는 소영령도 충분히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선우궁현의 말에 순우무궁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말 그런지 섬을 뒤져 봐도 되겠습니까?”
선우궁현의 송충이처럼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네가 감히 지금 나 선우궁현을 의심하는 것인가?”
폭풍 같은 기세가 선우궁현의 몸에서 쏟아지자 순우무궁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 뒤로 물러섰다.
‘과연 만패철검!’
한편으로는 자신이 상대의 기세에 밀려 물러났다는 것에 은근히 화가 났다.
“거짓이 아니라면 허락해 줘도 되지 않겠습니까?”
“내 집을 마음대로 뒤지게 하면 강호의 친구들이 뭐라 하겠는가?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네!”
“그럼 할 수 없지요. 강제로 뒤져 보는 수밖에.”
선우궁현이 목소리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허어, 이곳에 없다는데 왜 자꾸 찾겠다고 하는 건가?”
“그거야 저희가 찾아보면 알겠지요. 이 많은 사람이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참, 한데 어느 분이 진을 파훼한 것인가?”
선우궁현은 소영령이 참연동까지 갈 시간을 벌기 위해 말을 돌렸다.
그때였다.
“나는 제갈진우라 하네. 참으로 멋진 진이 펼쳐져 있더군.”
선우궁현의 눈에서 한광이 쏟아졌다.
천하에서 천승운무진을 풀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 중 하나가 온 것은 짐작했다. 하지만 설마하니 제갈세가 제일의 기문진학 대가인 제갈진우일 줄이야.
“제갈세가가 언제부터 천외천가의 뒷일을 처리해 줬는지 모르겠군요.”
“허허허, 전에 빚을 진 것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도와주기로 했네. 이해해 주게나.”
“하하하, 소위 정파의 터줏대감이라는 사람들이 빚 때문에 불의에 앞장서다니, 강호가 웃을 일이구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였다.
순우무궁이 뒤쪽을 향해 손짓을 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놈을 찾아라!”
도유당의 무사들과 천귀단의 무사 칠팔 명이 옆으로 돌아서 섬 안쪽으로 들어갔다.
선우궁현은 그들을 본 척도 않고 철검을 뽑아 옆으로 늘어뜨렸다.
더 이상 말로 시간을 끌기 어려운 상황. 이제는 힘으로 막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자신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터. 이제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운명이 결정할 것이다.
선우궁현은 늘어뜨린 검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비웃듯이 입술을 말아 올렸다.
“나를 뚫고 들어가야 할 텐데, 쉽지 않을 것이다, 애송이.”
순우무궁의 눈에서 새파란 살기가 번들거렸다.
천하에서 누가 감히 천외천가의 이공자인 자신에게 애송이라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순우무궁이 분노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선우궁현! 오늘 이곳에서 그대의 목이 떨어질 것이다!”
선우궁현이 하늘을 바라보며 철검을 치켜들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오늘 온 자들 중 반은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치켜든 검을 내려쳤다.
‘소천아! 영령아! 내세에서 보자꾸나!’
찰나!
휘이이이잉!
검세가 폭풍이 되어 전면을 향해 밀려갔다.
모래가 튀어 오르고, 풀뿌리가 솟구쳐 하늘을 뒤덮었다.
천외천가의 사람들에게는 악몽 같은, 다시는 겪지 않고 싶은 처절한 격전의 시작이었다.
“와라! 내가 바로 만패철검 선우궁현이니라!”
싸움은 처절하고도 처절했다.
선우궁현은 내상을 숨기기 위해 선천진기까지 끌어올린 채 천외천가의 고수들을 몰아쳤다.
어차피 나중이란 것은 없었다.
이 자리에서는 얼마나 많은 적을 베느냐 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었다.
콰과과광!
검강이 사방을 휩쓸었다.
무은도에 벼락이 줄기줄기 떨어졌다.
십 초, 이십 초, 삼십 초…….
초 수가 거듭되며 무은도가 피로 물들었다.
지옥의 살귀가 따로 없었다. 여기 선우궁현이 살귀였다.
쿠르릉!
쩌저저저적!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격전음!
“크악!”
“캐액!”
연이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비명과 신음!
그들의 몸에서 솟구치는 시뻘건 피 분수!
하지만 혼자서 그들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백여 초가 지나기도 전에 선우궁현의 왼팔이 잘려 허공으로 튕겨졌다.
분수처럼 뿜어지는 붉은 피!
천이 갈가리 찢어진 부채를 든 순우무궁이 악다구니를 쓰며 미친 듯이 외쳤다.
“놈의 힘이 떨어졌어! 놈을 죽여! 죽여 버려!”
항상 차분하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무은도에는 그저 공포에 질린 애송이만이 있을 뿐이다.
“얼마든지 와라! 천외천가의 잡졸들아!”
그런 몸으로도 선우궁현은 오십여 초를 더 견뎠다.
손자기가 그의 허벅지에 륜을 박고 한 팔이 잘렸다.
장로인 영충이 어깨에 검을 꽂고는 목이 반쯤 잘린 채 쓰러졌다.
“이제 보니 천외천가도 별것 아니구나! 으하하하하!”
무은도의 창공으로 선우궁현의 웃음이 울려 퍼졌다.
교초온과 또 다른 장로인 도지강과 순우무궁이 동시에 공격을 감행했다.
콰과과광!
도지강과 순우무궁이 참담한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밀려났다.
하지만 교초온만은 악착같이 선우궁현의 마지막 일검을 막아내고,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콰직!
일순간, 교초온의 검이 검병 근처까지 선우궁현의 심장에 쑤셔 박혔다.
그제야 선우궁현의 움직임이 멈췄다.
“지독한 놈!”
선우궁현의 가슴에 검을 박은 교초온이 진저리를 쳤다.
네 장로 중 둘이 죽고 한 명은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다.
손자기는 팔 하나가 잘린 채 겨우 삶을 건졌다.
도유당 이십이 명의 무사 중 열넷이 죽고, 천귀단 열 명의 단원 중 넷이 죽었다.
그의 말대로 반 이상이 죽거나 중상을 입은 것이다.
“놈의 목을 치시오, 교 장로! 어서! 목을 날려 버려!”
머리가 풀어헤쳐진 순우무궁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때 심장에 검이 박힌 선우궁현이 씨익 웃으며 교초온을 바라보았다.
“크크크크, 내상만 입지 않았어도 네놈들을 모조리 죽이는 건데……. 지옥에 먼저 가서 기다리마. 천외천가여, 통곡과 비명이 태백산을 덮을지니…….”
쑤욱!
교초온은 심장에 박힌 검을 뽑고 뒤로 물러났다.
창백한 그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선우궁현의 가슴에서 힘차게 뿜어진 피분수가 그의 얼굴을 적시는데도 그는 떨림을 멈추지 못했다.
‘어쩐지 그때보다 약한 것처럼 느껴진다 했더니…….’
그때 선우궁현의 목소리가 악마의 속삭임처럼 교초온의 귀를 파고들었다.
“누구도 그를 막지 못할 것이다, 이놈들…….”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선우궁현의 몸이 천천히 쓰러졌다.
쿵!
만패철검, 철검판관 선우궁현이 죽은 것이다. 닥쳐올 겁난을 예언이라도 하듯이 몇 마디 말을 남긴 채.
사람들은 쓰러진 선우궁현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못했다.
특히 교초온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뭔가가 잘못되었어, 뭔가가…….’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 때다. 좌소천을 찾으러 갔던 천귀단의 수하가 옆구리에 사람 하나를 끼고 둔덕을 넘어왔다.
“이공자님! 집 뒤쪽에서 계집 하나를 발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