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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을 해치우다 - 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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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그녀들을 해치우다 - 12부

그녀들을 해치우다"용 타." "뭔 소리래?" "그냥, 나같으면, 내가 너 같은 환경이었으면 하고 생각하니까 니가 좀 장하다 싶어서." "아니야. 그냥 도망치면서 살았어. 어떻게 해. 도리가 없잖아. 내가 나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가족이잖아. 난 사람이서 말이야. 형처럼 상황을 이용하면서 살 자신이 없었어." "어머니는 어떻게 되셨냐?" "역시 형이네. 촉이 좋아. 엄마는 대전에 있는 정신병동에 계셔. 신도들 중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 나중에 알고봤더니 역시나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서 이해를 하지 못하면서도 억지로 아들과 섹스를 한 거였더라고. 충격이 너무 커서, 정신이 분리되셨지. 지금은 편안하셔."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표현을 잘 못하겠네." "다행이시지. 아버지를 따르지 못하면 결국엔 죽는 것 밖엔 수가 없으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됐다. 형. 그거 하나만 딱 정해. 사라는 여기까지인거야. 형이 포기를 못하겠다면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무슨 수?" "형이랑 나, 아버지만 볼 수 있는 파일을 보여줄게. 내 예상인데, 100퍼센트 있을 거야." "알았다. 우울한데, 글이나 써제끼자. 그나저나 우작가랑 경희씨는 잘 있나 모르겠네." "그 빌어먹을 년들은 왜? 난 여자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만큼 여자를 아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그 년들은 빌어먹을 년들이라고 생각해. 지들이 뭐가 잘났다고." "됐어. 너야 말로, 너랑 무슨 원수를 진 것도 아니고, 그럴수도 있지. 우리 사회에서 술집 여자를 가장 차별하는 사람들은 바로 배우고 못생긴 여자들이거든. 못생겼다는 컴플렉스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해. 그걸로 자존심을 세우려고 하지. 하지만, 그런걸로는 채우지 못하는 욕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계층에 대한 무분별한 적의가 생기는 것은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제대로 배우지 않고, 인생을 낭비한 가장 한심한 족속들이 선택하는 것이 술집여자라는 거지." "형은, 왜 그렇게 말을 잘하는 거야. 무슨 학원이라도 다녀?" "연습이지. 부단한." 실제로 그렇다. 어떤 일을 잘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조건은 역시 꾸준한 연습밖에는 없다. 물론, 정연이와 철기산 이은주의 예를 봐서도 어떤 일에서든 재능이 필요하지만, 최상급, 일류가 아닌 이류 정도의 솜씨는 언제든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샐제로 난 노인과도 어린 아이와도 모두 즐거운 대화가 가능하다. 난 뽀로로의 친구들을 모두 알고 있으며, 적어도 젊은 남자라면 알 길이 없는 아침드라마의 줄거리와 캐릭터를 알고 있다. 내가 테리우스와 잘 지낼 수 있는 것도, 내가 테리우스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독일제 스포츠카라던가, 스테디 셀러인 그의 책들이 가지는 무협계에서의 위치같은 것들을 세상의 다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역시 상대방에 대해서 잘 아는 것 이상의 것이 없다. 누구에게나 피하고 싶은 대화 주제도 있는 것이고, 누구나 신이나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주제가 있다. 중년의 어부에겐 급감한 고등어의 어획량에 대해서 묻는 게 아니라, 삶의 고단함을 토로하면서 씹을 수 있는 옛추억이나, 선창가의 작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테리우스와 2차 작업에 들어갔다. 그 때까지 쓴 서로의 글을 바꿔서 읽어보고, 감상과 고칠 점, 문체같은 것을 점검을 하고선, 테리우스는 곧바로 주인공을 급전직하시키는 집필에 들어갔으며, 난 테리우스가 작업을 할 2단원의 세부 플롯을 짜기 시작했다. 글을 발전시키고 구조를 세분화시켜 디테일을 살리는 것은 내 특기여서, 난 마음껏 공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꽤나 즐겁게 작업을 했다. 작업을 하다가 테리우스의 컴퓨터를 슬쩍 봤더니, 테리우스가 시스타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하긴, 나도 작업이 잘 되지 않을 때는 소녀시대나 시크릿의 힘을 빌리는 편이다. 뭔가 반짝이는 것을 보면 영감이 생기니까. 무심하게 시스타 뮤직비디오를 한 편 다 본 테리우스가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저녁시간이 다되었는데, 문자가 와서 봤더니, 고경희였다. 어제의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희씨의 문자에 상당히 설레었다. 핸드폰을 열어서, 학인했더니, 테리우스와 같이 저녁을 할 수 없겠냐는 문자였다. 가벼운 언행과 거친 말과는 다르게 테리우스는 중박이상을 항상 보장하는 회사측에서 매번 계약을 조르는 중견작가다. 기획팀 직원인 고경희의 입장에선 짝사랑하는 선배인 나와 중견작가인 테리우스 둘 모두에게 자신의 가벼운 입으로 상처를 준 일이 부담이 되었을 터였다. 난 테리우스에게 전화기를 보여줬다. "경희씨가, 너 데리고 나오라는데, 우작가랑 어제 일 사과도 하고, 저녁 산다고." "됐어. 밥이 없어서 못 먹나. 아, 아니다. 간다고 해."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냐?" "보여주게. 사라가 어떤 여자인지, 데리고 나가도 되잖아. 사라도 이층에 있고, 좋다고 할 텐데. 데리고 가자." "그게 뭐냐. 사라가 어딜 가든지, 제대로 식사나 되겠냐. 그렇게 인기가 있다는데, 그리고 사라는 우리 대화에 전혀 낄 수가 없잖아. 걔가 무슨 무협에 대해서 아는 것도 아니고." "아냐. 사라도 형이랑 비슷한 면이 있어. 누구든 잘 맞춘다고. 서비스 업계에서 그래도 탑클래스였잖아. 어디가든 클래스는 영원한 법이야. 형도 알잖아. 비참함을 좀 느껴보라고 해. 사라 옆에 있으면 무슨 시든 무청같은 걸. 축 늘어지게 보일거야. 사라는 지금도 탱글탱글하니까 말이야." 좋은 생각같지는 않았지만, 사라가 진짜로 좋은 여자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사라를 깨워, 저녁을 먹으러 갈건데, 다른 사람들이 합석을 해도 좋으냐고 물었다. 누구냐고 묻기에, 같은 출판사 사람이라니까 오히려 좋아해서, 사라를 이미 마음속에서는 포기해버린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경희씨에게도 사라와 함께 가도 괜찮은지를 물었는데, 경희씨는 상당희 놀라면서도 사라가 어떤 여자인지를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전혀 흐트러지는 모습이 없는 사라는 잘 만들어놓은 모래성처럼 단정했다. 반바지 차림인 테리우스는 대강 모자를 모자를 눌러쓰기만 했는데도 멋있어 보였다. 잘생긴 테리우스와 예쁜 사라는 잘 어울려보였다. 그냥 평범한 남자인 내가 중간에 있으니, 뭔가 부조화하게 느껴졌다. 나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어지간히 강한 내가 아니었다면 자괴감이 들 수도 있는 쓰리샷이었다. 별장을 나와 차에 타려는데, 테리우스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조수석을 꿰찼다. 사라가 뒷좌석에 타면서 뭔가 의아한 눈초리로 테리우스를 바라봤는데, 테리우스는 모른척함으로써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당황한 사라가 울것같은 표정을 짓자 테리우스가 무심하게 말했다. "저녁 별로면 그냥, 나오자. 슈퍼 들러서 카레나 사올까. 그거 해먹을까. 그 때 그거 있잖아. 야채국물로 만든 카레 말이야." "기억하고 있었어요?" "형이랑 내도록 그 이야기를 했었어. 맛있었다고. 그리고 형이 말해줬을 리가 없으니까 내가 말할게. 우리가 만날 그 두사람, 한 명은 출판사 직원이고, 또 한 사람은 무협작가인데, 둘 다 네가 술집에 나갔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 내가 잘못했어. 형이랑 이야기하면서 네 이야기를 먼저 한게 나거든. 네가 드라마에 나온다고 형에게 말을 했거든. 형은 tv를 거의 안 보니까, 네가 그렇게 된 것도 모를 것 같아서. 그 때 그 자리에 그 여직원이 있었고, 그 여직원이 지금 동행한 작가에게 사실을 말한거야. 어제 마구 욕을 했어. 오랜만에. 지금은 그걸 수습하러 가는거야. 옛날부터 그랬잖아. 내가 사고를 치면, 형이 수습하고. 그러니까 미안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창밖을 보면서 나직하게 말하는 테리우스는 멋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테리우스의 고백에 사라가 보여준 태도는 진짜로 놀라웠다. 사라는 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없던 일도 아닌데요. 지금의 내가 중요한 거잖아요. 난 그 때도 지금도 여전히 유민영이고, 이제는 스물 여섯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경민 오빠를 좋아하고, 한 번도 오빠를 좋아하는 내 마음에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어요. 괜찮아요. 진짜로." 어떤 것이 저 아이의 마음에 저런 확신을 줬을까? 나에 대한 진심인가? 자기의 부끄러운 과거도 어쩔 수없는 진심이 나를 파고 들었다. 역시, 사라는 멋진 그리고 진짜로 좋은 여자였다. 우스운 건 내 마음이었다. 벽이라는 건 어차피 넘기 위해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어색함도 생경함도 결국 사라의 나를 향한 진짜 마음에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이 져버리고 말았다. 문득, 테리우스가 보여준다는 파일에 생각이 미쳤다. 난 차를 타고 약속장소로 가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다리를 벌리고 보지를 보이고 있는 사라의 정면사진을 파일에서 발견하게 되고서도 내 지금 마음이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난 이성적이지만, 늘 생각이 많고, 우유부단한 면이 많다. 더구나 좀은 독선적이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강요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이목을 늘 신경쓰는 편이다. 내 주위에는 사라의 과거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있고, 내 앞에선 부끄러운 일이 없었다고 강변하는 사라는 술집 호스테스다. 얼굴이 예뻐서 인기가 많은 만큼, 그런 요청도 많았을 것이다. 술집 일이라는게, 얼굴 예쁜 것만으로는 절대 버틸 수가 없다. 때때로 옷을 벗어야 하고, 누군가는 테리우스가 탱글거린다고 표현했던 그 몸을 만졌을 것이다. 섹스산업의 가장 나쁜 점은 역시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내가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한화콘도에 도착했더니, 이미 우작가와 고경희가 앞에 서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어서 해는 금방 졌다. 바다를 가득채운 오렌지빛 홍수는 둘의 얼굴에 발그레 부끄러움을 선사했다. 둘은 내 차를 보고 다가왔고, 뒷문을 열고 타자마자 진짜로 탈렌트가 뒷좌석이 타고 있자 놀라서 자꾸 사라의 얼굴을 훔쳐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훔쳐보지 말아요. 민영이는 그냥 민영이에요. 다른 어떤 이름을 민영이에게 덧씌운다고 해도, 본래 민영이보다는 못하니까, 그냥 보고 싶으면 봐요. 눈을 보고 이야길 해요.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하는 것들 중 좋은 건 연인간의 귀엣말 뿐이니까요." "우연희에요. 반가워요." "반가워요. 우연희 작가님. 저도 드래곤의 딸들 잘 읽었어요." "어머, 제 책을 읽으셨어요?" "네. 오빠 책을 읽으려고, 이런 저런 책들을 많이 읽었거든요.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몰랐는데, 나중엔 즐겨읽게 됐어요. 아르테미안이 불쌍해서요..." 놀라운 일이다. 사라와 헤어지고 나서 2년의 시간이 지났고, 그 동안, 난 사라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었다. 헤어졌다고 하지만, 실상, 나와 사라는 사귀었다고 말할수도 없는 처지였다. 정서적 교류는 있었지만, 섹스는 하지 않았었고, 우리 사이에는 테리우스와 사라의 술집여종업원이라는 벽이 있어서, 난 그 벽에 부딪칠 생각을 하지도 않은 채로 포기해 버리고 말았던 함께 보낸 짧은 시간이 있었을 뿐이었다. 고경희와 우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내 책을 읽기위해 오랫동안 공부를 해왔다는 유명 연예인을 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고, 난 감동하기보다는 뭔가가 목에 걸린 듯한 답답함에 움츠려 들고 말았던 것이다. 저녁은 일렀다. 저녁시간 후에 촬영장까지 사라를 바래다줘야 했기 때문에, 일찍 만나 우리가 향한 곳은 강릉 시내의 좀 고급 중국집이었다. "형 진짜 휴전선 이남에서 제일 짬뽕이 맛있는 집이거든. 먹어보면 알아." "오빠, 진짜 그렇게 맛있어요?" 두 눈을 반짝이며, 맛있냐고 묻는 사라에게 순간적으로, 경계심이 풀린 듯 테리우스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우리 일행을 내실로 안내했다. 일괄적으로 짬뽕에 탕수육을 시켰고 기다리는 동안 고경희가 눈에 의심을 가득 담고, 사라에게 나와의 사이를 물었다. "민영씨. 진짜로 우리 선배님 좋아하셨어요?" "그럼요." "그래도 지금은 그러면 안되잖아요. 연예인이잖아요. 선배님은 그냥 일반인인데요." "이번 작품까지만 일할 거에요. 인기가 있다고 해봤자, 다들 진짜 절 보는게 아니잖아요. 승주를 보는 것일 뿐. 오빠는 말이에요. 내 가슴이나 몸매, 얼굴이나 엉덩이 보다 눈을 똑바로 맞추고 진짜 이야기를 들어준 유일한 사람이에요. 술집 계집애가 하는 농담속에 담긴 슬픈 마음을 눈치채 준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을 위해서 하지 못할 게 뭐가 있겠어요. 전 뭐든 할 수 있어요. 진짜로요." 뭐든 할 수 있어요라는 말에서 난 깨닫고 말았다. 내내 테리우스가 말하던 것이 이거였다. 냉냉하던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정도의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인연은 그리 깊지 않다. 난 사라를 아주 좋은 여자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결혼을 생각하거나 할 정도로는 좋아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어느새 상황은 완전히 자신을 내던지고, 내게 사랑을 고백하는 사라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인데도, 난 사라를 제지하거나 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든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은 달콤한 꿈에서 날 깨우는 주문이 되었다. 뭘 의도하는 걸까? 난 그다지 재산이 많지 않다. 치밀하고 이성적인 내 성격으로는 종교에 빠질 수도 없다. 나보다는 차라리 사라가 훨씬 더 교단에 도움이 될 텐데. 그렇다면 나를 이용해서 사라를 영생교에 빠뜨린 건가? 하지만, 그것도 말이 안되는 것이 이미 사라는 교단에 푹 빠진 것처럼 보였는데, 왜 나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내 사라는 진짜 나를 사랑하고 있고, 내게 향하는 마음이 진심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영생교의 힘은 진짜였다. 몸이 떨릴 정도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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