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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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3화
23화
그가 신형을 뽑아 올려 참연동으로 들어선 순간, 피 화살을 뿜으며 튕겨 오르는 좌소천이 보였다.
시뻘건 얼굴, 부들부들 떨리는 몸, 얼굴과 손에 지렁이 같은 핏줄이 돋아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정신을 잃은 듯 보인다.
선우궁현은 내력을 실어서 소리쳤다.
“소천아!”
그러고는 급히 좌소천의 등 뒤로 돌아갔다.
눈꺼풀이 떨리는 것을 보니 미약하나마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정신을 차리고 운기를 해라!”
“끄으으…….”
“내가 내력을 인도할 것이니 절대 정신을 잃으면 안 되느니라!”
선우궁현은 좌소천의 명문에 우장을 붙이고 급히 내력을 밀어 넣었다.
순간, 엄청난 반탄력이 그의 내력을 밀어냈다.
선우궁현의 눈이 홉떠졌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이 아이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이런 기운이 움직이고 있는 거지?’
제왕신단의 기운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제왕신단의 약기운이 강하다 해도 이 정도는 아니다.
어쨌든 의문을 푸는 것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터. 당장은 좌소천의 몸을 터뜨릴 것 같은 기운을 먼저 잠재워야 했다.
선우궁현은 좌소천의 몸에 자신의 팔성 내력을 쏟아 넣었다.
그제야 좌소천의 몸에서 화산의 용암처럼 들끓던 내력이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좌소천을 위기로 몰아넣은 기운이 한 가닥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엄청난 기운이 임맥과 독맥 양쪽에서 휘돌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선우궁현은 어렴풋이나마 좌소천의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달았다.
‘맙소사! 설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무엇 때문인지 두 기운이 충돌했다.
독맥과 임맥이 만나는 곳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임독양맥의 타통이 눈앞에 있다는 것!
성공했다면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터. 천금의 기회가 생사를 가르는 위기로 변해 버린 상황이었다.
그걸 깨닫자 선우궁현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지금의 상황에서 선택은 딱 두 가지.
이대로 기운을 눌러 안정시키는 것과 모험을 해서 임독양맥을 뚫어버리는 것뿐이다.
첫 번째 길을 선택하면 그도 부담이 없다. 비록 좌소천은 일 년 정도 망가진 혈맥을 다스려야 하겠지만.
반면에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면, 좌소천도 그렇고 자신도 모험을 각오해야 한다.
세 번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둘 다 위험할 테니까. 게다가 성공한다 해도 자신은 한동안 내상을 다스려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선우궁현은 깊게 생각지 않았다.
이런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일 년 후에 올지 십 년 후에 올지, 아니면 평생 오지 않을지 아무도 모른다.
기회란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것!
선우궁현은 좌수마저 우수 위에 올려놓고서 이를 악문 채 내력을 더욱더 강하게 끌어올렸다.
제아무리 좌소천의 몸에서 요동치는 기운이 강하다 해도 선우궁현의 십성 내력을 당해낼 수는 없는 일. 서서히 선우궁현의 기운이 좌소천의 독맥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두 가닥 기운이 독맥과 임맥을 타고 서로를 향해 치달렸다.
기회라 생각한 선우궁현은 전력을 다해서 독맥에 기운을 쏟아 넣었다.
찰나, 마주 보며 치달리던 두 기운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쾅!
좌소천의 몸속에서 굉음이 일더니 두 사람의 몸이 풀쩍 튀어 올랐다.
좌소천의 입에서는 조금 전보다 더 많은 양의 피가 뿜어지고, 선우궁현의 얼굴도 창백하게 변했다.
첫 번째 기회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선우궁현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내력을 밀어 넣었다.
곧이어 선우궁현의 기운에 밀린 두 기운이 다시 충돌했다.
콰르르릉!
좌소천의 몸속에서 거대한 울림이 일었다.
이번에는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핏물이 쏟아졌다.
두 눈마저 벌겋게 충혈된 선우궁현은 자신의 선천지기마저 끌어냈다.
‘오냐! 누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
이제 남은 기회는 단 한 번. 실패하면 좌소천은 물론이고 자신조차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소천아! 전력을 다해서 기운을 승장혈로 인도해라!”
핏물을 튀기며 선우궁현이 소리쳤다.
좌소천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좌소천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혀를 깨물었다.
찰나, 살짝 정신이 들었다.
‘실패하면 백부님도 다친다! 어머니! 아버지! 도와주세요!’
좌소천은 승장혈로 향하는 금라천황공에다가 단전이 텅 비도록 혼신의 내력을 쏟아 부었다.
선우궁현도 독맥의 기운을 밀어붙여 은교혈로 향했다.
동시였다!
두 가닥 기운이 세 번째 충돌을 위해 미친 듯이 달렸다.
일수유의 순간!
은교혈과 승장혈까지 미친 듯이 달려간 두 기운이 굉음과 함께 부딪쳤다.
콰아앙!
순간, 눈앞이 하얗게 밝아진 좌소천은 모든 의식이 끊어진 채 허공으로 튕겨졌다.
선우궁현 역시 가부좌를 튼 채 뒤로 다섯 자 가까이 밀려났다.
“우웩!”
허리를 구부린 선우궁현의 입에서 한 움큼의 핏물이 쏟아졌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천천히 고개를 쳐든 그의 얼굴에선 잔잔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크크크, 성공했군. 내 손으로 괴물 하나를 만들어냈어.’
저만치, 좌소천이 일 장 허공에서 깃털처럼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아직 정신은 돌아오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모습이었다.
선우궁현은 좌소천이 바닥에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는 좌소천에게 별다른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눈을 감고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끄응, 일 년은 꼼짝없이 내상을 다스려야 할 것 같군.’
좌소천이 눈을 뜬 것은 만 하루가 지나서였다.
온몸이 가벼웠다. 운기를 해보니 공력도 전보다 두 배는 늘어난 것 같았다.
마의 벽이라는 임독양맥이 뚫렸기 때문이다.
임독양맥을 뚫는 것은 무공에 평생을 바친 고수들조차 인연이 닿아야만 가능하다 했다. 하거늘 자신은 스물이 되기 전에 해냈다. 죽음과 싸우면서.
밀려드는 희열에 박동 치는 심장이 귀청을 울린다.
전율감에 온몸이 떨린다.
이 모든 것이 선우궁현 덕분이다.
좌소천은 선우궁현이 떠오르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을 친조카처럼 생각해주시는 분이다. 게다가 벌써 두 번이나 목숨을 구해주지 않았는가 말이다.
‘백부님……!’
그때, 뒤로 고개를 돌린 좌소천의 눈에 굳어 있는 핏물이 보였다. 선우궁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고인 피가 제법 많은데도 반쯤 굳었다는 것은 시간이 상당히 흘렀다는 뜻.
“이, 이런!”
좌소천은 급히 참연동을 나와 선우궁현을 찾아갔다.
“뭐 하러 나왔느냐?”
선우궁현의 얼굴은 하루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창백한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백부님. 저의 실수로 인해 내상을 입으시다니, 얼굴이 열 개라도 차마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 소리 말고 가서 전력으로 내력을 다스려라.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라. 너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네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평생이 결정될 것이야.”
“하오나…….”
“앞으로 일 년간 네가 얼마나 노력하고 깊이 깨닫느냐에 따라서 세맥까지 뚫을 수 있느냐, 마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초식을 깊이 있게 완성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충분하니까, 일단은 심법을 연마하는 데 중점을 두어라. 네가 많은 것을 얻을수록 나에게 보답하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예, 백부님.”
“일 년간은 비무를 하지 않을 것이니 참연동에서 나오지 마라. 식사도 영령이를 통해서 보내주마.”
깊숙이 숙여진 좌소천의 몸이 잘게 떨렸다.
부모님이 없는 지금 선우궁현은 부모와도 같았다.
선우궁현의 은혜가 하늘같아서 항시 곁에서 모시고 싶지만, 우선은 선우궁현의 말을 따르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백부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우궁현은 그런 좌소천의 등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부상이 깊긴 하지만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흐음, 소천이 덕에 자식을 키우는 친구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겠군.’
좌소천이 방에서 나오자 소영령이 쪼르르 달려왔다.
“오빠, 괜찮아?”
“응. 백부님 덕분에 지금은 전보다 더 좋아졌어.”
“스승님도 많이 안 좋으신 것 같던데, 금방 괜찮아지시겠지, 오빠?”
“그럼! 백부님이 누구시냐? 중원칠기 중 한 분이신 만패철검, 철검판관이 아니시냐?!”
“헤헤. 맞아, 오빠.”
“그런데 백부님께 듣자니까 요즘 무공이 부쩍 늘었다며?”
소영령이 눈을 가늘게 뜨고 손을 검처럼 하고 휘둘렀다.
“검법과 신법을 무려 네 가지나 완벽히 익힌 몸이야, 조금만 있어봐. 강호에 엄청난 여고수가 등장할 테니까.”
그 모습에 좌소천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정말 그럴 것 같은데?”
쓱 고개를 돌린 소영령이 환하게 웃었다.
“그렇지, 오빠?”
“물론이지. 그런데 말이다, 천하의 여고수가 되기 전에 먼저 밥에 돌 섞이지 않게 쌀 좀 잘 씻어라. 응? 부탁하마.”
“오빠!! 오빠 밥에만 확! 자갈을 넣어버린다?”
4
좌소천이 참연동에 틀어박힌 지 보름째 되던 날.
목옥을 나선 선우궁현은 동정호 저편을 바라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응? 저건 또 뭐야?’
안개를 향해 배 두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연히 오는 것은 아닌 듯했다.
두 척의 배가 우연히 무은도를 향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무사들이 탄 배는 더더욱 이곳까지 올 일이 없었다.
그때 선두에 선 배의 선수로 백의를 입은 청년과 통통한 얼굴의 중년인이 올라서는 게 보였다.
그중 얼굴이 통통한 자는 풍림에서 봤던 자였다.
그를 본 선우궁현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천외천가가 아닌가? 놈들이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대체 자신이 여기에 사는 줄 어떻게 알았을까?
물론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은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강호에서 사귄 친구들이야 수백 명에 달하지만, 그들 중 이곳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혁련무천과 세 명의 생사지기뿐이었다.
심지어 포봉에게조차 알려주면 찾아와서 귀찮게 할까 봐 안개 속에 무은도가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입이 열렸다는 말이다.
선우궁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원을 그리며 뱅뱅 돌고 있는 두 척의 배를 바라보았다.
십여 바퀴를 돌다 보면 안개를 벗어나게 되어 있었다. 돌고 있는 배들도 곧 안개를 벗어나게 될 것이고, 온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묘한 불안감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천승운무진을 파훼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두어 사람뿐이라 했다. 늘었다 해도 하나둘에 불과할 터.
천하를 생각하면 둘이나 넷은 극히 미미해서 없는 거나 다름없는 숫자다.
그 생각을 하면 안심해야 마땅했는데, 불안감을 가라앉히려 해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미리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
봉우리를 내려간 선우궁현은 소영령을 보내서 좌소천을 데려오게 했다.
혼자서 조용히 수련을 할 만한 곳이 무은도에 참연동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선사께서 천연적인 동굴을 개조한 곳이 하나 있는데, 우측에서 세 번째 봉우리 중간에 나 있는 입구를 통하면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