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제안 9장. 늪 (3) 13화
무료소설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거부할 수 없는 제안 9장. 늪 (3) 13화
띠리리링.
그때 어디선가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오이사가 전화를 받자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어, 나야…… 지난번처럼 기다리지 말고 그냥 자. 어머니께도 그렇게 말씀드리고…… 그래, 늦을 거야.”
“역시 사모님은 뭐가 달라도 다르시네요. 딱 봐도 현모양처 분위기가 풍깁니다.”
“그것도 아니에요. 저희 어머니가 저한테 좀 유별나게 각별하시긴 하죠. 그런데 그걸 알면 눈치껏 융통성 있게 행동하면 되는데 그게 안 돼요. 새벽 4시에 들어가도 거실에 고대로~ 앉아 있어요.”
“저야 부러울 따름이죠. 제 와이프는 제가 들어가고 나오는 거 신경도 안 쓰는데요.”
“아니, 한 이사는 신혼인데 벌써부터 그럼 어떡해요?”
“그러게요.”
나는 조용히 그들의 대화 틈바구니를 빠져나와 욕조로 향했다. 씻고 있던 서 마담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궁금한 거 있으면 씻고 나 찾아와요.”
샤워를 마친 그녀가 다시 그들에게로 걸어갔다.
“모처럼 만에 오셨는데 한 번으로 끝낼 거 아니시죠? 2차전까지 충분히 즐기시고 가세요. 아직 시간도 많은데.”
“그래야지…… 허허허.”
“저는 잠깐 일 좀 마무리하고 올게요.”
멀리서 그녀가 나를 보고 웃어 줬다.
내가 씻고 나왔을 땐 그들은 다시 시작할 작업을 준비 중인 것 같았다. 그들은 벌렁 누워 있었고 여성들이 그들의 다리 사이에서 물건을 정성스레 애무를 하고 있었다.
오 실장의 파트너였던 여자는 그에게 교육을 받는 것처럼 그의 요구 사항을 맞춰 주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굳이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옷을 입고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들어왔던 곳으로 그대로 나왔지만 서 마담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웨이터가 내 앞을 지나갔다.
“저기요.”
“네.”
“서 마담님을 뵙고 싶은데요.”
“아, 네. 따라오시죠.”
웨이터를 따라 조금 더 복잡한 곳으로 들어서자 다시 조그마한 방이 하나 보였다. 그가 노크를 하고 나에게 문을 열어 줬다.
“어서 와요.”
서 마담이 나를 보고 웃으며 손짓했다. 소파로 나를 안내하고는 자리에 앉으며 옆에 있던 담배를 집어 들었다.
“담배해요?”
“아뇨.”
“보기보다 샌님이네?”
그녀가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였다.
“말해 봐요…… 뭐가 궁금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건지.”
“저기.”
“오 실장님이 궁금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 게, 혹시 아군이에요? 적군이에요?
“서 마담님은요?”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군 적군이 따로 있나요. 돈 많이 주는 고객이 최고고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후우…….”
그녀가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물었을 때 바로 안 튀어나오면 최소한 아군은 아니네. 적군인진 모르겠고.”
꽤 통찰력이 있는 여자였다. 뭔지 모르게 속을 꿰뚫어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딱히 나에게 적대적이라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앞으로 계속 오 실장님과 일을 해야 합니다. 어떤 분인지, 어떤 걸 좋아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내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이렇게 성급하게 다가오는 거야? 섹스할 때는 굉장히 참을성이 있더니…… 너무 그렇게 급하면 들켜요.”
“뭘……요?”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나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인데 나도 한번 관계를 가져 보면 어느 정도 사람을 파악할 수 있어요. 성격이 급한지 폭력적인지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 뭐 그런 것들?”
“그런데요?”
“내가 보기에 지훈 씨는 비밀이 많아.”
서 마담은 나름 확신에 차 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일단 섹스를 하기 시작하면 크게 두 가지 타입이 있거든요. 섹스에 집중 하는 타입과 딴생각하는 타입. 전자는 조금 단순한 사람이고 후자는 조금 더 복잡한 사람이지. 거기에다가 그렇게 대놓고 오 실장을 의식하면 누가 모르겠어?”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쓰던 그녀가 어느새 말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으니까 그런 것들은 상관없었다.
“오 실장님도 똑같이 느끼셨을까요?”
그녀가 웃었다.
“그렇진 않을걸요?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눈치가 없거든.”
“그래요?”
“사실 여기에서 내가 보는 오 실장님 모습이라고 해 봐야 한계가 있어요. 내가 아는 거라곤 섹스 취향 정도니까. 그렇지만 지훈 씨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는 건 앞으로 믿고 쓸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해요. 딱 봐도 알겠지만 여기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이거든.”
“섹스 취향은 어떤데요?”
“그게…… 나도 이런 사람은 처음 겪어 보는데 말야. 뭔가 특이해요. 여기 오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거나 잘 맞았을 경우엔 다시 지명을 하거든. 물론 난 안 돼~”
서 마담이 말을 하고 웃었다.
“그런데 오 실장님은 그런 적이 잘 없어요. 매번 여자를 바꿔야 하지. 그것도…… 숫처녀를 고집하고. 요즘 세상에 그런 애들 찾는 게 하늘의 별따기잖아. 그래서 나도 머리가 좀 아파요. 하지만 늘 돈을 필요로 하는 애들이 있으니까…….”
“매번이요?”
“그렇다니까…… 취향이 엄청 특이해.”
“그럼 처녀가 아니면 무조건 건드리지도 않는다는 말이에요?”
“반드시 그런 건 아냐. 거기에 또 다른 특이한 점이 있지.”
“그게 뭔데요?”
“그게 뭐냐 하면 말이에요…….”
10장. 일상으로
“이건 좀 명확하게 설명하긴 어려운데…… 몇 가지 일화들이 있어요.”
“어떤 거죠?”
“이쪽 일을 하긴 하지만 굳이 몸까지, 그러니까 속된말로 2차는 싫다고 하는 얘들이 있어요. 대부분 이런 경우는 남자 친구가 있거나, 자존심이 좀 센 경우죠. 여기도 학벌 좋은 애들이 워낙 많으니까요.”
“그래서요?”
“그런데 어느 날 오 실장님이 2차 안 나가는 애가 맘에 들었나 봐요. 하지만 제가 이 아이는 사실 남자 친구가 있다. 그래서 2차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일단 가서 데려오라는 거예요.”
‘무엇 때문일까.’
“그렇게 나오면 우린 일단 데려갈 수밖에 없어요. 할 수 없이 데려갔죠. 당연히 여자앤 거절했죠. 다른 손님들은 거절당하면 화를 내거나 때리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협박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여기 오는 사람들 대부분 한가락하는 사람이니까. 근데 오 실장님은 그 앨 앉혀 놓고 딱 그러는 거예요.”
서 마담이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뭐라고 그랬는데요?”
“걜 앉혀 놓고 그랬어.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거절해도 상관없어. 지금부터 내가 차례대로 금액을 높여 가면서 말할 거야. 네가 원하는 금액에서 스톱을 하면 돼. 단 내가 먼저 멈추면, 그 이전에 내가 불렀던 액수도 무효고 넌 그냥 이 방을 나가면 돼. 하지만 네가 먼저 스톱하면 그 돈을 갖는 대신…… 후훗, 나랑 뭘 해야 하는지 알지?”
“그게 정말인가요?”
“그럼요. 사실 그 앤 그 남자랑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양쪽 집안이 형편이 너무 어려워져서 급하게 돈이 필요해 이 일을 하게 된 거죠.”
단순히 돈 많은 사람이 돈지랄하는 것을 넘어서는 어떤 특별함이 오 실장에게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여자 분은 오 실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나요?”
“어땠을 것 같아요? 만약에 지훈 씨라면 어땠을까요? 쿨하게 거절 했을까요?”
나라면……. 굳이 멀리 내다 볼 것도 없었다. 나는 이미 그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제안에 오케이 한 사람이니까.
“저라면…… 거절하지 않았을 겁니다.”
서 마담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장미빛이 아닌 거 같아. 그죠? 액수가 올라가니까, 그 애 눈도 떨리고, 손도 떨리고, 보이진 않았지만 심장까지 떨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눈이 참 맑은 아이였는데 그때는 완전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어요.”
“결국 승낙했군요.”
서 마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씁쓸하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엄연한 현실인데…….”
“단순히 예뻐서 그 여자를 지명한 건 아니라는 느낌이 드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오 실장님 같은 분은 가진 게 많은 사람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집착들이 조금 보이죠. 남에게 빼앗기는 것도 싫어하고 경쟁심도 많아요.”
“네…….”
“일전에는 그런 적도 있었어요. 명성그룹 둘째 아들이 마찬가지로 여기 VIP예요. 그래서 그 아이는 이미 지명이 되어 있다고 하니까 거기서 또 경쟁이 붙은 거죠. 그런 스타일이에요.”
“가늠하기가 힘드네요.”
“행동은 단순한데 마음은 복잡한 사람들이 있어요. 본인도 그걸 잘 모르죠. 아마 오 실장님은 그런 부류일 거예요. 조금 도움이 됐어요?”
“네, 많이요.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감사는요 뭘. 오히려 내가 감사해야 하나?”
“네?”
“오늘 꽤 마음에 들었어요. 그렇지만 아무 데나 너무 흘리고 다니면 나중에 탈나요~”
“아…… 네.”
“내가 또 사연 많은 남자들한테 그렇게 끌리거든. 그런 눈빛들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요. 내 보호본능을 막 일으킨다고나 할까? 하핫.”
나도 그냥 멋쩍게 따라 웃어야 했다.
“그렇지만 오 실장님 같은 분은 조심해야 해요. 발톱을 세우고 있다면 완벽히 그 사람의 사람이 될 때까지 잘 기다려야 할 거예요.”
“고맙……습니다.”
“지금쯤이면 2차전 끝났겠네요. 그런 쪽으로는 아주 젬병인 양반들이라…… 하하핫. 가요.”
종잡을 수 없는 인물.
단순한 인물.
어느 선상에 가져다 놓아도 다 어울릴 것 같은 오 실장이었다. 그리고 나는 왜 그를 알아야 할까……. 왜 알고 싶을까…….
***
내일은 유연 씨를 4번째 만나는 날이다. 직접 넘겨받은 전화번호로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일은 하루 종일 나랑 놀아요.]
[누구세요?]
[유지훈입니다. 내 번호 저장해 두세요. 다음부턴 이쪽으로 바로 연락할게요.]
[알겠어요.]
[지금도 뚱한 표정 짓고 있죠? 이런 거!]
내가 멀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냈지만 그녀에게선 답이 없었다. 역시나였다.
[웃으라고 한 건데…… 잘 자요. 오늘은 푸욱~ 잘 잤으면 좋겠어요. 아무 꿈도 안 꾸고 깨지도 않고~ 그럼 내일 봐요.]
역시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숫자1이 사라졌으니 그녀에게 인사한 걸로 만족했다.
내일 가져갈 짐들을 꾸리고 서둘러 잠에 들었다.
아침부터 햇살이 쨍쨍해서 기분이 좋았다. 모처럼 야외로 나갈 계획을 세웠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것도 짜증 나는 일이었다. 다행히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하늘이 맑았다.
원래는 평일 날 만나야 했지만 하루 종일 같이 있기 위해서 토요일로 날짜를 바꾸었다.
지난번 보았던 그 장소로 가서 유연 씨를 기다렸다. 그녀가 곧 도착했고 그때처럼 다시 내 옆자리로 탔다.
햇살보다 더 화사하고 빛이 났다. 굳이 저렇게 비싼 옷에 좋은 구두를 신기지 않더라도 충분히 빛날 수 있는 여자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안녕, 하세요.”
그러면 그렇지. 우리 사이에 어색함이란…….
“예뻐요…… 지나치게…….”
“…….”
“혹시 좋아하는 스포츠 있어요?”
“딱히…….”
“그럼 등산 좋아해요?”
“아뇨. 해 본 적은 없어요.”
“그럼 잘됐네요. 지난번 우리가 갔던 거기 풀빌라 있죠. 거기에서 30분쯤 더 가면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 있대요.”
“그래서, 거길 가겠다구요?”
“네. 물론이죠.”
“저기요.”
“지훈이요.”
“지훈 씨.”
“내가 두 살 많은데 그냥 오빠라고 부르면 안 돼요?”
“네?”
안 그래도 큰 그녀의 두 눈이 더욱더 커졌다.
“아니, 뭐…… 꼭 듣고 싶은 건 아닌데, 아니 듣고 싶기도 한데 뭐 못 부르겠다면 할 수 없죠.”
“지금 그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잖아요? 왜 등산을 가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왜 꼭 그렇게 모든 걸 이해하고 틀에 맞춰야 해요? 나는 당신 잘난 시어머니가 아니에요. 그냥 등산 가자고 하면 가면 되잖아요. 내가 지난번에도 말했죠. 내가 원하는 거 다른 거 없다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나 따라오는 게 내가 원하는 거라고 했던 거 기억나요?”
그녀가 말이 없었다.
“기억해요?”
“기억, 나요. 그렇지만 지금은 옷이랑 신발도…….”
“그런 건 걱정하지 말아요. 미리 내가 다 준비해서 왔으니까.”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뒷좌석을 가리켰다. 전날에 내가 사 둔 등산복과 신발, 각종 아웃도어 용품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제 다르게 준비해 놓은 핑계 있어요? 등산을 하지 못할?”
새침데기 같은 그녀가 잠시 나를 흘겨봤다.
“없어요.”
그런 모습조차 아름다웠다.
“남편은 토요일인데 어디로 가는지 그런 거 물어보지 않아요?”
“어머니가 시키신 일이라고 하면 굳이 묻지 않아요.”
“그렇구나.”
지나가는 길에 숙소가 있었기에 잠시 들려서 옷과 신발을 갈아 신기로 했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프로필 그대로라면 아마도 사이즈가 잘 맞을 것 같았다.
그녀가 거실로 나왔다. 패완얼라고 하더니 진짜 예쁜 사람들은 뭘 입혀 놓도 다 예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영 어색한 모양이었다.
“예뻐요. 내가 색깔을 잘 골랐네. 자, 모자 써요. 혹시 산에 가서 누가 알아볼지도 모르니까.”
그녀가 모자를 받아 들었다.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