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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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26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 2부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한가지 다행인 점은 설거지는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젠장, 엄청나게 다행이다. 이런 일로 기쁨을 느껴야 한다니 정말 심각하게 소시민적이어서 자기연민으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수많은 복수법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속옷이라도 훔칠까? 자는 얼굴에 낙서라도 할까? 아니면 라면에 청량고추라도 잔뜩 넣어?
"……."
어쩜 이렇게 유치한 복수 밖에 생각 못 하는건지……. 일단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이제 TV나 틀어보는게 좋을 것 같다. 저 악녀는 라면을 다 먹었는데 TV가 안 켜져 있으면 리모콘을 집어던지는 인간이다. 그것도 정확히 관자놀이만을 노려서 던진다.
삑
[밤샘의 저돌적인 공격. 로보캅, 뒤로 밀려납니다.]
또 K-1 이냐. TV를 켜자마자 나오는 K-1 속에서 밤샘과 로보캅이 격돌하고 있었다.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밤샘과 침착하게 한방 한방을 날리는 로보캅. 개인적으로 로보캅의 실력이 훨씬 위라고 생각한다. 밤샘 피로는 로보캅에게 통용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 여하튼 그런 재미없는 농담이 아니더라도 로보캅이 더 강한건 사실이다. 밤샘은 초반의 폭발적인 돌진력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뒤받침 할만한 기술과 체력이 부족한 편이다. 반면 로보캅은 기술과 체력이라는 면에서 밤샘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에…… 하아, 이제 정신마저 악녀에게 오염 되어가는 구나.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 지금쯤이면 내 옆에 앉아서 '그렇지! 한방 먹여!'를 외쳐델 악녀가 어쩐지 조용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시선을 옆으로 옮겨보자.
"으헉!"
어느새 옆자리에는 악녀가 와 있었다. 무슨 무음이동술 앵란을 익힌건지 기척도 없이 다가온 것이다. 드디어 고수의 반열에 들어섰나보다.
하암
더욱이 졸린 눈으?하품까지! 저 강철 체력이 하품을 하다니. 결국 오히려 평범해 보인다는 반박귀진의 경지를 밟은 것인가?! 물론 아니라고 믿지만 잠시 잠깐 그런 생각까지 들정도로 지금의 상황은 비현실적이다. 이 악녀가 낮잠을 안 자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잘 때는 '나 잔다' 라고 선언을 하고 잔다. 그런데 지금은 자는 것이 아닌 '졸고 있는' 것이다.
자, 침착해야 한다. 이런 엄청난 복수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계획을 짜보자. 필통. 그래 필통에 싸인펜이 들어 있었나? 저저번주 시험 때 썼던 컴퓨터용 싸인펜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진기는? 아아, 아저씨가 쓰는 플로라이드 사진기가 안방에 있을 것이다. 잠깐 빌려야 겠다.
평소에는 그 잠는 중에도 작동하는 귀신 같은 감각에 걸려 번번히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분명 저렇게 피곤에 쩔은 잠이라면 얼굴에 낙서 하는 정도는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문구는 '나는 더럽고 음탕한 년입니다' 정도로 하자 그럼 들켜도 어디 가서 정확히 말 못하겠지? 그럼 사람들은 그 대충 얼버무리는 점에서 저 악녀의 말을 거짓이라 판단하여 그런 사건은 악녀의 농간이라고 생각할 것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악녀는 확실하게 잠들었다. 내 다리를 베고.
"……."
장난해!!!!!!!
아니다. 조심스럽게 머리를 들어서 내려놓아보자. 분명 쉽게 깨지 않을 것이다. 그래 조금씩 천천히……. 성공이다. 다음은 카메라를 찾아야겠지? 살금살금 자리를 이동하여 안방에 무단 침입하였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카메라를 추적하였다. 분명 화장대에 있었다.
"어디……."
과연 화장대 한 구석에 몇 개의 화장품 사이에 목표물이 있었다. 헌데 조금 방심했나보다. 조금 흥분한 탓도 있었을 것이고.
와르륵!!
"이런."
카메라 옆에 있던 병들이 바닥으로 K아졌다. 카메라고 뭐고 일단은 이것들을 얼른 치우는게 상책이다. 로션이나 크림 같은 화장품에 피임약 같은 약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타민제까지 치우고 나자 다시 주변은 깨끗하게 되었다.
…… 비타민제? 재빨리 다시 확인해보니 그것은 분명 비타민제였다. 그렇다면 저 악녀는 비타민제도 미처 챙겨먹지 못할정도로 피곤에 쩔어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라면을 너무 열심히 먹었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지? 역시 이럴 때는 직접 확인해보는 것이 최선이다.
언제나 비타민제가 있던 전자렌지 위. 그곳에는 비타민제 대신 매우 비슷한 다른 약통이 있었다. 약의 이름은 루미날. 즉, 숙면제라고도 부르는 강력 수면제였다.
"…… 세 알 먹었겠지?"
사람이 돌아버리기에는 충분한 조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