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58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58화
‘무당에서 화산이 기연을 얻었으니…… 무당에서 배가 좀 아프겠군.’
재밌다는 듯 속으로 웃은 제갈경천이 풍범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어디를 가시는 길이신가?”
“선학전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선학전이라……. 호현 학사를 보러 가는 길인가보군.”
“현오의 일이 있으니 그에게 화산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려합니다.”
풍범의 말에 제갈경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가세나. 나와 아이들도 선학전으로 가는 길이니.”
“제갈 선배께서 선학전에는 왜……?”
“그곳에서 우리 아이 중 한 명이 일을 하고 있다네.”
말을 한 제갈경천이 힐끗 허학진인이 사라진 곳을 보고는 말을 이었다.
“나는 허학의 마음이나 풀어주러 가야겠네. 정인이 네가 아이들을 이끌고 선학전으로 가거라.”
“알겠습니다.”
제갈정인이 앞으로 나오며 답하자 제갈경천은 허학진인이 사라진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제갈경천이 사라지고 제갈정인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자 그 뒤를 제갈세가와 화산파 사람들이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한 무리로 섞인 제갈세가와 화산파 속에서 제갈현은 현오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제갈현의 얼굴은 잔뜩 굳어졌다.
제갈현의 눈으로는 현오가 강한지 약한지 그 수준을 가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치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화산의 후기지수이자 매화검룡이라 불리는 현오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즉, 현오의 무위가 제갈현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깊다는 것을 의미했다.
‘제길! 아무리 십룡이라 해도 제갈세가의 제일 후기지수인 나라면 한 번 해볼 만할 것이라 여겼는데…….’
후기지수 중 가장 뛰어난 자를 십룡이라 칭한다. 비록 십룡에 속하지는 않지만 제갈현은 그들에 비해 자신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제갈세가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세가 제일의 후기지수이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현오를 보니 그런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이다.
- 실망하지 말거라. 매화검룡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나 너 또한 그에 못지않다.
현오를 보며 의기소침해 있던 제갈현은 귀에 들려오는 전음에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보고 있는 제갈정인의 얼굴이 보였다.
‘할아버님.’
- 현오라는 아이가 호현과 하루를 보내고 무아에 들었다. 하루의 연으로 말이다. 하지만 호현이 연이와 혼인을 하고 본가에 들어온다면…….
잠시 말을 멈춘 제갈정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 호현은 너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제갈정인의 전음에 제갈현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그의 말대로 호현이 제갈세가에 들어온다면…….
‘현오가 얻은 기연, 나에게도 기회는 있다.’
그 생각에 현오를 한 번 쳐다 본 제갈현은 고개를 돌려 뒤에서 오는 제갈인과 제갈연을 바라보았다.
제갈인은 등에 무언가 잔뜩 든 보자기를 메고 양손에는 솥과 여러 식기들을 들고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오늘 따라 한껏 화장을 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제갈연이 하늘거리는 옷자락을 정리하며 걷고 있었다.
‘백면서생에게 우리 연이 정도라면 과분하지.’
제3-6장 화산, 호현을 품을 생각을 하다
호현과 제갈현진은 서고를 정리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서가에 채워져 있는 고서적들이 하나둘씩 바구니에 담기고 나가기를 얼마나 했을까, 서가가 대부분 비워지고 단 두 개의 서가만이 남게 되었다.
“이제 거의 끝이 나가는군.”
제갈현진의 중얼거림에 호현이 아쉬운 눈으로 바닥에 있는 바구니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호현이 대충 훑어 본 도경들이 쌓여 있었다.
‘책을 이리 대충 보다니……. 휴우, 그래도 태극음양경을 찾는 것이 급하니 어쩔 수가 없구나.’
원래 호현의 성격대로 서고를 정리했다면 지하 서고에는 아직도 많은 책이 쌓여 있을 것이다.
이곳에 있는 도경들은 무당파에서 귀하다고 판단하고 보관을 하는 것들이라 호현이 보지 못했던 도경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도경들을 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랜 호현은 서가에 다가가 책을 뽑아들었다.
그렇게 얼마를 더 책을 정리 했을까? 제갈현진이 명효 도장을 바라보았다.
“지금 점심시간이 되지 않았습니까?”
제갈현진의 말에 명효 도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 각 정도 있으면 점심을 드실 시간입니다.”
명효 도장의 말에 제갈현진이 보던 도경을 서가에 다시 올리고는 호현에게 말했다.
“호현 학사, 점심시간도 가까운 모양이니 이제 좀 쉬도록 하세.”
오랜 시간 서적을, 그것도 곰팡이 냄새가 나는 고서적을 보다보니 제갈현진이 답답해하나 보다 여긴 호현이 말했다.
“저는 책을 좀 더 보다 나가겠습니다. 먼저 나가서 쉬시지요.”
“자네 혼자 남겨두고 내가 어찌 나가겠는가? 그러지 말고 같이 나가시게.”
다시 권하는 제갈현진의 청을 거절하는 것도 예가 아니라 생각한 호현은 보던 서책을 내려놓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시지요.”
제갈현진이 앞장서서 밖으로 나가자 호현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명효 도장이 바구니를 들고는 지하 서고를 빠져나왔다.
선학전 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산바람과 청아한 공기가 호현을 반겼다.
천생 학사라 책 냄새를 그 무엇보다 좋아하는 호현이었지만, 갑갑한 지하 서고에 있다가 나오니 시원한 공기에 가슴이 뚫리는 느낌이었다.
‘하아! 좋구나.’
시원한 공기를 마시니 호현은 태극호신공을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기분 좋은 공기가 있는 곳에서 태극호신공을 펼친다면 온몸이 깨끗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태극호신공을 시전 했다가 어제 장생각에서 벌어졌던 일이 또 생긴다면…… 이번에는 선학전에 구멍이 생길 것이다. 아니면 사람이 다치거나 말이다.
호현은 힐끗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누구 한 번 때려 본 적 없는 말랑말랑한 손바닥을 보던 호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손에서 뿜어진 힘이 돌과 나무를 박살냈다고 이야기 하면 누가 믿을까? 스승님은 믿을까?’
스승님에게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 해주면 죽대 선생은 웃으며 죽대를 꺼내 들 것이다.
“엎드리거라. 미친놈에게는 매가 약이니라.”
죽대 선생이 보일 반응을 떠올리던 호현의 머리에 스승에 대한 걱정이 떠올랐다.
“스승님께서는 잘 지내시는지 걱정이구나.”
방헌을 떠나 무당에 온 지도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호현은 죽대 선생이 걱정 되었다.
“식후에 차는 잘 드시고 계실까? 오씨 아주머니가 차는 잘 못 끊이시는데…….”
자신이 끊인 차가 아니면 좋아하지 않는 죽대 선생의 까다로운 입맛을 떠올리던 호현의 귀에 제갈현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시는가?”
“방헌에 계신 스승님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스승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는 호현의 목소리에 제갈현진이 그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오시게.”
“어디를……?”
“오늘은 산중 도관 음식이 아닌 제갈세가의 음식을 먹여주겠네.”
“제갈세가의 음식요?”
“후후후, 내 입으로 본가의 음식 솜씨를 말하기는 뭐하지만, 본가의 여식들은 모두 음식 솜씨가 뛰어나지.”
“그럼 음식은 누가…….”
“우리 가문에서 이곳에 온 여식이 내 질녀인 제갈연밖에 더 있던가.”
“제갈연 아가씨가 음식을요?”
무당산에 오를 때 본 제갈연을 떠올린 호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방헌현에도 미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갈연만큼 아름다운 아가씨는 지금까지 본 일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호현은 남자다. 미인을 싫어하는 남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미모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음식 솜씨도 좋은가 보구나.’
“자네도 같이 가서 우리 질녀의 음식 솜씨 좀 보시게.”
제갈연이 만든 음식을 자신에게도 먹으라고 할 줄은 몰랐던 호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도 말입니까?”
“그렇다네. 설마하니 질녀가 나만 먹으라고 음식을 했겠는가? 그래도 명색이 유림에서는 명성이 있는 나인데 동료 학사들에게 식사 한 끼 대접하는 것이 예가 아니겠는가? 선학전 일도 거의 끝나가고 해서 내가 준비하라 한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어서 오시게.”
웃으며 말을 한 제갈현진은 선학전 안에 있는 학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네들도 이리들 나오시게. 오늘은 내가 본가의 음식을 대접하겠네.”
제갈현진의 말에 안에서 일을 하던 학사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왔다.
“제갈 노사께서 음식을 대접하신다는 말씀입니까?”
한 학사의 물음에 제갈현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네. 사양들 하지 말고 천막이 있는 곳으로 가시게. 음식이 준비되고 있을 것이니.”
제갈현진이 식당으로 사용하는 천막 쪽을 가리키자 학사들이 그에게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갈 노사 덕에 호북에서 명성이 자자한 제갈세가의 음식을 맛볼 수 있겠습니다.”
“하하하! 맛있게들 드시게. 넉넉히 만들라 하였으니 먹고 모자라면 더욱 드시고.”
“감사합니다. 어서들 가세나.”
학사들이 천막이 있는 곳으로 향하자 제갈현진이 호현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걸어갔다.
천막 쪽으로 다가가자 호현의 코에 맛있는 음식 냄새가 맡아졌다.
“킁킁! 냄새 좋군요.”
“냄새만 좋은 것이 아니라 맛도 좋을 것이네. 누가 데리고 갈지는 모르지만 우리 연이를 데려가는 남자는 살찔 각오를 해야 할 것이야.”
제갈현진이 은근한 어조로 하는 말에 호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미소를 지으며 보던 제갈현진이 문득 한숨을 쉬었다.
‘휴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마치 중매쟁이가 된 것 같지 않은가?’
사실 제갈연이 이곳에서 음식을 만들게 된 것은 제갈현진의 생각이었다.
남자라면 아름다운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거기에 요리까지 잘한다면 더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제갈연에게 선학전에서 요리를 만들라는 말을 한 것이었다. 물론 제갈연이 음식을 잘한다는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제갈세가의 여식들은 모두 가내교육으로 요리하는 법을 배웠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무당파 경내에서 따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 무례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간혹 선학전 앞에서 학사들이 간식으로 먹을 간단한 국수류의 음식을 만드는 것을 보았기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침에 명효 도장에게 그에 대한 승낙도 받았고 말이다.
‘잘 되었으면 좋겠구나.’
천막 안으로 들어간 호현은 제갈세가 사람들이 한쪽에서 분주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제갈연이었고, 제갈현과 제갈인은 그것을 돕고 있었다.
제갈현과 제갈인이 각각 한 손으로는 솥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솥의 바닥을 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 닿아 있는 솥의 바닥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공으로 솥을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글지글! 부글부글!
기름 끓는 소리와 물 끓는 소리가 요란한 솥 앞에서 아름다운 제갈연이 양손으로 국자를 들고 요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호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천막 한쪽에 도사들이 서서 그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들은 바로 풍범과 화산파 사람들이었다.
‘화산에서 오신 도사님들이 아니신가.’
화산파 도사들을 본 호현의 얼굴에 반가움이 어렸다.
“이렇게 다시 뵈니 반갑습니다.”
호현의 인사에 종경이 웃으며 마주 인사를 했다.
“나도 호현 도우를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습니다.”
호현과 인사를 한 종경이 풍범을 가리켰다.
“인사하십시오. 본문의 풍범 사숙입니다.”
종경의 소개에 호현이 풍범을 바라보았다.
‘눈에서 흐르는 정기를 보니 화산의 높은 도인이신 모양이구나.’‘무당에서 화산이 기연을 얻었으니…… 무당에서 배가 좀 아프겠군.’
재밌다는 듯 속으로 웃은 제갈경천이 풍범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어디를 가시는 길이신가?”
“선학전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선학전이라……. 호현 학사를 보러 가는 길인가보군.”
“현오의 일이 있으니 그에게 화산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려합니다.”
풍범의 말에 제갈경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가세나. 나와 아이들도 선학전으로 가는 길이니.”
“제갈 선배께서 선학전에는 왜……?”
“그곳에서 우리 아이 중 한 명이 일을 하고 있다네.”
말을 한 제갈경천이 힐끗 허학진인이 사라진 곳을 보고는 말을 이었다.
“나는 허학의 마음이나 풀어주러 가야겠네. 정인이 네가 아이들을 이끌고 선학전으로 가거라.”
“알겠습니다.”
제갈정인이 앞으로 나오며 답하자 제갈경천은 허학진인이 사라진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제갈경천이 사라지고 제갈정인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자 그 뒤를 제갈세가와 화산파 사람들이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한 무리로 섞인 제갈세가와 화산파 속에서 제갈현은 현오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제갈현의 얼굴은 잔뜩 굳어졌다.
제갈현의 눈으로는 현오가 강한지 약한지 그 수준을 가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치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화산의 후기지수이자 매화검룡이라 불리는 현오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즉, 현오의 무위가 제갈현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깊다는 것을 의미했다.
‘제길! 아무리 십룡이라 해도 제갈세가의 제일 후기지수인 나라면 한 번 해볼 만할 것이라 여겼는데…….’
후기지수 중 가장 뛰어난 자를 십룡이라 칭한다. 비록 십룡에 속하지는 않지만 제갈현은 그들에 비해 자신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제갈세가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세가 제일의 후기지수이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현오를 보니 그런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이다.
- 실망하지 말거라. 매화검룡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나 너 또한 그에 못지않다.
현오를 보며 의기소침해 있던 제갈현은 귀에 들려오는 전음에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보고 있는 제갈정인의 얼굴이 보였다.
‘할아버님.’
- 현오라는 아이가 호현과 하루를 보내고 무아에 들었다. 하루의 연으로 말이다. 하지만 호현이 연이와 혼인을 하고 본가에 들어온다면…….
잠시 말을 멈춘 제갈정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 호현은 너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제갈정인의 전음에 제갈현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그의 말대로 호현이 제갈세가에 들어온다면…….
‘현오가 얻은 기연, 나에게도 기회는 있다.’
그 생각에 현오를 한 번 쳐다 본 제갈현은 고개를 돌려 뒤에서 오는 제갈인과 제갈연을 바라보았다.
제갈인은 등에 무언가 잔뜩 든 보자기를 메고 양손에는 솥과 여러 식기들을 들고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오늘 따라 한껏 화장을 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제갈연이 하늘거리는 옷자락을 정리하며 걷고 있었다.
‘백면서생에게 우리 연이 정도라면 과분하지.’
제3-6장 화산, 호현을 품을 생각을 하다
호현과 제갈현진은 서고를 정리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서가에 채워져 있는 고서적들이 하나둘씩 바구니에 담기고 나가기를 얼마나 했을까, 서가가 대부분 비워지고 단 두 개의 서가만이 남게 되었다.
“이제 거의 끝이 나가는군.”
제갈현진의 중얼거림에 호현이 아쉬운 눈으로 바닥에 있는 바구니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호현이 대충 훑어 본 도경들이 쌓여 있었다.
‘책을 이리 대충 보다니……. 휴우, 그래도 태극음양경을 찾는 것이 급하니 어쩔 수가 없구나.’
원래 호현의 성격대로 서고를 정리했다면 지하 서고에는 아직도 많은 책이 쌓여 있을 것이다.
이곳에 있는 도경들은 무당파에서 귀하다고 판단하고 보관을 하는 것들이라 호현이 보지 못했던 도경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도경들을 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랜 호현은 서가에 다가가 책을 뽑아들었다.
그렇게 얼마를 더 책을 정리 했을까? 제갈현진이 명효 도장을 바라보았다.
“지금 점심시간이 되지 않았습니까?”
제갈현진의 말에 명효 도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 각 정도 있으면 점심을 드실 시간입니다.”
명효 도장의 말에 제갈현진이 보던 도경을 서가에 다시 올리고는 호현에게 말했다.
“호현 학사, 점심시간도 가까운 모양이니 이제 좀 쉬도록 하세.”
오랜 시간 서적을, 그것도 곰팡이 냄새가 나는 고서적을 보다보니 제갈현진이 답답해하나 보다 여긴 호현이 말했다.
“저는 책을 좀 더 보다 나가겠습니다. 먼저 나가서 쉬시지요.”
“자네 혼자 남겨두고 내가 어찌 나가겠는가? 그러지 말고 같이 나가시게.”
다시 권하는 제갈현진의 청을 거절하는 것도 예가 아니라 생각한 호현은 보던 서책을 내려놓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시지요.”
제갈현진이 앞장서서 밖으로 나가자 호현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명효 도장이 바구니를 들고는 지하 서고를 빠져나왔다.
선학전 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산바람과 청아한 공기가 호현을 반겼다.
천생 학사라 책 냄새를 그 무엇보다 좋아하는 호현이었지만, 갑갑한 지하 서고에 있다가 나오니 시원한 공기에 가슴이 뚫리는 느낌이었다.
‘하아! 좋구나.’
시원한 공기를 마시니 호현은 태극호신공을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기분 좋은 공기가 있는 곳에서 태극호신공을 펼친다면 온몸이 깨끗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태극호신공을 시전 했다가 어제 장생각에서 벌어졌던 일이 또 생긴다면…… 이번에는 선학전에 구멍이 생길 것이다. 아니면 사람이 다치거나 말이다.
호현은 힐끗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누구 한 번 때려 본 적 없는 말랑말랑한 손바닥을 보던 호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손에서 뿜어진 힘이 돌과 나무를 박살냈다고 이야기 하면 누가 믿을까? 스승님은 믿을까?’
스승님에게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 해주면 죽대 선생은 웃으며 죽대를 꺼내 들 것이다.
“엎드리거라. 미친놈에게는 매가 약이니라.”
죽대 선생이 보일 반응을 떠올리던 호현의 머리에 스승에 대한 걱정이 떠올랐다.
“스승님께서는 잘 지내시는지 걱정이구나.”
방헌을 떠나 무당에 온 지도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호현은 죽대 선생이 걱정 되었다.
“식후에 차는 잘 드시고 계실까? 오씨 아주머니가 차는 잘 못 끊이시는데…….”
자신이 끊인 차가 아니면 좋아하지 않는 죽대 선생의 까다로운 입맛을 떠올리던 호현의 귀에 제갈현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시는가?”
“방헌에 계신 스승님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스승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는 호현의 목소리에 제갈현진이 그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오시게.”
“어디를……?”
“오늘은 산중 도관 음식이 아닌 제갈세가의 음식을 먹여주겠네.”
“제갈세가의 음식요?”
“후후후, 내 입으로 본가의 음식 솜씨를 말하기는 뭐하지만, 본가의 여식들은 모두 음식 솜씨가 뛰어나지.”
“그럼 음식은 누가…….”
“우리 가문에서 이곳에 온 여식이 내 질녀인 제갈연밖에 더 있던가.”
“제갈연 아가씨가 음식을요?”
무당산에 오를 때 본 제갈연을 떠올린 호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방헌현에도 미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갈연만큼 아름다운 아가씨는 지금까지 본 일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호현은 남자다. 미인을 싫어하는 남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미모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음식 솜씨도 좋은가 보구나.’
“자네도 같이 가서 우리 질녀의 음식 솜씨 좀 보시게.”
제갈연이 만든 음식을 자신에게도 먹으라고 할 줄은 몰랐던 호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도 말입니까?”
“그렇다네. 설마하니 질녀가 나만 먹으라고 음식을 했겠는가? 그래도 명색이 유림에서는 명성이 있는 나인데 동료 학사들에게 식사 한 끼 대접하는 것이 예가 아니겠는가? 선학전 일도 거의 끝나가고 해서 내가 준비하라 한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어서 오시게.”
웃으며 말을 한 제갈현진은 선학전 안에 있는 학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네들도 이리들 나오시게. 오늘은 내가 본가의 음식을 대접하겠네.”
제갈현진의 말에 안에서 일을 하던 학사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왔다.
“제갈 노사께서 음식을 대접하신다는 말씀입니까?”
한 학사의 물음에 제갈현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네. 사양들 하지 말고 천막이 있는 곳으로 가시게. 음식이 준비되고 있을 것이니.”
제갈현진이 식당으로 사용하는 천막 쪽을 가리키자 학사들이 그에게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갈 노사 덕에 호북에서 명성이 자자한 제갈세가의 음식을 맛볼 수 있겠습니다.”
“하하하! 맛있게들 드시게. 넉넉히 만들라 하였으니 먹고 모자라면 더욱 드시고.”
“감사합니다. 어서들 가세나.”
학사들이 천막이 있는 곳으로 향하자 제갈현진이 호현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걸어갔다.
천막 쪽으로 다가가자 호현의 코에 맛있는 음식 냄새가 맡아졌다.
“킁킁! 냄새 좋군요.”
“냄새만 좋은 것이 아니라 맛도 좋을 것이네. 누가 데리고 갈지는 모르지만 우리 연이를 데려가는 남자는 살찔 각오를 해야 할 것이야.”
제갈현진이 은근한 어조로 하는 말에 호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미소를 지으며 보던 제갈현진이 문득 한숨을 쉬었다.
‘휴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마치 중매쟁이가 된 것 같지 않은가?’
사실 제갈연이 이곳에서 음식을 만들게 된 것은 제갈현진의 생각이었다.
남자라면 아름다운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거기에 요리까지 잘한다면 더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제갈연에게 선학전에서 요리를 만들라는 말을 한 것이었다. 물론 제갈연이 음식을 잘한다는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제갈세가의 여식들은 모두 가내교육으로 요리하는 법을 배웠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무당파 경내에서 따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 무례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간혹 선학전 앞에서 학사들이 간식으로 먹을 간단한 국수류의 음식을 만드는 것을 보았기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침에 명효 도장에게 그에 대한 승낙도 받았고 말이다.
‘잘 되었으면 좋겠구나.’
천막 안으로 들어간 호현은 제갈세가 사람들이 한쪽에서 분주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제갈연이었고, 제갈현과 제갈인은 그것을 돕고 있었다.
제갈현과 제갈인이 각각 한 손으로는 솥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솥의 바닥을 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 닿아 있는 솥의 바닥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공으로 솥을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글지글! 부글부글!
기름 끓는 소리와 물 끓는 소리가 요란한 솥 앞에서 아름다운 제갈연이 양손으로 국자를 들고 요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호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천막 한쪽에 도사들이 서서 그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들은 바로 풍범과 화산파 사람들이었다.
‘화산에서 오신 도사님들이 아니신가.’
화산파 도사들을 본 호현의 얼굴에 반가움이 어렸다.
“이렇게 다시 뵈니 반갑습니다.”
호현의 인사에 종경이 웃으며 마주 인사를 했다.
“나도 호현 도우를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습니다.”
호현과 인사를 한 종경이 풍범을 가리켰다.
“인사하십시오. 본문의 풍범 사숙입니다.”
종경의 소개에 호현이 풍범을 바라보았다.
‘눈에서 흐르는 정기를 보니 화산의 높은 도인이신 모양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