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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소설: 소녀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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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53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성인소설: 소녀의 반란

[무료소설] 소녀의 반란

소녀를 재워줘


11. 소녀의 반란


감히, 어떻게 그 애를 떠올린단 말인가. 자신은 이제 타락했고, 더러웠으며, 걸레 냄새가 날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태선은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나미를, 끝까지 외면하지 못하고 오랜만에 그려 보았다. 웃는 얼굴이 천사처럼 어여뻤던 아이, 자신은 알지 못하는 그녀만의 슬픔을 간직했던 아이, 이름처럼 나비 같이 찾아왔다 홀연히 사라져버린 아이…….


‘하암. 기다리다 죽는 줄 알았네. 책 다 읽었어요, 아저씨?’


그리고, 오늘 거짓말처럼 제게 또 다시 날아온 그 아이. 그러나 태선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먼저 스스로 모른 척하고 지나쳐 온 인연이 아니던가.


이제는 정말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살면서 그 애를 또 만날 날이 오긴 할까.


물로 입안을 헹구며 태선은 현재 살고 있는 오피스텔 건물에 들어섰다. 오늘 하루도 너무 길었다. 그냥 빨리 침대에 엎어져 자고 싶었다. 겨우 비틀대며 집을 찾아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그때였다.


“이제 들어와요?”


벌컥. 그의 옆집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익숙한 음성이 태선의 귓가에 울렸다. 그는 환청을 들은 건가 싶어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아, 술 마셨어요?”


편한 트레이닝 복 차림의 나미가 천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태선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그녀에게로 한걸음 다가섰다.


나미에 대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신기루를 보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 뭐야?”


“네? 뭐냐니. 아저씨 취했구나?”


그의 물음이 황당하다는 듯, 나미가 피식 웃었다. 그 웃는 모습을 보니 태선은 그녀가 정말 자신이 알던 나미가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 너 정말….”


“어어……!”


태선은 그대로 나미를 끌어안았다. 놀란 나미의 몸이 흠칫 굳어졌지만 술에 취한 태선은 그것을 분간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폐부까지 깊숙이 스미는 소녀의 체향에 정신이 몽롱해지고 있을 뿐이었다.


“어디 갔다가……이제 온 거야……하.”


“아, 아저씨? 저기요, 태선 아저씨!”


그 때문이었을까. 태선은 나미를 안은 채로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


띠로링, 띠로링, 띠로링.


단조로운 알람 소리가 태선의 잠을 깨웠다. 그는 잠결에 손을 뻗어 베개 옆에 놓인 휴대폰을 집고는 늘 그랬듯 알람부터 꺼버렸다. 그 짧은 침묵 끝에, 태선은 무엇엔가 놀란 사람처럼 눈을 번쩍 떴다.


“……!”


그가 눈을 뜨자마자 본 것은, 제 쪽을 향해 누워 있는 나미의 잠든 얼굴이었다. 태선은 잠시 그 모습을 보다 이내 소스라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 아니, 왜, 으, 압!”


입안을 맴도는 말은 하나같이 단어가 되지 못했고, 잠든 아이를 깨울 새라 그는 차라리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거기다 빠르게 주위를 둘러본 결과 이곳은, 그의 집이 아니었다.


‘미쳤다, 미쳤어. 이건 미친 짓이야.’


어떻게 저 어린 애랑 한 침대에 누워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태선은 눈앞이 다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아직 잠이 완전히 깨지도 않았는데 너무 놀랐기 때문인지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는 우선 조용히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어제 오피스텔 건물에 무사히 들어왔고, 집까지도 잘 찾아 올라갔다. 그리고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려는 그때…….


저 애가 또 나타났지. 뜬금없이.


그러고 나서……. 그 이후가 흐릿했다. 나미의 목소리를 들은 것까지는 확실히 기억나는데,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어서 자신이 여기서 눈을 뜬 것인지가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또 도망가게요, 아저씨?”


복잡한 생각들을 가득 안고 방을 나서는 태선의 등 뒤에서 나미가 잠이 묻은 소리로 물었다. 문을 열려던 그의 걸음이 멈춘 순간, 나미는 일어나 태선의 허리를 꼭 안았다.


“……!”


“보고 싶었어요, 아저씨.”


태선은 등과 허리에 느껴지는 따스하고 말캉한 체온과 촉감에, 비로소 그 애가 돌아온 것을 실감했다.


*


식탁 의자에 앉은 태선은 주방을 도도도 오가는 나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분명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녀는 오히려 그를 끌고 나와 이 자리에 앉혔다.

“그거 알아요?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이 날이 무슨 날인데?”


“숙취로 힘들어 하는 아저씨를 위해 콩나물국을 끓여주는 날!”


나미는 어딘지 즐거워 보였다. 2년 전엔 주로 나미가 앉아 있고 요리를 하던 사람은 태선이었는데, 뒤바뀐 상황만큼이나 역할도 바뀐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이 오피스텔은 뭐고. 너 혼자 사는 거니?”


“말도 말아요. 내가 여기로 이사 온 건 다 아저씨 때문이니까.”


그녀는 태선 앞에 밥과 국을 놓아주며 싱긋 웃었다. 이제 앳된 부분은 거의 사라지고 한층 성숙해져서는 제법 여인의 자태를 뽐내는 나미의 모습에 그는 괜스레 마른침을 삼켰다. 확실히 소녀는 훨씬 더 밝아져 있었고, 건강한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듯했다.


“……하, 정말 난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갑자기 사라졌던 네가, 어떻게 또 이렇게 거짓말처럼 내 앞에 나타난 건지.”


“지금 아저씨가 혼란스러운 거, 충분히 이해해요. 난 그때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거든요.”


“…뭐…?”


“어린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나 스스로를 건사할 힘도 없으니, 당연히 아저씨를 지킬 힘도 없었지.”


태선은 나미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래도 나미는 괜찮다는 듯 생글생글 웃었다.


“그런데 이젠 내가 어엿한 성인이 됐잖아요. 나를 책임질 능력도 생겼고, 그래서 아저씨를 지킬 힘도…….”


“나미야. 네가 나를 왜 지키겠다는 건지 모르겠어.”


“그야 - ”


“내가 많이 미덥지 못한 어른이었니? 그때 너한테?”


태선의 진지한 물음에 나미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미덥지 못한 어른이었냐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 시절 가정이 언제 깨질지 몰라 두렵고 불안하고 초조한 하루하루 속에서 잠시나마 제가 평온을 유지했던 건 전적으로 태선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곁에선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었고, 잠도 잘 수 있었다. 유일하게 믿고 기댔던 어른이 그였는데, 어떻게 제 말을 그렇게 곡해할 수 있을까.


“……아저씨,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데요.”


“난 누가 지켜주지 않아도 된단다. 혼자 설 수 있는 힘 정도는 있어. 그래, 그 정도는 돼.”


“아저씨…….”


“부모님은? 잠깐 여행 가신 거야? 아니면 학교 때문에 너 혼자 잠깐 자취하는 거니?”


태선의 말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니까- 여전히 저를 어린 애로 보고 있단 뜻이었다. 나미는 그와 그런 관계를 유지하려고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태선과 동등한 어른으로, 남자와 여자로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온 것이지.


나미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빠르게 말을 꺼냈다.


“……그때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난 엄마를 따라 미국에 갔어요. 거기서 공부를 했고, 대학교는 한국에서 다니기로 했어요. 엄마는 여전히 미국에 계시고요.”


“…아….”


“그리고 전 이제 아저씨랑 사귈 거예요.”


“……?!”


나미가 태선에게로 가까이 몸을 숙였다. 그간 그가 맡아보지 못했던 싱그럽고 여성스러운 상큼한 향기가 훅 끼쳐왔다. 태선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떨렸다. 나미는 거의 그의 입술에 키스할 듯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그러니까, 어린애로 보는 그런 말투는 삼가주세요.”


그때 문득 태선의 시야로, 헐렁하게 흘러내린 나미의 셔츠 앞섶 안의 풍만한 가슴골이 아슬아슬하게 들어왔다. 그것은 소녀가 아니라 여인의 상징이었다.


어쩐지 심장이 제 멋대로 꽉 조이는 것 같아, 태선은 숨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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