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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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2화
22화
7장 기다려라, 비상(飛上)할 그 날을!
1
“후우우우욱!”
깊게 들이쉰 숨을 오랫동안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좌소천의 손짓은 누가 보면 답답해서 직접 움직여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당사자인 좌소천은 그 손짓도 빠르다 생각하는지 더욱더 천천히 움직였다.
동굴 안으로 스며들던 황금빛 햇살이 그의 손을 따라 움직이는 듯했다.
석양이 붉게 타오르며 동정호 속으로 떨어져 빠져들 때까지 그의 동작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석양이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며 사라지자, 좌소천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눈을 감았다.
‘이제 그럭저럭 몸이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군.’
자신이 계획했던 것보다 빠른 성취였다.
오 년을 계획했던 목표를 이 년 만에 이루었다.
두어 달 전부터 몸속에서 잠자고 있던 단약의 기운이 조금씩 녹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한 달 전, 갑자기 늘어나는 좌소천의 내력에 선우궁현이 놀라 물었다.
“어찌 된 것이냐?”
좌소천은 자신이 복용한 약이 설마 이 정도의 효과를 발휘할 줄은 몰랐는지라 선우궁현의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선우궁현이 눈을 크게 떴다.
“어머니가 궁주에게서 받은 단약이란 말이냐?”
“예, 소질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제야 선우궁현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내 생각이 옳다면, 네가 복용한 단약은 제천신궁의 영단인 제왕신단일 것이다.”
좌소천은 제왕신단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전설 같은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가슴이 울컥해서 눈물이 맺혔다.
‘어머니!’
어머니는 행여나 자신이 고집을 부리고 복용하지 않을까 봐 말씀을 안 하셨을 것이다.
아무리 어머니 몸에 맞지 않는 약이라 해도 그것이 전설의 제왕신단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분명 자신이 그러했을 테니까.
“안 되겠다. 이제부터 비무가 끝나면 내가 너의 운공을 도와주마. 뭉친 기운이 녹기 시작한 이상 언제 폭주할지 모른다. 자칫하면 큰일 날 수도 있음이니…….”
그렇게 선우궁현의 도움을 받은 지 한 달, 벌써 반은 녹은 듯했다.
내공이 높아진 덕에 금라천황공도 삼성의 성취를 이루었다.
금라천의 삼대절기인 금라구중검과 금라천수, 금환비영이 빠르게 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제학전의 스승들에게 배운 무공 또한 나름대로 깨달음이 있었는데, 그토록 다양한 무공을 익힐 수 있었던 데에는 무한한 포용력을 지닌 무연칠식의 무리(武理)가 커다란 작용을 했다.
모든 무공이 성취를 보이자 좌소천은 쉴 틈이 없었다. 아니, 쉬고 싶지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성취를 더욱 높이 끌어올리고 싶었다.
잠도 세 시진의 운기행공으로 때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초식을 펼치며 무아지경에 들었다.
그 덕인 듯했다.
의지가 움직이면 몸이 움직이고, 몸이 움직이면 의지가 몸을 이끌었다.
해가 뜰 때부터 움직이기 시작해서 석양이 질 때까지 수련을 했는데도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가 좀 더 길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좌소천은 동굴 끝에 서서 숯불처럼 검붉어진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두 팔을 벌렸다.
‘이 년 안에 모든 무공을 오성 이상으로 끌어올리겠어!’
이제 무리한 계획이 아니었다.
단약의 기운이 완전히 녹으면 시간이 앞당겨질지도 몰랐다.
그러면 꿈이, 바라던 날이 가까워질 것이다.
불구대천지수들의 선혈로 어머니의 한을 씻어줄 날이!
“우아아아아!!”
좌소천은 들끓어 오르는 마음을 동정호에 쏟아냈다.
푸드드득!
꽈악! 꽈꽈꽈악!
수백 마리의 청둥오리가 깜짝 놀랐는지 소리를 질러대며 비상했다.
‘기다려라, 천외천가여! 나 좌소천이 저 새들처럼 비상할 그 날을!’
2
국화향이 만발한 정원.
두 남녀는 향기에 취한 듯 묵묵히 걷기만 했다.
여인이 노란 국화 하나를 꺾더니 코에 가져다 대며 물었다.
“언제 가시나요?”
“내일 오후쯤.”
“다시 돌아오실 거죠?”
“려매가 있는데 내 어찌 오지 않겠소?”
순우무궁, 혁련미려가 무궁으로 알고 있는 그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돌아섰다.
살짝 고개를 쳐든 혁련미려의 두 눈이 아련히 물든다.
무궁은 혁련미려의 어깨를 붙잡고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정원에 핀 국화 때문인지 그녀의 몸에서 진한 국화향이 났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혁련미려의 얼굴을 덮었다.
“려매…….”
그때 당연히 응할 줄 알았던 혁련미려가 슬며시 자신을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이 빌어먹을 계집이!’
속에서 참고 참았던 분기가 울컥 치밀었다.
혁련미려를 취하는 데 사흘이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손을 잡는 것도 열흘이 지나서야 겨우 가능했다.
자존심이 상한 무궁은 은근히 오기가 솟았다.
그는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혁련미려를 완벽히 자신의 여인으로 만든 다음 처참하게 버릴 작정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강제로 범해 버리고 싶었지만, 이곳은 제천신궁. 그는 욕망을 누르며 이를 악물고 참았다.
계집 하나 때문에 자신의 꿈을 무너뜨릴 수는 없는 일이라 자위하며.
그렇게 한 달이 넘어서야 무궁은 혁련미려를 가슴에 안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입을 맞추려 하자 혁련미려가 고개를 돌렸다.
“내가 성급했나 보구려.”
그는 자책하는 표정으로 말하며 혁련미려를 놓아주었다. 가슴에 안긴 이상 혁련미려가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 장담하면서.
그런데 석 달, 넉 달이 지나고, 결국 해를 넘기더니 어느 덧 이 년이 되었다.
그는 최후의 방법으로 그녀의 곁을 떠나겠다는 말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마음을 둘러싼 두꺼운 벽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빌어먹을! 왜 자신의 입맞춤을 마다한단 말인가?
울화가 터진 무궁은 조용히 돌아섰다.
쳐다보고 있으면 손이 날아가서 따귀를 때릴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목을 움켜쥐고서 강제로 범한 후 정원에 묻어버리고도 싶었다. 헛되이 지나간 자신의 이 년 세월을 보장받고 싶어서라도.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어디서 누가 쳐다보고 있는지 몰랐다. 계집 하나 때문에 평생을 쫓기며 살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젠장! 나 순우무궁이 이게 무슨 꼴이야?’
바로 그때, 혁련미려가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미안해요. 공자를 보고 있으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돌아선 무궁의 손이 와락 움켜쥐어졌다.
‘대체 어떤 놈이기에!’
“이 년 전에 떠난 소천이가 숙부와 함께 지낸다는 말을 어제야 들었어요. 아버지도 그 소식을 듣고 화가 났나 봐요. 사람을 보내서 확인하라는 명이 떨어졌어요. 그 아이도 지금쯤 공자만큼이나 컸을 텐데…….”
혁련미려의 말이 이어지자 무궁의 눈이 번뜩였다.
‘소천이라면… 그놈?’
무궁은 천천히 돌아서며 온화한 표정으로 혁련미려를 바라보았다.
“미안하오. 그것도 모르고 오해할 뻔했구려.”
“아니에요. 공자와 함께 있으면서 그 아이 생각을 한 제가 그렇죠.”
“그런데 그가 어디에 있기에 천하의 제천신궁이 이 년간이나 찾지 못한 것이오?”
“숙부께선 동정호의 섬에 살고 계시대요.”
순간 무궁의 눈에서 서늘한 살광이 쏟아졌다.
기이한 느낌에 혁련미려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무궁의 눈에서 살광이 사라진 뒤였다.
혁련미려가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사시사철 안개가 끼어 있다고 하는데…….”
그 시각, 제천전의 깊숙한 곳.
“어찌 생각하나?”
“나쁠 것은 없다고 보옵니다.”
“놈의 목적이 수상한데도?”
“주군께선 미려 아가씨가 평범한 사람을 사랑해서 그에게 시집가겠다면 그냥 보내시겠습니까?”
혁련무천이 찻잔을 잡아갔다.
“글쎄…….”
“잘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도 있사옵니다. 물론 결정은 주군께서 하실 일이지요.”
“단, 한 가지만 명심하게. 내 딸의 눈에서 눈물이 나면 놈이 누구든, 어느 집의 자식이든, 나의 분노를 각오를 해야 할 거라는 걸 말이야.”
사공은환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속하가 어찌 그걸 모르겠사옵니까.”
3
몸도 마음도 허공에 붕 뜬 듯했다.
벌써 며칠째다.
쉬지 않고 수련을 하는데도 무공이 정체된 것만 같다.
좌소천은 곤혹한 표정으로 저 멀리 동정호를 바라보았다.
‘후우, 도대체 왜 이러지?’
원인이라도 알면 시원할 텐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는 자신의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자조의 마음조차 든다.
시간이 갈수록 답답함에 가슴이 한없이 무거워질 뿐.
‘백부께 물어볼까?’
그런 생각도 해봤지만, 어차피 자신이 헤치고 나아가야 할 길이다.
‘조금만 더 견뎌보자.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해결이 되겠지.’
그렇게 보름째.
좌소천은 여전히 진전이 없자, 하루 이틀만 더 버텨보고 백부께 상의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날 밤, 갑자기 단전이 들끓기 시작했다.
시작은 미미했다. 그저 작은 구멍에서 떨어진 가느다란 물줄기가 새로운 길을 만들며 흐르는 정도에 불과했다.
‘흠, 이제야 뭔가 변화가 있나 보군.’
좌소천은 내심 기뻐하며 평소와 다름없이 운기에만 몰두했다.
그렇게 일각. 기운이 독맥을 타고 흐르자 격류로 변하기 시작했다. 느닷없는 변화에 좌소천의 이가 절로 악다물어졌다.
‘흐읍! 이익!’
좌소천은 억지로 기운을 눌러보았다.
하지만 격류로 변한 기운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더욱 기세를 올렸다.
혈맥이 부풀어 오르더니 독맥을 치고 올라간 기운이 순식간에 풍부혈까지 치달았다.
‘헉!’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충격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갔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후려쳤다.
‘설마 주화입마?!’
그럴지도 몰랐다. 심마에 빠지면 기운이 스스로 움직이고, 결국 마의 기운이 커져 모든 것을 파괴한다 하지 않던가.
좌소천은 아득해지는 정신 한 가닥을 붙잡고 전력을 다해 운기했다.
정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
운기를 멈춰서도 안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포기하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끝장이다.
어느 순간, 풍부혈을 벗어난 기운이 백회혈까지 올라갔다.
쾅!
머릿속에서 벽력이 쳤다.
그 충격에 좌소천의 몸이 허공으로 세 치가량 떠올랐다.
바로 그때였다.
한 가닥 기운이 임맥을 따라 솟구쳤다.
금라천황공의 기운이 위기를 느끼고 저절로 반응한 것이다.
좌소천은 비몽사몽간에 금라천황공의 기운을 승장혈까지 이끌었다.
그와 동시, 백회혈에서 내려온 기운이 입천장의 은교혈에 이르렀다.
찰나!
콰앙!
온몸이 터져 나가는 충격에 좌소천의 몸이 허공으로 석 자가량 떠오르고, 살짝 벌어진 그의 입에서 피 화살이 뿜어졌다.
“크흑!”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우르르릉!
천둥이 그의 몸을 떨어 울렸다.
또다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듯했다.
그 시각.
선우궁현은 소영령의 연무를 봐준 후 낙조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참연동에서 강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걸 느끼고도 별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좌소천의 기운이 뻗치는가 보다, 그렇게 여겼을 뿐.
그 기운이 생각보다 강한 데도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허어, 그 녀석. 벌써 공력이 저렇게 높아졌나?’
그런데 그때, 갑자기 엄청난 기운이 폭발하듯 뻗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어? 뭐지?”
뒤늦게 이상을 느낀 선우궁현은 전력을 다해 참연동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