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59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59화
풍범의 풍채에서 느껴지는 도인의 느낌에 호현이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방헌현 방헌학관에서 죽대 선생에게 수학하고 있는 호현입니다.”
호현의 인사에 풍범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은 것보다 훨씬 총명해 보이는군. 스승이신 죽대 선생께서 자네를 잘 키우신 모양이야. 죽대 선생과 함께 화산에 한 번 찾아오시게. 화산이 자랑할 것은 그리 많지 않으나 매화와 수려한 산세는 중원에서도 일절로 통한다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호현을 보던 풍범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듣자하니 도경을 정리하는 일을 하기 위해 무당에 왔다고?”
“맞습니다.”
“그래, 도경 정리는 힘들지 않는가?”
“인간을 이롭게 하는 글을 볼 수 있는데 어찌 힘이 들겠습니까.”
“인간을 이롭게 하는 글? 그게 무슨 말인가?”
풍범의 물음에 호현이 미소를 지었다.
“도는 선입니다. 선이란 좋은 것입니다. 좋은 것은 인간을 이롭게 합니다. 그런 도를 적은 책이니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도를 아주 쉽게 인간에게 좋은 것이라 표현하는 호현을 풍범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란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
도가 계열의 문파인 화산의 제자인 풍범이기는 하지만 정작 도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 아는 것이 있기는 했다. 다만 그가 아는 도(道)는 무학의 이치를 따르는 도일뿐이었다.
‘좋은 것은 인간을 이롭게 한다라……. 그렇게 생각해 보지를 못했구나. 화산에 돌아가면 인간을 이롭게 하는 도가 무엇인지 나도 좀 봐야겠구나.’
도사가 학사에게 도에 대한 강연을 받았다는 생각에 조금은 기분이 씁쓸해진 풍범은 고개를 젓고는 호현을 바라보았다.
쉬운 말로 자신에게 도에 대한 생각을 심어 준 호현을 보고 있자니 그에 대한 욕심이 났다.
‘호현 학사가 화산에 온다면 본문에 큰 기연이 될 것이다.’
게다가 호현은 무당에 서고 정리를 하러 온 사람이었다. 그러니 호현을 데리고 화산에 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무당에서 호현을 내보내려 하지 않으려 할 때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호현 학사는 무당의 제자도 아니고 서고 정리를 위해 고용된 사람일 뿐이니 말이다. 서고 정리가 끝이 난 후 호현 학사가 화산에 가겠다고 결정을 한다면 무당도 어쩔 수 없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풍범은 천막 밖으로 보이는 선학전을 바라보았다.
“서고 정리는 언제쯤 끝이 날 듯한가?”
“거의 끝이 났습니다. 오늘이나 내일 안에는 도경 분류가 끝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시군. 그럼 일이 끝나면 다시 방헌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무당에 제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 얼마간은 더 머무를 생각입니다.”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에 풍범의 눈빛이 살짝 굳어졌다.
‘설마 무당에서 이미 다른 일을 시킨 것인가?’
자신이 한 발 늦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뒤에 서 있던 종경이 웃으며 말했다.
“무당에서 호현 학사를 너무 부리는군요. 서고 일이 끝나가는데 다시 다른 일을 맡기다니 말입니다.”
종경의 말에 호현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호현의 답에 종경의 눈빛이 반짝였다.
“개인적인 일이라 하시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 말씀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저희 화산이 호현 학사의 일을 도울 수 있습니다. 화산이 나서서 해결하지 못할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화산의 도움을 거절하는 호현을 종경이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천하십대고수 중 일인이 포함되어 있는 화산이라면 일개 학사의 개인적인 일 정도는 그게 무엇이든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거절하다니?
‘혹시 무당에서 먼저 도움을 주겠다고 한 것인가? 하긴, 호현 학사 덕에 무당이 얻은 것을 생각한다면 일이 무엇이든 도움을 주려 하겠지.’
엉뚱한 오해를 한 종경은 아쉽다는 듯 호현을 바라보았다. 호현의 일을 도와주고 그에게 빚을 지우려는 생각이 틀어졌으니 말이다.
“무당에서 이미 도와주기로 했나 보군요.”
“아닙니다. 무당의 어르신들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호현의 말에 종경과 풍범 등의 화산파 인물들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천하의 무당이 나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잠시 호현을 보던 종경이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급히 현오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의 행동에 현오가 정중하게 호현을 향해 포권을 올리며 예를 취했다.
“화산파 이대 제자 현오가 은인에게 예를 올립니다.”
현오의 정중한 예에 호현이 당황한 얼굴로 급히 마주 예를 올렸다.
“은인이라니요. 제가 현오 도사에게 무슨 은혜를 주었다고…….”
“무인에게 있어 깨달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이 현오, 막힌 머리를 호현 학사께서 일깨워 주셨으니 그것이 은혜가 아니라면 무엇이 은혜겠습니까.”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예를 올린 현오가 고개를 들었다.
“훗날 호현 학사께서 미력한 저의 힘이라도 필요로 하신다면 언제 어느 때라도 화산에 편지 한 장을 보내십시오. 호현 학사의 부름이라면 이 현오, 만리 길과 끓는 기름 속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가겠습니다.”
현오의 말에 풍범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대장부라면 은혜는 열배로 갚고 원한은 백배로 갚는 법이지. 호현 학사, 훗날 어려운 일이 있다면 화산의 이름을 사용하시게. 이것은 내가 죽는 날까지 유효한 약속일 것이네.”
제갈정인은 한쪽에서 호현과 화산파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현을 화산파로 데리고 가려는 모양이군.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호현은 제갈세가 사람이 되기로 결정이 난 것이니.’
호현이 들으면 ‘제가 언제?’ 라는 말을 할 생각을 하던 제갈정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화산의 이름을 사용하라는 풍범의 말을 들은 것이다.
‘풍범 저자가 호현 학사와 화산지약을?’
화산지약이란 화산의 이름을 사용해도 된다는 화산파의 약속을 의미했다.
이름 하나 사용하는 것이 뭐가 그리 큰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화산지약은 큰 의미가 있었다.
화산지약을 통해 화산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화산파가 전적으로 그 약속을 한 사람의 편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화산에서 호현 학사를 이렇게 높이 여기고 있다니……. 잘못하면 호현 학사를 놓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 제갈정인은 제갈연 쪽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음식들이 다 되었는지 제갈현과 제갈인 등이 음식들을 그릇에 담아 천막 안 탁자에 하나둘씩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제갈연이 힐끗 거리며 호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갈경천과 제갈정인 등이 호현을 자신의 남편감으로 정했다는 이야기를 그녀도 알고 있으니, 그가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할아버님들은 뭘 보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는 거지? 저 나이에 거인이 된 것은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다른 건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데.’
그리 특출한 외모를 가지지도 않은 호현의 모습에 제갈연은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다.
무림세가에서 자라난 그녀로서는 무림의 뛰어난 호협이 자신의 낭군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백면서생이라니.
제갈연이 호현을 살피고 있을 때 그 옆에 제갈현이 다가왔다.
“호현 학사를 보고 있는 것이냐?”
“네. 그런데 오라버니, 정말 호현 학사와 혼례를 올려야 하는 건가요?”
“싫으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제갈연의 모습에 제갈현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싫다고 해도 이것은 본가를 위한 일이다. 그러니 마음을 잡고 호현 학사를 좋아하도록 노력해 보거라.”
단호한 제갈현의 말에 제갈연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세가에서 태어난 여식들 중 연애를 통해 결혼을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대부분 가문의 이익을 위한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현 무림세가 여아들의 운명인 것이다.
호현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가문에서 결정을 했다면 제갈연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아.’
속으로 한숨을 쉬는 제갈연을 보는 제갈현의 속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아무리 가문을 위하고 자신을 위해서 호현이 필요하다고 해도 친동생이 싫어하는 일을 시키려니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다.
제갈연을 보던 제갈현이 힐끗 제갈정인을 한 번 보고는 호현에게 다가갔다.
“호현 학사, 식사 준비가 모두 되었으니 이리 오시지요.”
이야기를 하고 있던 호현은 자신을 청하는 제갈현의 말에 화산파 사람들에게 말했다.
“식사들은…….”
“우리는 신경 쓰지 마시고 가서 식사 하시게.”
“그래도 어떻게 저희만…….”
“괜찮네. 우리가 이곳에 있으면 식사하는 사람들이 불편하겠군. 오늘은 호현 학사에게 인사를 한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지. 다음에는 우리와 함께 식사나 한 번 하도록 하세.”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 밖으로 나가려던 풍범이 막 생각이 났다는 듯 호현을 향해 말했다.
“호현 학사.”
“말씀하십시오.”
“생각을 해보니 우리 화산도 도경 정리를 해야 할 서고가 하나 있는데, 무당의 일이 끝이 나면 화산에 와줄 수 있겠는가?”
풍범의 말에 호현이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지금은 말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호현의 말에 풍범이 실망을 할 때 그가 말을 이었다.
“방헌에 돌아가 스승님에게 말씀을 드려 허락을 하신다면 화산에 가겠습니다.”
“아! 그럼 싫다는 말이 아니군.”
“인간을 이롭게 하는 도가 적힌 서적들을 볼 수 있는데 제가 어찌 싫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제 스승이신 죽대 선생께서는 제가 도경을 가까이 하시는 것을 싫어하시는지라 그 분의 허락이 있어야 화산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승의 명을 거역해서는 아니 되지. 알겠네. 그럼 수고하시게.”
풍범이 밖으로 나가자 호현이 자신을 기다리는 제갈현과 함께 식탁으로 향했다.
천막 밖으로 나온 풍범과 화산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숙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잠시 생각을 하던 풍범이 종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는…….”
풍범의 말이 다 이어지기도 전에 종경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지시하겠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그러는 것이냐?”
풍범의 물음에 종경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장수를 잡으려면 먼저 말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것은 병법의 기초입니다. 장수는 호현 학사이고 말은 죽대 선생이니, 호현 학사를 얻기 위해서는 죽대 선생의 마음을 먼저 얻어야 할 것입니다. 방헌에 있는 죽대 선생의 환심을 살 수 있도록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종경의 말에 풍범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장문 사형께서 일찍이 다음 대 장문인으로 내정할 만한 아이로구나.’
종경을 흐뭇한 눈으로 보던 풍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종경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방헌으로 가려 합니다.”
“종경 네가?”
“무당에 퍼진 호현 학사에 대한 소문을 들으니, 스승인 죽대 선생에 대한 그의 정과 존경심이 무척 높아 보였습니다. 혹여 죽대 선생에게 잘못 보인다면 호현 학사를 본문에 보내주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직접 가야 안심이 될 듯합니다.”
‘하긴 종경이라면 틀림없이 죽대 선생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풍범을 보던 종경이 말했다.
“사숙에게 한 가지 얻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에게? 그것이 무엇이냐?”
“백매환입니다.”
종경의 말에 풍범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백매환은 겨울이 지나 봄이 될 때 매화나무와 잎들에 맺히는 이슬들을 모아 백가지 약초들을 섞어서 만드는 진귀한 영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