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그 해 5월 - 단편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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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5,0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뜨거웠던 그 해 5월 - 단편1장
뜨거웠던 그 해 5월미네르바입니다.
더 이상 소라에 글을 올리지 않으려고 했는데...쪽지로, 메일로, 또 리플로 수십 여분의 독자들께서 격려의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제가 올렸던 글들 전부를 삭제하고 탈퇴하려던 마음을 접고 다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힘을 주신 많은 분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안 좋을 리플을 다셨던 분들 중 사과 의 글을 주신 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글의 표절 시비를 논하시려면 정확한 근거와 내용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시작을 하지 마십시오. 제 글로 인한 더 이상의 논쟁은 없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럼...이만 총총...
뜨거웠던 그 해 5월
단편 1장
창밖을 유심히 바라보던 윤미의 두 눈에서 반짝이는 형광채가 나타나더니 이내 두 볼을 타고 곡선을 그리며 수정(水晶)과 같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가냘프고 가느다란 새끼손가락을 입 속에 살짝 넣고 잘근잘근 씹는 모습이 언뜻 보기에는 수초와 같이 맑고 청아해 보였지만 그 표정에서는 금방 깊은 슬픔이 잠겨 있음이 보인다.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흐르다가 손등으로 옮겨 흐르곤 아래로 떨어지며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오는 한숨 소리만큼 무거운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그런 윤미의 까맣고도 긴 속 눈썹이 서로 클로즈 업 되면서 눈물을 머금고 잠겨 버린다.
지금…
윤미는 긴 기억(記憶) 속으로 떠나고 있다.
기억 속의 그때로…,
하지만 그 기억은 윤미가 생각하는 거리만큼 그리 오래 전의 기억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것이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는 걸까?
윤 철호… 철호…
도톰한 입술로 잘근잘근 물고 있는 새끼손가락 사이로 가만히 그의 이름을 불러 본다.
지금 이 시간 그 사람도 날 기억하며 그리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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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야! 다들 모여 봐~.”
아직 수업 전으로 아침 조회를 앞두고 조용하던 3학년 7반 교실 안에서 갑자기 정적을 깨트리며 황급한 소리를 질러대는 출입구 쪽을 반 학생들은 뭔 일인가 싶어 쳐다봤다. 상민이었다. 뭔가 아주 즐겁고 획기적인 기삿거리를 물고 온 것임엔 틀림이 없어 보였다.
“뭔데 임마~ 빨리 얘기해봐!”
“짜식들…, 잘 들어봐라, 너희들 조용히 하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지금 말이지? 교무실로 남자 몇 명하고 아주 예쁜 여자들이 들어왔는데….”
“왔는데 뭐 임마…, 답답하게 그러지 말구 얼른 말해봐.”
“그 사람들이 누군가 하니 이번에 온 교생 선생님들이다 이 말씀이다, 짜식들아… 험험….”
“뭐어~ 정말이지? 여자들은 예쁘냐?”
“짜식 못 믿겠으면 네가 직접 교무실로 가서 창문 너머로 보고 오면 되잖냐, 임마….”
“!”
민기라는 놈이 반문(反問)하자 상민은 답답하단 듯이 그를 교무실로 내 ?아 버렸다. 잠시 후 교무실로 들어 온 민기의 입가엔 연신 웃음이 만개했고 아예 입고리가 찢어져서 귀에 걸리는 듯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반 학생들 여러 명이 우르르 교실 밖으로 나갔다.
오전 8시 40분, 1교시 교실 문이 열리며 담임선생님이신 싸이부(싸이코 이빨 코주부, 이름은 강 부식)가 들어서며 그 뒤를 종종 걸음으로 웬 작고 아담한 여자가 따라 들어왔다.
“우와아….”
하나같이 학생들은 그 예쁜 모습에 속으로 감탄하며 단 번에 그 여자가 새로 온 교생이란 걸 알아차렸다.
“자아~ 제군들아 인사들 하거라. 이번에 한 달 동안 우리 학교에서 교사 실습을 하시기 위해 오신 고 윤미 선생님이시다.”
“와아~ 안녕하세요! 선~새앵 니임~.”
“허허… 녀석들….”
“안녕하세요? 여러분… 고 윤미라고 해요… 이제부터 4주 동안 여러분들과 함께 공부도 하고 즐겁게 지내는 친구들처럼 지내기로 하고 왔어요. 반갑고요, 여러분들의 부 담임(副擔任)으로 결정됐으니 누나같이, 친구 같이 한 가족처럼 지내기로 해요.”
“와아~, 네~, 선생니임~ 반가워요~.”
감수성 예민한 K남자고등학교 3학년 7반의 교실 안은 떠나갈 듯 왁자지껄 거렸다. 다른 학교는 통상 고 3 학생들 반에는 교생 선생들을 투입시키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이 학교는 대학교의 부속고등학교라 고 3학생들 반에도 교생들을 투입시켜 실습을 시키는 것이 관례화(慣例化) 되어 왔었다. 새로 온 선생님이 예쁜데다가 부담임(副擔任)으로 학생들을 맡는다고 하니…, 인사를 하며 얼굴이 빠개지는 모습에 학생들은 혼을 뺏기는 듯 멍한 모습이도 하였다.
그 날 오후 7교시 자습 시간…, 원래는 체육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자습으로 대체되었다. 학생들은 언제 떠들고 그랬냐는 듯이 침묵(沈黙)이 흐르며 엄숙한 분위기(雰圍氣) 속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을 내며 고 3에게 나름대로 주어진 전투(戰鬪)에 여염이 없었다.
고 윤미…,
올해 23살로 K대학 사범대학에 재학 중인데 이번 교사실습을 남자고등학교로 배정이 되어서 혹 감수성(感受性)이 예민하고 한창 성적(性的)인 것에 대해 알아갈 나이인 청소년들이라 혹시라도 자신에게 짓궂게 행동하면 어떡하나 걱정이었는데 막상 와 보니 학생들이 너무 순수하고 착해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도 학생들처럼 자신이 출, 퇴근 때 읽으려고 준비한 책을 펴 놓고 책장을 넘긴다.
“?”
한참을 열중하던 윤미는 안면이 뜨끔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니 저 쪽 창가 뒤쪽에 앉은 한 학생이 그녀를 바라보다 얼른 고개를 숙이며 안 본 척 딴청을 한다. 윤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이 참으로 순수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윤미는 그대로 일어나서 복도 쪽의 분단 줄로 부터 한 바퀴 돌며 학생들의 옆을 지나가며 어깨를 ‘톡톡’ 두들겨주면서 다독거려 격려해 주었고 그녀가 지나가자 신이 난 학생들은 꾸벅 인사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윤미의 발걸음이 창가의 분단으로 옮겨졌다.
윤미는 아까 자신을 바라보다 놀란 듯 고개를 숙인 학생의 뒤쪽으로 다가서며 그 학생을 바라보았다. 요즘 애들은 참으로 덩치들이 좋다. 그 학생의 뒷모습은 어른스러울 정도로 넓은 어깨를 하고 있었고 비록 앉은 키였지만 키도 만만치 않게 커 보였다. 180cm는 넘나들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윤미는 그 학생의 옆을 지나치다 멈추어 서서 그 남학생의 등을 토닥이려 들었던 손을 머뭇거리다 이내 내리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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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고 선생님 할 만 하신가요?”
3학년 7반 담임인 강 부식 선생이 말을 건넨다.
“네…, 선생님 학생들이 생각했던 것 보다 순수하고 착해 보였고 무엇보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보기 좋네요.”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교감 선생님이 일어나면서 교무실 전체에 들으라는 듯이 한 마디 한다.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자 오늘 새로이 교생 선생님들도 오셨고 하니 오래 간만에 회식(會食)이나 합시다.”
“좋죠, 교감 선생님… 그렇잖아도 고기가 어떻게 생겼나 잊어버려가던 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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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 일행은 학생들이 모두 하교 한 뒤 가끔 회식장소로 애용하는 학교 근처의 목우촌 갈비 집으로 이동하였다. 어찌나 다들 고기도 잘 먹고 술도 잘 마시는지…, 윤미는 잘 못 마시는 술을 다른 선생님들의 권유 덕에 제법 따라 몇 잔 마신 탓에 머리가 ‘띠~잉’ 해왔다. 남자 교생 선생들도 연신 받아 마신 탓에 다들 얼굴들이 벌게져 있다. 몇 몇은 벌써 취했는지 말도 많아진다.
“어라? 보기보단 제법 잘 마시는걸요? 자 제 잔도 받아 주셔야죠…, 하하하!”
처음 부임(赴任)해 와서 그런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건네져오는 술잔을 어쩔 수 없이 받아 마신 윤미는 어떻게 인사를 하고 자신이 홀로 거주하는 원룸 오피스텔에 왔는지 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냥 대충 씻고 지금은 침대에 누워서 고통스러운 속을 움켜잡고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 밖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를 않았다.
‘째깍~째깍~ 째깍~’
기억이 희미하게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가물가물 해져가고 있을 즈음 윤미는 깜짝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따르르릉~따르르릉~ 따르르릉~.’
시계를 보니 밤 12시 반…,
가물가물 졸고 있는 윤미를 놀라게 한 심야의 늦은 전화를 바라보며 윤미는 자기의 대학 남자 친구인 상민 씨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누구세요?”
『….』
“말씀 하세요?”
『….』
‘딸깍.’
하지만 수화기 저쪽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질 않았다. 분명히 누군가의 숨소리는 났지만 그것이 누구인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윤미는 조금 속으로 짜증이 났지만 밤늦은 시간에 잘못 걸어서 미안해서 말을 못하는 거라고 생각으로 위로를 삼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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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간,
학생들은 윤미를 기쁘게 인사하며 맞이해 주었다.
그런 윤미의 둘째 날 출근이 어제 회식자리에서 마신 술 탓에 속은 조금 쓰라렸지만 학생들 덕분으로 다 잊고 한층 더 상큼 한 출발이 되었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윤미의 가슴 속에선 학생들에게 제자가 아닌 동생들과 같은 정(情)이 생겨나는 듯도 하였다.
오후 7, 8교시.
윤미에게 있어서는 반 학생들과 자습하는 이 시간이 제일로 좋았다. 자신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싱싱한 젊음이 넘치는 10대의 남학생들을 마음껏 볼 수 있었기에 좋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때는 남자 선생님이 교실 안에 계시면 꼭 감시나 당하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예쁜 이모(姨母)나 누나 같은 선생님과 함께 있으니 즐거웠고 공부도 더 잘되는 것도 같다고들 말한다.
윤미는 이것저것 책을 보면서 자료도 뒤적이며 보다가 문득 얼굴이 따가운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들어 보았다. 시선이 쏠린 곳은 창가의 어제 그 학생이었다.
“….”
“?”
또 똑같다.
어제처럼…,
그 학생은 놀란 듯이 고개를 휙 숙였지만 그 찰나(刹那)에 윤미와 얼굴이 마주쳤다. 속으로 윤미는 복잡해졌다. 감수성(感受性)이 예민한 나이라 잘 가르쳐야 한다는 선배 언니들의 충고(忠告)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윤미는 일어나서 창가의 그 학생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등을 쓰다듬으려 하던 손을 윤미는 내리며 그냥 백지처럼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노트를 집어 들었다. 맨 위에 5월 3일이라는 휘갈겨 쓴 오늘의 날짜만 적혀 있었다. 한 장을 뒤로 넘겨보자 그 뒷장의 맨 위엔 분명하게 5월 2일이란 숫자가 적혀 있었다. 바로 자신이 이 반으로 처음 부임(赴任)하여 들어온 날이다. 그런데 그 아래로는 ‘고 윤미’란 이름이 수도 없이 적혀 있었다.
조용하게 노트를 내려놓은 윤미는 말없이 학생의 등을 토닥여주려 손을 어깨에 올린다. 순간 그 학생이 움찔하며 놀란다. 손을 학생의 어깨위에 올리는 순간 학생은 눈에도 보일 듯이 움칫거리며 놀랐고 그 갑작스런 떨림으로 인해 윤미 또한 놀랬다. 그 때문에 복잡한 윤미의 머릿속이 더 복잡해져갔다.
“왜 그래? 그리고 학생은 왜 공부를 안 하지?”
잠시 그 자리에서 머무르던 윤미는 다시 그 학생의 노트를 손에 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열심히 공부했는지 노트의 앞 쪽은 수학문제를 푼 풀이들과 영어 단어를 외우느라 그랬는지 밀집된 영어 단어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 다시 윤미의 눈은 5월 3일이라고 쓰여 진 그 날짜의 노트에 머문다. 잠시 생각하던 윤미는 펜을 들어 또박 또박 글을 써 내려갔다.
‘선생님은 아직 너의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난 너의 믿음직스러운 생각을 믿어 마지않는다. 지금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참고 열심히 인내로 극복해 주는 그런 네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선생님한테 할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지 와서 얘기해 줄 수 있겠지? 단, 학교에서만이야….’
글을 다 써 내려간 윤미는 아직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 학생을 한번 바라보고 다가섰다. 노트를 내려놓자 글이 쓰여 있는 걸 봤는지 윤미를 쳐다보려고 하다가 포기하고는 노트만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에 윤미는 한 번 더 등을 토닥여 주자 아까보다는 많이 수그러든 떨림이 전해져 왔다.
하루가 윤미를 꿈속으로 이끌면서 저물어갔다.
윤미의 아침을 또 다른 하루가 상큼하게 열어주었다.
학교 담장 주변에 늘어져서 탐스럽고 따뜻한 모습으로 활짝 피여 있는 5월의 장미를 보며 그 날도 윤미는 미소 띤 모습으로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 날 오후…,
왠지 윤미는 조금 긴장이 된 기분이었다.
철호…,
윤 철호였다.
그 학생의 이름은. 어제 그 일이 있고 난 뒤 윤미는 출석부에서 아직 외우지 못한 학생들의 이름 속에서 찾아내 기억 속으로 집어넣었었다. 7교시 중간 쯤 윤미는 다시 그 철호란 학생 옆으로 갔다. 어제처럼 등을 토닥여 주자 오늘은 놀라는 느낌이 전해져 오질 않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많이 수그러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격려적인 스킨십을 해주고 나서 발길을 돌리려던 윤미의 걸음을 노트에 쓰여 진 글이 잡아 세웠다. 철호가 손으로 조금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선생님, 할 얘기가 있어요.”
라고 쓰여 있는 글귀가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윤미는 가만히 철호의 손을 치우며 마저 읽어 나갔다.
“선생님, 할 얘기가 있어요. 지금 말고 이따 수업 끝나고 푸른 공원에서 봐요.”
다 읽어 내려갈 때쯤 철호의 고개가 들리며 아주 힘들어 할 정도로 쑥스러워하는 표정의 얼굴이 윤미의 눈에 꽂힌다. 대답을 들으려하는 모습이었다. 윤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자 철호의 눈빛이 밝게 빛났다가 사라졌다.
땅거미가 붉게 물들어진 장미꽃들을 덮어 갈 때쯤 다음 날 수업자료 준비를 하던 윤미는 철호와 푸른 공원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남아있는 선생님들을 뒤로하고 택시에 올라 푸른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이 워낙 넓은데다 어둠이 짙게 깔려오는 바람에 쉽게 철호를 찾아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윤미는 혹시나 철호가 오랫동안 기다리다 실망하고 그냥 갔을까봐 미안한 마음을 하며 공원 중앙로를 훑으며 공원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직 5월이라지만 어둠이 내리는 푸른 공원의 바람은 찬 기운을 몰고 들어왔다. 하늘색 블라우스에 청으로 된 상의와 청치마를 걸친 윤미는 옷깃을 여미며 파고 들어오는 바람을 조금이나마 막아보려 가는 손가락으로 옷깃을 잡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예쁘고 청아(淸雅)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공원의 어둠이 서서히 몰려 들어오고 공원 주변 식당의 오색 빛의 찬란한 조명들이 서서히 빛을 밝히자 삼삼오오(三三五五) 연인(戀人)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모여 들기 시작했다.
윤미는 조바심이 났다.
혹 정말로 그냥 기다리다 갔다면 내일 무슨 얼굴로 철호를 어떻게 대할까?
학생이 자신에게 처음으로 약속하고 고민을 털어 놓으려고 했었던 것 같았는데…. 한 쌍의 연인들이 윤미가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한 채 길게 프렌치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본 윤미는 인상을 찌푸리며 종종 걸음으로 그 곁을 빠르게 지나가는 중에 10여 미터 앞쪽에 한 남자가 머리를 양 다리사이에 묻은 채 공원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2장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