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사육일기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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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8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누나 사육일기 - 1부
사람의 심리는 복잡하고 묘하다.
위기에 몰리거나 약점이 노출되면 얼핏 생각하는것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 중에 하나가 대단히 부끄러운 자신의 비밀을 들키게 됐을때 상대방이 배려 차원에서 묵과 해준다면 거기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기보다는 더 초조함을 느낀다
그것은 그대로 두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 속이 바싹 타들어가고, 그렇다고 먼저 나서서 자신의 치부를 얘기하면서 거기에 대한 해명을 하기도 힘들다.
결국 치명적인 치태를 드러낸 사람에게 있어 상대방의 가장 이상적인 행동은, 왜 그랬는지 가볍게 묻고 무어라하건 거기에 대해 그럴수도 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윤성은 그렇지 못 했다.
그들은 보통의 남매 이상으로 각별했기 때문에 더더욱 어찌할바를 몰라 결국 외면하고 피하게 된 것이다.
세 남매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잃고 서로밖에 모르고 아끼며 자라왔다.
젊은 시절부터 전형적인 한량, 망나니인 윤성의 아버지는 술과 도박, 여색에 빠져살았고 그런 아들의 모습에 윤성의 할머니는 도저히 재산을 물려줄수가 없었다.
윤성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골에서 소박하게 농사 지으면서 지내는 노인내에게 수억원 가치의 논밭은 무의미했지만 넘겨주면 당장에 까먹을께 분명한 자식에게 차마 재산을 물려줄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윤성의 할머니에게 아버지는 윽박 지르고 행패 부려댔지만 아무리 개망나니라도 안되는건 안되는거였는지라 결국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데 그 방법이란 장가를 가고 싶은데 뭐가 있어야 결혼도 하지 않겠느냐며 결혼해서 착실하게 살테니 땅과 재산을 물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결혼하면 사람 되겠거니 싶었던 할머니는 결국 그렇게 해주었지만 애초에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유흥비의 고갈에 의해 선택한 화상은 결혼이 아니라 죽었다가 깨어나다 결국 그 모양 그 꼴일수밖에 없었다.
겉멋내는데 탁월하고 집에 재산도 좀 있어 아버지와 결혼한 윤성의 어머니도 결국 남편이란 작자의 실체를 알아버리고는 못 버티고 이혼해 진작에 집을 나가버렸고 그 이후 아버지는 과음으로 위, 간, 장 가릴것없이 온갖 질환에 병원을 들락거리면서도 술, 담배를 항상 끼고 살더니 윤성이 초등학교 5학년때 죽었다.
윤성에게 있어 누나들은 친구였고 불우한 가정환경을 함께 해쳐나가는 전우였으며, 기억도 잘 안 나는 어머니를 대신한 엄마였다.
그런 누나들이…….
윤성의 머릿속은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지만 언제까지 그럴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샤워기를 잠그고 수건으로 몸을 닦고는 선반위에 걸쳐진 속옷과 집에서 편히있는 반바지, 반팔을 입고 욕실 문을 나섰다.
화들짝!
두 누나가 마치 도둑질하다 걸린 사람처럼 움찔하며 열린 욕실로 시선이 향하다가 이내 시선을 TV로 고정한다.
거실 쇼파의 양끝에 괜히 멀찍이 떨어져앉은 두 누나와 윤성 사이에 터질듯한 어색감과 침묵이 맴돈다.
'그래, 오늘도 이대로 내 방으로……."
윤성은 이 침묵의 압박감에 대해 오늘도 회피라는 답을 내린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유, 윤성아!"
두 누나 중 조금 더 강단이 있는 큰누나 민주경이 그를 불렀다.
방금전 그가 욕실을 나설때 누나들이 화들짝 놀랐다면 이번엔 상황역전.
윤성은 가만히 고개를 돌려 큰누나를 응시했다.
결국 큰누나는 스스로 말을 꺼내기가 죽도록 부끄러웠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묻어둘수만은 없었다.
거기다가 저 얄미운 남동생은 차라리 아무렇지 않은척 일부러 더 명랑하게 자연스럽게라도 해줬으면 모르겠는데 난 당신들의 행위에 무척 놀라고 당황했기 때문에 댁들 보기가 어색해라는 티를 팍팍내고 있지 않은가.
"잠깐……. 우리 얘기 좀 해야되지 않을까? 아니, 네가 누나들의 얘기를 좀 들어줘……."
결국 어느 금요일 초저녁, 결전의 시간은 오고야말았다.
* * * * *
윤성과 누나들을 고아로 만들게 된 주범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술은 어색함을 없애는데 탁월하다.
간단한 과일안주와 함께 자그마한 술상을 사이에 두고 세 남매는 식탁에 앉았다.
"우선……, 놀랐지?"
"응"
무심코 진심이 나와버린다.
그래도 이야기를 시작하자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가던것보다 차라리 편하다.
두 누나들 모두 동시에 떠올린 생각이었다.
"음……."
하지만 그 다음에 할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 저기 있잖아. 누나들한테 화났니?"
"아니……, 조금 놀라긴 했는데 내가 화낼 일을 아니잖아."
사실 그녀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스스로의 약점을 만들었지 윤성의 말 그대로 그건 죄도 아니고 윤성이 화가 날 이유도 없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마워."
"아니 고마울게 아닌데……."
어휘력의 한계가 있는 외국인들같은 대화였다.
마음이 지극히 여리고 순한 둘째누나 민유림은 그저 침묵……. 주경이 말을 이어갔다
"사실은, 내가 5학년이고 유림이가 4학년, 네가 3학년이었을때 내 친구였던 정희가 내가 어머니 없고 아버지는 술이랑 주색잡기에 빠져서 집에 잘 오지도 않는다는걸 학교에 말해버린후로 소심한 유림이는 물론이고 나도 다른 사람 시선 부담스러워서하고 우리 남매끼리 뭉치고 다른 친구 사귀는거 어려워했잖아……."
"응, 그랬지. 나도 그랬으니까."
아련한 옛 생각을 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져나갔다.
"그래서였나봐. 모든걸 우리끼리하고, 우리끼리 해결하다보니까……. 원래는 나나 유림이나 지금쯤 남자친구 사귀고 그럴 나이지만, 우리 자매가 서로 충당해줄수 없는거까지 함께 하려고 했던것 같아."
"응, 이해해."
윤성은 짧게 말했다.
"그런데 누나나 유림이나 둘 다 그런데 관심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었어. 알다시피 우리 자매는 목욕할때 같이하잖아. 처음엔 여자끼리 편한 마음에 너 요즘 가슴 커진것같다고 농담도 하고, 간지럽히고 그렇게 장난으로 시작 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되있더라고. 솔직히 한 4개월 됐어…….
"응, 그랬구나."
"누나들 혐오하니"
"아니, 내가 그날 누나들 그런 모습보고 느낀건 놀랍고 당황한거밖에 없어. 그러니까 부담 갖지마. 난 정말 누나들 이상하게 생각 안 하는데 누나들은 내가 무슨 말 해줘도 절대 들키기 싫은거 보여서 마음 무겁잖아. 오히려 내가 미안해지네."
주경은 그제야 살짝 웃었다.
"역시 넌 막내지만 대견하네. 하긴 할머니도 입버릇처럼 말했지. 아버지는 망나니고 나는 덤벙거리고 팔랑귀고, 유림이는 바보처럼 순한 아이인데 아들인 너라도 의젓하고 대견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사실이 그랬다.
둘째누나 유림은 좋게 말해서 천사였고 사실적으론 바보같고 너무 순한 성격이었다.
오죽하면 모기약을 바로 앞에 두고도 모기 죽이기가 그렇다며 그냥 모기를 물리는게 유림의 성격이었다.
그에 반해 유림처럼 내성적인건 똑같아도 큰누나인지라 나름대로 당찬 면모도 있는 주경이지만 대신 그녀는 소위 말하는 어리버리한 성격이고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귀가 얇은 타입인지라 물건 잃어버리는건 예사에 실수를 수없이 저지르고 남의 말에 속기도 참 많이 속았다.
실제로 아버지가 죽고 남매에게 재산을 물려졌을때 처음엔 큰누나인 주경이 관리했지만 먼친척이라는 양반들이 와서 리조트에 투자할 자금을 빌려주면 몇배로 갚겠다는 감언이설부터 당장 나앉게 생겼다는 동정심 작전까지 써가며 하이에나가 살점 뜯어가듯이 남매의 재산을 빼앗았는데 그렇게 나간 돈이 2억이 넘기에 이르자 결국 학업에 대한 머리도 좋고 실생활에서도 야물딱진 윤성이 재산을 관리하게 된 것이다.
그때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말 못하던 유림이 작게 말했다.
"가끔 네가 큰오빠로 태어나는게 맞았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
"누가 오빠고 누가 누나면 어때, 서로 아끼고 위해주면 그만이지."
"넌 그런 말을 해서 오빠 같은거야"
"하하, 그런가?"
모처럼 남매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데 한참 웃더니 주경이 다시 정색하면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응"
"실은, 차라리 너한테 모든걸 맡기고 싶기도 해. 난 네가 좋아. 물론 그게 사랑인지는 모르겠어."
"무, 무슨 소리하는거야, 지금."
사랑이 꼭 연애감정에 국한된건 아니다.
가족간에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있다.
문제는 분위기가 그게 아니라는데 있었기에 윤성은 당황했다.
의외로 주경은 위축되지 않고 어린 초등학생이 용기를 자내서 수업시간에 발표하듯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 남매끼리 너무 단단하게 뭉쳐진만큼 집밖에서 다른 사람과 인연을 이어나가기 어렵게 길들여진것 같아. 나나 유림이 오래 그랬잖아."
"……."
"너 이외에 다른 남자 만나고 싶은 생각도 없어. 아까 말했잖아, 어려서부터 그렇게 하다보니 우리끼리 충당해줄수 없는 문제도 밖이 아니라 안에서 찾는 습관이 들었다고."
"잠깐, 그만해. 누나 지금 야금야금이긴 해도 술 마셨어."
"아니아니, 이럴때라도 용기를 내고 싶어. 그런데 ……. 다 말해버려서 더 할 얘기도 없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아니! 모르겠는데? 누나들이 욕실에서 그랬던거 내가 봤을때 화났냐고 했을때 내가 아까 화 안 났다고 했지. 그런데 지금이야말로 화나려고 해."
"왜?"
"왜라니?"
"넌 누나들이 싫어? 그러니까 싫다는게 여자로써 매력이 없냐는 말이야. 참고로 말하자면 나랑 유림이는 너한테 그런 모습 보이고 미리 얘기를 했기 때문에 얘도 나랑 같은 뜻이야."
유림의 고개가 또 푹 숙여졌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자꾸 그럴꺼야?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내가 누나들 남자친구라도 되달라는거야?"
"비슷해."
"……!"
설마 그렇게까지 말하자 윤성이 말이 막혀버렸다.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낸게 차라리 이런 말 못할 말을 하게 될 계기가 된 거야."
"나 지금 그 때 누나들 그런거 봤을때만큼이나 놀라고 있어."
"너한테 나랑유림이의 모든걸 맡길께. 아니 줄께, 몸도 마음도 다 줄께."
"뭐, 뭐라고?"
"넌 그걸 받아서 우리 주인이 되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