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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부 9장 그래, 나도 똑같이 해주마 (3) 72화

무료소설 타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2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타부 9장 그래, 나도 똑같이 해주마 (3) 72화

“……”

 

놈이 말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난데없는 김종두의 출연으로 완전히 기분이 잡쳤는지 놈의 인상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것은 김종두도 마찬가지였다. 어색한 공기가 잠시 허공에 떠돌았다.

 

윤정은 대충 눈치로나마 이들 부자간의 평소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견원지간이 따로 없었다. 마뜩찮은 표정과 질투심이 뒤섞인 복잡 미묘한 김종두의 얼굴을 뒤로 하고 윤정은 카운터로 당당하게 걸어가서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왔다. 놈이 쭈뼛거리며 그녀의 뒤를 따라 나섰다. 식당을 한참 벗어나자마자 놈이 윤정의 팔을 잡았다.

 

“이거 놔!”

 

“어딜 가려고 그래? 한 번 하고 가야 할 거 아냐?”

 

“집에 갈 거야. 오늘은 정말 그럴 기분이 아냐. 돌아가겠어.”

 

“웃기지마. 나, 지금 꼭지 돌았어. 따라오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

 

윤정은 놈의 얼굴을 노려보다가 흠칫거렸다. 김종두에 대한 분노가 놈의 얼굴에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윤정이 길거리에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던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녀의 아들 연수는 김종두와 은숙의 친딸이자 놈의 누나인 남주를 만나고 있었다.

 

연수와 남주가 만난 곳은 모텔에 가지 않겠다는 윤정과 그녀를 억지로 끌고 가려는 정우가 몸싸움을 하듯 실랑이를 벌이는 길거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유흥가 안쪽의 어느 호프집이었다. 또 그곳은 남주의 엄마인 은숙이 운영하는 노래방에서 멀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연수는 그 호프집에서 아까부터 의아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사람을 불러 앉혀놓고 삼십 여분이 지나도록 남주 누나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주 누나가 자신에게 며칠 전부터 하도 중요한 말을 할 게 있다기에 알바로 나가는 성인용품점의 일도 하루 만사 제쳐놓고 시간을 낸 것이었다.

 

언제나 밝고 구김살이 없는 누나의 표정이 오늘 따라 이상했다. 항상 밝고 구김살이 없는 활달한 성격의 누나였다. 외아들로 자란 연수는 어릴 때부터 남주를 잘 따랐고 남주 또한 연수를 제 친동생처럼 곧잘 챙겨주고는 했었다.

 

다른 것은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던 연수가 정우에게 가장 부러웠던 점이 바로 다정다감하고 상냥한 남주 같은 여자를 누나로 두었다는 거였다. 그런 누나가 사람을 불러놓고 말이 없었다.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누나의 얼굴을 연수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연수는 남주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은숙 아줌마의 큼직큼직한 이목구비를 그대로 빼닮아 얼굴 부위 부위가 시원시원하게 생긴 제법 예쁜 축에 들어가는 얼굴형이었다. 단지 은숙 아줌마와 다른 점이라면 몸매였다.

 

정말 글래머러스하고 풍만한 체구를 가진 아줌마와는 다르게 요즘 젊은 아가씨답게 다이어트에 몹시 신경 쓰는 탓인지 남주 누나는 보기에 적당한 몸매를 지녔다. 그러고 보니 간만에 만난 남주 누나에게서 전에 볼 수 없었던 성숙함 같은 게 은근히 풍겼다. 연수는 자신도 모르게 빙긋이 웃고 말았다.

 

“왜 웃니?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오랜 침묵을 깨고 드디어 남주가 입을 열었다.

 

“아, 아냐. 누나.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래. 코흘리개 시절 말이야. 누나가 나한테 되게 잘 해주었는데…… .”

 

“후후. 생각해보니 진짜 그러네. 같이 놀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지? 연수 너, 오랜만에 보니 엄청 징그럽다. 정말 간만에 보니 이거 완전 남자가 다 되었는걸. 호호호.”

 

성격답지 않게 계속 침묵만 지켜오던 남주 누나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아 연수는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누나…… 왜 갑자기 나를 보자고 한 거야? 요 며칠 전화 통화할 때, 목소리를 들어보니 꽤 심각한 일이 있는 것 같던데?”

 

그러자 남주의 표정이 또 다시 굳어졌다.

 

“어휴! 연수야. 내가 말이야.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겠다. 우리 술 좀 더 마시고 얘기하자. 나 말이야. 솔직히 지금도 너에게 얘기를 해야 되나 말해야 되나 몹시 망설이고 있거든. 우리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잠자코 술만 먹자.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니?”

 

그녀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난 연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분명 무슨 말 못할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둘은 계속해서 아무 말 없이 술잔만 비웠다. 술이 가득 찼던 커다란 맥주잔이 속을 완전히 드러낼 무렵, 남주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여, 연수야…… 이 누나가 말이야. 너를 오늘 여기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나서는 금방 후회를 했었어. 그런데…… 술을 마시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혼자 이 문제를 끌어안고 끙끙거리기에는 너무 벅찬 것 같아. 그래서 너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같이 해결방안을 모색해보는 게 어떨까 싶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도저히 안 되겠어.”

 

도대체 남주 누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것일까. 분명 자신과도 관계가 있는 일이라고 느낌을 받은 연수는 몹시 궁금하기 짝이 없었고, 그 궁금증은 불안으로 이어졌다.

 

“연수야. 잠깐만.”

 

옆에 놓인 가방을 뒤적거리던 남주 누나가 무언가를 꺼내들고는 연수가 앉은 테이블 위에 그것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얼핏 본 그것은 만년필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훨씬 큰 물체였다.

 

“이, 이게 뭐야? 남주 누나.”

 

“그게 뭐 같니?”

 

연수는 그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거 소형 녹음기야.”

 

“…….”

 

그랬다. 자세히 보니 몸체에 여러 가지 작은 버튼이 달려있었다. 굉장히 작고 앙증맞은 사이즈였다.

 

“거기에 담긴…… 휴우~~그 녹음기에 누구의 목소리가 담겨있을 것 같니? 네 생각에는.”

 

당연히 연수는 알 리가 없었다.

 

“여기서 듣지 말고 집에서 한 번 들어봐. 그 안에 담긴 목소리를 들어보면 너도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거야.”

 

허탈한 얼굴 표정을 짓고 있는 남주 누나의 얼굴을 쳐다보고 나서 연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 녹음기를 노려보았다. 멍하니 한참을 녹음기에 시선을 두던 연수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퍼뜩 떠올랐다.

 

“누나! 이, 이 녹음기 어디서 났어?”

 

“걔 방에서.”

 

“걔? 걔라니? 정우 방?”

 

연수의 물음에 남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의 예감이 맞았다는 생각에 연수는 갑자기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여기에 나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 것 같았다. 녹음기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누, 누나…… 내, 내가 이따가 집에 가서 확인하겠지만 지금 궁금해서 도저히 안 되겠어. 여기 녹음기에 우리…… 어, 엄마 목소리가 담겨져 있지? 맞지? 그래서 누나가 이렇게 한참을 뜸을 들인 거지?”

 

“응.”

 

분노가 가슴 밑바닥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소리를 냈다. 이 개새끼가 기어코! 그토록 엄마를 어떻게 해볼까 호심탐탐 기회를 엿보던 짐승 같은 새끼가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여기에 말이야. 듣기 거북하고 민망한 소리가 담겨져 있는 거 아냐? 그래서 나보고 집에 가서 들어보라고 누나가 그랬던 거 거지?”

 

목소리가 높아진 연수의 질문에 남주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연수는 자꾸만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남주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말하자면 그 뭐야…… 남녀 간의 노골적인 그런 신음소리가 담겨진 게 틀림없지?”

 

녹음기 안에 있는 적나라한 신음 소리를 몇 차례 반복해서 들은 적이 있는 남주인지라 그 음성이 귓가에 되살아나는 것 같아 그녀는 순식간에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네, 네가 확인해 보면 되잖아. 그건.”

 

“이 시발 새끼를! 진짜!”

 

평소 숫기가 없고 착하디착하기만 한 순둥이인 연수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거친 욕설이 튀어나오자 남주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분노로 일그러진 연수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했다.

 

“여, 연수야…….”

 

그런데 남주는 연수의 이름을 불러놓고 보니 정말이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화를 내야 할 당사자는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녀석이 분노를 터트리는 모습을 보고서는 어이가 없었다.

 

“연수 너, 지금 누구한테 욕을 한 거야?”

 

“누구긴 누구야? 정우, 그 새끼지! 흥! 왜 그래도 한 집에 같이 사는 누나라고 동생 욕하니까 기분이 더러워?”

 

마치 남주가 정우라도 되는 양, 연수는 그녀를 마구 몰아붙였다.

 

“어, 어머! 얘, 좀 봐.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니? 정작 화를 낼 사람은 난데, 왜 네가 성질을 부려? 윤정이 아줌마, 즉 네 엄마 때문에 그나마 화목했던 우리 집이 파탄 나게 생겼는데, 왜 네가 화를 내냐고! 기가 막혀서.”

 

남주가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바람에 연수는 순간 당황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이따가…… 아냐! 지금 당장 여기서 그걸 재생해서 들어봐!”

 

남주의 고성에 연수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이 자그마한 기계 속에 과연 엄마의 어떤 목소리가 담겨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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