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것은.. 고해(告解). - 1부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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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5,9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어쩌면 그것은.. 고해(告解). - 1부1장
어쩌면 그것은.. 고해(告解).우리집은 시골 촌구석이었제. 물론 그때는 진짜 큰도시 말고는 다 촌이었다. 읍내나 나가야 시멘트라 카는게 발려진 건물, 벽돌이라는 걸로 켜켜 쌓은 건물들을 구경했제, 시골은 진짜 옛날 흙집이 많았거던. 볏집을 이어가꼬 지붕에 올린 그런 작은 집이었는데, 울 아베가 할아버지의 다섯째인가 그카셨고, 위로 큰 숙부 두분은 독립운동 하시다가 돌아가愿?하고 작은 숙부랑 큰고모부 한 분은 일본놈들한테 끌리갔다 카고. 큰고모부 한 분은 목재소에서 사고로 돌아가愿? 그때는 한마디로 동네가 과부촌이 되삐린 때라, 그런가 할 수도 있지만, 우리집은 유독 과부가 많이 생는데, 마음고생만 숱하게 하시던 울 할매가 그것땜에 몇년을 끙끙 앓으시다가, 막내삼촌이 공부 잘하시가꼬 대구서 학교 다녔다시든데, 전쟁통에 연락 끊기고 막 낙동강서 떼거지로 사람 죽어나갔다 카는 소식듣고 마 돌아가뿌리愿? 나중에 전쟁 끝나고 알아보이 학도병이라꼬 끌려가신긴지, 자원하신긴지... 군번도 없고, 그 학교가 다행히 불안타고 한장짜리 기록이 남아있어가꼬 겨우 알았제. 울 아부지는 하도 집안 사내라 카믄 다 요절났으니께 할배가 전쟁 직전에 파놓은 토굴에 아배를 숨기놓고 안끌리가게 했다 카더라.
아무튼 그래가꼬 할배 손으로 남은 집이 고모 한분, 한분은 시댁에서 여태 사신다 하고, 큰백모 한분, 작은백모는 친정으로 가뿌리愿?하고, 우리 아부지, 어무이, 숙모가 계愿짹粹? 우리집은 아배가 살아계셔서 애들이 줄줄 태어났는데, 다른집은 다 하나 둘이고, 큰백모는 그나마 있던 아들 하나가 죽어가꼬, 그래가 친정으로 가신기라 하고.
내가 셋째, 큰형은 마마로 돌아가愿?카고, 둘째형도 내가 다섯살 됐을때 강물에 빠자 죽어삐고, 내가 맏이가 되어삐리쩨. 그카고, 그 문제의 넷째놈이 내랑 한살 터울로 태어나고, 그 밑으로는 나랑 네살 차이 나는 누이, 막둥이로 내랑 열네살 차이나는 막순이가 있었는기라. 아베가 꼬마장가? 니랑 같은 나이에 장가를 가셔가꼬, 큰형은 살아있었으모 쉰이 족히 넘었을끼라. 어메는, 아베보다 두살 많으셨는데, 마을사람들 이야기 들어보이, 큰형 낳고 얼굴이 피셨다 카디마. 전쟁나기 전에는 울 어메 안고 싶어서 안달난 홀애비, 남정네들이 천지였다 카고 그라더라. 물론 울 아베가 성격이 지랄맞으셔가꼬 그런 기미가 보이믄 맨날 쌈만 나고 그랬다네. 전쟁 끝나고 나서는 마을에 하나둘 남자들이 돌아왔는데, 아예 피난간다고 갔다가 안돌아온 집도 있었고, 인민군한테 싹 끌려가서 죽은 집도 있었잉께 전쟁전 보다 남자들이 한 반이 없는기라. 집집마다 모내기 몬해서 논이 남을정도고, 밭이 있어도 김맬 사람이 없어가꼬 풀밭 되삐고 몇년은 진짜 엉망 진창이었다 하더라꼬.
희안한거는 할배가 일제때 목재사업으로 돈을 좀 벌어놓으셨다 카는데, 그걸로 남편잃은 딸, 며느리 집을 사거나 지어주고 먹고 살아야 되니께 밭이랑 논도 각자 사주고 함서 그 돈을 다 쓰셨는기라. 덕분에 찢어지게 가난하진 않아서 우리집 얼라들도 학교 다니고, 내는 중학교 입학시험도 붙어놓고 그리 했제. 근데, 그때 아배가 그라시더라꼬. 집안에 손이 너무 없어가꼬 고모랑 숙모 다 굶어죽겠다꼬. 학교 안가믄 안되겠냐고.
나는 내가 맏이니께, 덤덤하게. 그래도 아쉬워가 며칠은 고민했다. 면에서는 내가 입학시험 최고로 잘봤다꼬 그리 들었는데, 동네에서 공부로 출세할 수도 있다고 사람들이 그래 칭찬해줏는데, 국교만 졸업하고 농사지으라니 아쉽기가 말로 몬했지.
나는 그때부터 집집마다 돌아댕기믄서 아배랑 농사지었다. 백모네, 고모네, 숙모네 할거 없이 나보다 나이 많은 평산이 행님이나 숙희 누부는 학교는 꿈도 못꾸고, 국민학교도 제대로 몬다니고 그랬다. 사람이 없어서. 풀을 뽑고 종일 해봐야, 여자 혼자 어찌 가족 1년 먹을께 나오겠노?
근데, 과부된 사람들이 혼자 남편 덕보고 사는 울 어매, 어지간이 안미웠겠나? 할배가 눈 시퍼렇게 뜨고 계시고, 동네에 집안 사람들 천지니께, 어디 가서 서방질도 몬하고, 그냥 수절한채로 자슥만 키우며 사니께, 한스럽고, 그 한을 어매한테 돌리는 거겠제. 말로는 표현 잘 안해도, 울어매는 어디가도 늘 찬밥취급당했다. 할배도 공정하게 대해주야 여자들끼리 안싸운다고 생각하셨는가, 일체 특별난 대접 해주신것도 없었고. 그래도 자상하고 착하고 이쁜 울 어매는 그런 마음고생 티 안내고 우리랑 아배, 할배 뒷바라지 잘 하愿? 신기하게도 내가 보기엔 고생 젤 마이 하신것 같은 울 어무이가 백모, 고모, 숙모 보다 훨씬 안늙더라. 우리 할배랑 사이 좋으시던 작은할배가 오실때마다, 여자는 남자 좆물을 받아야 병치레도 덜하고 쌩으로 안늙는다 카시믄서, 내한테만 이야기 하시고 그랬거던. 그거 때문일 수도 있고.
나는 국교 졸업할때 즈음에 자면서 좆물을 한 번 쌌는데, 내가 오줌싼 줄 알고, 어무이 한테 죄송하다 캄서 바지를 갈아입었는데, 어무이가 그거 냄새를 맡으시더니, 내를 꼭 끌어안아주시믄서 장가가도 되겠다꼬. 그래 보듬어주시더라꼬. 나는 싸놓고도 오줌인줄 알았는데, 좆물이 뭔가 듣고도 알 턱이 있나. 그때 내가 싸놓은거 함 맡아봤시머, 뭐가 다르다꼬 좀 느꼈을낀데, 그냥 끈적끈적한 오줌인줄 알았다 아이가.
내는 뙤약볕에서 종일 아배랑 일하는데, 작은놈 충곤이 걸마새끼는 지욕심 차리가꼬 중학교로 올라갔거던. 입학시험도 겨우 꼬두바리로 붙었다 카든데, 아이나 다를까 이 놈새끼는 올라가서 싸움질부터 하더라꼬. 그리고는 얼마 안가서 사고가 터진기라. 이 새끼가 큰백모님 딸, 나보다 두살이나 더 먹은 숙희누부한테 좆질을 해가꼬, 누부가 애를 가졌다 카데. 완전 쌩 난리가 났지. 할배는 이게 뭔 흉사냐꼬, 수치스러버서 집안 사람들 어째 보냐면서 손수 충고이 글마를 매질 하셨지. 그래가 선택하라 하愿? 먹고 살정도는 해줄테니까 누부랑 아무도 모르는 먼데로 가서 책임지고 살던가, 아이모, 자지를 자르던가.
근데 글마는 누부 책임도 안지고 자지도 몬자르겠다꼬. 내가 혹시 뒤지머, 지가 대를 이어야 되는거 아니냐믄서 버?제. 나는 내가 듣는데서 내가 죽을 이야기를 하니께 진짜 기가 차더라꼬. 애가 태어났는데, 일마는 누부 시집도 못가게 신세 조지놓았으니 지 자석 얼굴도 몬봤지. 딸이라 캤는데.
어매는 그때부터 내꺼를 빼주愿? 내가 한참 힘들게 일하고 오머는 달작 지근하게 소금이랑 설탕을 타가꼬 한사발 주시고는 부엌에서 내 자지를 흔들어가꼬 좆물을 빼주신기라. 나는 여자 생각을 제대로 해볼 새 없이 일만 해가꼬 숙모나 고모, 사촌누이를 보고 자지가 발딱 서도 박아봐야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몬해봤거던. 근데, 내 동생이란 놈이 그 일을 벌려놨으니 울 어매한테 쏟아지는 핍박이 더 안심했겠나? 그래서 내가 장가가기 전까지는 어무이가 혈기를 잡아주야 사단이 더 안나겠다 카심서 전심으로 내꺼를 빼주愿? 문제는 걸마였지. 이미 낙인 찍힌 놈이라 그런지 어매가 걸마는 안빼주신건지, 아이믄 나도 모르게 빼주고는 하셨는지 몰라도. 작은놈이 한참 근신하는가 싶더니 그 다음 해에 '그 일'을 터뜨린기라.
내가 늦봄에 한참 밭일하고 저녁에 왔는데, 부엌에서 뭔 신음소리 같은게 안나겠나? 나는 뭔가 하고 조심히 가서 살폈디마, 아 글쎄 이 놈새끼가 어매를 뒤에서 어매를 감싸안고 좆으로 박고 안있겠나? 어매가 벗어날라고 몸부림 치셔도 이 놈이 팔힘으로 꽉 누르더라꼬. 교복도 바지만 내리고, 헐떡헐떡함서, 어무이 가슴내놓고 막둥이 낳고 나오는 젖을 쥐어짜가매. 내는 곧장 드가서 글마 싸대기를 몇대 치고 아예 반 쥑일라꼬 덤비는데, 어무이가 말리시더라꼬.
혈기가 너무 넘쳐서 그런기라꼬, 고마 하라꼬. 나는 아배한테 말씀드린다꼬 나갈라 하는데, 어무이가 지금 그카믄 작은놈 죽는다 캄서, 비밀로 해주라 시는기라. 나는 이쁜 어매가 안그래도 집안 여자들한테 시달리는데, 더 고통받으시는거 싫어서 말을 들었지. 어무이는 그일을 겪으신 다음에는 내꺼를 시도때도 없이 빼주셨다. 사고치믄 안된다 캄서. 여자를 보호해주야 대장부로 산다카시믄서. 작은놈이 어매까지 올라타는 난봉꾼이 됐시니 내 만큼은 절대 삐뚜루지믄 안된다꼬, 또 여자 따묵고 버리는 졸장부는 되지 말라카시믄서. 장가갈때까지는 엄마가 해줄 수 있는거 다 해줄끼라 캄서. 그렇게 희생해주신기라.
충곤이 놈이 엄마를 덮친일까지 생기니께 어무이는 내한테 진짜 지극정성으로 대해주셨지. 나는 맏이고 가족땜에 공부도 더 몬하고 일만 하니께, 어무이는 마음이 아린다 카시믄서 삐뚜루 나가믄 안된다꼬, 늘 내 좆물을 뽑아주실때마다 신신당부 하시믄서. 그리고, 기빼는 만큼 보충해야 된다 하시믄서 막둥이가 먹는 젖도 물려주시고, 내 좆물이 아깝다꼬 입으로도 내 좆물을 받아서 드시고. 나는 그게 여자를 사랑하는 느낌보다 어무이를 사랑하는 느낌으로 정말 좋았는기라. 그리고 감사했고. 거의 하루 걸러 한 번씩. 일이 많아가꼬 며칠 몬하믄 한 번에 두 세 번씩 빼주셨거던.
근데, 나는 장가 가도 되긴 됐는데, 동네에 온통 집안사람들이라 근친혼이 될턱이 없으니 장가 갈 방법이 없었던기라. 그라모 멀리서 여자를 델꼬 와야되는데, 아배도 하루종일 농사고, 나도 농사고, 가을겆이 하고 나먼 겨울에는 소먹이고 집집마다 돌아다님서 짚 꼬아서 지붕에 올리고, 망가진데 고치고, 헌데 보수하고, 별의 별 잡일까지 다 다하믄서 열일곱때까지는 방법이 없었다꼬.
그라다가 내가 처음으로 마음을 동한 피 안섞인 여자가 딱 하나 있었는데, 가가 순이였다. 면에서 살았는데, 집은 그리 안넉넉한데도 중학교 안드갔나. 얼굴 처음 본 계기가 이랬다.
내도 농사만 지어가꼰 답이 안나올것 같아가꼬, 작은할배네에서 푼돈 쪼매 빌린다음에 우리 집안 장손 큰백모님네 충산이 행님이랑 면에다가 작은 청과 도매점 하나 안냈겠나. 우리가 물건들 사모으믄 면에서 트럭 갖고 있는 아제 차를 빌리가꼬 읍내에다가 갖다 팔고 그랬제. 많이는 안남아도 면에서 나오는 면에서 나오는 이런저런기 다 우리가게로 오니께 인맥도 넓어지고 좋더라꼬. 그때 엄마 따라나온 순이를 처음 봤제. 나는 그때도 이름처럼 순해보이고 이쁘장한 순이한테 가게 서랍에 사놨던 사탕이라 하는거를 한통 안줬겠나. 말도 막 지어내가꼬.
"이거 빨믄서 공부하믄 더 잘된다 카더라."
하하, 진짠지 알게 뭐꼬. 그냥 중학교 올라간다 카고, 내 그때 껏 뭔가 울렁거리는 마음이 든 여자를 본게 순이가 처음이었으니께. 일단 뭐든 좋은거 쥐어보내고 싶었던기지. 순이네 아지매가 내한테 팔고 가신 버섯들보다 사탕값이 더 비쌌는데 뭐. 근데 그때 사실 버섯은 너무 빨리 삭아가꼬 제대로 팔도 몬하는 거였거던. 그래서 그거 그냥 내가 집에 가꼬 와서 먹었다 아이가. 몇 번을 그랬다. 다른 손들 버섯은 송이 아이먼 받도 몬했지만, 순이 어매꺼는 흙이라 캐도 샀다. 내가 싹싹하이 잘해드리는거 순이 어매도 아셨는지 고생 마이 해서 거칠은 손으로 내손도 잡아주심서 순이 시집보내고 싶다꼬. 고생땜에 나이보다 주름이 많이 파이셨는데도 웃어 주시니께 참 이쁘시다 싶었지. 내를 사위로 맞아주시믄 일년 내내 흙파고, 물맞음서 하시는 그 고생, 언능 끝내드리고, 안아드리고 싶을 정도로.
내가 가게 내고 성실히 하이까 들고 내는 물건도 많아지고, 소득도 쪼매씩 늘더라꼬. 그러이 어릴때는 꿈도 못꿨던 소작도 다 주게 되고, 숙모네도 맏이가 열한살 되니까 농사 말고 여서 돈벌라 카라꼬 또 거둬가꼬 같이 일하고, 함서 고생했지.
그때는 내가 컴컴해져서 돌아오믄 어매가 온 집안을 먹여살린다꼬 대견하다고 칭찬하시믄서 몰래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정성스레 내꺼를 손으로, 입으로 빼주愿쨉? 모내기가 끝나고 부터는 얼굴이 어두버지시는 기라. 나는 와그라냐고 자꾸 여쭙는데, 아침에 나가서 밤에 들어오니까 뭘 확인할 방법도 없고 답답해 죽겠더라꼬. 어무이가 언제부터는 막 식사도 잘 못하시고, 이상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라서 충산 행님한테 가게 맡겨놓고 점심 전에 가봤다 아이가. 아배도 논일한다고 나가시고, 얼라들은 학교가서 없고, 어매만 계시니까, 가서 작정하고 여쭸지. 근데 말씀을 돌리시믄서 내꺼를 또 안빼주시나. 내가 막 몸을 벌벌 떠믄서 좆물이 나올라 카니께 입으로 내꺼를 받으실라 하는데, 좆물이 입안에 드가자 구역질을 하시믄서 그거를 도로 뱉어내시더라꼬. 이게 뭔일인가, 마이 편찮으신가 싶어서 토하신건 아니지만 등을 두드려드리고 식은땀을 닦아 드리는데, 어무이가 약간 촛점도 없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가꼬 그러시데.
"석아.. 내 곤이 아를 밴거 같다."
"뭐라꼬요!"
나는 벽돌로 대가리를 맞은것 같더라꼬.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충곤이 걸마가 봄부터 또 어무이 몸을 탐하는데, 개학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눈을 피해서 힘으로 어매를 누르고 했다 하더라고. 그리고 개학하고 나니까 횟수는 줄었는데, 한번씩 학교는 안가고 낮에 와서 빈집에 혼자 있는 어매를 홀딱 벗기고 몇번이고 좆물을 싸질렀다고. 무슨 마가 끼었는지 거의 일주일을 학교도 안가고 학교가는척 나갔다가 돌아와서 어매한테 달라붙어 보지에 박아대고, 싸재끼고, 박아대고 싸재끼고 하다보니, 애가 들어섰는데, 아배는 막둥이 낳은 이후로는 어매랑 거의 잠자리를 안하셨다꼬, 아배가 알믄 둘다 경을 칠거라고 하시믄서 우시더라꼬.
"와, 내 한테 말씀 안했는교! 흑흑, 이래될 줄 알았시먼, 글마 진즉에 싹을 잘랐시야 했는데. 흑흑흑.."
"니한테 말하모 또 너거들끼리 피를 보거나 너거 아배한테 고해가 작은애를 직일꺼 아이겠나. 작은 아도 내 배로 아파서 나은 자식인데..."
"그래도요! 아들에 아를 가지믄 백모, 고모, 숙모님이 어짜겠는교! 할배도 그렇고. 불쌍한 울어매! 엉엉~."
"곤이가 쌀라 칼때마다 몸부림 치믄서 피할라캐도, 힘이 안되이 방법이 없더라꼬. 몇번씩 며칠을 싸질르니께, 겁도 나고, 맥도 풀리고... 걱정한대로 애까지 들어서니께 그때 부터는 곤이놈이 달가들어도 체념이 되더라꼬."
"어매가 아이를 가졌는데도 좆을 들이밀든교?"
"오히려 더 좋아함서 숱하게도 쌌다... 매일, 수시로, 몇번씩 싸댔는지 세도 몬하겠다... 너거 아배한테도 미안하고, 조상들한테 죄스럽고.. 차라리 니처럼 착한 아가 아인거 알았으믄 글마 사내구실 하는거 알았을때 부터 내가 니한테 해주는거 맨치로 해주믄 이런 사단 안났을텐데... 후회하믄 머하겠노."
"어무이, 그런 말씀 마시소. 안될놈은 안되는 깁니더. 숙희누부 자빠트리서 얼라 맹근 놈이 어디 갔겠는교. 훌쩍.. 내 죕니더. 그때 부엌에서 아주 싹을 잘라놨어야 했는데. 흑흑.."
내가 처음 부엌에서 그걸 봤을때 충곤이 새끼를 얼반 직있어야 했는데, 얼마나 후회 했는지 모린다. 우리 자상하고 착하고 예쁜 울 어매를, 어떻게 그놈이!
나는 울음을 그친다음 어무이를 진정시키고, 어떻게 할지 궁리하다가 작은놈이 학교갔다 왔다믄서 돌아오자 일단은 냅다 걷어 차삔기라. 거의 얼반직이가꼬, 아작을 내는데 어매도 이번에는 안말리시더라꼬. 작은놈을 걸레짝처럼 만들고 왜 그랬냐고 추긍하고 있는데, 아부지가 돌아오신기라. 왜그러냐면서 내 뺨을 후려치시는데, 나는 사실을 말은 못하고 절마가 가겟돈을 훔쳤다고 둘러댔지.
가을 즈음에 불쌍한 울 어무이 배가 불러오자 곪았던 난리가 터져ㅄ? 아배가 어무이 배가 와 불러오냐고 묻자 충곤이 놈이 나랑 붙어서 그런것 같다고 거짓으로 이야그를 했더라꼬. 나는 뜬금없이 아부지한테 얻어 맞다가 이유를 알고 충곤이가 그런거라꼬, 어무이 잘못없고, 못말린 내가 죄라꼬, 어무이도 와서 같은 말씀 하시니까 아부지가 핏발선 눈으로 충곤이를 불러가꼬 족z지. 끝까지 지가 안그랬다 캄서 버티다가, 밤새 내랑 어매랑 큰방에 같이 앉혀놓고 아베가 충곤이를 개 패듯 패가믄서 실토하라 카니까 그라더라꼬.
"아배가 사나 구실 안해주이 어무이가 자석한테 궁디를 흔든거 아이요! 아배랑 숙모랑 고모랑 몇년을 붙은거 다 아요! 왜 내한테만 그라요!"
이 천하의 몹쓸놈이 자기 곤경을 벗어날라꼬 아부지를 팔고 어무이를 거짓말로 능욕하는데 나는 참말로 사람을 직이야 한다먼 일마를 직이야겠다 싶더라꼬. 아배가 나한테 남기신 유서에는 어매가 하도 질시받아서 힘들어하니께 당신이 그 칼 수 밖에 없었다 하심서. 하기는, 배가 부른 어매한테는 책을 묻는 말씀 한마디도 안하신게 생각나고. 울 아배가 참말로 울 어매를 사랑하니께 그러셨구나, 나는 그 유서 읽고 다시금 깨달았지.
아부지가 그 다음날 목을 매셨는데, 유서가 어매한테, 할배한테, 내한테. 세장을 쓰셨더라꼬. 어매한테나 할배한테는 뭐라 쓰셨는지는 몰라도, 나는 남은 식솔들 잘 부탁한다 하심서... 충곤이 이 씹어먹을 자슥은 집을 나가 삐리고, 어무이도 할배한테 쫓겨나셨는데, 내는 할배 몰래 읍내에 방을 잡아드리고 충산이 행님이랑 가게를 꾸리믄서 농사의 속박을 벗어난다고 스무살까지 그래 살았지....
근데 이 충곤이 새끼가 돌아온기라...
장사를 열심히 함서 충산이 행님과 나는 장가도 안가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행님은 어쩔랑가 몰랐지만 나는 하루라도 빨리 순이를 품고 싶었는데, 순이가 영특해가 고등학교 드간다꼬 하는데 말리진 몬하겠고, 기다린다 캤지. 자주 가게를 들렀다가 가는데 내가 하루는 물건팔고 온다고 면허도 따기 전부터 빌린 트럭을 몰고 순이를 싣고 읍내로 나가가꼬 맛난것도 사주고, 물건 넘긴 다음에는 어무이 갖다 드리라꼬 겨울 초입에 장모님한테 드리는 손이랑 얼굴에 바르는 크림이랑 따숩은 겨울옷도 하나사서 순이가 쓸 모자랑 장갑도 사가꼬 집으로 갖다 드리고 그리 했제. 그라믄서 입버릇처럼 늘 그랬 말해줏지.
"세상이 다 니를 손가락질 하는 날이 와도 나는 니 지킬끼다. 세상에서 우리 둘이 살아 있는 동안은 내가 니 행복하게 해줄 모든거를 찾아줄끼다."
사실, 홀어머니랑 사는 순이는 중학교도 온전히 못다닐 처지였지마는 그 뒷바라지는 내가 다 해준거라서, 고등학교까지 가게 된 순이도 늘 나에게 마음의 빚이나 고마움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었겠나?
그런데, 스무살이 되서 나도 운전면허라는걸 따게 되고, 장사도 번창까진 아니지만 자리가 잡혀서 우리 집안 입에 풀칠하는게 아무 문제가 없게 되었을때, 성격은 우악스러버도 자식들 굶지않게 젊은날 일구신거 아낌없이 나나주고, 돌봐주신 울 할아배가 박한 아들복과 집안 안에서 상피가 이어지자 홧병을 몇년째 앓다가 돌아가시삣다.
그때 충곤이 씹어먹을 놈이 슬금슬금 기어들어왔지. 들어오던날 내랑 대판 엎치락 뒷치락 싸우는데, 천하의 몹쓸 죄를 지어서 어매를 쫓겨나게 하고 아배랑 할 배를 돌아가시게 하고, 사촌 누부 신세까정 망친놈이 잠자코 쳐맞고 있어도 시원찮을 판에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댐비더라꼬. 그리고 자기 직일꺼 아이먼 못 쫓아낸다 캄서, 그리고 참말로 무시무시한 선언을 하더라꼬.
"행님, 니는 니대로 착하게 사소. 나는 내가 난대로 살끼라. 숙모, 고모, 누부 다 따묵고 내 아 낳게 해가꼬 살끼라."
대놓고 패륜을 선언하는 이놈에게 나는 참말 진지하게 칼을 꽂아서 내를 희생해서 집안을 구해야 하나, 아이모, 이미 콩가루 된 우리집, 얼라들이랑 어매라도 잘 보살피가 건사해야 되나를 놓고 고민해야만 했다 아이가. 일마는 분명히 지가 말한대로, 그 이상으로 할 놈이었으니까.
중학교 3학년을 못마치고 짤린놈이 농사라도 지어야지 별게 없었는데, 아배한테 별반 배운것도 없고, 내가 뭐 이쁘다고 일마한테 뭘 가르쳐줄건 눈꼽만치도 없으니, 내를 따라 댕기기는 하는데 머릿속에는 온통 여자 따묵을 생각밖에 없었겠지.
하루는 고모집에 가서 얼라가 없는, 젊어서 수절당한 울 고모 집이 사나가 없으니께 이거저거 손볼께 많아서 가서 집을 봐드리는데, 충곤이는 방에서 고모랑 뒹굴고 있더라꼬. 훔쳐볼라꼬 본것도 아이고, 내가 일하는거 뻔히 알믄서 대놓고 하길래, 기가 차서 보고 이야기도 들어봤지.
"헉, 헉, 고모요, 헉, 헉, 아배보다 내가 덜, 헉,헉, 가책이다 아이요. 헉, 헉, 후윽, 후우, 글고 아도 없는데 이제 좀 나으소. 아우, 좋다, 지금 처럼 계속 보지로 쪼아 주믄 내가 갖게 해드리께요."
나는 창가에서 듣다가 귀가 간지러버가 당장 방으로 갔지. 근데 나도 그렇게 뒹구는 고모랑 충곤이 놈을 보니 화도 나는데 왜 자꼬 자지가 서는지 통제가 안되더라꼬. 그래도 기가 차는 마음에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고는 싶어서 대놓고 물었지.
"언제부터 이라는긴데?"
"아흑, 하악, 석아, 내가 갈보라서 하악, 하악, 이카는게 아이다. 하악."
"헉, 헉, 이런 씨발, 으읔! 싼다! 으읔! 내 좆물 받으소!"
-탁, 탁, 퍽, 퍽, 퍽!
이 짐승은 내가 보는자리에서 고모 보지에 좆을 밖고 으스대듯 내한테 얼굴을 디밀더라꼬.
"후우... 행님 보는데서 하이까 더 직이네. 울 고모 보지가 쪼매 쫄깃쫄깃하요. 행님도 해보라매."
"이 새끼야, 니 같은 쓰레기랑 내랑 같나?"
"육갑하네. 행님은 말은 그래 함서 바지는 부풀어가꼬. 위선떨지 마라. 그카고 고모가 아를 낳아야지 언제까정 혼자 지내게 둘끼고? 행님 니가 불효인건 생각 안하나?"
"말 한마디만 더 씨부리봐라."
짐승이 나가고, 나는 옷을 추스리는 고모에게 재차 자초지종을 물었지. 아배가 돌아가시기 몇년전, 명절에 울 어매한테 고모가 생각도 안나는 되도 않는 걸로 시비를 걸었던 적이 있었다 카더라꼬. 아배는 누부인 고모를 붙잡고, 도대체 와그라냐고, 이거 몬해서 그렇냐고, 그렇게 밤을 보냈단다. 근데 아닌게 아니었던 기라. 고모도 모르게 태도가 누그러지고 생시비는 안걸게 되는걸 보이까네 아부지도 홧김이었지만, 일을 치르고 나자 오히려 측은해함서 종종 와서 밤을 보냈다 캄서.
근데 문제는 저 짐승이 중학교 입학을 앞뒀던 늦겨울에 고모집에 아배가 드가시는걸 보고 아배가 나가자 고모를 겁박해서 자기 좆도 박아넣었다는거 아이겠나. 두 번이었지만, 할배하고 온 동네에 퍼뜨린다꼬 겁박하는 놈을 어찌 이길 방법이 없어서 하는대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꼬.
이후로도 한달에 한번 두번 씩 와서 지 마음대로 박아대고 가고 그랬다 카는데, 임신은 어째 안됐냐꼬 하니, 자기도 어째 애가 생기는지는 들어서 아니까, 충곤이 쌀라하는 낌새가 보이먼 바로 빼서 입안에 싸넣게 했다 카심서. 우리 아배가 돌아가신 후에는 충곤이 고모집에도 몇달 있다가 읍내 양아치 친구들랑 어울림서 종종 왔다 카더라꼬. 고모는 조카 얼라 가?다꼬 손가락질 받을까봐 최대한 조심해가 지금껏 흉사가 안생긴기라꼬. 그리고 우셨다. 수치심인지, 한인지 몰라도, 나는 어쨌든 울어매 고롭히는 미운 고모였는데, 이런 이야기 들으니께 안쓰러버가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그리했지.
"고모요, 진짜 절마가 고모 아 가지게 하믄 우짤긴교?"
"흐윽.. 내사 방법이 있나. 자꾸 와서 싸질러대믄 생기긋지. 그라믄 이 동네에서는 다 사는기라.. 흑흑... 내는 우짜믄 좋노, 석아.."
나는 고모 집과 땅을 죄다 처분해서 문경으로 가셔서 식당하고 사시믄 어떻냐고 했디만, 내 뒷통수를 치는 말씀을 하시는게 아이겠나?
"근데, 석아... 내가 남자 좆맛을 모리고 가먼 그럭저럭 살겠는데, 저 패륜아 놈 좆이라도 좆은 좆이라서 내가.. 참아낼 자신이 안선다."
이미, 다시 깨워진 고모의 감각이 발이 못떨어지게 막는다는걸 깨닫고는 내 가슴을 쳤제.
"아니, 그란다꼬 저 짐승의 아를 가질끼라요?"
"그라모 안되지만, 내는 참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어서 그냥 콱 죽고접다. 엉엉~"
다시 통곡을 시작하시는 고모에게 내가 당장 뭐라 해드릴 말이 없었다. 그래도 결정은 해야 했다.
"고모! 내는 믿을 수 있겠소?"
"충석이 말은 내가 믿제."
"그라모, 일단 짐 싸이소. 간단하게. 돈되는것만 챙기시소. 그리고 고모 그것도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드리께요. 나만 믿고 따라오이소. 오늘 밤에 모시러 올테니께 준비하이소."
그렇게 고모를 그 짐승의 손에서 구출하는 작전을 시작했지. 그리고 직감으로 이미 백모, 숙모에게도 마수가 뻗혀있거나 뻗고 있을 줄 감잡고 냅다 달려간기라.
"백모님요, 접니다. 충석이."
"와 안들어오고 불러쌓노? 어서 드가자."
"누부 있는교?"
"하모, 내랑 같이 있제."
"그라모 밖에서 이야기 하입시더."
백모님께 다 알고 왔다캄서 약간의 겁박조로 여쭈니 역시나 실토 하시더라꼬.
"그게 아이고 석아. 너거 아빠랑 일은 내도 미안하지마는 충근이 놈은 내가 원해서 당하는게 아이다."
백모는 딸인 숙희누나가 아를 가지던 그 때 작은조카랑 방에서 뒹구는걸 보고 드가서 호통을 치셨다 카데. 근데. 눈이 뒤집힌 충곤이는 백모도 자빠트린기라. 충산 행님도 없고 겁에 질린 숙희누부는 덜덜 떨고 있고, 딸이 보는 자리에서 백모는 두번이나 당한기라. 숙희누나가 충곤이 아를 가진게 알려지기 전까지는 매일같이 와서 백모가 보던 말던 숙희누나를 탐했다 캄서.
충곤이가 개처럼 두들겨 맞고 백모네 접근을 못하게 되고 숙희누나가 몸을 푼 다음 몇해는 조용했는데, 울 아배 돌아가신 이후에는 종종 와서 숙희누나도 건디리고, 자기도 건디린다 캄서, 무슨 양아치 친구란 놈도 달고 와서 한방에서 백모랑 숙희를 한번씩 품고 간 적도 몇번이라고 토로하시더라꼬.
나는 정말 화가 머리 꼭디까지 차는데도, 칼로 쑤시가 직일 수도 없고 충곤이가 미워서 내가 다 병이 날정도로 속이 뒤틀리더라꼬. 어디 양아치까지 들여서 누부랑 백모를 돌리믄서 유린하고... 내는 참.. 바보였구나... 자책까지 드는기라. 가게 돌본다고 집안도 제대로 못챙기고.
"큰행님은 아요?"
"알모, 이래 당하고 있겄나?"
"근데 와 말 안하요?"
"충곤이 걸마, 인간 말종 됐다 아이가. 읍내에서는 유명하다 카데. 양아치나 갱찰서장 아들래미 같은 놈들이랑 붙어서 칼도 쓰고 그란다꼬 소문이 흉흉하다. 충산이도 끽하믄 칼로 담가뿐다 캄서, 얼마나 겁주는데."
재앙이 따로 없더라꼬. 아니, 충곤이 그놈이 재앙이지. 움직이는 폭력이고 마귀지.
나는 다른 생각할 필요도 못느꼈다. 온 가족이 그놈 손에 놀아나고 있시먼, 문경이 아니라 사람 많은 곳이 글마가 찾기도 어렵고 실수로라도 마주치지 않겠다 싶어서 목적지를 대구로 정했다. 그리고 당장 이사할 준비 하라캤다. 몰래. 왠만한 짐은 버리고 가도 되니까네, 돈되는것만 챙기서 야반도주 하는걸로. 고모도 같이. 이제 숙모만 챙겨 모시믄 되겠다 싶어 또 냅다 달지.
"숙모님요, 저라요. 석이."
숙모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여쭈자 아니나 다를까, 아배가 돌아가신 이후에 벌컥 와서 겁탈하고, 종종 자주 찾아오고 있다고 했다. 안그래도 도망갈라꼬 했다꼬. 안그래도 하나 있는 아들, 중학교도 못보낸 아들이랑 어디 가든 먹고 살수는 있지 않겠나 했다시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속이 이래 하나같이 다 썩고 있었다니. 악마도 그런 악마가 없었다.
"어제 오더니 기어코 안에다가 싸삐더라. 미친놈처럼, 내가 자기 새끼를 가져야 된다캄서. 무서버 죽겄다, 석아."
"걱정마이소. 오늘 밤에 무조건 가는 깁니더. 곧 충학이 오믄 간단하게 짐 싸이소. 안올끼지만 살 수 있는건 다 두고, 돈되는거랑 중요한거만 몇 보따리만 챙기시소. 그리고 밤중에 데빌러 올테니까 일단 편하게 주무시소."
하아, 나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제. 어른들은 남자가 없시니 죄다 그놈한테 유린당하고 있었고, 이놈은 읍내 양아치들까지 등에 업고 언제든 이미 망가진 우리집을 흔적도 없이 가루로 만들 준비가 된것 같았던기라. 다행히 집에 오니 충곤이 놈은 없고 막순이만 있어서 조용히 숨겨놓은 현금다발과 문서따위를 챙기고 막순이를 들쳐업고 백모님댁으로 다시 달린기라. 나는 그때만큼은 내가 죄지은것도 아인데 무섭더라꼬. 우리 집안 식구 전체가 글마한테 쫓기는거 같았으니까. 아니, 사실이 그랬고.
백모님댁에 닿으니 마침 충산이 행님도 가게일 마치고 와 있었는데, 숙희누부랑 막순이를 같이 있게 하고 나는 백모랑 행님을 행님방으로 들게 해서 자초지종을 다시 충산이 행님한테 설명하고 작전을 짤라꼬 했지. 근데 충산이 행님도 즈그 엄마가 겁탈당하고 그런 수모를 겪은걸 알게 되니까 사람이 미쳐삐더라꼬.
나는 껴안고 말리믄서, 나중에 죽이더라도 당장은 피해야 된다꼬 사정사정했다 아이가... 병역도 미뤄가매 악착같이 내랑 일군 가게는 차치하더라도 자기가 지키려고 그때껏 고생한게 한이 맺히는 것 같았는데, 나는 오죽했겠노. 행님한테도 그런 심정을 쏟아낸기라. 그렇게 우리는 부둥켜서 울다가, 밤이 새기 전에 대구로 뜨는걸로 합의하고 행님 자전거를 몰고 면으로 달리가서 트럭을 빌리가 온기라. 나도 면허를 땄시니께.
그렇게 도둑이사를 안했나. 밤공기가 쌀쌀할까봐 마지막으로 들른 숙모집에서 이불이란 이불 다 꺼내서 뒷칸에 깔고, 덮고 있게 하고, 나는 마지막으로 울 어매 계신곳에 가서 울어매랑 막내동생이라 해야될지, 조카라 해야될지 알 수 없는 꼬맹이를 태우고 무작정 대구로 달려온기라.
대구... 우리 집안에서는 피난처 같은 곳이었는기라.
여인숙을 잡아가 짐옮기고 어른들을 각방으로 모시고, 나는 어매랑 동생들이랑 하룻밤 잤다. 그리고 가게는 행님이 정리하고 오기로 하고 차를 몰고 나섰고, 내는 일단 가지고 있는 돈들을 모아보고 어른들이랑 궁리를 했지. 그때만큼은 그동안 울어매한테 흉하게 굴던 여인들이 아이고, 친자매같더라꼬. 아니, 실은 내가 그 자리에서 충곤이의 행적을 다 밝혀서 그런지도 모린다. 다들 통곡하고 울고 부둥켜 우시먼서 우리가 왜 이리 기구하냐꼬 하시는데, 그때 진정한 가족애나 동병상련 같은걸 안느끼셨나 싶다.
돈이 썩 충분하지가 안아가꼬 결국 대구 변두리에 집을 얻어야되나, 같이 살아야 되나 아이머, 쪼까 돈이 더 들어도 흩어져 있어야 되나, 나혼자 고민하다가 결국 또 어른들이랑 머리를 맞댔지.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결론은 당장은 남자라고는 셋뿐이고 그나마 충학이는 나이가 어리니까, 고모 역시 혼자라는 이유들 덕에 대가족이 모여사는걸로 결론이 내려진기라. 근데 사흘째가 되도, 나흘째가 되도, 행님이 안오더라꼬.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어가꼬 일단 기다리는동안 계약한 집으로 이사함서 여인숙에 쪽지를 남겼지.
이사를 널찍한방 세개 딸린 집으로 얻어서 갔는데, 백모의 걱정이 점점 커지는기라. 내는 일단 진정시켜드리고 버스타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가는김에 순이도 데리고 올라고 하는 생각이었는기라. 근데 가게가 정리는 커녕 그대로 있는거 아이겠나. 도매점이었으니께 애초에 물건이 남아있는건 얼마 없었는데, 문제는 행님이 어디로 갔냐는거였제. 나는 불안한 마음에 일단 트럭을 빌린 오씨 아저씨네는 못가고, 여기저기 경찰서를 직접 찾아가고 전화도 하고 했는데, 설마 해서 교통사고가 있었는지를 알아봐달라꼬 조회하다 보이께네 아이나 다를까 충돌사고가 있었는기라. 운전자 전원 사망이라꼬... 트럭운전자가 신원미상이라꼬...
하늘이 무너지는기라... 장사한다꼬 장가도 미루고, 방위로 빠져도 장사는 어차피 못돌보니께 최대한 키워놓고 가겠담서 병무청에 서류도 내고 함서 일만하던 우리 충산이 행님이 어이없이 하늘로 간기 하도 허탈해서 눈물은 안나오고 한 열끼니 굶은것처럼 배가 휑한기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는기라.
일단 이사한 집으로 기다리라꼬 전보를 치고 순이를 잠깐 만나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행님 시체를 찾아서 돈들여서 대구로 옮다. 우리끼리지만 초상은 치러야 하니께. 백모는 충곤이 땜에 인생 조?다 하시믄서 얼마나 통곡하시는지. 나도 죄스러버서 얼마나 울었는지. 몇 남도 않은 우리 가족이 다 눈물바다가 되서 충곤이 행님을 대구 외곽에다가 묻었는데 산주인이 달려와서 시비를 붙였지만 나는 몇년만 있다가 이장하겠다며, 비용을 어느정도만 치르고 내려왔다 아이가... 사나이 세 번 운다카는데 나는 그때 평생 울꺼 다 운거 같더라꼬. 절망의 끝자락에서 의지되던 피붙이가 또 갔이니께.
나는 일단 남은 돈으로 월세로 나온 가게를 얻었는데, 집기를 사고 어쩌니 당장 뭘 먹을 돈조차 없었져서 다시 고향으로 가서 가게를 오씨 아저씨한테 드리고 차액을 조금 받은 다음 시골 집도 내놓은기라. 그리고 순이를 데리러 갔는데, 이게 뭔일이겠노..
순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을 맞춰서 갔는데 알고보니까 며칠 학교를 못갔다 카는기라. 얼굴은 여기저기 맞았는지 붓고 긁힌 자국이 있고 팔도 멍투성이였는데, 순이 어매가 나를 보시더니 통곡을 하시더라꼬.
"아이고!!! 김서방, 우리 딸이 몹쓸짓 당해가꼬 우야노! 미안해서 우야노~! 어엉엉!"
순간 또 짚이는게 있어가꼬 꼭지가 돌아삐는데, 당장 눈앞에서 엎드려서 통곡하시는 순이 어매, 내 예비 장모를 진정시켜드릴라꼬 안아드리고 울음을 멈추실때까정 그렇게 있었다 아이가. 순이는 말없이 내를 바라보며 울고만 있었고.
일단 자초지종을 듣고 움직여야겠다 싶어가꼬, 진정된 순이 어매에게 배고프다고 밥좀 주시라꼬 말씀드려가 부엌으로 가시게 한다음에 순이를 쓰다듬으먼서 물어봤지.
"마이 아팠디나?"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데, 나는 무신일인가 듣기도 전에 못지켜줬다는 죄책감땜에 눈물이 막 쏟아지는데, 끄억거리면서 참고 순이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우리가 몽땅 떠난걸 알자 충곤이는 발광을 하면서 읍내를 들쑤시다가 순이가 내 정인이라는걸 알아내고 학교에서 나오는 순이를 끌고 갔다 캤다. 어딘지 모르는 집으로 끌고 가더니 사내놈 여럿이서 자기를 겁간하더란다. 충곤이놈은 특히 때려가면서, 같이 있는 놈들한테 꼭 보지 안에다가 싸라고 몇번이나 이야기 함서. 소리 질러도 맞고 몸부림 쳐도 맞으니까 반항은 포기하고 하는대로 내비러 뒀다캄서. 몇번이나 달가들던지 수도 못 세겠고, 치욕스러운 욕지거리에 손찌검, 그리고 그놈들 체액으로 온몸이 다 아픈 느낌이었단다. 나 때문에 그런담서, 내 여자. 김충석이 여자니까 걸레로 만들고 아도 못맹글게 해야겠다믄서. 첫날은 네명이서 돌아가며 하다가 그 다음날은 일곱명이 들어왔고, 풀려나던 셋째날은 몇명이었는지도 모르겠었담서. 까무룩, 의식을 잃었는데 깨어보니까 집 앞이었더라고, 순이어매가 발견하고 통곡을 하면서 안으로 들여와서 이제 사흘째 쉬고 있는거라고... 그리고는 울면서 그랬다.
"오빠야... 미안타... 내 시집도 못갔는데 몸 더럽혀가 너무 미안타. 엉엉~"
"나 때문인데 니가 왜 미안노. 흑흑... 내가 미안타! 흑흑.."
그렇게 나는 만신창이가 된 순이를 며칠동안 보살피다가 대구로 돌아갔다. 순이어매도 미치광이 충곤이놈이 어찌할지 몰라 같이 짐을 싸서 손잡고 같이 갔다. 몇년 안된 사이에 손이 더 거칠어가꼬 마음이 싸하더라꼬.
나는 정말 철천지 원수. 남이었으면 진즉에 때려 직이고 말았을텐데, 지금은 때려직여도 이미 나에게 지워진 가족의 생계가 극한으로 무거워진 지경이라, 그런 방법은 엄두도 못내고 일단 살아내기로 했지. 그때, 눈에서 진짜로 피눈물이 나더라꼬. 눈물이 진짜로 안빨갛겠나. 나땜에 몸망치고 신세망친 똑똑한 순이는 지때문에 피눈물 흘리는거를 아는가 만신창이 된 지도 울면서 내 피눈물을 닦아주더라꼬.
나는 막순이를 전학시키고 작은할배댁으로 가서 돈을 꾸는데, 청과점한다고 빌렸다가 지난해가 이자까지 쳐서 갚은걸 대견하게 여기시믄서 먼저 빌렸던 액수의 두배를 덜컥 빌려주愿쨉? 그때부터는 그나마 일이 좀 수월해졌다. 어른들은 다 여자들이지만 힘을 모아서 식당을 꾸려가고, 나는 리어카를 사가꼬 번화가에서 노점을 시작했는데, 경험이 있어서 물건도 잘골라오고 해가 장사도 잘되고 돈도 쏠쏠하게 벌리는기라. 소매든 도매든 확실히 안남기고 잘만 팔리모 쏠쏠하더라꼬.
대구로 내려온지 두달이 지나고, 식당도 지금 생각하믄 개업빨이어서 더 잘됐겠지마는, 쌩쌩한 아줌마들이 바글바글 하니께 총각, 아저씨 손님들로 문전성시였고, 나도 충학이랑 리어카 끌면서 파는 과일장사가 제법 자리가 잡혀갔다. 드문드문 양아치들이 자릿세 내라꼬 오기는 했지만 나도 도매점 함서 깨달은 양아치 대응방법은, 힘있는 놈 한놈안 잡으라는 기였다. 고향에서야 후배놈들, 선배 엮여있으니까 그나마도 수월했지만, 대구는 대도시라 오로지 힘만으로 확인해야했기 때문에, 가장 좋은건 붙어보는 거라고 판단한기라..
그렇게 대구 건달인줄 알았던, 상호 아제를 만나게 되었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