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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제의 일기장 (동네커피숍) 22화

무료소설 처제의 일기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0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처제의 일기장 (동네커피숍) 22화

처제의 일기장 22화
 
 
 상중은 고민할 것 없이 지연의 뒤를, 아니 남자의 뒤를 쫓았다. 발소리를 죽인 남자보다 더욱 발소리를 죽인 채였다.
 
 집까진 고작해야 300미터도 남지 않았고, 집이 가까워질수록 세 사람의 간격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남자의 의도를 알 수는 없었으나 얼핏 남자가 담배를 필 때 본 표정은 흉흉하기 이를 데 없었기에 상중은 본능적으로 남자를 경계하고 있었다. 언뜻 남자를 어디서 본 것도 같았으나 어디서인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쫓다보니 어느새 지연은 집앞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대로 남자에게 집을 노출시키면 안 될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남자가 알고 있을 수도 있었으나, 만에 하나 모를 수도 있었다. 남자가 집을 알아서 좋을 건 없었다. 그렇다면…
 
 “처제!”
 
 상중이 골목이 다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인근의 개 한마리가 짖기 시작했고, 지연의 턱밑까지 따라 붙었던 남자의 어깨가 순간 움찔하는 게 똑똑히 보였다. 사실 그 상황에서 상중의 외침을 갑자기 들었다면 누구라도 그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연은 달랐다. 놀라기는커녕 자기를 불러세운 상중을 돌아보는 그 얼굴엔 환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힘차게 흔드는 손에는 반가움이 잔뜩 묻어있었다.
 
 상중과 지연 사이에 오갈 데 없이 끼어버린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더니 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 지연을 지나쳐 멀어져갔다.

 지연은 상중을 향해 손을 흔들다가 옆을 지나치는 남자를 대수롭지 않다는 듯 힐끔 돌아보았을 뿐이었다.
 
 지연을 부르자마자 남자의 걸음이 빨라지자 혹시 지연에게 해코지 할까 염려된 상중은 자기도 모르게 냅다 뛰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남자가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지연을 지나쳐 멀어지자 그제야 안심한 듯 발걸음을 늦추었다. 얼마 안 돼 지연 너머로 보이던 남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형부! 이제 퇴근하세요? 근데 웬일이예요? 형부가 저를 이렇게 간절하게 부르다니! 어제랑 오늘 너무 감동시키는 거 아녜요?”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화사한 웃음만 짓고 있는 지연의 앞에서 상중은 허탈한 웃음이 나왔을 뿐이었다.
 
 “왜요 형부?”
 

 
 “네? 아까 그 남자가? 저를요?”
 
 그 남자가 어딘가 숨어 지켜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상중은 지연과 함께 근처 카페로 온 참이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 안에 자리 잡은 작은 규모의 아기자기한 카페에는 테이블이라곤 딱 네 개뿐이었고, 손님은 두 사람 뿐이었다. 이런 데서도 장사가 되는 건가? 상중은 생각했다.
 
 지연 말로는 생긴 지 한 달밖에 안 된 곳이라고 했는데, 지연이 주문하러 카운터에 갔을 때 지연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카페 여주인과 알은 체 하는 걸 보니 그녀는 그새 단골이라도 된 모양이었다.
 
 인적이 드물다지만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처제와 형부가 밀회(혹은 밀애)를 나누는 게 상중으로선 내키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누구지? 얼굴 못 보셨어요?”
 
 자초지종을 듣더니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바뀐 지연이었다. 그럼에도 어쩐지 상중은 그녀가 지금 즐거워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꽤 덩치가 있었는데⋯ 얼굴은 음 글쎄,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스토커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더 위험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상중은 요새 아침마다 신문에 실리는 부녀자 강간 관련 기사를 떠올렸다.

 “에? 웬 스토커? 에이 누가 절 스토킹을 해요. 제가 뭐라고. 만날 꾀죄죄하게 하고 다니는 걸. 보세요. 저 만날 이 차림으로 나다니는 거 아시면서.”
 
 지연은 말을 하다 말고 외투 모자를 뒤집어 쓰곤 지퍼를 홱 올려버렸다. 그의 시선을 분산시키던 살짝 드러난 쇄골과 목선이 닫힌 지퍼 속에 가려졌지만, 덕분에 화장기가 거의 없는데도 뽀얀 피부와 분홍빛 입술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런 모습이라면 충분히 누군가 스토킹을 할 만하지. 상중은 그렇게 생각했다. 게다가 아무렇게나 입은 옷 속에 감추어진 환상적인 몸매는⋯. 상중은 지난 밤 눈앞에서 보았던 지연의 알몸을 떠올리다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그러느라 카페 여주인이 쟁반에 차를 들고 바로 옆에 선 것도 모를 지경이었다.
 
 “안녕하세요. 지연씨 형부님이시죠? 하하, 전해들었던 것보다 훨씬 젊어 보이시네!”
 
 금기된 생각에 빠져있던 상중이 카페 여주인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버린 건 당연했다.
 
 “언뜻 들었는데, 지연씨 스토킹 당했어?”

 커피숍이 워낙 작아 둘의 대화가 다 들리는 모양이었다.

 “응, 언니. 어떤 남자가 쫓아오고 있었대요. 형부가 발견해서 집에 못 들어가고 지금 이리 온 거예요. 아니, 대체 누가 나같은 애를 스토킹하지? 하려면 언니 같은 사람을 해야지.”
 
 지연이 말처럼 카페 주인은 언뜻 상당한 외모의 소유자처럼 보였다. 노출이 전혀 없는데도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한껏 부각시킨 옷차림이 그녀의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보니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약간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성형을 한 건가?

 “에이, 무슨 소리야. 나는 다 화장빨이고. 진짜 미인은 지연씨처럼 화장 안 하고도 이쁜 사람이지. 그 코, 수술한 것도 아니라면서? 대체 몇 번을 말해야되냐? 수술도 안 한 코가 어떻게 그렇게 높냐고! 축복 받았다니까 진짜? 지연씨 꾸미면 당장 연예인인데, 외모가 아까워 죽겠어. 그렇게 안 꾸밀 거면 나나 줘라!”
 “에이 제가 뭐가 예쁘다고 그래요 언니는. 그리구 얼굴 이쁘다구 다 연예인 하나?”
 “겸손도 지나치면 병이다. 어디 그럼 형부한테 여쭤보자. 어때요 형부? 지연씨 이쁘죠?”

 음, 내가 언제부터 이 여자의 형부가 된 거지? 상중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을 뿐이었다.

 그가 꺼낸 말은 여자의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답이이었다.

 “스토킹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요새 세상이 하도 무서우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처젠 전혀 짐작가는 사람이 없는 거지?”

 상중은 정말 불안해하고 있었다. 지연은 별 거 아닐 거라고 하지만 뭔가가 계속 불안했다. 자신의 질문과 상관없는 대답에 여자는 살짝 멋쩍은 듯,

 “앗, 우리 형부님(?) 대답 피하셨다. 하하 그럼 불청객은 빠질게요. 오붓하게 대화 나누세요. 근데 은근 잘 어울리네 두 분?”

 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곤 엉덩일 씰룩거리면서 카운터쪽으로 갔다. 그녀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분명 두 사람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투였으나 다른 데 정신이 팔린 상중은 그 말을 그리 귀담아 듣지 않은 모양이었다.

 카페 주인이 떠나자 지연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뿐만 아니라 손을 뻗어 머그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상중의 손을 살짝 쓰다듬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형부. 별 거 아닐 거예요.”

 상중을 안심시키려는 듯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나저나 형부, 어제 일은 기억 나셨어요?”

 몸을 상중에게로 더 가까이 기울인 지연의 목소리는 더 낮아져있었다. 그건 목소리라기보단 차라리 숨소리라고 하는 게 옳았다.

 상중과 지연의 얼굴은 채 30cm도 안 떨어져 있었는데, 그 탓에 상중은 힐끗 여주인을 경계해야 했다. 그녀는 카운터 뒤에서 설거지 중이었다. 다시 지연에게로 향한 상중의 눈동자에 지연의 붉은 입술이 선명하게 맺혔다. 상중의 불안을 태워버릴 듯 붉었다.

 “아니, 미안 처제. 어젠 내가 오랜만에 술을 너무 많이 먹었나봐.”

 미안함 그리고 지연과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있는 어색함에 상중이 살짝 고갤 떨구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지연의 얼굴이 확하고 다가오더니 곧 입술에 촉촉한 감촉이 닿았다. 놀란 상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가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카운터 쪽을 바라보았다. 설거지를 막 마친 주인이 뒤돌아서서 손을 닦고 있었다.

 “크크 형부 자꾸 눈치 보는 거 엄청 귀여워요. 그리구 뭐가 자꾸 그렇게 미안해요. 괜찮아요. 그렇게 술을 많이 먹고 기억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저를 불러세운 거잖아요. 난 그게 오히려 더 좋은데?”
 “어제도 내가 처제를 불러 세웠단 말야?”
 “응!”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는 지연의 얼굴에 미소가 환하게 피어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잠깐 떠올랐던 불안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처제도 어제 마포에 있었어 혹시?”
 “네, 미팅 있었거든요. 근데 미팅 결과가 안 좋아서 혼자 술 한 잔 하고 택시 타러가는데 형부가 부른 거예요. 막 급하게 쫓아와서. 근데 혹시 그거 아세요?”

 지연이 뜸을 들였다. 상중은 그런 지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는 형부가 처제라고 안 하고 제 이름으로 부른 거? 처음이예요. 형부가 이름으로 부른 건.”

 그렇게 말하는 지연의 얼굴이 발그레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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