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제와의 약속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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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제와의 약속 (2부)
“그러니까 이제 선생님이랑 애인 사이하면 안 돼요?”
미희가 나를 잘 따르고 좋아한다는 것은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이성으로서 그런 말을 해올 줄은 몰랐기에 나는 그 당시 무척 당황했었다. 나는 나름대로 어른스럽게, 선생답게 처신하고자 애썼지만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아마도 미희는 모를 것이다.
선생으로서 말한다면, 물론 미희는 내 제자였다. 하지만 남자로서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도 미희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는 과분할 정도로 예쁜 아이였으니까. 그래서 그 고백을 받았을 때엔 주책없게도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다.
“미희야…… 선생님한테 자꾸 장난칠 거야?”
“장난 아니에요. 제가 선생님 좋아하는 거 진짜 모르세요?”
알고 있어서 더 문제였다. 조금만 냉정히 생각해봐도 이 관계는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겉으론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실은 그 어느 곳 못지않게 뒷소문에 민감한 환경이 바로 교직사회였다. 사회적으로 항상 올바르게 처신해야만 하는 직업인만큼 오히려 작은 입소문 하나에도 커다란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미희는 아마 그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마음이야 정말 예쁘고 순수한 것이겠지만 만약 미희와 불미스런 소문이라도 났다간 흉을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비리에 대한 이야기로 번질 우려까지 있었다. 미희의 마음을 순수하게 간직해주기 위해서라도 조심히 거절하는 것이 어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었다.
“미희야. 난 네 선생님이야.”
“그게 어때서요? 선생님이랑 제자랑 연애하지 말라고 법으로 정하기라도 했나요?”
“너…… 그래. 지금은 어릴 때니까 선생님 좋아하고 그럴 수도 있어. 선생님도 어릴 적에 교생 선생님 좋아해봐서 알아. 그렇지만 미희야, 너 당장 대학만 가더라도 나 같은 아저씨는 눈에도 안 들어오게 될 거야.”
“그런 말은 너무 비겁해요! 선생님이 어떻게 그런 걸 알 수 있어요? 저는 지금 선생님이 좋으니까, 선생님만 생각할 거예요.”
그렇게 말해주는 미희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품에 끌어안고 싶었다. 그러나 미희가 점점 여자로 느껴질수록 나는 오히려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10대의 것이라면, 그것을 현실적으로 판단해야 할 역할은 어른의 몫이라고 여겼으니까.
“미희야. 선생님은 널 여자로 생각할 수가 없어. 너는 내가 가르친 학생이고…… 학교를 졸업해도 언제까지고 그럴 거야.”
“…….”
토끼 같은 그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마음이 안쓰러웠다. 결국 미희는 눈물을 훔치며 도망치듯 달려가 버렸다.
*
‘정말 그렇게까지 불가능한 관계일까?’
한심하게도 미희의 고백을 거절한 이후로 나는 그 일을 곱씹는 시간이 잦아졌다. 하지만 결코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겨울이 지나갔고, 내가 처음으로 맡았던 고3 아이들은 졸업을 하게 되었다.
미희는 졸업식에 오지 않았다. 비어있는 그 자리를 보니 내 마음도 텅 빈 것처럼 허전했었다. 식이 끝나고 나는 졸업앨범과 상장을 챙겨서는 미희의 집으로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안쪽에서 미희의 어머님이 나오셨다.
“안녕하십니까, 미희 담임입니다.”
“아이고, 선생님.”
시간이 흘러서 그 분이 결국 내 장모님이 될 거라곤, 그 땐 상상조차 못했었다. 지금의 아내를 만약 그 당시에 보았더라면 내 배우자가 될 사람이라고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무슨 일인지 애가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잠시 제가 얘기해 봐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미희의 방으로 들어서자 미희는 등을 돌린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는 숨죽여 다가가 미희에게 말을 건넸다.
“미희야. 선생님 왔어.”
“…….”
“졸업식 왜 안 왔니? 선생님이 얼마나 기다렸는데.”
“거짓말.”
“뭐가?”
“저한테 애정도 없으면서 기다리긴 뭘 기다려요?”
“무슨 말이야. 선생님이 미희한테 왜 애정이 없어?”
“제자로서의 애정이겠죠! 그딴 거 필요 없어요!”
“…….”
미희도 자기가 뱉은 말이 조금 심했다는 걸 느꼈는지 움찔하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달래는 말투로 미희의 머리맡을 향해 조곤조곤 말했다.
“그러면 너무 서운한데. 선생님한테 미희는 정말 예쁘고 착한 제자라서……”
“그 이상일 수는 없다는 게 저한테는 많이 힘든 일이란 말이에요.”
훌쩍이는 미희의 어깨를 슬며시 쥐고는 나를 보게끔 만들었다. 눈물 젖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부끄럽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 순간 내 마음 속에서도 새로운 결심이 하나 생겨났다.
“그러면 미희야. 선생님이랑 이렇게 약속할래?”
“약속이요?”
“너 대학가고 나서…… 그러니까 네가 성인이 되고 나서 말이야. 딱 1년만 또래들 사이에서 지내보고 그 때도 여전히 선생님이 좋으면 나도 네 마음 받아들일게. 그러면 어떨까?”
잠시 침묵하던 미희가 나를 돌아보며 더듬더듬 물었다.
“왜, 왜 꼭 그래야 해요?”
“오직 스무 살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성도 있는 거야. 네가 그 시기를 자유롭게 보내고 나서도 변함없이 다른 남자들보다 선생님이 더 좋다면 선생님도 너 여자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네가 중간에 마음이 바뀌어 다른 남자를 사귀더라도 선생님은 절대 너 원망 안할게.”
“…….”
미희는 몰랐겠지만, 그런 약속을 내건 데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만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라면 미희와 교제를 한다 해도 소문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그 사이에 다른 여자 만나버리면 어떡해요?”
“그럼 선생님도 약속할게. 네가 마음을 결정할 때까진 다른 여자 안 만나고 있겠다고.”
“정말이에요?”
“그럼. 너 선생님이 거짓말하는 거 봤니?”
그러자 조금 전까지 울던 것도 잊고 바보처럼 배시시 웃고 마는 미희였다.
“일 년은 너무 길어요. 반으로 줄여주세요……”
“그럼 6개월?”
“좋아요! 6개월 동안 다른 남자 안 만나면 되는 거죠? 선생님 그럼 정말 저랑 사귀는 거죠? 분명히 약속한 거예요.”
“미, 미희야…… 조용해. 어머님 들으시겠다.”
벌써부터 소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폴짝폴짝 뛰는 미희를 보며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난 그 6개월이란 시간 동안 미희가 또래의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될 거라고 내심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약속을 했던 이유는, 어쩌면 미희가 아닌 나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선생님! 두고 보세요. 제가 꼭 선생님 애인이 될 테니까요.”
그 날 미희는, 내게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
“그 한 달 동안 제 애인이 되어주실래요?”
그 때와는 많이 달라져버린 미희가 내 눈앞에 있었다. 처제의 뜻 모를 질문에 나는 굳어졌다. 그 질문은 왠지 먼 옛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 했지만, 지금의 처제가 하는 말과 그 때의 미희가 했던 말은 도저히 같은 의미로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농담이야, 처제.”
“농담이요? 호호호.”
이름을 부르다말고 다시 그녀를 처제라고 불러버린 것은, 아마도 내 나름의 본능적인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처제는 마치 아이처럼 까르르 웃었지만, 모순적이게도 그 웃음은 어린 시절 처제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형부는 언제나 그런 식이에요. 제가 진심으로 하는 말들이 형부에겐 모두 어린애 장난처럼 들리는 모양이죠. 예나 지금이나 늘 그랬어요.”
“아니…… 처제.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지금 처제가 하는 말은……”
“됐어요. 내키지 않으시면 더 이상 제 삶에 관여하지 마세요. 이제는 제 선생님도 아니고, 저도 어린애가 아니잖아요?”
내가 그녀를 처제로 부르기 시작하니, 그녀도 나를 형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가 둘로 나뉘어져있는 것 같았다. 형부와 처제, 선생과 제자……. 그 두 관계는 왠지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처제는 지금 거기에 또 하나의 관계를 추가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성적인 선에서 대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나를, 처제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저 등을 돌리고는 그렇게 가버렸다. 처제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
“끼니 거르지 말고. 알았지?”
“으응.”
“그럼 다녀올게.”
아내는 예정대로 월요일 아침, 출장길에 올랐다. 독수공방 신세에는 제법 익숙해졌지만 이번엔 특히 더 심란한 기분이었다.
허전한 마음 한 구석에 자꾸만 싱숭생숭한 기분이 채워지는 까닭은 아마도 처제에게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처제 생각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생각할수록 답도 없고 혼란스럽게만 느껴지는 그 문제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도저히 계속 두고 볼 수는 없는데……’
이따금씩,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남자들에게 술을 따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 가슴은 불안하게 쿵쿵 뛰었다. 그것은 그저 걱정이었을까……, 아니면 그 이상의 다른 감정을 내포하고 있었을까.
“형부, 반찬거리 좀 가져왔어요.”
“처, 처제.”
그런 복잡한 고민은 나 혼자만의 몫이었는지, 처제는 며칠 후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집을 찾았다. 나에게 갈등을 한 움큼 던져놓고 그렇게 평소처럼 웃고 있는 처제의 모습을 보니 조금은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바쁜데 뭘 여기까지 직접……”
“언니가 형부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를 했거든요. 게다가 저 낮에는 별로 안 바빠요. 형부야말로 지금 바쁘실 시간 아니에요?”
“아, 학교는 지금 방학이라……”
“어머, 그러고 보니 그렇겠네요. 호호.”
아내 없는 집에 처제와 둘이 있게 되었다고 해서 유별스럽게 반응할 이유는 없었지만, 오늘은 그 느낌이 괜히 어색했다.
“낮에는 안 바쁘다는 게, 밤에는 바쁘다는 의미야?”
“무슨 뜻으로 물어보시는 거예요?”
“아직도 거기서 일하고 있나 해서……”
“당연하죠.”
처제의 대답은 필요 이상으로 단호했다. 하지만 쉽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처제. 그거 그만뒀으면 좋겠어. 부탁이야.”
“그럼 형부가 먼저 제 부탁을 들어주면 되잖아요?”
“…….”
심지어 나는 아직 처제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요구를 해왔는지조차 제대로 알기가 힘들었다. 분명 내 기억에 따르면 처제는 그 시절, 나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정리했을 텐데…….
“난 형부의 그런 면이 미워요. 나를 위한다면서, 나를 걱정한다면서…… 실제로는 저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아요. 그저 형부이니까, 선생님이니까 허울뿐인 책임을 다하려고만 하죠. 형부의 그런 태도 때문에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고는 있으세요?”
“무슨 말이야……? 그 때 처제는 분명……”
“듣기 싫어요!”
벌컥 화를 터뜨린 처제는 몇 번 숨을 고르더니,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내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괜한 이야기를 했네요. 이만 가볼게요. 출근해야 해서……”
“처제.”
이미 처제는 현관에서 구두를 신고 있었다. 높은 굽의 힐을 신고 문을 열어젖히는 처제의 뒷모습을 난 그저 바라만 보았다. 처제는 가려다 말고, 나를 한번 돌아보더니 뜬금없는 말을 남겼다.
“그 때 같이 오신 친구 분, 아마 이름이 동식이었던가요?”
“동식이는 왜……?”
“그 분이 어제 혼자 오셨어요. 제가 맘에 들었나 봐요. 저를 지명하던걸요.”
“뭐, 뭐야?”
그 날 처제를 보던 동식이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는 건 느꼈지만 설마하니 그곳에 다시 갔을 줄은 몰랐다. 생각해보면 동식이가 그곳에 다시 못갈 이유도 없었긴 했다.
“오늘도 오시겠다며 예약을 하고 갔어요. 지금 출근하니까 곧 보게 되겠죠.”
“그 자식이 진짜…… 내가 전화해서 못 가게 해줄 테니까 걱정 마.”
“어머,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전혀 곤란하지 않아요. 오히려 좋은 걸요. 자꾸 저에게 2차를 나가자며 꼬드기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제게 더 많은 돈을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요.”
“뭐? 2차?”
걱정이나 불안을 넘어서, 순간적으로 분노가 울컥 치솟아 올랐다.
“2차라니?”
“형부도 남자니까 대충 아시잖아요. 어디 좋은 데라도 데려가서 어떻게 한번 해보려는 수작이겠죠?”
“그, 그런 건 절대 안 돼.”
“글쎄요? 그건 제가 분위기 봐서 판단할 문제구요. 호호.”
“아니, 처제! 잠깐만.”
처제는 당황하는 나를 무시하며 문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처제가 가버리고, 나는 멍청하게 홀로 남아 반찬거리들을 정리했다. 정신이 온통 딴 데 팔려있어서 결국 그 와중에 유리그릇 하나를 깨버리고 말았다.
“젠장……”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을 때쯤 결국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동식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배가 고팠지만 끼니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 새끼는 왜 또 전화를 안 받아?”
근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험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동식이에게 술을 따르는 처제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고, 그 이후엔 처제를 추행하는 동식이의 손길을 나도 모르게 상상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
“어서 오세요.”
“저기…… 미희, 있나요?”
“네?”
바에 들어서서 나는 곧장 처제를 찾았다. 어떻게든 기억을 더듬어오긴 했지만 겨우 한 번 와봤던 곳을 다시 찾아오려니 쉽지가 않아서 꽤 헤매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아, 여기서는 미영이라는 이름을 쓰는 걸로 아는데……”
“미영 씨라면 지금 예약 손님을 받고 있는데, 아마 오늘은 보기 힘드실 거예요. 다른 파트너를 연결해드릴까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 때 공교롭게도 카운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룸에서 귀에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왁자지껄하게 울리는 것이 딱 동식이의 목소리였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룸의 커튼을 옆으로 젖혔다. 당황한 카운터 직원이 뒤에서 뭐라고 소리쳤다.
“야! 김동식!”
“어? 민수 네가 왜……?”
어벙하게 대꾸하는 동식이였지만 그 와중에도 손이 처제의 다리를 더듬고 있었다. 짧은 치마 밑으로 쭉 뻗은 허벅지에 녀석의 손이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니 속에서 불길이 활활 일어났다.
“이리 나와, 자식아! 전화는 왜 안 받고 지랄이야?”
“야, 너…… 너 왜 이러냐?”
“네가 건들고 있는 여자가 내 처제다, 이 새끼야!”
“뭐?”
얼빠진 동식이의 얼굴을 뒤로하고, 나는 처제의 얼굴을 보았다. 처제는 당황하지도 않고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문득 그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손님, 무슨 용건이세요?”
“처제…… 자꾸 이럴 거야?”
“처제라니요?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은데요.”
그러는 사이에 내 뒤로 카운터의 여직원이 다가왔다. 그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손님, 가게에서 소란을 피우시면 안 됩니다. 저희 직원에게 용무라도 있으신지?”
“아니, 그게 아니라! 여기 이 아가씨가 내……”
문득 소매를 잡아끄는 손길을 느꼈다. 돌아보니 처제가 눈앞에 서 있었다.
“…….”
얼굴을 마주한 그 순간, 처제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바람을 들어줄 마음이 없다면 더 이상 참견하지도 말라는 의사를 그녀는 내게 분명히 전한 것이었다.
“여기 이 아가씨가…… 내, 내 애인입니다. 그러니 잠시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네?”
여직원은 동식이와 마찬가지로 순간 얼빠진 얼굴이 되었다. 나조차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처제의 반응이었다. 처제는 내가 그렇게 억지로 씹어뱉자마자 활짝 웃으며 여직원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실장님! 이 사람 내 애인 맞아요. 별 일 아니니까 잠깐 나갔다올게요.”
“아니, 미영아…… 그래도……”
실장이라 불린 여자가 당황하여 우물거렸지만, 처제는 막무가내로 내 손을 잡아끌었다.
*
“호호, 정말 죄송해요. 오늘 술값은 그냥 제 급여에서 뺄게요.”
“아, 아니…… 나야말로…… 제수씨 동생인 것도 모르고……”
처제는 동식이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내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동식이는 펄쩍 뛰며 기겁을 했다. 왜 처음부터 얘길 하지 않았느냐는 녀석의 질문에 나는 그저 ‘창피해서’라는 이유를 대고 어물쩍 넘겨버렸다.
“그, 그런데 아까 애인 어쩌고 하던 건 무슨 소리야?”
“아, 그건 그냥 장난이었어요. 호호.”
동식이가 아내에게 무슨 쓸데없는 소리라도 할까봐 나는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처제는 내 대신 나서서 사태를 해명했다. 녀석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억지로 동식이를 차에 태워 돌려보냈다.
“선생님!”
동식이가 가고 나자, 처제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그녀가 나를 형부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 이 상황에서는 어떤 특별한 의미를 띄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 내 그런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아까 하신 말, 제 소원 들어주기로 결정하신 거라고 봐도 되겠죠?”
“아니, 처제…… 그게……”
이러쿵저러쿵 변명을 하려다말고 나는 그저 한숨을 푹 쉬었다.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 모를 선택을, 나는 그 순간 내리고 말았다.
“그래, 알았어. 한 달 동안 처제 애인이 되어 달라 이거지……? 도대체 그렇게 해서 처제에게 뭐가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약속 지킬 거라면 그렇게 해줄게. 됐지?”
“호호호, 좋아요! 그러면 저 그만두겠다고 얘기하고 올게요!”
“뭐? 지금 바로?”
잽싸게 가게 안으로 튀어 들어간 처제는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다시 나타났다. 가게에서 입던 옷이 아니라 평소 처제의 사복차림이었다. 설마 이렇게 곧바로 일을 그만둬버릴 줄은 몰랐기에 나는 조금 얼떨떨했다.
“처제…… 이렇게 바로 그만둬도 되는 거야?”
“괜찮아요. 가게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죠. 대신 이번 달 일한 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그, 그래도…… 이런 데서 일하다보면 그만두기 힘들다던데. 혹시 점주나 못된 사람들이 못 그만두게 해코지하고 그러지는 않아?”
“호호, 선생님. 그거 다 옛날 얘기에요. 요새 점주들은 떠나겠다는 아가씨들 절대로 붙잡지 않아요. 굳이 문제 만들면서까지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왜?”
“어차피 다시 돌아오리란 걸 알거든요. 우리 나이에 이 정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다른데 가서는 찾기 힘드니까. 그만두기 힘들다는 것도 사실은 다 그런 이유 때문이죠.”
내가 모르는 분야의 환경에 대해 처제는 잘 알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다시 한 번 미희가 더 이상 어린 시절의 그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럼…… 처제도 다시 그 일을 할 거란 뜻이야?”
“음, 그건 선생님 하는 거 봐서요. 호호!”
처제는 뭐가 그리 좋은지 차에 올라타면서 계속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보조석에 처제가 오르고, 내가 운전석에 앉는 순간 그녀가 불쑥 말했다.
“선생님!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저를 처제라고 부르면 안 돼요.”
“왜……?”
“왜라니요? 이제 한 달 동안 애인이잖아요?”
“…….”
상식적으로 본다면 얼토당토않은 관계를 처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려 하는 것 같았다. 문득 아내 생각이 나자 양식의 가책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처제에게는 언니의 존재가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저기…… 처제. 아내에게는……”
“한 달 동안은 언니 이야기도 금지에요.”
단호하게 말을 자르는 처제였지만, 내가 더 대꾸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 때문만이 아니라 그 순간 처제의 손길이 내 가슴을 더듬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운전을 하다말고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핸들을 꺾을 뻔했다.
“처, 처제…… 갑자기 뭐하는 거야.”
“내 남자가 운전하는 모습이 맘에 들어서요. 왜, 안 되나요?”
처제의 짓궂은 손길이 가슴팍을 더듬다말고 옆구리까지 쑥 들어왔다.
“처, 처제…… 장난치지 마. 위험하잖아.”
“자꾸 처제 소리를 하네요? 선생님, 혼나셔야겠네.”
상체를 건드리던 손이 아래로 내려와 벨트의 버클을 주섬주섬 풀기 시작하자 나는 그만 경악해서 외치고 말았다.
“아, 알았어! 알았어! 처제라고 안 부를 테니까 이러지 마! 사고 나겠어……”
“호호, 그러셔야죠. 그럼 우리 모처럼 담임과 제자 사이로 돌아가 볼까요? 그 때 그 시절 추억을 더듬고 싶네요.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저를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아셨죠? 선생님.”
“…….”
바지춤에 닿았던 손은 거두었지만 처제는 여전히 운전석을 향해 몸을 기울인 채로 내 옆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차마 그 시선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앞만 보고 묵묵히 운전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이 사태를 어떻게 아내에게 숨기면서 원만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다 왔어…… 내리자.”
“잠깐만요.”
문을 열고 내리려는 내 팔을 미희가 덥석 붙잡더니, 나를 조수석으로 끌어당겼다. 다음 순간 말랑한 입술의 감촉이 내 입술을 그대로 덮었다.
“흡……”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상대가 아내의 동생이라는 이성적인 판단을 떠올릴 여유조차 없었다. 순식간에 내 입술을 빨아 당긴 미희는 그 틈새로 혀를 밀어 넣어 내 입안 구석구석을 뱀처럼 훑고 다녔다.
“자, 잠깐!”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미희의 혀 놀림에 녹아내리다가,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전등이 켜지듯 이성이 돌아왔다. 나는 미희의 어깨를 붙잡고 저만치로 밀어냈다.
“처, 처제. 뭐하는 거야?”
“싫으신가요?”
“이러면 안 돼.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선생님 태도를 보아하니 역시나 이번에도 말뿐이셨나 보군요. 저 그냥 다시 가게로 돌아갈게요. 이런 식이라면 다시는 제 일에 참견하지 마세요.”
굳어진 얼굴로 보조석 문을 열고 내려 뚜벅뚜벅 걸어가는 미희를, 나는 황급히 달려가 붙잡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애인끼리 키스 정도는 당연히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정도 생각도 못하고 함부로 약속을 하셨어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해.”
그러자 미희는 방금 전까지 화를 내던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방긋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내렸던 차로 다시 돌아가 보조석에 올랐다. 속내를 알 수 없었지만 나도 덩달아 운전석에 다시 올라타고 말았다.
“선생님.”
“왜, 왜?”
“흥분하셨나요?”
“뭐……?”
나는 미희의 시선이 머무른 곳을 느끼고는 얼굴이 붉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바지 위로 불룩 솟은 텐트를 나는 감추기 위해 허둥거렸지만, 미희는 오히려 귀엽다는 듯이 까르르 웃었다.
“역시 남자들은 입보다 여기가 더 솔직한 법인가보네요.”
“아니, 잠깐…… 처제……”
“처제요?”
“아, 아니, 미희야.”
“네, 선생님.”
이러면 안 된다느니 하는 얘길 늘어놓았다간 다시 그녀가 문을 박차고 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를 머뭇거리게 하는 진짜 이유는 그러한 타의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미희의 행동을 내버려둔다면 과연 그녀가 내게 무슨 짓을 할지…… 마음 한편으론 그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차마 그녀를 제지하지 못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그런 나의 속마음을 미희가 읽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미희야……”
“그럼 어디 내 남자 물건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나?”
진땀을 흘리고 있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미희는 버클을 풀더니 바지 지퍼를 내려버렸다. 악마가 거대한 입을 벌리고 나를 집어삼키는 것처럼, 그 순간 엄청난 배덕감이 내 몸을 사로잡았다. 미희의 손길이 내 속옷을 젖히고 기어이 그 속에서 기둥 하나를 끄집어냈다.
“어머, 우리 선생님 고추 보는 건 처음이네. 반가워라, 호호호.”
“…….”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또 한편으론 뇌가 탈색되는 기묘한 흥분이 엄습했다. 미희는 한 손으로 내 기둥을 쥐고는 나를 슬그머니 올려다보았다.
“그럼 이제부터 소원을 하나하나 풀어볼까요?”
“아윽!”
귀두 끝에 따스한 점막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미희가 내 물건을 입에 물어버린 것이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나며 온몸이 덜덜 떨렸다.
‘처, 처제가…… 입으로……?’
미희는 보조석에서 몸을 깊이 숙인 채, 내 물건을 맛있는 아이스크림이라도 되는 듯이 쭉쭉 빨아댔다. 유리창 너머로 혹시나 주민들이 지나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우려는 이내 파도처럼 몰려드는 쾌감 앞에 쉽사리 지워졌다.
“아……!”
나는 처제의 오랄 애무 솜씨가 얼마나 화려한지를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내의 애무와는 아예 비교가 되질 않았다. 기둥 깊숙한 곳을 너무도 세밀하게 자극하는 그 진득한 애무 앞에 나는 이성의 끈을 그만 놓았다.
“하아…… 선생님……”
“……!”
질척한 타액 소리만 흘려내던 미희의 입에서 선생님이란 한 마디가 나왔을 때, 나는 경멸스럽게도 절정에 오르고 말았다. 도덕의 범위에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쾌감이 아래쪽에서 울컥 치밀어 올랐다.
“으…… 윽……”
튀어나간 정액이 미희의 입 안을 가득 메우는 것이 느껴졌다. 입천장에 매캐한 정액 세례가 퍼부어지는데도 미희는 여전히 내 기둥을 입에 물고 있었다.
“처, 처제…… 미안해. 얼른 뱉어……”
사정으로 인해 이성이 조금 돌아오자마자 나는 미희에게 사과를 했다. 미희와의 약속도 잊은 채 다시 그녀를 처제라고 불러버렸지만, 이번엔 다행히 내게 딴지를 걸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싱긋 웃고는 꿀꺽 하고 정액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아, 아니…… 처제……”
“헤헤.”
미희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쪼그라들었던 물건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다시 벌떡 쳐들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야릇함에 사로잡혀 있던 나를, 미희는 한차례 더 뒤흔들었다.
“우리 선생님 정액…… 이런 맛이었구나. 호호호.”
그 날 좁은 차 안에서 우리가 나눈 행위는, 누가 뭐래도 형부와 처제로서의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는 죄책감을 느끼기 이전에 이것이 다만 시작일 뿐이라는 예감을 도저히 떨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