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째 이별. 그리고 근친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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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8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두 번 째 이별. 그리고 근친에 대한 생각
공항에 내리니 모든 것이 다 변했다. 떠날 때 김포 공항은 미국 시골의 비행장 같았는데, 새로 만들어진 영종도 국제공항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시설이었다. 너무 달라진 고국의 변화보다 더 가슴이 설레는 것은 그를 본다는 것이었다.
내가 한국에 온 것을 아무도 모른다. 사무실에는 그저 유럽 쪽으로 휴가를 간다고 말 해놓았고, 일체의 비즈니스는 전무를 통해 맡겼다.
내 수첩에는 한국의 에이전트가 보내준 전화번호와 사진이 있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낯설지 않는 모습이었다. 사진이 아니라도 길거리에서 스쳐도 금방 알 수 있는 얼굴이었다. 한 번도 제대로 본 일은 없지만, 그렇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저 만나서 이야긴 할 수 없어도 좋았다. 얼굴만 바라보고 와도 좋았다. 그간 몇 번이나 마음을 먹었으나, 기회가 좋지 않아서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영종도에서 김포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거기서 제주도를 향한 비행기를 탔다. 선그라스를 짙은 것으로 끼었다. 혹시나 나를 알아볼 사람이 있을까하여 얼굴을 들지 않았다. 그렇게 유명인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내 얼굴을 알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만나려고 줄을 잇대고 있었다. 이젠 그 누구도 한국에서 나를 건드릴 사람은 없었다. 당장이라도 전화 한 통화면 한국의 재계, 정계를 막론하고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다.
사실은 굳이 한국에 나오지 않아도 내 뜻을 이룰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아무에게도 내 비밀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제주도에 도착하자 선선한 봄바람에 정신을 잃을 뻔하였다. 물론 미국에도 봄은 있다. 하지만 제주도의 봄바람은 달랐다. 고국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사실 제주도에는 한 번도 와 본 일이 없었다. 내가 철도 들기 전에 한국을 떠났으니까.
제주도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각광을 받을 여지가 많았다. 첫눈에 사계절을 고루 갖춘 제주도가 왜 국제적인 관광지가 되지 못하는 지 안타까웠다. 역시 고루한 정치인들이 안목을 갖추지 못한 탓이다. 연기 없는 공장을 만들어서 세계 사람들에게 일년 사시사철 돈벌이를 할 수 있음에도 제주도를 그저 유원지 놀이동산쯤으로 여기는 한국의 정치인들의 안목을 알만했다. 돌아가면 제주도 개발 계획을 만들어보아야 하겠다.
미리 말했으면 제일급인 중문에 여장을 풀 수 있었겠지만, 굳이 그랜드를 택한 이유는 그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의 일정표는 내 손안에 있었다. 지금쯤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가방을 방에 넣고 옷을 갈아입었다. 눈에 뜨이는 미니스커트 보다는 그저 가벼운 베이지색 티와 진을 걸쳤다. 식당에서 쥬스를 한 잔 마시고 호텔을 나왔다. 미리 예약한 승용차가 대기해 있었다.
“기사를 불러 드릴까요?”
도어맨이 정중하게 물었다.
“아뇨, 괜찮아요. 천천히 돌아보죠.”
1불짜리 지폐를 팁으로 주었다. 도어맨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천천히 차를 몰고 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지도를 보면서 길을 익혔다.
아침이 되었다.
날씨가 한결 포근하고 바람이 잠잠해서 연두색 반팔 쫄티를 입고 타이트 진 스커트를 입었다. 목에 흰 실크 스카프를 두르고 챙이 큰 모자를 썼다. 화장을 좀 진하게 해서 사람들 눈을 가리려고 했다. 하지만 호텔 로비에 나서니 모두들 나를 쳐다보았다. 미니가 너무 짧아 보였나 보았다.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냥 시선들을 무시하고 차에 올랐다. 갈 길이 바빴으므로.
예상대로라면 식물원 앞길에서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대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었다. 혹시 일정이 바뀐 것은 아닐까. 설레던 가슴이 갑자기 실망감으로 덮였다. 그래도 기다리기로 하고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그때 저 멀리서 그가 나타났다. 사진에서 보던 그 모습이었다. 약간 큰 키에 마른 몸매. 분명히 그였다. 담배를 서둘러 끄고 그를 지켜 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보면서 걷는 모습이 영낙없는 그였다. 너무 반가워서 하마터면 창을 열고 크게 이름을 부를 뻔 하였다.
“학생, 나 좀 봐요.”
혼자서 걸어가던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평범한 나이키 재킷에 등산화를 신고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예? 저를 보고?”
“네, 저 좀 물어 볼 것이 있는데...”
얼굴을 보자 왈칵 반가움이 치솟아서 말끝을 이을 수 없었다.
“무슨 말씀을? 저도...”
관광객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감정을 억눌러야 했다. 선그라스를 끼기를 잘한 것이었다.
“잠간만, 저 좀 봐요.”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천천히 차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말씀인데요?”
“응, 미안한 부탁인데요, 제가 한국에 이십사 년 만에 왔구요. 제주도는 처음이에요. 그래서 제주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해서, 길 안내겸, 관광 안내를 받고 싶은데...”
“호텔이나, 시청에 말하면 전문 안내원이 있을 텐데요.”
“알아요. 하지만, 제주도를 잘 아는 그런 직업적인 사람 말구, 나같이 관광객이면서 제주도에 살지 않는 사람의 생각이 필요해요.”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습니까?”
웃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미국에서 왔어요. 오, 참 그렇게 서서 이야기하지 말고, 잠깐 타실래요?”
“전, 일행이... ”
“학생인가 보죠?”
“네, 졸업여행을 왔습니다.”
“그럼 더 잘 됐네요. 학생의 신선한 눈으로 본 제주도를 좀 말해 줘요.”
“글쎄요. 모두 함께... ”
단체라서 좀 꺼림칙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를 놓칠 수 없었다.
“전화 드릴테니, 다른 개인 적인 일이 생겼다하시면 되잖을까요? 대학생이니 뭐 돌아갈 시간만 맞추면 되죠. 이번에 중요한 조사로 제주도에 왔으니 학생이 좀 도와줘요.”
“잠깐만요.”
그가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어디와 통화를 했다.
“네 됐어요.”
“호호, 그럼 차에 타요 일단.”
그가 잠시 주위를 둘러보면서 차에 앉았다.
“아니 앞에 앉아요.”
뒷문을 열려고하기에 말을 했다.
“네...”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일단 뒷자리에 앉는 것은 실례에요.”
“몰랐습니다.”
“호호 괜찮아요, 아직 한국은 유교 사상이 있어서, 하지만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실례지만 연세가?”
“호호호”
그가 내 나이를 물으니 참 우스웠다.
“연세라니요.”
그는 얼굴을 붉혔다.
“오, 네버마인드. 내가 몇 살쯤 되 보여요?”
“글쎄요. 한 삼십 조금....”
“호호호, 내가 선그라스를 껴서 그럴 거에요. 저 나이 그렇게 적지 않아요.”
“네?”
“학생보단 훨씬 많으니 안심해요.”
차를 출발시켰다. 어디라고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그를 태우고 그렇게 같이 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잘 안내해주면 좋은 선물도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걱정 말아요. 그저 보이는 대로 이야기만 하면 되요. 외국의 젊은이들을 어떻게 하면 제주도에 많이 오게 할 것인가를 알려면 먼저 같은 나이 또래의 한국 대학생의 생각을 알면 되요. 다 비슷한 생각을 하거든요.”
“어디서 오셨나요?”
“호호, 아까 미국에서 왔다고 했을텐데?”
“아뇨, 그것말구......”
“아, 근무처 말씀이군요. 전 에이전트에요. 뭐랄까, 세계 각국의 투자 상담을 대행해 주는 그런....”
“아, 네. 참 좋은 일을 하시는 군요.”
“할만한 직업이에요.”
나는 그에게 자랑스럽게 내 직업을 말했다. 세계의 모든 나라 경제, 정치가들이 나를 통해서 미국에 줄을 대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해 주고 싶었지만, 그가 놀랄까 참았다.
그는 갑자기 대화에 활기를 띠고 이것 저것 말을 해 주었다.
“오오 그래요? 참 그렇군요.”
나는 그의 말에 무조건 긍정을 해 주었다.
“점심시간이네. 뭐 먹어야지요. 뭘 먹고 싶으세요?”
“사모님이 드시고 싶은 것으로.....”
“어머 사모님이 뭐에요. 그냥 이름을 부르세요, 미국 이름이 다이앤이니까. 다이앤으로 불러요. 미스 다이앤 이렇게 부르면 돼요.”
문득 그에게 미스 다이앤으로 불리는 것이 좀 생소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니 큰 거북함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그렇게 불리는 것이 슬펐다.
“먹고 싶은 거 말해봐. 뭐든지.”
갑자기 그에게 말을 놓아 버렸다. 그가 날 쳐다본다.
“어머, 학생을 보니 갑자기 편안해져서 그만. 미안해요.”
“아뇨 괜찮아요. 편안하게 하세요, 저도 그것이 더 듣기 좋아요.”
“정말? 그렇게 해도 되겠어?”
“네”
“어머, 땡큐. 고마워요.”
그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고운 피부에 온기가 스며들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먼 바다를 보았다.
“아, 저기 된장찌개 집이 있네. 우리 저거 먹자.”
난 된장찌개를 참 좋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었다. 철저히 미국속에 살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모든 것을 버려야 했다. 요즘은 미국에 이민 오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뭉쳐 사니까, 음식이나 옷들이 별로 아쉬운 것이 없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특히 그들에게 인정받는 위치에 서기 위해서는 그들이 싫어하는 마늘이나 된장 냄새를 풍겨서는 아니 되었다.
“오랜만에 잘 먹었다. 얼마나 먹고 싶었던 음식인지.”
“미국에도 요즘은 다 먹을 수 있다던데요?”
“음, 그래.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곳도 있어. 미국에서도 순수 귀족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된장 냄새나 김치 냄새 풍기면 싫어 해.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들의 나라니까.”
바다가 참 좋았다. 물론 미국의 페블 비치나, 시애틀도 해변이 좋다. 한국의 해변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규모가 크고 절경이다. 하지만 한국의, 제주도의 해변은 또 다른 정취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적인 것이라 할까.
유채꽃이 노랗게 언덕을 메우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웠다.
“아, 너무 아름다워.”
그도 그것을 바라보았다.
“사진에 많이 나오는 풍경이지요.”
“그래? 우리 사진 한 장 찍을까? 저 유채꽃을 배경으로.”
“제가 찍어 드리지요.”
“아니 같이 찍지 뭐. 잠깐만”
나는 관광객 한 사람을 불러서 사진을 부탁했다.
“여러 장 찍어 주세요.”
나는 그의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었다. 그가 잠시 당황해 했다.
“팔짱 끼는 것이 싫어?”
“아뇨. 하지만...”
“호호, 걱정 마. 한국에 온 기념으로 찍어 가야지, 미국에서 할 말이 있거든. 이렇게 찍어야 리포트가 되.”
“네”
“해변이 참 좋아 보인다. 우리 좀 걸을까?”
“네”
우리는 해변을 걸었다. 나는 구두를 벗고 맨발로 걸었다. 미니스커트 사이로 바다 바람이 스며든다. 간질거리는 느낌이 신선하다. 그의 팔짱을 꼭 끼고 걸으니 연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올 해 몇 살이지?”
알면서 물었다.
“스물 셋이에요.”
“집은 어디 있어?”
“서울 살아요.”
그것도 다 알고 있었다.
“애인 있어?”
“아뇨,”
“호호, 이렇게 잘 생긴 학생인데 애인이 없어?”
“......”
“호호, 한국 여학생들 사람 보는 눈이 없나 보다.”
“......”
그는 걷기만 했다. 대답할 말이 궁한 모양이다. 그의 말투에 왠지 모를 그림자가 있었다. 무엇 때문일까.
“부모님은 다 계시고?”
“......네”
가슴이 아렸다.
“졸업하면 뭘 할꺼니?”
“글쎄요. 우선 군대를 안가면 취직을 해야 할 것 같고, 대학원엘 가고 싶은데.”
“공부를 하려고? 뭣을 전공하고 싶은데?”
“당장은 무엇을 하고 싶은 것보다는, 일단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학문을 탐하는 자세가 그를 닮았다. 내겐 그렇게 무정한 사람이었던 그 사람.
나를 임신시켜 놓고는 자기 체면과 집안의 위신 때문에 나에게서 아이만 뺏고는 날 버린 그 사람.
“부모님이 좋은 분이시니?”
“네. 참 착하신 분들이에요.”
어렵게 수소문해서 알아낸 그의 소식은 내가 낳은 아이를 어느 집에 보냈다는 것이었다. 눈도 채 뜨지 못한 핏덩이를 그렇게 버렸다는 것이 너무나 괘씸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잘 자라 있었다.
“응, 그래? 우리 저기 좀 앉자.”
해변 가의 얕은 모래톱에 우리는 앉았다.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긴장이 풀리자 참 말을 잘 했다. 가끔 웃을 때는 가지런한 이가 너무 귀여웠다. 이 아이를 이젠 내가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란 것을 알기에 참아야 했다.
그저 그와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유가 여기 있었다.
“언제까지 제주도에 있어?”
“사박 오일이니까. 어제 도착했으니 삼일 더 있어요.”
“그래? 그럼 나하고 같이 다녀 줄래?”
“글쎄요. 단체라서 혼자...”
“대학생인데 뭐.”
“일단 오늘밤 숙소에 들어가서 살펴 보구요.”
“그래. 내일 아침에 내가 데릴러 갈께.”
“아뇨. 어디 묵으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가겠습니다.”
나는 그와 저녁까지 함께 있었다. 생각 같았으면 같은 방에서 재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흐르는 시간이 너무 아쉬웠다. 처음 본 그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지나간 시간들이 너무 미안했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를 숙소로 돌려보내고 오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일 만날 약속을 했지만, 내일까지 기다리기 힘들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와 찍은 사진을 급히 현상했다. 그의 얼굴을 보고 또 보면서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샤워도 하지 않았다. 그와 팔짱을 낀 몸에 그의 냄새가 베어 있어서 그것을 간직하고 싶었다. 비릿한 어린아이 같은 냄새. 냄새만 맡아보아도 아는 짐승들처럼 나에게 익숙한 냄새였다.
그와 보낼 시간이 이틀 밖에 없었다. 너무 오래 기다린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직은 그에게 다 말 할 수 없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가 지금 행복하다면 내가 끼어들어서 그 행복을 깨트리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나중에 그가 다 알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그때 말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미국에서 그렇게 기를 쓰고 살아남은 이유가 바로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8살의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고서 젖 한 번 제대로 물려보지 못하고 아이를 빼앗기고, 그것도 모자라서 한국에서 살지 못해 미국으로 쫓겨 난 지난 시간들. 죽음과 맞바꿀만한 시련 속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바로 그였다. 언젠가는 다시 찾을 것이라는 그런 희망과 욕심으로.
너무 시간이 더디게 갔다. 하루 밤이 지나는 것이 이렇게 지루해 본 적이 없었다. 아침에 되자 간단히 샤워를 하고 로비로 내려갔다. 검은 색 새틴 스커트와 흰색의 티를 입었다. 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마치 선을 보고 데이트를 나가는 처녀처럼 마음이 설렜다.
호텔 로비 창 너머로 서성거리는 그를 보자 너무 반가웠다. 빠르게 그에게 달려 나갔다. 그는 어제 입던 옷 그대로 나왔다. 차에 올라타고 약간 외진 곳으로 가서 그에게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이것 입어 봐.”
“뭐에요?”
“응, 옷이야. 너에게 잘 맞을지 모르겠어.”
“괜찮은데요. 이러지 않으셔도.”
그는 부끄러워했다.
“괜찮아. 옷인데 뭐. 비싼 것도 아니고.”
“그럼 숙소에 돌아가면.....”
“아냐. 여기서 그냥 입어. 남자가 뭐 어때.”
나는 떼를 쓰다시피 해서 입은 옷을 벗겼다. 안에 입은 내의가 별로 깨긋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생활이 짐작이 되었다. 분노와 함께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가 옷을 갈아입을 동안 차밖에 잠시 나와 있었다. 그 사이 호텔에 전화를 해서 남자용 속옷을 사다 놓으라고 했다. 그에게 내가 사온 옷을 입혔다. 밝은 하늘색의 니트 티였다. 참 잘 어울렸다.
“어머, 참 핸섬한데? 오늘 우리 한라산으로 돌아보자”
“네.”
그는 좀 어색해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너, 문학 전공한다며?”
“네.”
“그럼 문학 이야기 좀 해봐”
그는 말문을 열자 참 이야기를 잘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우스운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마음 놓고 웃었다. 참 오랜만에 웃어보는 가벼운 웃음이었다.
점심을 먹고, 한라산 휴게소에서 산책을 했다. 그는 많이 밝아지고 명랑해졌다. 아직 그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붙인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붙여주고 싶은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름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 지금은 다른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참, 학생 이름이 뭐지?”
“장지원입니다”
“그래? 장지원?”
성이 달라져 있었다. 문득 목이 메었다. 이렇게 크도록 자기 뿌리조차 모른 아이.
‘너 성은 장씨가 아니고, 신씨야.’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원아, 너 미국 오지 않을래?”
“네? 미국을요?”
“응. 오면 내가 뒤를 봐줄게”
“고마운 말씀이지만, 부모님이 계셔서 안돼요.”
“부모님이 왜?”
“나이가 많으시거든요, 제가 모셔야 해요.”
“착한 지원이구나.”
잘 키워 준 그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그래. 혹시 생각이 있으면 미국으로 와. 부모님도 함께 오셔도 되고.”
“감사합니다.”
“나중에 연락처를 줄께.”
“네.”
그는 그저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우리 목장으로 가보자.”
목장에서 말을 타고 시간을 보냈다. 중문 해변으로 나갔다. 저녁을 먹고 나니 노을이 졌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산책할까?”
포근한 날씨고 바람이 없어서 걷기 좋았다. 신혼 여행객들이 이리 저리 몰려다니고 있었다. 서로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도 그의 팔짱을 끼었다.
해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원아 커피 한 잔 가져 올래?”
“네”
자판기가 보여서 그렇게 말했다. 그가 간 다음 나는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닦았다. 내일이면 또 헤어져야 한다. 너무 아쉬운 시간들이었다.
“지원이 학생, 여자 친구 없어?”
“네”
“이렇게 잘 생겼는데, 왜?”
그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웃었다. 미소를 보면 내 마음이 들뜬다. 그에게 지금까지 못다 해준 것을 다 해주고 싶었다. 반드시 그렇게 해 줄 것이다. 이젠 그럴 힘이 내게 있다. 다만 지원이를 데려가는 것은 그를 키워준 양부모님들에게 충격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도 충격이 올 것이다.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이다.
강은 산을 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바다에 이른다. 참고 기다린 것은 오늘이 오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너 여학생과 키스도 못해보았구나.”
그가 대답대신 웃었다. 열 살이 넘기도 전에 섹스를 하는 미국 아이들에 비하면 너무 순수했다. 미국서도 가끔 미국 남자들과 섹스를 하였지만, 너무 큰 물건에 통증만 느꼈다. 그저 동양에서 온 여자라는 신비감에 한두 번 섹스 하는 것을 원했다. 그래서 그것을 역이용했다. 하지만 난잡한 섹스는 거절했다.
“내가 키스를 가르쳐 줄까?”
그에게 무언가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그가 놀란 듯이 바라보았다.
나는 가만히 그의 뺨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살며시 입술을 붙였다. 말랑한 입술이 참 좋았다. 내가 낳은 아들인데 이제 처음으로 그의 살을 만진다.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봐라. 난 이렇게 다시 내 아들을 찾았다. 그리고 내가 데려간다.’
그는 가만히 있었다.
“어때?”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느낌이 없나 보지? 그럼 한 번 더 해 줄게”
나는 그의 입술을 좀 더 강하게 눌렀다. 그리고는 그의 상체를 뒤로 밀었다. 백사장에 그가 넘어졌다. 나는 가슴을 포개고 그의 입술을 찾았다. 그의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상하게 나도 가슴이 뛰었다. 마치 그와 연애를 하는 것 같았다. 그를 가지고 싶었다.
“오늘 밤은 나와 함께 보내자.”
원래는 내일 밤을 함께 보낼 계획이었다. 물론 그 생각 속에는 섹스는 들어있지 않았다. 한번도 그를 안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그를 안고 자고 싶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텔로 돌아왔다. 그는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왔다.
“좀 씻으렴”
그가 욕실로 들어간 사이 그가 입을 속옷을 꺼내 놓았다. 그리고 룸서비스를 불러서 와인과 간단한 안주를 주문했다.
“이거 입어라.”
타월을 걸치고 나오는 그는 물에서 갓 잡아 올린 연어처럼 싱싱했다. 내가 낳은 아들이었다. 자랑스러웠다. 잠옷을 걸친 그는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젠 그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
“나도 좀 씻고 나올 테니 룸서비스 오면 받아 둬”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으로 샤워를 했다. 마치 첫날밤을 맞는 신부처럼 들떠 있었다. 나를 불행하게 했지만, 그를 내게 보내준 그 사람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것은 강간이었다. 그래서 그를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원이는 달랐다. 눈매가 깊었다. 높이 쌓인 눈위를 비치는 햇살처럼 투명하고 맑았다.
욕실에서 나오니 창가에 와인과 안주가 있었다.
“우리 와인 한 잔씩 하자.”
그가 내 앞에 앉았다.
“와인은 그렇게 마시면 안 돼.”
그를 멋지게 키울 것이다. 세상 여자들이 부러워하는 남자로.
와인도 술이었다. 흥분에 들뜬 마음에 들어간 술은 금방 취했다.
“너 춤 출줄 아니?”
“아뇨”
“어머, 그런 것도 안 배웠니? 이리 와 바. 내가 가르쳐줄께.”
음악을 넣었다. 조용한 음악이 나왔다.
“자, 이렇게 손을 잡고, 그래 그렇게. 천천히 왼발부터 옮기는 거야. 음악을 가슴에 담고, 리듬을 타면 돼.”
나는 그와 춤을 추는 것이 기뻐서 내 나이트가운의 매듭이 풀어진 것을 알지 못했다. 어색한 그가 조금씩 스텝을 맞추었다.
즐거웠다. 황홀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창 아래로 야경이 더욱 분위기를 돋우었다. 약간 취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나보다 크다. 그도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붙였다.
비몽사몽,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러나 내 아이라는 것은 알았다. 꿈에 그리던 시간들이었다. 입술이 가만히 열렸다. 가슴이 뛰었다. 따스한 혀가 밀려들어온다. 처음 느끼는 키스의 황홀함. 그의 가슴에 나를 밀착시켰다. 브라를 벗어버린 가슴이 그의 가슴에 닿는다. 그의 손이 슬며시 내 가슴을 더듬는다. 나는 미소를 띠며 그의 손이 편하게 해 주었다. 한번도 엄마 젖을 만지지 못한 불쌍한 아이. 한 번도 아이가 젖을 만져주지 못한 슬픈 엄마.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행복한 눈물이었다.
그가 젖을 만진 손에 힘을 준다.
‘그래. 엄마 젖이야. 실컷 만져. 이건 널 위한 젖이야.’
비틀거렸다. 취했다. 젖었다.
침대로 그를 이끌었다.
침대에 드러누우면서 나이트가운을 풀어 헤쳤다. 내가 보기에도 별로 크지 않은 젖이지만 아직 탄력은 있었다.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의 머리를 감싸고 내 가슴에 당겼다. 그리고 그의 입에 젖을 물렸다. 어린 아이처럼. 그의 입술이 내 젖꼭지를 빤다.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 그렇게 물려보고 싶었던 아이. 퉁퉁 불어 오른 젖의 아픔만큼 참기 어려웠던 그리움.
그는 내 젖꼭지를 입에 물고 미친 듯이 빨았다. 다른 유방은 손으로 잡고 아프게 만졌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짜릿한 쾌감이 왔다. 두 젖꼭지를 번갈아 빨면서 그는 점점 더 내 몸에 밀착 되었다. 나이트가운이 벌어지면서 팬티를 입지 않은 내 알몸이 드러났다. 하지만 부끄럽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두려움도 없었다. 내 유방은 그의 침으로 젖었다. 나는 그의 등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느새 그 아이의 손이 내 음부를 건드렸다. 하지만 피하는 몸짓은 하지 않았다. 원래 그곳이 제 고향이니까 찾는 것은 당연했다. 설령 그가 그곳에 성기를 넣고 섹스를 요구해도 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섹스가 아니고 모자의 재회니까.
고향을 찾아가는 연어처럼 그는 싱싱하게 내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반길 것이다. 잘 자란 그의 성기를 느끼고 싶었다.
근친상간이란 말은 이 경우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에 있을 때 흔하게 그런 경우를 보았다. 부녀간의 근친이 흔했지만, 모자간의 근친도 흔했다. 남매간 섹스는 늘상 있는 일이고, 그런 일로 상담을 요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고급사회로 들어 갈수록 근친의 빈도는 늘어났다. 그것은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강한 방어본능 같았다. 처음엔 그것이 어색하고 혐오스러웠으나 차츰 익숙해져갔다.
근친자들끼리의 모임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정신 나간 사람들 같겠지만 그들은 그들대로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었다. 물론 발각되면 감옥행이지만 서로 즐기는 한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한참 일을 할 때, 같은 사무실을 쓰던 헬렌과 지나는 서로 근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둘은 주말이면 인사를 그렇게 했다. 둘 다 아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지나, 이번 주말은 좋겠네?“
‘왜?’
‘남편이 출장이잖아. 토드와 같이 잘 수 있겠네’
‘호호, 벌써 그 생각을 하면 뜨거워 져. 참 너, 그저께 밤엔 매튜와 함께 잤다며?’
‘누가 그러던? 매튜?’
‘아니, 토드가.’
‘호호, 좋았어 너무.’
토드와 매튜가 처음엔 애인 이름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각자 아들 이름이었다. 처음엔 이상했다. 하지만 그들은 부부들이 다 아이비리그 출신이었다. 미국의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일반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만이 가는 술집이 따로 있고, 쇼핑 장소가 따로 있고, 파티도 그들끼리만 했다.
이런 탓인지 그가 나와 섹스를 원한다면 나는 반갑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 있었다. 또 그러기를 원했다. 어쩌면 이번에 그를 찾으려 나온 것은 그와의 섹스도 원한 것인지도 몰랐다. 다만 그가 어찌 나올지를 몰랐던 것뿐이었다. 나는 내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 있기를 원했다. 매력 있는 여자를 보고 섹스를 원하는 그런 평범하고 건강한 남자로 되어 있기를 바랬다. 그는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처음엔 낯선 여자의 키스를 어색하게 받아들였지만 곧 익숙해졌다.
내 나이가 그보단 많았지만, 아직은 충분히 매력 있었다. 그가 원한다면 아들이 아니라 내 남편으로서도 가능했다. 미국에선 그가 누구인지를 모르므로. 그래서 나도 내가 그의 엄마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그것도 그를 내 곁에 묶어 둘 수 있는 방법의 하나였다.
그의 손이 내 음부의 갈라진 곳을 더듬었다. 나는 다리를 벌려 주었다. 23년 전 그가 머리를 힘들게 내밀고 세상에 나오던 그 관문이었다. 마음껏 만지라고 속으로 말했다.
슬며시 손을 뻗어서 그의 잠옷을 더듬었다. 엄청나게 팽창한 그의 페니스가 만져졌다. 생각대로 그는 정상이었다. 반가웠다. 그래서 손을 잠옷 안으로 넣어서 그의 페니스를 잡았다. 뜨거운 기둥이었다. 힘찬 방망이였다. 무엇이든지 뚫을 정도로 파워가 넘쳐 보였다. 온몸이 찌르르하게 전율이 왔다. 이것이 내 벌바 속으로 들어오기를 원했다.
그것은 섹스가 아니고 재회의 키스가 될 것이다. 우리는 살과 살로 합쳐지는 것이다.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내 아들과 다시 한 몸이 되는 순간이 될 것이다. 내 바기나에서는 음액이 넘쳐흘렀다. 이미 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가 내 속으로 들어오기를 원했다. 갑자기 속에서 뜨거운 욕망이 내 몸을 흔들었다.
“들어 와”
그를 내 몸 위로 당기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가 멋진 남자라는 것을 증명해 봐”
그는 머뭇거리다가 내 몸 위로 올라왔다. 어설펐다. 경험이 없는 탓이었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참 귀여운 몸짓이었다.
“안 해 보았구나. 긴장하지 마. 내가 도와줄까?”
나는 손을 뻗쳐서 그의 힘찬 남자를 잡고 내 벌바 입구로 유도했다. 순한 양처럼 그는 나를 따라왔다. 뜨거운 페니스의 끝이 내 바기나 입구에 닿자 내 몸이 흔들렸다.
‘아들아, 힘차게 찔러줘. 힘없이 크기만 한 서양 놈들의 페니스보다 훨씬 더 훌륭해.’
속으로 외쳤다.
그는 내가 손을 떼자 한 번에 내 바기나 속에 페니스를 찔러 넣었다. 울컥하는 느낌이 온다. 배속 깊숙이 뜨거운 방망이가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훌륭한 페니스였다. 오르가즘을 느낄 수 없어도 좋았다. 그런데 그의 페니스가 내 바기를 뚫고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나는 쾌감을 느꼈다. 공포감을 떨칠 수 있는 그런 쾌감이었다. 성취감이기도 했고.
이십삼 년간을 참고 지낸 희망이 마침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오, 멋지구나. 베리 굿”
그는 남자로 변해갔다. 몸짓은 어설펐지만 남자로 탈피하는 순간이었다.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히프를 흔들어서 그의 몸동작에 맞추었다. 너무나 즐거운 섹스였다. 눈물까지 났다.
“대단해, 넌 너무 좋은 아이야”
와인 탓이었을까. 평소에는 그냥 덤덤한 섹스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많은 말을 했다. 그 순간을 표현하지 않고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실언을 했는지 모른다.
“오, 컴, 컴.”
오르가즘이 오려고 했다. 그 순간 그도 사정을 준비했다. 느낌을 안다. 내 바기나 속에서 그의 페니스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사정이 임박했다는 신호다. 그의 정액을 받고 싶었다. 그의 정액으로 임신을 할 수 있으면 정말 멋진 선물이 될텐데. 아쉽게도 이미 난 아이를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다. 돌아가면 복원 수술을 검토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우, 원더풀”
그가 드디어 정액을 분출 시켰다. 뜨거운 물줄기 같은 것이 내 바기나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쓸데없이 많은 양만 쏟아 넣는 미국 남자와는 다르다. 난 역시 한국인이다. 한국 남자와의 섹스에서 쾌감을 느꼈다. 그것도 아들에게서.
“훌륭해. 넌 정말 멋진 남자야”
그가 한없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아쉽고, 또 미안하기도 했다. 정말 내가 이 아이의 연인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그냥 이렇게 키워서 좋은 여자를 만나게 해 주었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그런 마음이 들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내 눈물을 보고 그가 얼굴을 붉혔다.
“아냐. 너무 기뻐서 그래.”
나는 그의 머리를 당겨서 안았다. 젖가슴 사이에 그의 얼굴을 묻었다. 몸을 옆으로 기울이지 질 속에서 그의 정액이 흘러나오려고 하였다. 그래서 허벅지에 힘을 주고 그것을 막았다. 조금이라도 더 그의 흔적을 내 안에 가두어 두고 싶었다.
섹스가 아니라 의식이었다. 그냥 그렇게 안고 세상 끝까지 가고 싶었다.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그의 살들이 내 몸에 닿이는 감촉이 너무 좋았다. 남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내 몸의 일부분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미칠 것 같은 감동이었고, 흥분이었다.
그가 원한다면 무엇이던지 주고 싶었다. 몸이 아니라, 내 전 재산과 생명까지도 줄 수 있었다. 그를 힘주어 껴안았다.
아침이 밝았다. 간밤의 황홀했던 시간이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했는데, 시간은 공평하다. 눈을 뜨기 전에 옆 자리를 손으로 더듬었다. 기쁨의 확인을 위해서. 그런데 허전했다. 눈을 급하게 떴다. 옆 자리에 있어야 할 그가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대충 정리를 하고 호텔을 나섰다. 그를 찾았다. 하지만 그는 없었다. 오늘이 지나면 나는 떠나야한다. 떠나기 전에 그에게 무엇인가를 남겨 주어야 했는데.
걸어 다니는 동안 그가 뿌린 정액이 조금씩 흘렀다. 그가 아직 내 몸속에서 살아있다. 좁은 제주도 안을 다 뒤졌으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젊은 아이에게 처음 섹스는 감당하지 못할 충격이었나 보다. 후회가 들었다. 그냥 차근히 이야기 해 줄 것을.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렇게 또 이별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물론 다시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이별은 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작별의 키스와, 재회를 약속하는 키스는 있어야한다.
무거운 발걸음을 공항으로 옮기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그가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도 오늘 제주도를 떠날 것이다. 시간이 비슷해서 혹시나 하고 그를 기대했다. 그와 보낸 밤이 떠올라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를 사랑했다. 지난 23년 동안이나 그를 사랑해 왔다. 그가 내 아들이라서 더욱 사랑했다. 남자로서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고. 그와 보낸 이틀은 내 평생 최고의 기쁜 시간이었다.
보딩 패스를 받아들고 트랩으로 들어가려다가 다시 뒤를 보았다.
저기서 누가 오고 있다. 그였다. 가방을 놓고 달려갔다.
그를 껴안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어디 갔었니?”
“떠나시려구요?”
“응.”
그는 눈이 부어 있었다. 울었던 모양이다.
“미안해. 널 너무 사랑해.”
“들어가 보세요. 건강하시구요.”
작별은 짧아야했다. 그래야 다시 만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것 받아.”
가방에서 내 주소와 그가 쓸 용돈을 넣은 봉투를 주었다. 그것으로 내 마음을 다 전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당장은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그래. 언젠 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잘 가세요.”
그의 뺨에 내 뺨을 대고 인사를 했다. 그때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랑해요.”
그 말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눈물이 갑자가 솟았다.
“이것 받으세요.”
그가 작은 쪽지를 주었다.
“뭔데?”
“가시면서 읽어 보세요”
좌석에 앉아서 그가 준 쪽지를 펴 보았다.
‘엄마, 사랑해요.’
그렇게만 적혀 있었다.
‘그래 반드시 우린 다시 만날 거야. 이젠 다시 널 잊어버리지 않을 거야.’
비행기가 이륙을 하고 창밖으로 풍경들이 낮아졌다. 하지만 내 가슴은 기쁨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 이 글은 전에 본 유럽 비디오를 생각이 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아마 내용이 이와 비슷한 것이라고 기억한다.
아래 글에서 누군가가 근친의 발생 확률과, 기대치에 대해서 적어 놓았다.
근친은 별로 새로운 성문화가 아니다. 내가 20년 전 쯤에 펜트하우스 포럼에서 어느 미국 학자가 기고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사람 글의 내용이 앞으로 신세기가 되면, 근친상간(incest)이라는 말 대신, family affair라는 말이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근친상간은 일종의 금기시하는 면이 있지만, 가족 사랑은 개념이 다르다고 했다.
핵가족화 되고 절대적인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하면 가족간의 유대감이 깨어지고 이혼율이 급등할 것이며, 그리고 반사적으로 근친간의 섹스는 더욱 빈번해 질 것이라고 했다.
그 말처럼 직접 가서 본 것은 아니지만 현재 미국 상류층에서는 근친상간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래서 그것을 법으로 막고 있다고 한다. 즉 법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빈번하다는 소리도 된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근친은 많이 증가한다. 성문제 연구소에서 폭력적으로 변질되어 문제시 된 것만 상당한 비율에 이르는 것을 보면, 숨겨 두고 즐기는 것은 더 많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과거 역사 속의 근친은 가부장적인 남자의 권위에 의한 행동이 많았다. 재산과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근친이 강요되었다.
외디푸스의 신화를 보아도 그렇고, 이집트의 건국 신화를 보아도 그렇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근친혼과 일본 왕족의 근친혼, 이런 것들이 그것을 설명해 준다,
특히 고려시대는 왕족의 공주 가운데 궁 밖으로 시집간 여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그것은 고려 시조 왕건이 건국 시에 신라가 망한 것을 외척의 발호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외척의 권력을 키워주지 않으려고 공주들을 전부 궁 안에서 근친혼을 시켰다.
유럽에서도 산악 국가인 스위스나, 동유럽에서는 근친을 문제삼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폭력에 의한 것이거나, 아니면 사회적인 문제가 될 때만 책임을 추궁한다. 가족 간에 묵인 하에 이루어지는 근친은 간섭하지 않는다.
다만, 일반 사람들은 가족간에는 이성적인 호기심이나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생물학적인 이유로 설명된다. 하지만 근친교배가 열성 유전을 시킨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멘델의 유전 법칙 발견 이후 근친교배의 열성이 제기 되었다. 그러나 멘델은 18세기 말의 사람이다. 그러니 그 이전부터 금기시 되어왔던 근친상간에 대한 억제 이론은 맞지 않는 말이다.
어쩌면 같은 가족끼리 섹스를 한다는 것이 거북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가부장적인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비쳐지기 때문에 금지 당했을 이유가 많다. 하지만 지금처럼 핵가족화 된 후에는 가부장적인 힘은 사라져 버리고, 쾌락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개인적인 비밀이라서 그 발생이 늘면 늘었지 결코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모자간의 섹스는 모든 예술의 장르에 있어서 호기심의 대상이다. 그만큼 매력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요즘의 세대를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많다. 외아들에 맞벌이 부부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섹스 그 자체가 상대를 가리기에는 이젠 방어벽이 무력하다는 것이다.
아들 자지라고 엄마 보지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나 오빠, 동생의 자지가 딸이나 누이의 보지와 결합하지 못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아직까지는 우리가 가진 도덕율이 엄격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짐승도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짐승은 당연히 하지 않는다. 영장류인 인간과 일반 포유류는 다르다. 설령 한다 해도 수태는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 번 가정을 해 보라.
무인도에 불시착한 비행기에서 달랑 살아남은 두 사람이 모자나, 남매나, 부녀간이라면 충분히 섹스가 가능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밀폐된 아파트 공간에서 이웃과 격리된 채 살아가는 현재 우리의 구조는 충분히 근친을 가능케 한다.
아버지는 성장한 딸에게서 여자를 느끼고, 어머니는 성장한 아들에게서 남자를 느낄 수 있다. 무한한 아가페적인 애정이 에로스적인 사랑으로 바뀌는 데는 큰 모험이 뒤 따르지 않는다. 사랑이란 그렇게 구별되지 않는 인간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근친을 소재로 한 글을 많이 쓴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두 남여가 섹스를 나누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이다. 금기시 되어 있는 것에 대한 반발이라 할까. 아니면 나도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내 처지를 정당화 시키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근친이든 아니든, 그것은 이제 당사자들의 양식에 달렸다. 서로 사사로이 즐기는 일이라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할뿐더러 간섭도 하지 못한다. 다만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들로 인해서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지키라는 것이다.
지키지 못하면 즐길 자격도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