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제안 9장. 늪 (1) 11화
무료소설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거부할 수 없는 제안 9장. 늪 (1) 11화
“지훈 씨, 실장님이 부르세요.”
점심시간 전에 박 과장님이 내 자리로 와서 말을 전해 줬다.
“절요?”
아직은 일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자꾸 부르는 게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가 봐야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보통 저 정도 자리면 비서들이 있기 마련인데, 실장 직함이라 비서를 두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앉아요.”
“‘네.”
“아직 적응하느라 정신없죠?”
“아닙니다. 재미있게 배우고 있습니다.”
“한국대학교 나왔죠?”
“네. 실장님도 같은 학교 나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죠.”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오늘 저녁에 시간 돼요?”
“오늘 저녁이요? 네. 시간 있습니다.”
“잘됐네. 저녁에 소개시켜 줄 사람도 있고 할 말도 있으니까 시간 좀 비워놔요.”
“네.”
도대체 무슨 일인 걸까?
“그렇게 궁금한 눈빛으로 안 쳐다봐도 저녁이면 다 알게 될 거예요.”
“네.”
“시키는 건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 아직 변함없죠?”
“물론입니다.”
“난 위험해도 지름길을 택하는 편인데…… 어때요?”
무슨 선문답도 아니고 뭘 물어보는 걸까…….
“저도 편하고 느린 길보다야 그게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좋아요. 우린 아주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겠군요.”
“네?”
“사실 내가 적이 좀 많아요. 알다시피 우리 큰어머니,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 본처의 자식들이 아직 눈에 불을 켜고 날 주시하죠. 아직 발톱을 숨기고들 있지만. 근데 난 혼자예요.”
왜 이런 이야길 하는 거지?
“그래서 난 믿을 만한 내 사람이 필요해요. 당연히 여기 오래 몸담고 있던 사람보다 처음부터 나와 함께할…… 지훈 씨 같은 사람을 더 선호하죠. 당연히 내 사람이 될 거니까 앞으론 날개를 달게 될 거예요.”
나쁘지는 않은 일이었다. 어떤 일인지가 관건이겠지만.
“어차피 전 태양그룹 사람이고 미래전략실 사람으로서 실장님을 보필할 겁니다. 하지만 따로 이렇게 부르셔서 굳이 보여 주시지 않아도 될 속내를 보여 주시는 이유를 여쭈어 봐도 될까요?”
“하하하,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네요. 당돌하면 서도 정확한 판단까지. 아주 좋아요. 그럼 편하게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그가 꼬고 앉았던 다리를 풀었다. 그리고 냉철한 얼굴 표정으로 안면을 바꿨다. 저런 표정은 회장님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걸 분칠한다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해요.”
“분칠이요?”
분칠 얼굴에 하는 분칠을 말하는 건가……? 그럴 린 없고……. 그렇다면…… 설마……?
“그렇게 놀란 표정하면 앞으로 일하기 힘들 거예요.”
“실장님.”
“이런 일 들어 본 적 있죠? 학교 때도 배웠을 테고?”
분식회계. 얼굴에 분을 칠하는 것처럼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일…….
분식회계란 쉽게 보면 기업이 재정 상태나 경영 실적을 실제보다 좋게 보이게 할 목적으로 부당한 방법을 이용해 자산이나 이익을 부풀려 계산하는 회계다. 당연히 채권자와 주주 등의 판단을 왜곡시켜 손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태양그룹은 규모가 어마어마한 회사다. 굳이 이런 방법을 써야 하는지도 의문일뿐더러 하게 된다면 그 액수는…… 가늠하기조차 힘들었다.
“실장님, 굳이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를…….”
“그건 그렇게까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큰일을 하다보면 항상 필요 이상의 돈이 들 때가 많아요. 다 회사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파트너 따위를 운운했지만 결국엔 입 닫고 시키는 대로 하란 소리로 들렸다.
“전 신입사원입니다. 이렇게 큰일을 제가.”
“언제까지 신입사원이고 싶어요? 그건 아니겠지요. 이건 기회예요. 지훈 씬 선택받은 것이고. 그리고 이 엄청난 일을 주도적으로 지훈 씨가 끌고 가라는 것도 아니에요. 이건 굉장히 거대한 스케일이에요. 재무팀이나 외부 회계감사 법인 등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죠. 지훈 씬 그 사이사이를 누비며 내 눈과 귀가 되어 주는 겁니다. 하지만 몇 년 후엔 지훈 씨가 회사에서 중추적인 일들을 나와함께 하게 될 겁니다.”
독이 든 줄 알지만 한없이 달콤한 제안이었다.
“단순한 전달자가 되길 원하시는 겁니까?”
“이런 인재를 그렇게 쓸 수야 있나? 이런 일들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에요. 사람이라는 동물들은 당최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안 그래요? 지훈 씨가 곧 그들의 감시자 역할도 해 주길 바라요. 동시에 가교 역할도.”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었습니다.”
“좋아요, 좋아. 역시 똑똑한 친구들은 달라요. 저녁에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으니까 같이 봅시다.”
“네.”
자리로 돌아와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거절을 했어야 했나?’
상대방은 나에게 빨리 의중을 보여 주었다. 그것도 나름의 확신을 가진 채 말이다. 만약 내가 거절했다면 쿨하게 오케이 했을까?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오 실장이 날 선택한 순간부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난 그들과 한배를 탄 사람이었다. 같이 탈 수 없다면 수장될 수밖에 없는 목숨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살아남아야 했다.
***
“어서 오세요, 오 실장님~”
섹시한 원피스의 브이넥 사이로 쏟아져 내리려는 가슴을 가리며 어떤 여자가 고개를 숙이며 우리에게 인사했다. 휘황찬란한 인테리어에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는데 이 여자의 가슴은 모든 걸 압도할 만한 수준이었다.
“오늘은 뉴페이스도 계시네요. 어머~ 너무 귀엽다. 완전 내 스타일이야. 오랜만에 연애나 해 볼까?”
“이 친구 앞으로 내가 중요하게 쓸 친구야, 서 마담. 조심히 다루라고.”
“에휴~ 알겠어요. 어서 들어가세요. 한 이사님 벌써 들어가 계세요.”
서 마담이라는 여자가 눈웃음을 치며 웃었다.
“들어가지.”
“네.”
룸 안으로 들어오니 뿔테 안경을 쓴 샤프한 인상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 대는 삼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다.
“한 이사님.”
“오랜만입니다, 오 실장님. 동행이 같이 오셨군요.”
“아. 인사해요, 지훈 씨. 회계법인 ‘한경’의 차기 대표가 되실 한준일 이사님.”
오 실장이 한껏 그를 치켜세우며 소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지훈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한준일입니다.”
“잘 봐둬요 한 이사.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니까요.”
한 시간가량의 대화 동안 내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들었던 말들은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분식회계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장부를 조작할 수 있었다. 어떤 방식을 취할지는 저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아직 구체적인 자료를 본 적은 없지만 대충 하는 이야기만 들어도 조 단위는 넘을 것 같았다.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진다면 일개 기업의 문제로 끝날 리가 없었다.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될 게 뻔했다.
갑자기 내가 발을 담그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확 와 닿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한준일 이라는 사람도 이 일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경’은 국내에서 알아주는 회계법인이었다. 대학 시절에도 한경을 목표로 삼고 공부하던 친구들이 꽤 있었다.
아직 자세한 건 모르지만 오 실장이 그를 차기 대표라고 소개한 부분도 그렇고 한씨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그가 현 대표의 아들이거나 혈연관계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돈을 조작하고 감추는 것이야 기업에서 할 일이지만, 그것을 눈감아 주는 일은 ‘한경’같은 외부 법인이 눈감아 줬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었다. 뭘 믿고 날 이렇게 신뢰하는 걸까라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드디어 이야기가 끝이 난 건지 오 실장이 벽 쪽에 있는 벨을 눌렀다. 잠시 후 서 마담이라는 여자를 필두로 여러 명의 여자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하나같이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들이었다.
“실장님, 이번 얘들 어때요?
오 실장이 씨익 웃으며 상체를 소파 깊숙이 기댔다.
“오늘은 한 이사님부터 초이스 하시죠. 저야 좀 까다롭다 보니…….”
“그래도 제가 어떻게…… 하하.”
“뭐가 문젭니까? 한 이사님이 초이스하시고 저도 맘에 들면 같이 먹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핫.”
충격적인 오 실장의 발언이었지만 이 방 안에서 놀란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는 듯 보였다. 그들에겐 놀라운 일이 아니었던 거다.
어쩌면 유연의 남편인 오 실장의 본모습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곳에서 노는 모습으로 그의 가정생활까지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짐작 정도는 해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자네가 한번 초이스 해 보지.”
한 이사가 갑자기 나에게로 화살을 넘겼다.
“제, 제, 제가요?”
갑자기 말문이 막힌 나머지 말까지 더듬고 말았다. 서 마담이란 여자와 함께 들어온 여자들도 내 모습을 보며 조용히 킥킥댔다.
오 실장과 한 이사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친구가 그래서 큰일하겠어?”
기껏해야 10살 차이도 안 날 것 같은 한 이사의 말에 묘한 오기가 생겨났다.
“그래. 앞으로는 이런 자리에 익숙해져야 될 테니 골라 봐요. 내가 책임지고 넘겨줄 테니~”
오 실장이 술을 들이켜며 재촉하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렇게 원한다면 한 번 놀아주마.’
“제가 이런 자리가 익숙지 않아서 결례를 범했습니다.”
“괜찮아. 첨엔 다 그렇지. 그렇지만 남자가 돼서 너무 점잔빼는 것도 보기 좋지 않아.”
한 이사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저분으로 하겠습니다.”
나는 대놓고 서 마담을 지목해 버렸다. 오 실장과 한 이사도 벙찐 표정이었지만 더 놀란 건 서 마담인 것 같았다.
잠시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서 마담과 함께 들어온 아가씨들도 긴장된 분위기 탓인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으, 하하하~! 하하하.”
“큭큭, 하하하.”
동시에 오 실장과 한 이사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갑작스러운 웃음에 그 두 사람 말고는 모두 분위기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아하하, 오 실장님이 아주 제대로 된 물건을 가져오셨네요.”
“그렇죠? 그래, 남자가 그 정도 배포는 있어야지. 그나저나 이 일을 어쩐다? 서 마담. 내가 미리 다 책임지겠다고 말을 해 놓았는데……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하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는 건데…… 어?”
순간 서 마담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제가 이쪽으로는 그만둔 지 3년이나 지났어요. 그렇지만 오 실장님 말씀을 제가 어떻게 거를 수 있겠어요. 실장님을 두말하는 남자로 만들 순 없잖아요? 오늘 딱 하루만 실력을 보여 볼까요?”
그녀의 고양이 같은 눈빛에서 요염한 섹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 이사의 초이스가 끝났다. 이제 남은 사람은 오 실장뿐이었다.
“서 마담, 오늘 준비된 얘 있어?”
뭐가 준비된 얘라는 거지……?
“혜지야.”
서 마담의 부름에 딱 봐도 잔뜩 긴장한 듯 보이는 여자 한 명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얼굴과 짙은 화장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오 실장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나머지 아가씨들이 방을 나갔다.
“괜찮군.”
“약속하신 대로 혜지한테 챙겨 주셔야 해요~”
“서 마담 체면을 내가 깎을 수야 있나? 당연한 이야기를…… 그럼 필요한 거 좀 챙겨서 오지.”
“네. 준비해 뒀어요.”
“일어나지.”
술 마시고 조금 더 노는 그림을 생각했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서 마담이 일어나 벽 쪽에 있던 스위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손으로 밀어내자 또 다른 버튼이 나타났다.
그녀가 버튼을 누르자 오 실장이 앉아 있던 소파 뒷벽 부분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벽이 열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서 마담이 비밀통로 쪽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좁고 어두운 모퉁일 지나 또 하나의 문 안으로 들어서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은 거대한 하나의 방이었다. 하얀색 시트가 깔린 거대한 침대가 조금씩의 빈 공간을 두고 5개나 연달아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반대쪽엔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었고, 한구석에 훤히 비치는 유리 사이로 커다란 월풀욕조가 들어서 있었다. 말이 욕조지 사람 7~8 명은 들어갈 수 있는 자쿠지 수준의 크기였다.
이곳이 처음인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맞춰 갈 수밖에 없었다.
“먼저 몸부터 조금 푸시죠.”
서 마담이 욕조 앞으로 우릴 안내했다.
서 마담이 아가씨들에게 눈치를 주자 그녀들은 각각 오 실장과 한 이사에게 다가가 옷 벗는 것을 도왔다. 그들은 익숙한 듯 그녀들의 행동을 내버려 두고 있었다.
“옷 벗겨드릴게요.”
서 마담 역시 거침없이 내 옷을 벗겼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들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남자들의 탈의가 끝났다. 오 실장이 힐끔 내 몸을 쳐다봤다. 서 마담도 내 몸을 보고 슬쩍 웃음 지었다.
이제 여자들의 차례였다.
한 이사가 초이스 한 여자는 마른 몸매에 키가 큰 편이었다. 쭉 뻗은 각선미가 인상적이었다.
오 실장이 고른 여자는 전체적으로 비율이 좋고 적당히 볼륨이 있고 라인도 잘 잡힌 체형이었다.
그리고 이 여자, 서 마담은 옷자락을 내린 순간 모든 시선을 한군데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커다란 가슴이었지만 탄력 있게 올라붙었고 엉덩이와 허리 라인도 젊은 아가씨들이 비해서 뒤 떨어지지 않았다.
나이도 잘해 봐야 삼십 대 중반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