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과 그놈의 애비는 구멍 동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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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6,9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그놈과 그놈의 애비는 구멍 동서였다
1970년 후반 당시 저는 이십대 후반의 이었습니다.
대학을 진학하려 하였으나 요즘처럼 자신이 가고싶은 학과를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부모님의
뜻을 따라야 하였던 당시 시대 상황에 전 제가 가고싶은 학과를 가지 못하고 제 실력보다
훨씬 우수한 학과를 지망하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성화에 기어이는 대학을 포기하고 당시 일당
300원 하는 공장에 다니며 12년 배운 학업을 원망하며 소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몇 년이 지나 아버지가 정년 퇴임을 하시는 바람에 아버지께서 공장을 하시겠다
기에 저도 제가 다니던 공장에 사표를 쓰고 아버지 공장에서 일하기로 마음을 먹고 상의하니
처음에는 난색을 표하시더니 나중에는 그렇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몸쓸 인연>에서도 밝힌바 있듯이 저는 자동 선반 계통의 일을 하였기에 아버님이 하시려는
범용 선반과도 관계가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운영하는 공장보다 아버지가 하는 공장에서
더 기술을 익히고 싶어서 그렇게 간청을 한 것입니다.
요즘이야 누가 선반 밀링 들을 배우라고 하면 모두 뒷걸음질치며 도망가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배우려고 일당 아니 월급 한푼 안 받고도 자기 도시락 싸와서 배우려고 할 정도였습니다.
한 예로 당시에 우리 공장에 강모라는 공장장이 있었는데 얼굴을 볼품 없이 빡빡 얽은 곰보
투성이요 술이라면 있는 것이 한정이 없었으며 그렇다고 벌어놓은 돈도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일류 선반 기술자라는 그 조건만으로 도 무난하게 결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제가 중매하여)
그 정도로 선반 기술자가 대우를 받는 그런 풍토이었습니다.
1973년 8월 1일 00정기라는 이름으로 정식으로 공장이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금년 8월 1일이 꼭 창업 30년입니다 만 워낙 작년과 금년에 경기가 없어서 아무런
행사도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각설 하고
요즘 선반 돌리는 공장에 누가 무엇을 훔쳐 가라고 하여도 무겁거나 기름투성이라 24시간
문을 열어 두어도 도둑을 안 맞지만 당시에는 조그마한 쇳조각도 훔쳐 가는 그런 시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장에서 누가 숙직을 하여야 하는데 제가 그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군용
야전 침대를 하나 사서 숙직을 하는데 여름에는 선풍기가 있으니 잘만 하였지만 겨울이면
요즘에야 흔한 전기 장판이나 옥돌 매트가 당시에는 없었기에 낮에 탄약통에 물을 담아 펄펄
끓여 그 것을 헌 옷가지로 돌돌 말아서 품에 안고 자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일어나면 집으로 가(걸어서 약 20분 거리)아침을 먹고 아니면 3분 거리에 있는 자장면 집에서
자장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다시 공장에 와서 대문을 열고 작업 준비를 하면 사람들이 출근을 하고
그러다 점심이 되면 각자 가지고온 도시락을 둘러앉아서 먹고 일이 끝이 나면 저는 또 공장
문을 잠그고 집으로 가 저녁을 먹고 공장으로 와 이웃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는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이웃에 있는 술집에는 심부름을 하는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여자를 우리는 이모라고
불렀지만 나이는 저와 비슷한 또래였으나 남들이 전부터 이모라 불렀기에 저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공장 주변에 자취하는 사람들이랑 또 사무실에서 숙직을 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보니
그 식당은 일년 365일 문을 닫고 쉬는 날이 전혀 없었습니다.
명절이라고 주인은 제사 모시러 가더라도 이모는 남아서 밥을 하여 오는 사람들을 먹여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모 아무리 술손님이 와도 절대 합석을 하거나 술을 안 따라 줘도 자기의 일과가
끝이 날 시간이면 누가 앉아라 하지 않아도 술자리에 당연하다는 듯이 끼어 들어 술을 마셨습니다.
그 이모의 주량은 남자 뺨 칠정도로 대단하였고 젓가락 장단은 거의 일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마칠 시간이면 서로 자기 테이블로 오라고 뭇 남자들은 신경전을 쓰며
그 이모가 어느 테이블로 가느냐에 온 신경을 집중하였으나 그 이모는 누구라고 정 한 것이
아니고 그 식당의 단골손님들 테이블에 하루하루 돌아가며 앉는 것을 알고는 그 이모가 마치는
시간에 돌아가며 술을 마시러 오면 그 이모는 안주가 좋던 안 좋던 간에 마치 당연하다는
합석을 하였고 다른 손님이 있으며 마치 자기가 돈을 지불하는 양 다른 테이블의 손님도 같이
합석하여 술을 마시며 니나노 판이 매일 같이 벌어지곤 하였습니다.
그 이모는 입담도 걸직하여 남자들을 오금을 못 펴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퇴근을 하면 그 식당에 딸린 방에서 잠을 잦는데 간혹은 돈을 받고 몸을 팔기도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누구 하나 그 것을 입에 담지는 않았는데 저도 한번 먹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은 생겼지만 그녀는 남자와 자고 싶으면 아무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만 섹스를 하는 모양이었는데 직장 살이 하며 돈이 없어도 마음에 들면
공짜로 보지를 벌려 준다는 소문이 들렸으나 전 단 한번도 그런 행운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몸쓸 인연>의 여 주인공과 이별을 하고 섹스에 굶주린 저로서는 강하게 섹스가
그리운 판에 그 여자는 저희 공장 직원들과 술판을 벌리면 와서 같이 놀아 주었으나 단 한번도
야릇한 눈웃음을 주지 않아 언제나 그 야릇한 눈웃음을 주려나 무작정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석날 죽은 제 동생과 제 친구 집에(<몹쓸 인연>에서 저에게 그 여자를 소개시켜준 오빠)
가서 제 동생과 산토리 위스키 한 병과 죠니워커 한 병을 비우고 동생은 집으로 가고 저는
공장으로 왔는데 마침 그 식당에 불이 밝혀져 있어 들어가니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모 혼자서 무슨 청승이야?"하고 말하자
"이년의 팔자가 얼마나 더럽기에 명절에 갈 고향도 없겠어"하기에
"같이 마시자"하며 그 이모의 건너편에 앉자 잔을 비우더니 저에게 잔을 주며 부어 주었습니다.
"이모 고향이 어딘데?"하고 묻자
"고향? 흥! 전에는 강원도였는데 부모님 다 죽고 나 술집 전전하다보니 형제들이 인연을 끊자하여
이제는 갈 곳도 없는 처량한 신세지"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빠야! 따분한 이야기 하지말고 다른 이야기하자! 오빠야 오늘 술 많이 마신 것 같다"하기에
"응, 조니워카 한 병하고 산토리 위스키 한 병 도합 두 병을 동생하고 나누어 마셨다"하자
"애~이! 한 병 가져오지"하며 눈을 흘기었습니다.
"마시고는 가도 가지고는 못 간다 해서....."하고 말을 흐리자
"농담이야"하기에 웃으며
"아무리 그렇지만 김치 하나 놓고 술 마시기에는 너무 청승맞다. 안주하나 해와"하자
"회 무침 하나 할까?"하기에
"그래 명절 음식 느끼해서 혼났는데 회 무침으로 입 행구자"하자 가더니 가오리 무침을 무쳐서
가지고 오더니 젓가락을 저에게 주면서 엷은 미소로
"솜씨가 없어서 오빠 입에 맞을지 모르겠어"하기에 한 젓가락 집어 먹고는
"맛있다"하고 웃자
"고마워"하고는 한참을 같이 마시고 떠들었습니다.
밝아진 그녀의 표정이 평소처럼 돌아와 저도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는데
"오빠~!오늘도 공장에서 자나?"하기에
"그래"하고 말하자
"적적 안 해?"하기에
"적적하지만 도둑 들면 큰일이라 할 수 있냐"하고 말하자
"허긴 그래"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빠 나 몇 일 있으면 다른 곳으로 간다"하기에 놀라
"왜?"하고 묻자
"이유는 나중에 오빠 품에 안기고 나서 이야기할게"하며 넌지시 저와 섹스를 할 것을 암시를
주었는데 그 순간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한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한참을 마시다가는
"오빠 나 불 끄고 오빠 공장에 갈게. 가도 되지?"하기에
"그~럼!"하고 말하자 나가라고 하여 저는 공장으로가 야전 침대를 펴고 이불을 깔았습니다.
그 당시 휴지는 물론 없었고 요즘 그 흔한 A4 용지도 미술을 그리는 도화지로나 사용하고
일반 연습장은 소위 신문지 같은 것을 썼고 포장지는 말 그대로 똥 종이를 쓰던 그런 시대다
보니 이불에 좆물이나 씹물이 묻으면 부모님에게 발각이 나겠기에 신문지 몇 장을 요 위에
깔아놓고 한참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문이 열리며 그녀가 웃으며 술과 먹다 남은
안주를 들고 오더니 침대 옆 사무실 책상 바닥에 내려놓고 옷을 벗어 못에 걸더니 팬티와
브래지어 바람으로 침대 위에 오르더니 눕고는
"나 전에부터 오빠 좋았는데 오빠가 너무 얌전해서 말못했어"하며 웃기에 저도 옷을 벗고
"고마워"하고는 그녀의 몸 위에 몸을 겹치고는 키스를 하였습니다.
요즘 윤락가의 여자들 키스나 갖가지 기교를 다 부려 손님들을 또 오도록 만들지만 그 당시
제가 직접 경험 한 것은 아니지만(지금까지 돈주고 여자를 산 적이 단 한번도 없음)윤락가
여자들 아무리 단골이라도 입술만을 절대로 안 주었던 그런 시대였는데 그녀는 제게 입술을 주었습니다.
"오빠~!나 보지에 힘 들어가면 오빠 몇 일 고생한다"긴 키스 끝에 그녀가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무슨 말이야?"하고 묻자
"내 보지로 맥주 병 하나는 딸 수가 있거든"하며 웃기에
"말로는 그런 여자 있다던데 이모가 그런 솜씨 있어?"하고 놀라며 묻자
"응"하고는 웃기에 놀라자
"나 오늘 이 동네에서 딱 두 사람에게 죽여주었는데 마지막으로 오빠에게 써먹고 갈래"하고
웃기에 과연 얼마나 보지의 수축력이 좋은지 기대감으로 그녀의 팬티를 벗기고 좆을 보지
깊숙이 집어넣고 키스를 하며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몸쓸 인연>에 나오는 주인공의 보지보다는 훨씬 헐겁고 그렇게 석 좋은 느낌은 안 들었습니다.
한참을 펌프질하자 그녀가 갑자기
"아~이제 오른다"하는 순간 그녀의 보지가 제 좆을 힘차게 물었습니다.
제 요도까지 딱 달라붙을 정도로 그녀의 보지는 힘이 좋았습니다.
아예 펌프질 자체를 못할 정도로 힘차게 물고 있었습니다.
"아~!"전 기쁨의 비명이 아니라 숫제 아픔의 비명을 질렀습니다.
"죽겠지?"그녀는 보지의 힘을 풀고 웃으며 제게 물었습니다.
"정말 놀랍다"하고는 펌프질을 하자 그녀는 오를 때마다 보지에 힘을 주어 저를 옴짝달싹
못하게 보지에 힘을 주어 좆을 물고는 씹물이 나오면 힘을 풀기를 거듭하였습니다.
지금 그 일이 있었던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런 여자는 단 한 명도 못 보았습니다.
아마 한 7~10회 정도 그녀가 그러기를 반복한 끝에야 전 그녀의 보지 안에 좆물을 부어 줄
수가 있었는데 그녀의 보지 안에 들은 제 좆이 벌떡이며 좆물을 쏟아 부을 때 요도의 통증이란....
무척 아프고 고통스러운 사정이었습니다.
그녀와 힘든 섹스가 끝이 나자 신문지로 대충 닦고는 수돗물로 씻더니 옷을 입고 침대에 조금
떨어져 앉더니 가지고온 그 가운데에 다시 신문지를 펴고는 거기에 가지고온 안주와 술을 놓더니
"오빠~!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최소한 내가 이 동네 뜨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하면 안 되"하기에
"무슨 이야기인데 그러냐?"하고 묻자 술을 한잔 마시고는 슬픈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오빠 공장 집 주인과 관계되는 이야기야"하기에
"좋아 비밀 지키지"하고 술을 한잔 마시자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위의 글은 본론이 아니고 지금부터가 거의 본론이라고 생각하여도 됩니다.
"내가 처음 이 동네에 발을 들여놓으니 지금은 이사를 갔지만 요 앞에 00철강이 있었는데
그 사장이 전에 내가 있던 곳에서 다른 장사를 하나 하였는데 그 사장하고 잠자리를 하면서
아까 오빠에게 하였듯이 몇 번 같이 자면서 하였거든"하며 숨을 돌리기에
"그래서?"하고 묻자 다시 술을 한잔 마시더니
"그렇게 한번 하여 주는데 내 마음이 쏠리면 공짜지만 돈으로 유혹하면 2~3만원 받아야 해
주었거든 그런데 그 사장이 이 동네에서 장사를 하는지 모르고 지금 있는 식당에서 선불을
받고 와 보니 그 사장이 있었는데 그 사장이 오빠 공장 집 주인 영감에게 이야기를 하였는지
어느 날 밤 자기 사무실로 술과 안주를 시키기에 그것을 가지고 갔더니 혼자 있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탁자 위에 술과 안주가 담긴 쟁반을 내려놓고 나오려니 내 팔을 잡으며 주머니에서
오 만원을 끄집어내어 나에게 주며 00철강 사장에게 소문 들었다며 한번 자면 준다고 하기에
이왕지사 버린 몸 무려 오 만원이 수중에 들어온다는 생각이 들어 일과가 끝이 나면 다른
곳에서 만나자고 하였더니 그렇게 하자고 하며 00여관에서 만나자 하기에 식당으로 돌아와
일과를 마치고 가니 여관 앞에서 죽치고 있기에 따라 들어가니 샤워부터 하라고 하더니 하고
오자 내 보지를 벌려서 손가락으로 쑤시더니 그 것을 자기 코에 대어보고는 성병이 없다며
자기도 그때서야 옷을 벗더니 내 몸에 올라타고 키스를 하려 하기에 키스는 안 된다고 하자
가슴을 빨았는데 그다지 감흥이 나지 않았으나 거액 5만원이 들어온다는 욕심에 일부러 소리지르며
호응하여주자 영감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더니 좆을 박았어"하고는 술을 한잔 마시기에
"그래서?"하고 묻자
"오빠에게 하였던 것만큼은 안 올랐지만 3~5번 좆을 힘껏 물어주었더니 나 살려라 하고 호들갑을
떨기에 더 이상 안하고 가만있으니 혼자서 지랄하고는 좆물을 내 보지에 찌~익! 싸고는 혀를
내 두르며 나 같은 년 있다는 말은 들어 보았어도 실제로 당하기는 처음이라고 너스레를 떨더니
돈 5만원을 쥐어 주기에 받으니 간혹 한번씩 주면 5만원씩 주겠다 기에 봉 잡았다는 생각을 하고
가게에 와서 잠을 잤지"하기에
"별 일 아니군"하고 술을 마시자 그 이모도 따라 마시더니
"여기 까지는 별 일 아니지"하며 어 슬픈 미소를 짓기에
"그럼 또 뭐?"하고 묻자
"그 영감이 콘돔을 안 좋아하고 먹는 피임약을 내가 먹으면 부작용이 많아서 항상 불안하였는데
한 보름 전 입덧이 조금 하기에 산부인과에 갔는데 임신 3개월이라 하더라고"
"그럼 어쩌려고?"하고 묻자
"지워야지"하기에
"그 영감 아이야?"하고 묻자
"그걸 몰라"하기에
"그럼 또 다른 남자랑 하였어?"하고 묻자
"4개월 전 일요일 밤에 오빠 또래의 남자가 술을 마시러 왔다며 혼자 왔더군. 그런데 그 남자
나를 불러 앉게 하더니 내 보지 소문 들었다며 말하기에 웃기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고는
일어서자 주머니에서 지폐를 한 뭉텅이 끄집어내어 자기 손바닥에 때리며 얼마면 되겠느냐고
하기에 5만원 안 주면 안 한다고 하자 주겠다며 따라 가자고 하더라고"하며 술을 마시기에
"5만원에 재미 붙였군"하며 웃자
"오빠 웃을 일이 아니야"하기에
"하여간 계속해"하고 말하자 한숨을 푹 한번 쉬더니
"그 날 따라 손님도 없었고 주인 아저씨랑 아줌마도 계모임 간다고 일찍 가서 가게문을 닫고
따라 가서 빠구리를 하는데 젊은 놈이라 한번으로는 양이 안 차는지 두 번을 하더라고"하기에
"나도 보통 여자라면 몇 번이라도 더 하겠지만 이모에게는 자신 없어"하고 웃자
"처음 할 때는 형식적으로 4~5번 좆을 물어주었는데 두 번째는 내가 달아올라 오빠에게 하였던
것처럼 적극적으로 하였더니 무척 좋아하더라고"
"보통 남자가 아니군"하며 웃자
"그 후부터는 오빠 공장 집 주인 영감이란 그 젊은 놈이랑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꼭 교대로
나를 찾았는데 그 덕에 가게에서 선불 당겨 쓴 것 다 갚았지만......"하고 말을 흐리기에
"잘 되었군"하고 웃으며 말하자
"그런데 임신을 하고 알고 보니 그 젊은 놈이 그 영감의 큰아들이더라 구"하기에 놀라
"그럼 애비와 아들이 너를 교대로"하고 말을 계속하려는데 가로막으며
"그런 셈이지. 애비와 아들이 나를 교대로 돈을 주고 사 몸을 섞고 빠구리를 한 것이지"하기에
"그래 어떻게 했니?"하고 묻자
"그래 하루 쉬는 날 그 애비와 아들을 교대로 불러내어 임신하였다고 하자 모두 자기애가
아니라고 발뺌을 하더라고"하기에
"나쁜 인간들"하고 말하자
"그래 나도 서질 더럽다면 더러운 년인데 가만있겠어? 오빠"하기에
"어떻게 했는데?"하고 웃으며 묻자
"한꺼번에 애비와 아들을 불러내었지"그때부터는 무척 궁금하더군요
"나오든?"하고 묻자
"1:1로 만나는 줄 알고 나왔더군"궁금증은 더 심하여졌습니다.
"그래서?"하고 또 묻자
"오빠 초치지 말고 이야기나 들어"하기에
"알았어"하자 또 술을 한잔 마시더니
"다방에 가니 따로 따로 앉아 있기에 지 애비 앞에 가서 앉아서는 아들을 불러 가지고는 대뜸
두 사람중 한사람의 아이가 이 뱃속에 있으니 두 사람이 공동으로 책임을 지든지 안 지겠다면
동네방네 소문 낼 거라고 말하자 애비와 아들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걸이더니 애비가 아들보고
가라고 하고는 나를 꼬시는데 50만원 줄 테니 이 동네 뜨라고 그러는 거야"하기에
"그래서?"하고 다시 묻자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500만원 달라고 하자 그 영감 그런 돈 없다 하고 발뺌하더군"갈수록 궁금하여
"그래서"하고 또 묻자
"그래 내가 일어서며 알았어요 지금 당장 아저씨 집으로 쳐들어가 마나님께 먼저 이 사실을
말하고 온 동네에 소문내겠으니 그리 알고 있으라고 하며 나가려 하자 내 팔을 잡아당기며
앉게 하고는 액수를 조금 낮추자고 애원하더군"하자 더 궁금증이 동하여
"그래서?"하고 다시 묻자
"좋다며 액수 조정하자고 했지"
"얼마로?"
"오빠 자꾸 초 칠 거야?"하기에
"알았어! 계속해"하고 말하자
"그래 내가 가만 생각하니 액수를 잘 못 불렀다고 하자 얼마냐고 묻기에 700만원이라고 하자
그 영감 기가 차는지 멍하니 나를 쳐다보더니 기다려라 하고는 나가더니 한참 후에 왔는데
신문지에 돈 뭉치를 싸 가지고 와서는 내 앞에 던지듯이 주며 그 날 당장 떠나라고 하기에
식당에 일 할 사람 구할 때까지는 있겠다고 하자 재발 소문은 내지 말라고 하기에 얼마냐고
물으니 500만원이라고 하여 부족하다고 안 받겠다고 하니 주머니에서 50만원을 더 꺼내어
주며 애~이! 빠구리 비싼 것 했군 하며 투덜대기에 못 들은 척하고 나왔지"하며 웃기에
"잘 했어"하고 말하며 박수를 치자
"그 돈으로 다른 곳에 가서 물장사나 할까 해"하기에
"어디서?"하고 묻자
"부산시말고 다른 곳으로 갈 거야"하며 웃기에
"그럼 사람 구했니?"하고 묻자
"추석 휴가 지나고 새 일꾼 온다고 했어"하기에
"야~!섭섭하다"하고 끌어안으며 키스를 하자 그 이모도 제 품에 안기며 키스를 받더니
"아마 나 다른 곳에 가도 오빠 보고싶을 거야"하며 웃었습니다.
"그럼 한탕 더 할까?"하고 말하자
"나도 한번 더 하고 싶지만 더 하면 오빠 잊기가 힘들어져서 안 할래"하고는 술병과 접시를
들고 우리 공장 밖으로 나갔습니다.
행여 지나가는 취객이 덮칠까 두려운 마음에 따라 나오니 거리는 죽은 듯이 조용하였습니다.
그녀가 가게에 들어가자 저도 공장으로 와 깊은 잠을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몇 일 후 추석 연휴가 끝이 나자 그 이모의 모습은 더 이상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밀양의 읍내(요즘은 시내지만)에서 술집을 하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풍설에는 대구에서 술집을 하더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대구 외곽에서 가든을 하는데 남자아이가 하나 있던데 독신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기에 몇
살로 보이던가 물으니 당시에 9살이라고 하기에 계산을 하여 보니 저에게 고백을 할 당시에
임신한 그 아이임에 틀림이 없어서 과연 애비와 아들 중 과연 누구의 아이일까? 하는 미스테리는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도 풀 길이 없는 숙제입니다.
아마 지금쯤 그 아이는 장가가서 그 이모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모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