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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제의 일기장 (진급) 20화

무료소설 처제의 일기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9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처제의 일기장 (진급) 20화

20화)


 대체 언제부터? 처음부터 안 닫혀 있었던 건가?

 기억나지 않았다.

 답답함을 싫어하는 도연이 문을 열어놓는 일이야 흔한 일이었다곤 하지만 지연이 들어온 이후, 적어도 관계를 하는 날엔 아내는 항상 문이 닫혀있는지 확인을 해왔던 참이었다.

 근데 오늘은 왜 확인을 하지 않은 거지? 중간에 누가 열었을 리도 없고…

 상중은 그렇게 잠깐 동안 문 앞에 멍하니 서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게 대체 어떻다는 말인가?

 이미 열린 문이었다. 문이 열려 지연이 들었다 한들 상관없는 일이었다.

 지연이 더 이상 애가 아니란 건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상중 자신 아니었던가?

 도연이 실수로 문을 닫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고민해봐야 아무 가치 없다.

 그는 생각을 멈추고 애초 의도대로 부엌 냉장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찬 물을 입안으로 들이부었다.

 “카아…”

 턱으로 흘러내린 물을 닦았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때였다.

 끼익…

 등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중이 고개를 돌렸다. 안방 문이 열린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고개를 좀 더 돌렸다.

 식탁 옆 벽에 선 검은 형체가 보였다. 귀신같은 그 형체를 보고도 상중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상중은 마치 그 그림자의 등장을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가 검은 형체에 희미하게 보이는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도 상중을 바라보았다.

 상중은 그 눈동자가 슬픈 듯 미소 짓고 있는 것을 분명하게 보았다.

 “축하해, 김 과장! 아니지, 이제 차장이라고 해야겠구만!”

 상중은 잠을 설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었다. 그때 어느새 다가온 동료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외치듯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몰려있던 사람들은 눈만 힐끔거릴 뿐 그들에게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뭐야 그 표정. 아직 확인 안 한 거야? 사내 게시판에 떴어! 스마트한 시대 아닌가? 틈틈이 들어가 확인 하라니까 그래도! 오늘 오랜만에 술 한 잔 하게 생겼구만! 하하 그럼 이따 보자고!”

 잠시 어리둥절해있던 상중은 좀처럼 꺼내보지 않는 스마트 폰을 급히 꺼내 게시판을 확인했다.

 <제목 : XX유통 진급 명단>

 【전 유통관리부 과장 - 김상중 >> 구매부 차장으로 진급을 축하드립니다.】

 “끄아!”

 좀처럼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그가 주먹을 모으고 소리를 질렀다. 엘리베이터에 꽉 차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돌아보았으나 때마침 문이 열려 도망치듯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루를 정신없이 보냈다. 부서를 옮기는 인사이다 보니 업무 인계를 위해 그동안의 업무자료를 정리해야 했는데 생각보다 그가 맡고 있는 일이 많았다. 아직 사나흘은 더 걸릴 것 같았다. 그렇게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다.

 아침에 만났던 박 차장은 여지없이 그를 붙잡았다. 원랜 집에 일찍 들어갈 생각이었다.

 아내와 함께 이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 승진사실을 알렸다. 도연은 소리까지 질러가며 울면서 좋아했지만, 오늘은 지방에 내려가 있어 일찍 가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도연은 정말 많이 미안해했다.

 처제 지연에게 연락을 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 너무 앞서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한 참이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상중은 군말 없이 박 차장에게 붙잡혀준 거였다. 박 차장과 강 차장이 그와 함께 입사해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동료였다.

 그는 회식이 아니면 좀처럼 회사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일이 없었다. 승진이 늦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를 동정하는 시선들이 싫었다. 그래서 그는 아내에게 붙잡혀 사는 놈이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아내를 핑계로 꿋꿋이 집에 들어갔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술자리에 끼는 일은 줄어들었다.

 승진을 했다는 기쁨 때문인지 거의 몇 년 만에 마시는 동료와의 술자리가 즐겁기만 했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앞뒤 생각 않고, 술을 마신 게 대체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마치 20대로 돌아간 것처럼 술을 마셔댔지만 40대에 접어든 그의 몸은 오랜만의 알코올 섭취가 그다지 달갑지 않은 듯했다.

 그렇게 술을 들이키는 동안 그는 자신이, 채 두 시간도 되지 않아 필름이 끊겨버릴 거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잠에서 깼을 때, 그는 머리에 도끼라도 꽂힌 게 아닌지 확인해야 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 와중에 귓속에 벌이라도 들어온 것처럼 윙윙대는 소리가 골을 다 흔들고 있었다. 눈도 뜨지 못한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소리가 나고 있는 물건을 찾아 손을 더듬거렸다.

 “여보세요.”

 그의 목은 술통에서 부글부글 올라오는 물방울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보세요! 여보? 어디야? 어딘데 아직도 집에 안 와?”

 고막을 찢을 듯 흥분된 도연의 목소리였다.

 “어? 여보. 나 지금 집인데.”
 “그게 뭔 소리야! 내가 지금 집인데! 아휴 진짜 술을 대체 얼마나 먹은 거야? 대체 어디서 자고 있어? 하마터면 경찰에 신고할 뻔했네.”

 도대체 안도를 하는 건지 흥분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 도연의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누군가의 손이 그의 가슴에 닿는 게 느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웃통이 까져있는 맨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 여보 미안. 내가 다시 전화 걸게. 걱정하지 말고 잠깐만 기다려.”

 방금 전까지 눈도 뜨지 못하고 해롱거리던 상중은, 몸속에 남아있던 알코올이 한 순간에 식은땀이 되어 빠져나오기라도 한 듯 말짱해진 정신으로 말을 쏟아낸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일단 시간을 보았다.

 밤 11시 반.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기억을 되돌려보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대략 10시쯤이었다. 술을 먹기 시작한 지 대충 2시간이 지났을 때, 세 사람이 앉은 테이블에 소주병 15개 정도가 줄지어 서있었다. 안주로 나와 있던 회는 거의 다 사라져 있었고, 국물만 몇 번 떠먹은 빨간 매운탕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박 차장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담배를 피러 나갔다. 오랜만의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5년을 폈지만 도연을 만나면서 끊었던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박 차장은 군말 없이 그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불이 붙고 그의 몸에 연기가 빨려 들어왔다. 그리고 연기를 내뿜었다. 기억은 그게 끝이었다.

 상중은 이번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은은한 조명, 하얀 침구, 샤워기와 넓은 욕조가 훤히 보이는 투명한 유리. 모텔.

 그럼 이 여자는…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그의 팔베개를 하고 누운 여자의 하얀 정수리만 보일 뿐이었다. 여자의 머리에선 샴푸냄새가 났다. 어디선가 맡아본 익숙한 냄새.

 상중은 자유로운 손을 아래로 뻗었다. 털이 만져졌다. 찐득한 애액이 굳었을 때 느껴지는 텁텁한 감촉. 손가락이 정글을 가로지르자 굳었던 것들이 후두둑 끊어지는 게 느껴졌다.

 섹스를… 했다.

 지금 옆에 있는 여자와. 정신만 멀쩡해졌을 뿐, 술이 하나도 깨지 않은 그의 머리가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박 차장과 강 차장과 술자리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진짜야? 돈 주고 한 번도 안 사먹어 봤다고? 이 사람 이거 안 되겠구만! 이봐 강 차장 안 되겠어! 우리가 오늘 우리 김 과장, 차장된 기념으로 남자 만들어줘야겠네!”

 아… 결국 그렇게 된 건가. 하아… 상중이 한숨을 쉬었다. 돈 주고 여자를 사먹은 적은 이제껏 없었다. 상중은 그런 걸 절대 원하지 않았다. 사먹는다는 표현 자체도 싫었다. 그런데 자기가 그런 사람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때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부, 지금, 나랑 한 거 후회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요. 사람 민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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