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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제안 2장. 누구나 비밀은 있다 (1) 3화

무료소설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2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거부할 수 없는 제안 2장. 누구나 비밀은 있다 (1) 3화

“끝나고 뭐해?”

 

유정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물었다.

 

“뭐하긴 이제 집으로 들어가야지. 한 이틀 정도는 푹 자고 싶다.”

 

“술이나 한잔할래?”

 

유정이가 다른 곳을 보며 슬쩍 물어 왔다.

 

“뭐 싸우면 내가 질 거 같아서 한판 붙을 생각은 없었지만 술이라면 좋지.”

 

유정이는 들어올 때부터 차를 가지고 와서 우리는 그녀의 차로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너는 데리러 온 가족들이 아무도 없어?”

 

안전벨트를 매는데 유정이가 내게 물었다.

 

“지방에 계셔. 그런 넌?”

 

“우리 부모님은 내가 뭘 하든 신경도 안 써.”

 

“보아하니 흙수저는 아니구나.”

 

“다행히도. 덕분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맘대로 살았어. 근데 이젠 그 사람들 머리 꼭대기에 서 보고 싶어. 날 무시한 만큼 후회하게 해 줄 거야.”

 

유정이가 말하는 ‘그 사람들’이 정확히 누굴 지칭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더 물어보진 않았다.

 

한참 후 차는 어느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유정이는 조그마한 실내 포장마차 앞에 차를 세웠다.

 

“이런 데 별로야?”

 

유정이가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나야…… 너무 익숙하지. 근데 넌 아닌 거 같은데?”

 

“얻어먹으려면 빨랑 들어와.”

 

“오케이~”

 

안으로 들어가니 허름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실내포차였다.

 

“이모~ 여기 닭발하고 소주요~”

 

“있는 집 년이 여긴 뭐 할라고 자꾸 기어 와?”

 

파마머리를 한 아주머니가 퉁명스레 물과 몇 가지 밑반찬 몇 가지를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아~ 그런 이야긴 왜 해? 그게 내 돈인가?”

 

“이제 그만 맘 잡고 살아. 그런다고 죽은 네 애미 안 살아 돌아와, 이년아.”

 

“아이고~! 일행도 있는데, 쫌! 술부터 좀 줘요.”

 

유정이가 아주머니의 옆구리를 꼬집는 시늉을 했다.

 

“아파, 이년아. 주면 될 거 아녀. 근데 웬일로 놈팡이를 다 데리고 왔어?”

 

“친구예요.”

 

“지랄! 남녀 사이에 친구는 무슨. 자고로 조~옺 달린 놈들하고 애시당초 친구가 가당키나 해?”

 

“아이고 쫌~”

 

잠시 후 매운 내를 풍기는 닭발과 소주가 나왔고 그 사이에 몇몇 테이블들이 찼다. 주인 여자는 여러 자리를 돌아다니며 욕지거리를 시전하고 있었다.

 

“아는 덴가 봐?”

 

“좀……? 먹자. 여기 맛있어. 먹어 봐.”

 

난 음식을 가리는 편이 아닌지라 매운 것도 잘 먹는다. 잘 먹는 나를 보고 유정이가 씨익 웃어 보였다. 그때 식당 한쪽에 있던 작은 텔레비전에서 종합편성 채널 뉴스가 흘러나왔다. 태양그룹의 이야기였다. 자연스레 나와 유정이의 시선이 향할 수밖에 없었다.

 

“태양그룹 송연옥 회장이 대규모 사재를 출연해 장학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오늘 재단 설립을 축하하는 자리에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 가운데 지난해 결혼한 오현태 실장 내외가 단연 주목을 받았습니다. 오현태 실장은 작년 충무로 톱스타인 신유연 씨와 결혼을 발표해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는데요. 태양그룹은 신유연 씨가 장학재단 이사장으로 일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1년 만에 드러낸 톱스타 출신 재벌 며느리 신유연 씨는…….”

 

앵커가 멘트를 하는 도중에 유정이가 텔레비전을 꺼 버렸다.

 

“야~ 보는데 왜 꺼? 넌 애가 애사심이 없냐?”

 

“저 회사가 네 거야?”

 

“누가 내 거래? 이제 내가 다닐 회사니까 저런 기사도 놓치지 않고 봐두는 거지…….”

 

“신경 꺼. 네가 사는 세상 하고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니까.”

 

“그걸 누가 모르냐? 근데 신유연 완전 예쁘지 않냐? 무슨 피부가 저렇게 빛이 나냐? 역시 재벌이 좋기는 좋구나. 저런 마누라랑 같이 살 수 있고.”

 

“부러워?”

 

“그걸 말이라고 하냐?”

 

“재벌은 좋다 치고. 그럼, 같이 사는 마누라도 좋을까?”

 

유정이가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글쎄 아마 좋지 않을까? 재벌 집에 시집갔는데?”

 

“쯔쯧, 너도 머리만 좋았지 아직 인생을 덜 살았구나?”

 

“뭐냐? 거 뭐에 통달한 것 같은 말투는…….”

 

“아니다, 마셔.”

 

환풍이 잘 되지 않아 시간이 지나자 가게 안은 매캐한 연기와 사람들의 소음으로 가득 차 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 여자가 소주 한 병을 들고 유정이 옆으로 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소주 뚜껑을 따고 그녀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밥은 먹고 다니는 거야?”

 

“내가 얜가?”

 

“취직 한다고 공부한다더니 잘 안 된 거야?”

 

“취직했어. 얘도 내 입사 동기가 될 거고.”

 

유정이가 앞에 앉아 있는 나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동시에 주인 여자의 눈이 엑스레이 수준으로 내 전신을 스캔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허우대는 멀쩡한데, 자고로 저렇게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놈은 여자 팔자 망치게 할 놈이야~ 조심해.”

 

“풉. 아, 아주머니! 기생오라비라뇨?”

 

“흐흐하하핫, 큭큭…… 이모, 완전 대박…… 역시 우리 이모가 사람 볼 줄 알아.”

 

“야!”

 

“뭐?”

 

“아무튼 밥 잘 챙겨 먹고 다녀. 또 여기 오는 거 보니까 너희 엄마 기일이 다 되어 가는가 보구나.”

 

“…….”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하는 소리가 들리자 주인 여자는 다시 자리를 떠났다. 단순히 단골집 이모를 부르는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혈연관계라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둘은 어떤 사이인 걸까?

 

“뭘 그렇게 의심스럽게 쳐다 봐?”

 

“친이모는 아니지?”

 

“어…….”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다만 너도 뭐 그닥 꽃길만 걸어온 건 아닌 거 같네.”

 

“아니. 꽃길만 걸었지. 누군가가 뿌려 준 꽃가루 위를 아무 불평불만 없이 그냥 걸었지. 근데 그게 너무 지겨워서…… 말야.”

 

“뭐 아무렴 어때?”

 

“넌 꿈이 뭐야? 뭐하고 싶은데?”

 

“나? 나야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어머니 호강 좀 시켜 드리고.”

 

“그리고?”

 

“내 손으로…… 태양그룹을 움직여 보는 거?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거기에서 인정받고 더 큰 무대로 나가는 거.”

 

“꿈이 야무지네. 근데 네가 못할 거라고는 말 못하겠다. 너 같은 독종 악바리는 잘 못 봤거든.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상관없어. 내 주위엔 나 같은 애들 많거든. 돈 없고 빽 없고 아무것도 없는 애들은 독기랑 똘끼밖에 더 있겠냐?”

 

시간은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져 있었다. 둘 다 술을 마신 터라 대리를 불러 유정이를 데려다주고 가야 했다. 그녀의 주량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이미 꽤 많이 마신 상태였다. 주인아주머니는 내가 못 미더운지 차 앞에까지 나와 우리를 바래다 주셨다.

 

“저놈 믿고 보내도 돼?”

 

“괜찮아. 또 올게, 이모…….”

 

“그래. 조심해서 가라. 난 들어간다.”

 

아주머니는 매서운 눈초리로 다시 한 번 나를 째려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유정이 옆자리에 타고 차는 출발했다.

 

“우리 엄마가 일하던 가게야. 지금의 엄마 말고…….”

 

창문에 머리를 긴댄 그녀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짧은 그녀의 한마디 말로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그늘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억지로 밝은 것 같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정이는 그런 친구였다.

차는 유정이가 알려 준 한 아파트 단지에 들어와 있었다. 대리기사에게 돈을 지불하고 차에서 내리자 술이 올랐는지 유정이가 몸을 휘청거렸다.

 

“혼자 올라갈 수 있겠어?”

 

“어, 그럼.”

 

하지만 내가 손을 놓으려고 하자 그녀는 금세 몸을 휘청거렸다.

 

“안 되겠네, 가자.”

 

나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그녀가 준 카드키로 잠금을 해제하고 아파트로 들어갔다. 유정이를 소파에 앉혀 주자 그녀는 쓰러지듯 누워 버렸다. 덕분에 티셔츠가 훌쩍 말려 올라가 배가 훤히 드러났다.

방 안을 둘러보니 그 흔한 사진이나 액자 같은 것들도 보이지 않았다. 고급 아파트였지만 살림살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텔레비전과 식탁 소파정도밖에 눈에 띄지 않았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인지도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침실로 들어가 이불을 꺼내 그녀를 덮어 주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갈게, 쉬어.”

 

“있어도…… 돼…….”

 

눈을 감은 채 그녀가 말했다.

 

“취했다. 쉬어.”

 

“…….”

 

“오늘은 그냥 가는 게 좋겠다. 머리가 복잡할 땐,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게 나. 갈게, 통화하자.”

 

유정이네 집을 나오고 나서야 내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깨달았다. 택시를 기다리면서 괜히 애꿎은 가로등을 발로 차 버렸다.

 

“등신아~ 있다가 가라는데 왜 나오냐? 아유, 이런 븅신! 혼자 멋진 척은, 에라이~!”

 

술 취한 아저씨가 웬 미친놈 다 보겠다는 듯 쯧쯧거리며 나를 지나쳤다. 은지와 헤어지고 오는 여자를 막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였건만 내 복을 내 발로 걷어차 버렸다. 택시를 잡아타고 쓸쓸히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띠리링~

 

“여……보세요?”

 

“유지훈 씨?”

 

“네, 누구…….”

 

“태양그룹 회장님 비서실입니다.”

 

“네, 네…… 네?!”

 

자다가 무심결에 받은 전화가 태양그룹 비서실이라니, 아직 출근 하려면 며칠 시간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왜 전화가 오는 거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자다 깬 목소리를 지우기 위해 애써 헛기침을 했다.

 

“흐음~ 흠. 네, 유지훈입니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뵙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2시까지 모시러 가겠습니다.”

 

“네? 2시요? 네, 근데……무슨.”

 

“만나 뵙고 용무를 확인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남자는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날 누가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이지? 상대를 존중하는 어투인 듯하면서도 왠지 내 의견은 완전히 배제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일개 신입사원일 뿐이었고 부당하다고 항의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아, 뭐야? 누가 만나러 온단 거지? 회장 비서실이면 회장인가? 아니지. 회장님이 뭐하러 일개 사원을 직접 본단 말인가.

거기다 볼일이 있으면 출근했을 때 부르면 될 일이지 따로 이렇게 부를 이유가 없었다. 혹시 합격생 모두 부른 건가?

나는 몇몇 동기들에게 오늘 뭐하냐는 투로 넌지시 말을 돌려 동태를 파악했지만 각자 다들 약속이 있다고 하는 걸로 보아 나만의 문제인 것 같았다.

머리에 쥐가 날 만큼 회전시켜 봐도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준비부터 해야 했다.

샤워하고 단정히 채비를 하고 기다리자 전화기가 울렸다. 남자는 집 앞이라고 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집을 나섰다. 우리 동네와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고급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그 앞에 비서실장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타시죠.”

 

“네? 네.”

 

얼떨결에 열어 주는 문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비서실장은 앞자리에 타서 직접 운전을 했다. TV 같은 데 보면 기사들이 따로 있던데 그건 그냥 드라마인가? 그러고는 또 말이 없었다. 뭐하자는 건지 도대체…….

 

“저…….”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난감했다.

 

“네.”

 

“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요?”

 

“가 보시면 압니다.”

 

“네…….”

 

입 닥치고 있으란 애기를 조용조용히 하시는 양반이었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생각으로 기다려 볼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래 내 인생이 이렇게 쉽게 갈 리 없지.

1시간이 채 지차지 않아 차는 고급주택가 안으로 들어섰다. 주택의 차고가 열리자 차가 안으로 진입했다. 잠시 후 비서실장의 안내를 따라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몇 개의 문을 지나 2층으로 따라 올라갔고 실장이 커다란 문을 열어젖히자 각종 원목가구와 책상, 그리고 책장들이 즐비한 방 가운데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실장이 나를 그 앞으로 인도했다. 적어도 한 가지의 궁금증은 풀리는 순간이었다.

 

“도착했습니다, 회장님.”

 

태양그룹 오너 송연옥 회장이었다. 정갈하게 손질된 머리며 안경테까지 전체적인 인상은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고 살짝 날카로운 듯했다. 그녀는 살짝 웃으며 나에게 앉으라며 손짓을 했다.

 

“처, 처음, 뵙, 겠습니다.”

 

“반가워요. 실물이 훨씬 낫네요. 앉아요.”

 

“네.”

 

비서실장은 세 발짝 정도 뒤로 물러나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충분히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위치였지만 송 회장은 개의치 않았다.

 

“내 식구 같은 사람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내 표정을 순간적으로 파악한 송 회장이었다. 혹자들은 정실부인 쫓아내고 자리 차지한 악랄한 여자라고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남자 못지않은 추진력과 상황에 대한 판단력도 높다고 정평이 나 있는 그녀였다.

근데 그런 그녀가 도대체 왜 나를 불렀냐고. 궁금증이 입 밖으로 기어 나오려 했지만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 까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1등 했다고 상이라도 줄려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지금쯤이면 내가 왜 불렀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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