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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누나!! 누나!!! - 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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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31,94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누나! 누나!! 누나!!! - 중편

# 게임 스타트.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보니 어느덧 시간이 8시를 넘기고 있다. 그러니까 끝까지 이상한 날의 연속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는 나를, 재훈이 녀석이 끝끝내 붙잡는가 싶더니 평소에 안하던 얘기들을 쏟아내는 통에 집에가는 시간이 이렇게나 늦어져 버렸다. 사실은 -표정을 보아하니, 애당초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지만- 6시쯤에 재훈이 녀석이 무슨 ‘사진’인가 ‘동영상’인가를 지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흠칫 놀라서는 -뭐가 그리 찔리는지- 2시간 가까이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통에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거다. 지친다 지쳐. 땅거미가 추욱 내려앉은 철길을 언제나처럼 따라 걸었다. 시간을 보아하니, 도서관에 도착해도 공부는 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다.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누나랑 곧바로 집에 돌아와야 할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는 아까 수업시간에 수혁이 녀석이 물리 선생님께 또박또박 말했던 말들이 맴돌고 있었다. 정말이지 녀석과 나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시간 정도 걸려서 겨우 도서관에 도착했다. 모르긴 몰라도 자료실엔 아무도 없으리라. 오랜 도서관 생활로 얻은 나름의 ‘정보’다. 자료실 같은 경우엔, 오전 9시부터 11시, 그리고 오후 9시부터 10시까지는, 거의 사람이 없다. 차라리 도서관 사서인 누나만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슬쩍 시간을 확인하니 9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다. 좋았어. 조심스럽게 가서 놀래켜 줘야지! 팔목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슬쩍 거두어 내고, 나는 자료실로 천천히 다가갔다. 버릇처럼 자료실 유리문에 양손을 아치형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얼굴을 스윽 가져다 댔다. 내 입김으로 인해 유리문에 서리가 끼는것 같더니, 저기 너머에 당연히 있어야 할 누나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어라? 화장실 갔나?’ 김이 빠져서는 그대로 유리문을 열고 자료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예상대로 자료실안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누나마저 없는게 조금은 의아했다. 평소에 이 시간이었으면, 학교에서 내가 돌아올 걸 알고 늘 자료실을 지키고 있었을 누난데.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바지 춤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띠리리~ 띠리리~~” 익숙한 벨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가보니, 누나의 책상 위에서 누나의 휴대폰이 울려대고 있었다. 나는 전화거는것을 그만두기로 하고, 자료실을 빠져 나왔다. ‘어디갔지? 누나?’ 어차피 누나는 다 큰 성인인데, 내가 이런 걱정을 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평소’와는 다른 하루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인지, 이마쪽에서 다시금 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일단 화장실로 걸어갔다. “후우” 세면대에서 물을 틀고, 얼굴을 한번 닦아냈다. 얼굴 여기저기에 퍼지는 차가운 물의 기운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제는 누나가 자리에 돌아와 있을까 싶은 생각에, 얼굴에 남아있는 물방울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고 서둘러 화장실을 뚜벅뚜벅 소리와 함께 빠져 나갔다. “빨리해요! 시간 자꾸 가요!!!” 남자 화장실에서 바로 빠져나왔을 때였다. 방금전에 빠져 나온 남자 화장실 쪽에서 어딘가 ‘익숙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들려왔다. 부드럽지만, 막 변성기를 지낸듯한 내 또래 남자 목소리. 그 자리에 멈춰서서, 혹여나 내가 잘못들은건 아닌가 싶어 남자화장실쪽으로 귀를 귀울였다.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리지 않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누나가 있을’ 자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기어이 방금전과 똑같은 남자의 목소리가 남자화장실에서 흘러나왔을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저 목소리는 분명...’ 방금전에 세수를 하고 나왔는데, 어쩐지 다시금 더위가 밀려오는 기분이다. 두 번이나 똑같은 목소리를 들은 이상에야, 내가 잘못들은것은 분명 아니다. 괜한 호기심에,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최대한 발자국 소리를 내지않게 조심하면서 다시금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마냥, 아니 차라리 도둑고양이마냥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전에는 미쳐 몰랐는데 4개정도 되는 칸막이 화장실의 가장 끝의 문이 꾸욱 닫겨있는게 보였다. 다시금 잠잠해진 화장실을 조심스럽게 걸었다. 어쩐지 굳게 닫혀있는 칸막이 화장실 쪽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무언가 ‘부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지금 뭘 하는지도, 혹은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닫혀있는 화장실 옆칸으로 들어갔다. 어찌나 당황했던지 문을 닫을 생각도 하지 못한채. 침을 목구멍 뒤로 꼴깍 꼴깍 삼켜 넘기면서 -최대한 들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그저 익숙한 목소리 하나를 들었을 뿐인데 심장이 이상하리만큼 뛴다. 칸막이 반대편에선 여전히 무언가 부산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칸막이 화장실에서 굳어버린채, 그냥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누나 벌써 몇분째에요? 난 괜찮지만,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워두면 곤란한 쪽은 누나잖아요? 봐요 이제 화장실에 사람들도 안들어오잖아요‘ -하아.. 역.. 역시 못하겠어 이런거. “그래요? 일부러 오래 시간을 드렸더니, 하신다는 말씀이 그거에요? 그럼 좋아요. 그 말씀은 누나가 결국 이거말고 ‘다른 선택’을 하셨다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되는거죠?” -아니야. 그게 아니라... 난... 나지막하게 소곤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다시금 심장이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반대편에는 남자 하나만 있는게 아니다. 여자도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화장실 안에 함께 있다. 그런데 분명 저 목소리는.. 저 목소리는. 얼굴이 붉어진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약간의 틈을 보이고 있는 화장실 칸막이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가져다 댔다. 꼭 확인하고 싶은게 있었기 때문에. 좁지만 또 좁다고 할 수 없는 화장실 밑 틈을 통해서,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운동화와 ’여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꽃무늬 샌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어쩐지 둘 다 ’눈에 익다‘. 조금 독특한 것은 신발의 방향이 둘다 같은 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하는건 아닌듯 보였다. “그럼 저도 그만 바지 입을래요. 그러니까 이제 고개 돌리셔도 되요. 그리고 저는 집에 가자마자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할게요. 누나가 방금 선택하셨으니까!” -아니야. 그게 아니라. 제발 그러지마! “애원하셔도 소용없어요. 누나, 저 나름 배려한다고 선택지를 두개나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누나는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저로써도 더 이상 진빼기 싫구요. 갈게요.” -잠... 잠깐... 기.. 기다려. 너 정말.. 그렇게 할거니? 고개가 뻐근해지는것도 모른채, 반대편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 귀를 귀울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확신에 가까워지는 목소리. 심장이 미친 속도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통 모르겠다.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다만, ‘여자’가 거의 울먹이며 ‘마지막‘ 질문을 던지자 ’남자‘쪽에서 ’네‘ 라는 짤막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10초 정도의 적막이 흘렀다. 나는 숨을 죽인채 상황을 살폈다. 그런데 갑자기 꽃무늬 샌들의 방향이 180도로 바뀌는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이제야 ‘남자’와 마주하고 있는 모양이다. 숨을 죽인채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여자’의 샌들 뒷꿈치가 살짝 들리는가 싶더니 ‘남자’의 운동화 앞으로 ‘여자’가 무릎을 꿇고 있는게 보였다. ‘뭘 하려는 거지?’ 불편한 자세로 지금 상황을 지켜보려니 여간 답답한게 아니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 ‘남자’와는 다르게, ‘여자’의 움직임은 어딘가 요란스러워 보였다. “나이스 초이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남자의 말을 빌리면- 여자가 ‘좋은 선택’을 한 듯 보였다. “이... 이걸 하면... 아까 말한거...” -사람들어오기전에 빨리 끝내는 편이 낫지 않나요? “그러니까 내가 묻는 말에.... 빨리...” -누나. 시간가요. 시간. 대답을 재촉하는 ‘여자’와는 달리, ‘남자’는 번번히 ‘여자’의 말을 끊었다. 그쯤되니, ‘여자’도 포기했는지 더 이상 아무말도 없었다. 또 몇 초간을 그렇게 정적 속에서 보내는가 싶더니, 무릎을 꿇고 있던 ‘여자’가 ‘남자’ 쪽으로 조금 더 다가가는게 보였다. 그리곤 ‘여자’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가 싶더니 얼마가지 않아 그마저도 잠잠해 졌다. “따뜻하네요.”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눈앞에선 서있는 ‘남자’,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여자’. 이런 그림이 벌써 얼마간 계속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선 대관절 무슨 변화가 있기는 있는 모양인지, 남자의 입에서 ’따뜻하다‘는 외마디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 ’혀를 움직이여야죠!‘ 라는 남자의 쓴소리가 흘러 나오자, 그제야 ’여자‘의 ’웁웁’하는 소리와 함께 꿇고 있는 무릎이 다시금 흔들리는게 보였다. 무슨말인가를 하려는것 같은데, ‘여자’의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나로써도 지금 상황상, ‘그곳’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결국 ‘웁웁’ 소리를 내던 여자가 아까와 마찬가지로 -포기라도 한듯- 자신의 무릎위로 자신의 한 손을 -주먹을 꼭 쥔채- 가지런히 올려놓고 있는게 보였다. 그리곤 정체를 알 수 없는 ‘쪽쪽’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렇죠. 잘 생각했어요. 어찌되었든, 벌써 꽤 오랜시간이 흐르고 있다구요. 누나 입장에서도 빨리 끝내는 편이 나아요. 하지만, 조금 아프네요. 이빨은 되도록이면 쓰지 말아주세요. 그렇죠. 그렇게 계속..” 마치 어린 아이를 타이르듯, ‘남자’가 ‘여자’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지 않은 ‘쪽쪽’거림이 귀에 거슬린다. 그러면서도 간간히 ‘남자’의 ‘처음치곤 잘한다’ 라는 말이 들려왔다. ‘기분좋다’ 라는 말도 함께. “윽... 싸... 쌀 것 같다. 후우” -웁.. .웁...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싼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만 여자가 다시금 다급하게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것이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신 ‘웁웁’ 소리를 내던 여자는, 다급해졌던지 무릎위에 가지런히 모아놓았던 자신의 한 손을 들어 ‘남자’의 다리춤을 꾸욱 잡았다. “윽!!!! 윽!!!!” ‘남자’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여자’의 손과 ‘남자’의 다리가 동시에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잠잠해 졌다. 한동안을 그렇게 뒤엉켜 있는가 싶더니, ‘여자’가 ‘남자’에게서 떨어지며 자세를 고쳐잡는게 보였다. 그리곤 화장실 바닥에 연신 ‘토악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헌데, 무얼 먹은건지 우유와도 비슷한 하얀색의 걸죽한 액체를 계속해서 뱉어내고 있었다. “이왕이면 삼켜줬으면 했는데, 뭐 이걸로도 만족. 그럼 닦고 나오세요.” -저.. 웁.. 저... ‘ ‘남자’는 바지춤을 올려 옷매무새를 정리하는가 싶더니, ‘여자’를 등뒤로 하고 그대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제야 나는 화들짝 놀라며 내가 숨고 있는 화장실 문 뒤에 바짝 붙어 앉았다. 다행히도 ‘남자’는 나를 의식하지 못한채 남자 화장실을 빠져 나가는 듯 했다. 나는 다시 얼굴을 파묻고 반대편 화장실을 살펴볼까 했지만, ‘여자’가 흐느끼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내가 죄를 지은건 아무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다. # 이상한 날의 연속. 자료실 쪽으로 걸어가면서, 내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등으로 이마를 훔쳐내고 또 훔쳐내도 땀이 비오듯 흘러 내렸다. 손톱을 이빨로 잘근잘근 씹으면서 자료실 앞으로 다가가니, 아까와는 달리 자료실 안에 사람의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댓번에 그게 누구인지 알아차린 나는, 다시금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들어가지도 못한채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이번에도 -불행히도- 자료실 안의 ‘남자’가 나를 먼저 알아보며 인사를 건냈다. “여~친구! 꽤 늦었네?” 자료실 문쪽으로 걸어오는 수혁이가 나를 보며 생긋 웃는다. 이번엔 왠일인지 녀석의 눈웃음 보다는, ‘익숙한’ 운동화가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던 수혁이는 내 손을 낚아채서는 자료실 안으로 끌고 갔다. “조퇴하고 집에갔다가, 잠깐 책좀 볼려고 들렀어. 그런데 누나가 없네?” 수혁이 녀석의 뻔뻔한 거짓말이 어쩐지 내 마음을 더욱더 심난하게 만든다. 대꾸조차 하지 못하고 고개를 살포시 돌리려니까, 얼마가지 않아 누군가 자료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게 보였다. 그리곤 나와 수혁이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더니 잔득 놀란채 자리에 굳어버렸다. 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애써 태연한척 노력했지만- 자리에 굳어 있자, 수혁이 녀석이 누나와 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누나! 어디갔다가 이제 오세요!!” 수혁이 녀석의 태연스러운 연기를 나는 넋을 잃고 바라봤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누나의 반응이었다. “어.. 잠깐 해..행정실에. 그나저나 인호는 언제 왔니?” 누나. 방금전까지 뻔히 봤던 ‘꽃무늬 샌들’을 신고서는 그런말 하지마. 수혁이야 그렇다치고, 누나까지 나서서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좋은쪽으로 해석하려 해도, 지금 상황에선 그건 무리다. 쭈뼛거리는 나를 보는둥 마는둥 하더니, 누나가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그제야 누나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다는 것과, 긴 생머리가 물에 젖어 조금 헝클어져 있다는 것을 캐치할 수 있었다. 그러자 수혁이 녀석이 누나의 앞에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런 수혁이를 바라보니, 누나가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짓고 나를 슬쩍 훔쳐 봤다. 기분탓인지, 수혁이 녀석이 누나의 앞에 다가갔을 때 누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 지는것 같았지만 이내 수혁이가 자신의 등으로 누나를 가려버리는 통에 더 이상 누나의 표정을 살필 수가 없었다. 누나와 수혁이가 나란히 서서 무언가 얘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내가 알아듣기에는 너무 작은 소리가 오갔다. 슬그머니 수혁이와 누나가 서 있는 쪽으로 한달음 내딛으려니까, 누나의 약간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누나가 수혁이를 피해 나를 한번 흘깃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아니 왠지 조금 붉어진 얼굴을 하고선 다시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참을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수혁이 녀석은 나를 향해 가볍게 손을 한번 올리는가 싶더니 총총걸음으로 자료실문을 나섰다. 얼이 빠져 수혁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바로 누나를 살피니까, 누나가 다시 나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곤 시간을 확인하는가 싶더니 그제야 겨우 나에게 한마디를 건냈다. “그만 집에 갈까, 우리?” 그러니까 오늘은, 하루종일 이상할 날의 연속이다. 어제 집에가는 내내 누나는 아무말도 없었다. 언제나 둘이 걸을때면, 분위기를 리드하는건 누나쪽이었기에 -당연하게도- 집에가는동안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 아 아니다. 집에 거의 다 왔을때쯤 누나가 나에게 한마디 하긴 했었다. 그러니까... ‘수혁이가.. 정말 우리 인호 친구 맞는거지?’ 였던가? 바보같이 일단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왠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자그마한 후회가 밀려든다. 그래도 다행인건 날이 밝아 아침이 되었을땐 누나가 평소의 모습을 되찾았다는 점이다. 이래저래 말도 걸어주고 평상시처럼 행동했다. 다만, 평소와 다른건 나였다. 누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줄수록 목구멍 깊숙이 어젯밤 도서관 화장실에서 수혁이와 ‘무슨 일’을 벌였고, 또 자료실에서는 나에게 들리지 않을 만한 목소리로 무슨 대화를 한건지 물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끝내 물어보지 못하고 학교로 향했다. 누나와 헤어지고 기분이 이상해서 조금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왠일로 누나가 도서관에 가지않고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기분이 묘해져서, 별다른 인사도 없이 고개를 훽 돌려서는 다시 학교로 향했다. 이상한 날의 연속이라면 연속이었다. 그냥 어제만 그런가보다 했는데, 오늘 점심시간이 되자, 어김없이 ‘심부름’은 내가 아닌 재훈이의 몫이었다. 마음이 잔득 불편해서 수혁이와 진수 녀석에게 내가 가겠노라고 나름 용기를 내어 말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니 내심 이것도 어제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과 관계가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몇시쯤 되었을 때, 화장실에 갔다가 주위를 살피면서 옥상쪽으로 올라가는 수혁이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담배라도 피러 가는건가?’ 수혁인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론 진수 녀석은 벌써부터 담배를 피는 모양이다. 학생 주임 선생님한테 여러번 걸린적도 있다. 무시하고 다시 교실로 가려는데, 재훈이 녀석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보고 잠시 자리에 멈칫했다. 그리곤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돌기 시작했다. 일말의 호기심 때문인지, 잠시 고민하다가 나도 주위를 살피며 학교 옥상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끼익~] 아뿔싸. 옥상문이 열리는 소리가 생각보다 시끄럽다. 염통이 쫄깃해져서는 바로 옥상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도 녀석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슬금슬금 옥상에 발을 들여놓고 주위를 살피니, 옥상 구석쯤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게 보였다. 나는 숨을 한번 몰아쉬고 천천히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 빨리 보여줘봐!” -큭. 재촉하지마. 이런건 여유롭게 즐겨야 하는법 조심조심 담배연기가 올라오는 곳으로 다가가니, 수혁이 녀석과 재훈이 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게 보였다. 재훈이 녀석이 잔득 안달이 나서는 수혁이 녀석의 팔을 붙잡고 거의 ‘애원’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런 모습이 재미 있었던지 재훈이 녀석의 약을 살살 올리고 앉아있었다. 쉴새없이 담배연기를 뻐끔거리고 있던 진수도 이쯤되자 흥미로웠던지 수혁이 녀석의 곁에 바짝 다가가 앉았다. “그러니까 말야. 큭. 어제 힘들었어. 날씨는 날씨대로 더워서 땀은 땀대로 나는데, 이놈의 누나는 설득해도 넘어갈 생각도 없구.” -그러니까 새끼야. 내가 뭐랬어? 그냥 그날 새벽에 따먹자니깐! 숨을 죽이고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엿듣고 있는데, 수혁이 입에서 흘러나온 ‘누나’라는 한마디가 내 신경을 낚아챘다. "분명히 말하지만, 난 그런쪽엔 흥미가 없거든. 우리 삼촌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 여자는 그렇게 다루는게 아니라고 하셨어. 큭.“ -뭐 너희 삼촌이야 아버님이야. 뭐. 어떤분인지 잘 알긴 한다만. 진수가 수혁이의 눈치를 보며 말을 받았다. 수혁이 녀석이 눈을 한번 찡그리는가 싶더니, 피식 웃고 만다. 기억이 맞다면 언젠가 수혁이 삼촌이라는 사람을 본적이 있는 것 같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딱 보기에도 질이 좋은 사람같지는 않았다. “암튼, 어제는 솔직히 좀 짜증나더라고. 큭. ‘사까시’ 받는데 자그마치 3시간이 넘게 걸렸다니까? 설득에 설득...” -아 그러니까, 어제 찍은것좀 보여달라구. 수혁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사까시‘라는 말이 뭘까 생각했다. 정말이지 나는 모르는 단어들을 잘도 조합해서 지네들끼리 신나 떠드는 통에 머리가 어질할 정도다. “큭. 시간은 많아. 얘기를 좀 더 들어봐. 사실 처음엔 가자마자 저번에 찍은 ‘사진’이랑 ‘동영상’을 냅다 던져주고 ‘협박’이라도 할까 생각했어. 그런데 막상 도서관에 들어가서 살짝 인사를 보내니까, 이 바보같은 누나가 나를 보고 활짤 웃어주는거야. 그래서 일단 계획을 바꿨지 뭐. 일단 말로 꼬셔보자.” -근데 결국은 ‘협박’한 거지. “에이. 큭. 아니지 협박이라니. 흥정을 한거지.” 협박, 누나, 사진, 동영상, 도서관. 당췌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단어들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를 굴려 억지로 상관관계를 따져보았지만,여전히 연관성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암튼 도서관에서 3시간정도 있으려니까 좀이 쑤시더라고. 누나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것도 슬슬 지쳐가기도 했고.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원래 계획이 이게 아닌데. 슬쩍 시계를 보니까 인호 자식도 올 것 같은 시간이구.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는데, 때마침 누나 가슴골이 보이는거야. 막, 지난주 금요일 새벽에 찍었던 사진들도 생각나구 도저히 못참겠더라.” -그래서 그때 사진을 들이민거야? “뭐, 그랬지. 사실 그것도 내 타입은 아니긴 했는데. 와. 진짜, 가슴골이 조금 보였을 뿐인데도, 우리 삼촌이 가끔 그런 표현 쓰는데, 물건이 불끈불끈 하더라. 그 순간엔 나답지 않게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오죽하셨으면~ “그래서 일단, 재훈이한테 빌린 스마트폰을 꺼내서 누나한테 보여줬지. ‘누나 재밌는거 보여드릴까요?‘ 하면서. -캬아~ 덕분에 나는 어제 하루종일 진수 스마트폰 가지고 놀았잖아. 수혁이 녀석이 누나에게 무얼 보여줬을지, 직감적으로 느낌이 왔다.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 새벽에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관통하자, 나의 미간에 슬그머니 주름이 내려 앉았다. “사진 보여주니까 뭐래?” 진수가 수혁이를 향해 묻는 말에 나는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솔직히 누나의 반응이 궁금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무슨일이 있었는지도. “맨처음엔 싱글벙글 하는가 싶더니, 사진을 천천히 넘길수록 얼굴 표정이 굳어지더라. 내 얼굴이랑 스마트폰이랑 번갈아가면서 살펴보는가 싶더니 기어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라고.” -맞기라도 했어? 화 많이 냈을것 같은데. “큭.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잖아. 그럴땐 그냥 상대방 눈을 보면서 슬쩍슬쩍 웃어주면 돼. 이건 나름 삼촌한테 배운 기술이거든. 되려 상대방 약을 올리는거지. 그럼 상대방은 어쩔줄 몰라하거든. 특히나 그 상대가 착해빠지고 더불어 어리숙한 상대라면 더더욱 효과가 좋지.” -그럼 인호네 누나가 너한테 아무런 말도 안해? “왠걸? 사색이 돼서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더라고. 근데 왠지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는거야.” -왜? “큭. 글쎄. 나도 이유는 모르겠어. 그냥 본능적으로 누나보다 앞서서 내가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라는 생각에, 천천히 입을 열어 ‘거래’를 시작했지. 누나라면 그 어떤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천성이 착한 누나. 수혁이 녀석에게 갑작스럽게 ‘봉변’ -애석하게도 다른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을 당한 후에야, 누나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으리라. “어떤 거래?” -그니까, 큭. ‘내가 지난주에, 누나 잠들었을때, 잠깐 호기심으로 사진이랑 동영상을 몇 편 찍었다. 아직 아무한테도 보여주진 않았지만, 예의상 누나한테는 먼저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가져왔다. 누나 몸 참 예쁘다’ 뭐 이런식으로 계속 약을 올렸지. 큭. 그런데 조금 놀라운게, 보통 그정도 되면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질르거나 하는게 보통의 반응인데, 이 누나는 아무말도 안하고 그냥 울려고 하는거야. 솔직히 그땐 조금 당황했는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이건 더 공략하기 쉽겠다 싶은 생각에 계속 말을 걸었지. “후우. 여자가 너무 착해빠져도 문제야.” -스마트폰을 툭툭 건드리면서 계속 약을 올렸어. 그 시간엔 사람도 없더라고. ‘누구한테 또 보여줄까? 나만 보기 아까운데 이거’ 막 이러면서 큭. 약을 올리니까, 인호네 누나가 기어이 입을 열더라고. “오. 뭐라디?” 누나의 얼굴이 떠오르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울음이 쏟아져 나올것 같으면서도, 정작 눈앞의 녀석들에게 덤빌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내자신이 너무 비겁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건, 이렇게 숨어서 얘기나 훔쳐 듣는 것뿐일까? “그게 나도 조금 깜짝 놀랐는데, ‘인호한테도 이 사진 보여줬니?’ 였나?” -캬아. 눈물겨운 동생사랑이네 정말. 결국 참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누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내 걱정을 먼저 했구나 싶은 생각에. 혹여라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릴까 입술을 억지로 깨물고 또 깨물었다. “솔직히 그때는 조금 뜨끔하더라고. 그래도 일부러 냉정해 지려고 노력했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야. 이런 깡촌에 그런 미녀는 또 없을 것 같고, 솔직히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우리가...” -따먹을 수 있겠어? “큭. 고삐리 치고는 좀 위험한 생각이긴 한데, 그게 솔직한 속내였어. 애써 침착하려 노력하면서 누나한테 말했지. 아직 인호한테는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직’이다. 누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모든게 달라지지 않겠냐? 뭐 이런식으로 구슬렀지. 그러니까 가만있던 누나가 갑자기 화를 내는거야. ‘인호한테는 절대 보여주지마! 절대!’ 자기보다도 동생을 걱정하는 누나의 마음에, 나 정말이지 순간적으로 감동받았잖아 큭.” -눈물겹다 진짜. “뭐, 이쯤되니 더 지체해 봐야 무슨 소용있겠나 싶더라. 손가락을 까딱 까딱 흔들고 ‘날 따라 와요’ 하면서 밖으로 나갔지.” -드디어... 손등으로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수혁이 녀석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정신이 아롱하고 가슴이 먹먹하다. 그저 쭈구리고 앉아서 녀석들을 훔쳐보니, 그제야 수혁이 녀석이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거대한 액정화면을 몇 번 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오, 이제야 트는거야? 아 씨발 진짜 감질나 죽는줄 알았네.” 수혁이 녀석은 스마트폰의 볼륨버튼으로 음량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스마트폰에서 또깍 거리는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역시나, 만만한건 화장실 뿐이더라고.” -뭐, 그렇긴 하지. 그 상황에서 “재훈이 휴대폰을 슬쩍 만지면서 인호네 누나 모르게 가방속에다 넣어뒀지. 혹시 안나오는건 아닌가 싶은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까, 누나가 고개를 숙이고선 나를 또 따라와요. 큭. 남자 화장실 안에 아무도 없는걸 확인하고는, 누나한테 손가락질 좀 했지. 따라 들어오라고. 그랬더니 머뭇머뭇 거리는거야. 마치 ‘여기에 어떻게 들어가?’ 하는 표정으로. 일부러 승질이 난 척 무시하고 터벅터벅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서 비어있는 칸 안으로 들어가서, 변기뚜껑위에 가방을 슬쩍 내려놨어. 구도가 잘 잡히도록. 아마 이제 슬슬 얼굴이 보일것 같은데. 봐. 온다 왔어!” -오!! 동영상을 타고 흐르는 또깍또깍 소리만 들려올 뿐, 수혁이 녀석의 목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녀석들이 함성소리를 터뜨렸을때, 나는 눈을 찡그리고 수혁이 손에 들린 화면을 확인하려 노력했다. “짜잔. 얼굴이 따악~! 하고 나와버리네! 큭” -제대로 찍었네. 진짜 이렇게 보니까 조금 운것도 같네. 그런데 이 누나도 참. 따라오라고 또 따라온다? “그러니까 큭. 이제 동영상을 잘 봐. 쉽게 알아보기 힘들지만, 분명 누나의 얼굴이 동영상에 비춰지고 있었다. 숨어서 보는지라, 누나가 울고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굳이 보지 않아도, 누나의 표정이 눈에 선했다. 수혁이 녀석들이 갑자기 입을 닫고 수혁이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도 숨을 죽이고 동영상에 귀를 기울였다. ‘ “왜 그렇게 멀뚱멀뚱 서 있어요? 사람들 들어오면 어쩌려구. 들어와요. 안쪽으로” -아무래도, 아무래도 이건... “아 그래요? 뭐 그럼 좋아요. 마침 인호 올때도 된것 같구, 같이 나가서 인호한테 좋은 구경좀 시켜주죠 뭐” -안돼.. 그.. 그러지마. 드.. 들어갈게 들어가.‘ 수혁이 녀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나는 조심스럽게 화장실 안으로 들어와 문을 걸어잠궜다. 수혁이 녀석이 슬쩍 카메라를 한번 훔쳐보는것 같더니 다시 뭐라뭐라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 “후우. 그럼 쉽게 설명을 드릴게요. 누나한테 두 개의 선택지를 드릴게요. 친절하게도. 우선 첫째는, 방금전과 같이 이 화장실에서 빠져 나가시려 하거나, 혹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시는거에요. 마치 구해달라는양. 대신 그렇게 하시면, 아까 보여드렸던 재밌는 사진들을 인호는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한테 보여드릴 거에요.” -그.. 그런... “그리고 두 번째는, 지금 여기에서 아주, 아주 잠시동안 제가 시키는대로 하시는거에요. 뒷탈은 없을거구요. 제 맘에 들면 아까 보여드렸던 사진이랑 동영상은 말끔히 지워 드릴게요.” -하아.. 그.. ‘ 재생되는 동영상을 진수와 재훈이 녀석이 침을 꼴깍 삼키며 지켜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바지앞섶이 부풀어 올라 있다. 나는 애써 외면하고 동영상에 집중했다. 구도상 누나나 수혁이의 얼굴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저 수혁이 녀석과 나란히 서 있기만 했다. ‘ “대답이 없네요? 그럼 두 번째 보기를 선택하셨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죠?. 자 그럼~” -뭐.. 뭐 하는 거야? 그.. 그만 둬.. ‘ 거칠게 없는 수혁이 녀석이 바지춤을 잡고 훌렁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녀석의 고추가 덩그러니 화면에 나타났다. 누나는 잔득 당황해서는 몸을 수혁이로 하여금 완전히 돌려버렸다. 그제야 내가 어제 훔쳐 본 상황과 완전하게 일치했다. ‘ “뭘 그렇게 부끄러워 해요? 남자꺼 처음봐요? 아이씨 고개좀 돌려봐요. 아 진짜, 시간 자꾸 갑니다~” -뭐.. 뭐 하는거니... 이.. 이러지 마. “뭘 이러지 마요? 방금전에 누나가 선택하신거잖아요?” -그런선택.. 한적 없어. “그래요? 후우. 알겠습니다. 그럼 아까 말씀드린대로 하면 되는거죠?” -아.. 안돼.. 그.. 그러지마!‘ 모든게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다. 다만 다른게 있다면, 수혁이의 마지막 말과 함께 다시금 수혁이 쪽으로 자세를 틀어 고친 누나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재훈이 녀석과 진수 녀석은 할 말도 잊은채 흘러나오는 동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진수 녀석의 손에 들린 애꿎은 담배만이 하염없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 “그럼, 제가 원하는 걸 말씀드릴게요. 누나가 입으로 제 고추좀 예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뭐? 어떻게 그런... “왜요? 또 고개 돌리실려구요? 마음대로 하세요. 시간은 흘러가고, 인호 오면.. 저는....” -아.. 알았어.. 알았다구... 손으로.. 만지면... “아까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입으로‘ 예뻐해 달라고. 시간없습니다.” -............... ‘ “씨발 죽인다!!!!” 진수 녀석이 환호성을 지르고 나섰다. 그러자 수혁이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살핀다. 나는 거의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수혁이 녀석이 진수 녀석을 나무라는 소리가 들리자,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동영상에 다시 집중하려는데 나는 기어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동영상엔 수혁이 녀석의 고추와, 누나의 얼굴이 동시에 흘러 나오고 있었다. # 사정(射精) “물어라! 물어라! 자지를! 물어라!!!” -큭!! 진수 녀석이 동영상을 보며 저급한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자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수혁이 녀석과 재훈이 녀석이 킥킥대며 웃어댄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누나는 기어이 수혁이 녀석의 고추 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댔다. ‘뭐.. 뭘 하는거야. 누나?’ 순간적으로 어제 귓가를 맴돌았던 ‘쪽쪽’ 거리는 소리와, 아까 수혁이가 누나에게 했던 ‘예뻐해 달라’는 말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러면서 ‘사까시’라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씩 느낌이 왔다. 설마. 설마. 누나가 수혁이 고추를... “넣는다.. 넣는다... 드.. 들어간다.. 입으로...~!” -고..골인!! “와!!” 녀석들의 탄성소리와 함께 설마설마했던 일이 기어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누나가 눈을 질끈 감는가 싶더니 기어이 보기좋게 늘어진 수혁이 녀석의 고추를 입속에 머금었다. 생전처음 보는 장면에 헛구역질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저게 뭐야? ‘ “따뜻하네요. 후우. 느낌좋다. 근데 언제까지 입에 물고만 있으실거에요? 혀도 좀 써보시고..” -웁.. 웁... ‘ 이제야 어제 누나가 토해냈던 소리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저 상태에서 또박또박 말을 하는게 더 이상할테지. 나는 넋이 나간채로 동영상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동영상 속의 수혁이 녀석은 누나에게 계속해서 뭐라뭐라 무언가를 ‘주문’하고 있었다. “야, 존나 예쁜 여자가 사까시 해주니까, 보기만해도 꼴린다. 우리가 이 정돈데, 씨발 넌 어제 얼마나 좋았겠냐? 하여튼 새끼. 존나 부럽다” -큭. 처음은 처음인가봐. 진짜 한동안 계속 입속에 물고만 있더라고. 지금 보이지? 계속해서 내가 인호네 누나한테 뭐라뭐라 하는거? 이제 조금씩 바뀐다? “오.. 진짜.. 진짜...” 수혁이의 말 그대로였다. 한동안 수혁이 녀석의 고추를 입속에 머금고 있던 동영상 속의 누나는, 얼마 후가 지나서는 천천히 입밖으로 수혁이의 고추를 뱉어내고 있었다. 누나의 입술이 수혁이 녀석의 고추를 훑어내며 빠져나오자, 아까와는 다르게 수혁이 녀석의 고추가 -여기저기 핏줄이 가있는- 조금 단단하게 변해 있는게 눈에 띄었다. 내가 아무리 어리숙하다해도 지금 저게 무언진 안다. 수혁이 녀석은 지금 흥분해 있다. “야, 역시 기수혁 이 새끼 자지좀 봐라. 존나 부럽지 않냐? 고삐리 새끼가 뭐가 이렇게 크냐?” -집안 내력인가봐 큭. 좀 먹어주긴 하지. 부러운듯 수혁이에게 말을 거는 재훈이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누나의 입속에 들어가 있는 수혁이 녀석의 고추는 내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아직까지 자위를 해 본 경험이 없지만, 언젠가 나도 수혁이 녀석처럼 고추가 발딱 섰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수혁이 녀석의 고추만큼 크거나 하진 않았었다. “쪼옥.. 쪼옥” 동영상 속에서 수혁이 녀석이 계속 무어라 다그치자, 누나의 입술이 수혁이의 고추를 타고 앞으로 넣었다 그리고 뒤로 뺐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어제 그토록 나를 궁금하게 만들었던 ‘쪼옥’ 소리의 정체가 명확해 지는 순간이었다. 눈을 질끈 감은 누나가, 수혁이 녀석의 발기한 고추를 입에 물고 막대사탕처럼 ‘빨아댈’ 수록, 수혁이 녀석의 고추를 타고 미끌어지는 누나의 입술이 점점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동영상은 계속 누나의 쪽쪽 거리는 소리와, 수혁이 녀석의 ‘옳지’ 혹은 ‘아프니까 되도록 이빨은 쓰지 말고’ 라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올 뿐이었다. “아 씨발 죽인다. 나도 한번 먹어보자.” -쉬잇~! 큭. 이제 동영상 금방 끝나. “벌써?” -큭. 부끄럽게도 벌써. 와 진짜 못참겠더라. “어 이제 싸나부다. 수혁이 이새끼 인호네 누나 머리채 잡았어!” 나는 떨리는 심장을 추스르고 동영상을 집중했다. 아니나 다를까, 재훈이 녀석의 말대로 동영상에서는 수혁이 녀석의 손이 누나의 뒷통수쪽 머리를 한손으로 꾸욱 쥐어 잡는 모습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수혁이 녀석의 엉덩이가 어쩐지 누나쪽으로 쑤욱하고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제야 눈을 질끈 감고 있던 누나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어제와 마찬가지로 수혁이 녀석의 무릎쪽에 한쪽 손을 올리고 꼬옥 움켜 잡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저기서...’ 수혁이 녀석의 허리와 다리가 나란히 떨리는가 싶더니, 얼마가지 않아 멈춰 버렸다. 덩달아 수혁이 녀석의 무릎에 얹혀져 있던 누나의 한 손도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들은 말없이 그저 숨을 죽이고 동영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화면속에서 수혁이 녀석이 천천히 누나의 입속에서 자신의 고추를 꺼내는가 싶더니, 길게 갈라진 녀석의 귀두가 누나의 입술을 빠져나오면서 실타래 같은 무언가가 쭈욱하고 늘어붙는게 보였다. 그러길 잠시, 누나가 고개를 돌리는가 싶더니, 어제처럼 ‘토악질’을 시작했다. “쌌다!!!! 수혁이 이새끼 쌌다!! 와!!” -큭. 마지막에 못참고 그냥 입에다 싸버렸지 뭐 큭. 카메라를 등지고 연신 토악질을 해대는 누나를 묵묵히 지켜봤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어제 누나가 입속에서 뱉어낸게 무엇인지를. 더럽고, 추접하고, 야만스러운 놈들. 나는 온몸을 휘감는 불쾌함에 치를 떨었다. 동영상에서는 수혁이 녀석이 ‘볼일이 끝났다는’ 듯 주섬주섬 바지를 올려 입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누나는 연신 가녀린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어차피 후에 벌어진 일들이야, 나도 익히 알고 있으므로, 나는 수혁이 녀석들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어쩐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비틀거리며 옥상쪽으로 걸어가니까 등뒤로 ‘나도’ ‘그렇게 빨리?’ 같은 ‘알수없는’ 말들이 쏟아졌다. 오후 6시쯤 돼서 학교를 빠져 나왔다. 예전과 다르게 몸은 편해졌다지만, 수혁이 녀석들이 수시로 내 눈치를 살피느라 마음은 여간 불안한게 아니었다. 마음이 밍숭맹숭해서 고민고민하다가 도서관이 아닌 집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도서관에 들리지 않고 집으로 바로 가는게 얼마만인가? 왠지 모르게 집으로 가는 길거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버스를 탈까 하다가, 그냥 포기하고 집까지 걸었다. 집에 도착해서 시계를 슬쩍 보니 8시가 다 되어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지춤에서 휴대폰을 꺼내보았지만, 별다른 메시지가 없다. 바닥에 휴대폰을 신경질적으로 던져놓고선 땀이 베인 교복을 주섬주섬 벗었다. 몸 여기저기가 끈적거린다. 화장실로 들어가서 대충 몸을 씻고 나왔다. 방안에 불을 모조리 끈채 그대로 방안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방안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니, 잠잠했던 마음이 다시금 어지러워진다.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나지막하게 한숨을 몰아 내쉬니까, 수혁이 녀석의 얼굴과 덩달아 수혁이 녀석의 고추를 입에 물고 있는 -수혁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뻐해 주고 있는’ -누나의 얼굴이 동시에 떠올랐다. 괜시리 불쾌해져서 아무도 없는 방안에 누워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는 수혁이 녀석의 꼿꼿하게 변해있던 고추가 지워지질 않았다. ‘도대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아까 볼성사납게 눈물까지 보였으면서도, 동영상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팬티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얼굴이 달아오름과 동시에 -누나의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을 떠올리니- 팬티가 부풀어 올라서는 좀체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도대체, 수혁이 녀석은 누나한테 왜 그런짓을 시킨거지.’ 누나가 평소에 나에게, 반쯤 장난으로, ‘어리숙하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지금 상황에서 보면 난 정말 ’어리숙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그러면서도 결국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한 손을 나의 팬티위로 가져다댔다. 태어나서 자위를 해 본 기억이 없다. 사실 집에 그 흔한 컴퓨터도 없었기에, 음란 동영상따위를 접할 기회도 아예 없었다. 중학교때 반 아이들이 종종 ‘딸딸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는데, 이게 곧 ‘자위’와 같은 의미를 가진 말이라는 사실도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알았을 정도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뛴다. ‘딱... 딱딱해 졌다.’ 팬티위에 손을 가져다 대니, 딱딱하게 굳어있는 내 고추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런걸 필시 ‘발기‘라 하던가. 나는 어색한 손놀림으로 나의 고추를 계속 만져댔다. 생전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기분이긴 했지만, 그리 썩 나쁜 느낌이 아니다. ‘뜨겁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손바닥 가득 팬티천조각의 거칠한 느낌과, 내 ‘발기된’ 고추의 뜨거운 감촉이 동시에 전해졌다. 한참을 주무르고 있다가, 나는 손으로 나의 팬티를 슬금슬금 허벅지까지 내렸다. 내 얼굴쪽을 향해 꼿꼿하게 솟아 있는 나의 고추가 눈에 들어왔다. 스탠드 조차 켜지 않아 어둑어둑한 방안이지만, 그래도 나름 어둠에 익숙해 졌는지 내 고추의 형태는 알아볼 수 있다. 내 몸에 18년동안 붙어 있었건만, 익숙지 않은 그 모습에 괜시리 얼굴이 붉어졌다. 동영상에서 보았던 수혁이 녀석의 모양과는 어쩐지 조금 달라보였지만, -그러니까 크기가 조금 다른것 같은 느낌-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맨손으로 나의 고추를 다시 감싸쥐었다. 다시금 손바닥 전체에서 뜨거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곤 천천히 고추의 표피를 문질렀다. ‘기.. 기분이... 기분이...’ 눈을 질끈감고 나의 고추를 문질렀다. 이상한 기분이 나의 신경계를 자극하고 나섰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다. 한동안 그렇게 천천히 나의 고추를 문지르고 있는데, 머릿속으로 갑자기 수혁이 녀석의 입에 물고 ‘쪽쪽’ 소리를 내던 누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왜... 누나가... 바..바보같아’ 하필이면 이런 순간에 누나의 얼굴이 떠오르다니,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상하게 고추에 올려져있는 나의 손가락은 나의 마음과 반대로 움직였다. 되려 누나의 얼굴이 떠오르고 나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의 고추를 문지르게 됐다. 수혁이 녀석의 고추를 입에 물고 열심히 ‘예뻐해’주던 누나의 얼굴과 함께 나는 한동안 나의 고추를 문질렀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나의 고추에서 이상한 느낌이 전해졌다. 뭔가, 저릿한 느낌. ‘어... 어... 이건.. 윽..’ 오줌을 쌀것 같은 저릿한 느낌이 들어오는데,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멈출수가 없다. 방안에 탁탁 소리가 쉼없이 울려퍼지는것 같더니, 고추쪽에서 무언가 꿀렁하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저릿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아... 하아...” 배와 손에 끈적거리는 액체가 튀어 묻었다. 불을 켤 힘도 없어서 손과 배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느끼며 그대로 눈을 감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렇게 나는 역사적인 첫 ‘사정’을 마쳤다. 애석하게 그 대상이 나의 누나라는건 두고두고 부끄러울 일일것 같지만. 생전 처음 느껴보는 나른함이 밀려왔다. 방금전까지 나의 몸을 감싸고 있던 ‘쾌감’은 빠른 속도로 나의 몸을 빠져 나갔다. 몸이 너무 나른해서 그냥 그상태로 있고 싶었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끈적거림이 좋지 않아 일으켜 화장실로 달려갔다. 사정을 마친 나는 다시 어두컴컴한 방에 누워버렸다. 잔득 발기해 있던 나의 고추가 팬티속에서 잠잠해져 있음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차츰 정신이 들어서,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불현듯 옆에 있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휴대폰 액정의 모서리에서 숫자 9와 15가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구식 슬라이드 휴대폰을 힘껏 위로 열어젖히니, 알림메시지가 몇 개 뜬다. ‘누나한테 전화왔었네.’ 7통이 넘는 전화가 왔었다. 왜 몰랐나 했더니, 바보같이도 무음으로 해놨다. 휴대폰을 다시 진동으로 만들어놓고, 문자메시지함을 꾸욱 눌러보니, 누나의 메시지가 몇 개 뜬다. ‘무슨일 있니?’ 로 시작해서 ‘걱정된다’ 로 끝나는 문자들이었다. 사정의 나른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누나의 메시지를 보고 있으려니 별다른 느낌이 없다. 연락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생각도, 또한 지금이라도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답장이라도 보낼까 하다가, 왠지 졸음이 밀려오기에 그대로 두 눈을 꼬옥 감아버렸다. “자니? 인호야 자?” 얼마간 잠들어 있었는데, 옆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비몽사몽간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살짝 실눈을 떠봤다. 흐릿한 물체가 내 옆에 다가와 앉아있는게 보였다. 첫 사정의 기운은 생각보다 강렬한가 보다. 몸이 너무 무겁다. 대꾸를 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나는 그냥 자는척을 했다. 그러자 하얀 실루엣이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어디론가 가는가 싶더니 주섬주섬 무언가를 만지기 시작했다. 실눈을 뜨고 지켜보는데, 방한 구석이 돌연 훤해지는게 보였다. 아마도 스탠드를 켠 모양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슬쩍 시계를 올려다 보는데, 시간이 어쩐지 이상하다. 잘못 본 것 같아 미간을 찡그리고 시간을 확인하니, 짧고 굵은 시계바늘이 숫자 1에 가서 있다. ‘음? 뭐지? 내가 이렇게나 잠들었었나? 그나저나, 누나는 지금 온건가? 왜 이렇게 늦은거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들키지 않게 눈을 비비면서, 흐릿한 물체쪽을 바라보니 누나가 스탠드를 켠채 방구석에 앉아 있었다.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누나한테 말이나 걸어볼까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누나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누나의 이유모를 흐느낌은 한동안 계속 됐다. 그 흐느낌이 어떤 이유에서 발생한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건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다시금 형언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말못할 불안감이. 한참을 방구석에서 흐느끼는가 싶더니, 누나가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곤 스탠드를 끄고는 내쪽으로 다가오는게 보였다. 눈을 다시 질끈 감고는 나는 자는 척을 했다. 누나가 내 옆에 다가오는가 싶더니, 내 머리카락을 연신 쓰다듬어 주었다. 기분이 묘하다. 그리곤 내 볼을 한번 쓰다듬더니 ‘미안해’ 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내 옆에 누웠다. 나는 누나가 나지막하게 속삭인 ‘미안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느라 밤을 샜다. 다음날 아침에 누나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태도로 나를 대했다. 하지만 누나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어딘가 조금 냉랭하고 어색했다. 그래서인지 어제 내가 도서관에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나, 전화한통 누나에게 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누나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다를것 없는 미소만을 나에게 띄워 주었다. 언제나처럼 도서관과 학교로 가는 길목에서 누나와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한참을 걷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뒤를 돌아보는데, 어제와는 다르게 누나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괜히 답답해져서는 학교로 걸어갔다. 그러면서도 누나가 어제 들어왔을 새벽 1시라는 시간과, 나에게 건냈던 ‘미안해’라는 말의 의미가 한데 아우러져 나를 괴롭혔다. “여~~ 친구! 왔어?” 교실에 들어서니, 수혁이 녀석과 진수, 그리고 재훈이 놈이 차례대로 나에게 ‘친구’라는 말과 함께 다가섰다. 그 모습이 어색해 보이는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반 아이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봤다. 누구보다도 수혁이 녀석의 얼굴을 보니, 잔득 긴장이 된다. 수혁이 녀석들에게 둘러싸여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제 했던 자위 탓인지- 더더욱 움츠러 든다. 그러자 보다못한 수혁이 녀석이 나에게 한마디를 던졌는데, 그 말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여~ 큭. 어제는 왜 도서관에 안왔어?” 이제야 어젯밤에 나를 그토록 불안하게 만들었던 원인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이 자식들, 모두 어제 도서관에 있었다. # 목격 오늘따라 유난히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다. 내 바로 뒤에 앉아있는 수혁이 녀석을 떠올리면 순간순간 몸이 오들오들 떨린다. 간혹가다가 나에게 말을 거는 진수나 재훈이 녀석의 말은 커녕, 다음주가 시험이니 잘 준비하길 바란다는 선생님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는 어제 도서관에서 있었을 일들이 궁금해 미칠 것 같다는 생각만이 맴돌았다. 그러면서도 숫자 1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돌았다. “오늘부터 다음주까지 공부하러 계속 도서관 갈건데, 인호도 이따가 올거지?” 넋이 나간사람처럼 주섬주섬 가방을 꾸리는데, 뒤에서 수혁이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놀라서 돌아보는데, 수혁이가 생긋생긋 웃고 있다. 무슨 말이라도 할까 하다가, 옆에서 -마치 너는 곧죽어도 오지마라라는 표정으로- 인상을 구기고 있는 진수 녀석을 보고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고개를 흔들었다. 수혁이 녀석은 나의 표정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짐을싸서는 진수 녀석과 함께 교실을 빠져 나갔다. 나는 넋이 나간사람처럼 교실에 덩그러니 남아있다가, 어제와 같이 무거운 발걸음을 땠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집으로 갈까. 혹은 도서관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축 늘어져서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한참을 고민하다가 전화기를 꺼내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몸이 좋지 않으니 오늘도 집으로 곧장 가겠다’라는 나답지 않은 핑계를 누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전화기 너머에서 진심으로 걱정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나는 별달리 대꾸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어둠속에서 몸을 웅크린채 손톱을 물어 뜯었다. 하릴없이 애꿎은 시계바늘만 좇았다. 오늘도 어제랑 같은 시간에 들어오면 어떡하지? 역시나 자는척을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차라리 맘편하게 잠이나 잘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은 나와는 다르게 잘도 흘러갔다. 그리고 시계가 10시 30분을 가리킬때까지 누나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누나가 문을 열고 들어온건,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기어이 바닥에 눕고 자는척을 했다. 어둠을 뚫고 누나가 내곁에 다가오는가 싶더니, 어제와 마찬가지로 내 옆에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눈을 질끈감고 생각에 잠기려니까, 누나가 뒷꿈치를 들고 사뿐사뿐 걸어서는 어제처럼 스탠드를 켠다. 그리곤 가방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는가 싶더니, 금새 스탠드를 꺼버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제처럼 훌쩍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괜시리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서, 몸을 옆으로 돌아 누었다. 오늘도 잠이 들지 않을것 같다. 다음날 깼을때, 책상위에는 누나가 사왔는지, 약봉투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그냥 둘러댔을 뿐인데 어제 전화통화 끝나자마자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사온 모양이다. 하여튼 누나. 약봉투를 만지작 거리다가, 그대로 책상위에 두고는 화장실에 있는 누나를 향해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먼저 나가’ 라는 말을 내던지고 집을 나섰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누나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서 서둘러 몸을 빠져 나갔다. 누나와 함께하지 않는 등굣길도 꽤나 오랜만이다. 뭔가 어색해서 길을 걷다가 자꾸 옆을 확인했다. 씁쓸한 입맛을 다시다가 걷고, 다시 옆을 확인하고, 그리고 다시 걸으며 학교까지 갔다. 학교에 일찍 온 탓에, 수혁이 녀석들은 커녕 반 아이들도 보이질 않는다. 아침임에도 후덥지근 교실에 발을 들여놓고 천천히 내 자리로 갔다.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는데, 뒤쪽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슬쩍 고개를 돌리니 수혁이 녀석의 책상서랍에서 책가지들이 떨어져 나와 있었다. 부리나케 녀석의 자리로 가서 떨어져 있는 책들을 주워 드는데, ‘거짓말 처럼’ 볼펜 한자루가 기워져 있는 녀석의 노트가 펄렁 소리와 함께 펼쳐졌다. 교과서를 주섬주섬 책상속에 넣고 그 노트도 주워들려는데, 한사람의 글씨가 아닌 여러사람의 글씨가 페이지 빼곡히 채워져 있는게 보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노트를 덮으려다가 진한 글씨로 써져 있는 글자가 눈에 들어와서 책상위에 노트를 펼쳐 놓았다. 그리곤 낙서처럼 보이는 그것들을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오늘도 도서관에 갈거냐?’ ‘당연하지.’ ‘오늘 나도 한번 할 수 있는거?’ ‘힘들듯. ^^’ ‘왜 너만 재미보는거?’ ‘조금만 기다리.. ㅜ.ㅜ’ ‘오늘 같이 가는건 괜찮음?’ ‘당연 ^^’ ‘그럼 오늘도 사까시만?’ ‘약 좀 올려야지 ^^’ ‘나같으면 그냥 따겠다’ ‘재미없음 ^^’ ‘이따 구경이나 하겠음’ ‘좋은 구경 하세효 ^^’ 노트의 반을 꽉 채우고 있는 낙서를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읽고 또 읽었다. 아마도 진수녀석과 수혁이 녀석이 주고받은 메시지 같다. 어제일까? 아니면 그제일까? 딱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다시금 머릿속이 복잡했다. 수혁이 녀석은 기어이 누나를 찾아가 ‘똑같은 짓’을 반복했던 모양이다. 메시지를 읽고 또 읽다가, 한페이지를 넘기려니까 또다른 낙서들이 눈에 들어왔다. 필체를 보니 -필체라고 하기에도 아까운 악필이었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은 바뀌지 않은 모양이다. ‘어제 좋은 구경 했음? ^^’ ‘눈만 신나면 뭘하냐?’ ‘큭. 기다리삼 ^^’ ‘그놈의 기다리라는 말은’ ‘ㅜ.ㅜ 당분간 도서관에 계속 갈 거임’ ‘슬슬 시작하나?’ ‘어차피 담주부턴 시험기간임. 잘됐음요 ^^’ ‘인호네 누나가 도서관에 안나오면?’ ‘그럴 리가 있나. ^^’ ‘자신만만?’ ‘당연. 어제처럼 인호자식이 도서관에 안온다면 금상첨환데 ^^’ ‘재훈이 시켜서 잡아둠?’ ‘no no! 그럴필요 있나? ^^’ ‘암튼, 담주 안으로 나도 호강시켜주길’ ‘상황 봐서 ^^ ㅋㅋ’ 노트를 들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럴줄 알았으면 어제 그냥 도서관으로 갔어야 했다. 왜 나는 이틀동안이나 누나를 혼자 두게 만든걸까? 괜한 죄책감에 빠져 있는데, 교실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서 부랴부랴 노트를 서랍속에 구겨놓고선 허겁지겁 자리에 앉았다. 일이 이렇게 되니, 수업시간은 물론 쉬는시간까지 뒷자리의 수혁이와 진수 녀석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얼굴한가득 잔득 인상을 구겨넣고 있는 진수 녀석과 눈이 마주칠 것 같으면, ‘쫄아버려서’ 고개를 앞으로 돌려버렸다. 머리가 훤해져서는 아무 생각도 없다. 그냥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 뿐인데, 뒤에서 재훈이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어이~ 인호~! 오늘 도서관 갈거냐?‘ -어? 재훈이 녀석의 말에 내가 화들짝 놀라려니, 진수 녀석이 언제나처럼 재훈이를 노려본다. 그러자 보다못한 수혁이 녀석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공부라도 같이 하려고’ 라는 말을 건냈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나는 ‘몸이 좀 안좋아서, 집에 가려고’ 라며 둘러댔다. 그랬더니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수혁이 녀석과 진수 녀석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 같았다. 녀석들이 교실을 나서고 나서, 얼마있다가 나도 교실을 빠져 나왔다. 터벅터벅 걸음을 걷다가, 나는 -결의에 차서- 평소에 하지도 않던 뜀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수혁이보다 빨리 도서관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헉.. 헉” 도서관앞에 도착해서 거친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수혁이 녀석 생각뿐이었다. 슬쩍 시간을 확인하니, 녀석들이 도서관에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가 없다. 땀을 닦아내지도 못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자료실 쪽으로 걸어갔다. ‘어... 없다!’ 1층 자료실에 걸어갔는데, 누나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갑자기 안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남자 화장실 쪽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화장실은 텅 비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2층까지 뛰어다녀 봤지만, 누나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다시 1층 자료실로 내려와서 -할 수 없이- 텅 비어 있는 자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땀이 늘러붙어서 찝찝한 기운이 몰려왔다.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지도 못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장서 쪽으로 걸어갔다. 얼마되지 않는 책꽂이 사이를 걸어다녀 봤지만, 여전히 누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시무룩해져서, 장서 숲에서 빠져나오려는데, 누군가 자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게 보였다. 하얀색 서류를 손에들고 있는 누나의 모습이었다. 행정실에 다녀온건가? 괜시리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 나지막하게 누나의 이름을 부르려는데, 또다른 누군가가 자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질겁을 해서는 책장 사이로 몸을 숨겼다. “누나 안녕?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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