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노예 (뻐꾸기) 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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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축사노예 (뻐꾸기) 27화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 이윽고 그 소리가 점점 빨라지며 빗줄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우중충하게 흐릿하던 하늘은 갑자기 거센 소나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발......"
오늘 비가 온다는 얘기는 뉴스에서 들었지만, 밖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기에 따로 우비나 우산을 챙겨오지 않은 호준은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어차피 이런 시골에서 옷이 비에 젖는다고 누가 흉을 보겠냐만은.
"끄윽... 끄흑......"
어제부터 밖으로 안 나와서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데 영순의 집으로 간 호준은 마당에 주저앉아서 서럽게 울고 있는 영순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가 내리고 몸이 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뭐여. 왜 지랄이여. 또."
"호... 호준아... 글씨 이게 말이여......"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호준에게 매달린 영순은 자꾸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제대로 된 대화가 되지 않고 있었다.
"시발... 내가 왜 시발... 아니 나는 시발... 잘 한다고 했는데 시발..."
계속해서 울면서 욕만할 뿐, 영순은 제대로 말도 못한 채 어린애처럼 질질 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호준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고,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고 있는 영순을 다리를 뿌리쳐 거칠게 밀어내었다.
"어이쿠!"
기본적으로 덩치차이가 상당한 두 사람이었기에 영순은 바닥을 뒹굴었지만 호준은 걱정하는 표정이나 행동 따위는 하나도 없었고 영순에 대해서 화를 버럭 내고 있었다.
"아 시발 뭔 일이냐고!"
호준이 화를 내자 그제야 영순은 콧물을 질질 흘리는 얼굴로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등신 같은 새끼......'
항상 그랬다. 어린 시절부터 영순은 말로는 상남자, 말로는 센 척을 하면서 실제로 보면 소심하기 그지 없었다. 말 그대로 좆대가리를 떼어야 한다는 욕을 먹을 정도로, 말만 거칠게 하지 실제로는 소심하다 못해 답답할 정도로 순하고 착한 놈이었다.
본능적으로 호준이 역겨워할 정도로. 하지만 이 강금리에서 비슷한 나이대의 사내라고는 영순밖에 없었기에 상대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이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A4용지를 꺼낸 영순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호준은 그의 젖은 손에서 종이를 빼앗아 들었다.
동네에서 호준과 같이 유이하게 컴퓨터와 프린터가 있는 영순. 영순은 사실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옛날에 농촌 교육 캠페인인가 뭔가 할 때 해서 기본적인 것은 알았지만 잘 못하는 사람이었고, 게임 같은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그의 아내 때문에 일부러 설치해준 것이었다.
매일 같이 무슨 연예인 누구 프로그램만 보고 있네, 남편보다 그런 놈들을 좋아하네 뭐네 말은 하지만 어차피 영순도 컴퓨터는 쓰지 않고 스마트폰의 기능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무식쟁이였었다.
"......"
그런 영순이 들고 온 종이는, 인터넷에서 주고받은 메시지를 그대로 출력한 내용이었다.
어설프게 인터넷 번역기로 자동번역이 되어있는 물건. 그리고 그 내용은.....
[이제 곧 아이가 나올 것 같아]
[한국 남편은 아직 모르는 거야?]
[아직 잘 몰라. 들키지는 않을 것 같아]
[그 놈이 건드리려고 하면 무조건 반항해]
[알고 있어. 결혼하고 한 번만 허락해주고는 절대 못 건드리게 하니까]
[미안해. 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제 괜찮아. 지금 통장이랑 도장으로 돈을 훔치려고 했는데 내가 찾을 수가 없어. 그래서 다른 사람과 여성단체에 물어보니까 이혼하면 합법적으로 돈을 받을 수 있대. 그렇게 되면 내가 집을 잡고 널 부를게]
[빨리 우리 아이 보고 싶다]
[사랑해]
"......"
쏟아져내리는 빗방울에 종이는 금방 젖어서 뭉개져버렸다. 하지만 호준은 어차피 그 내용을 조금만 살펴봐도 지금 상황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자기 부인에게 속은 것이다. 마치 뻐꾸기처럼, 자기 자식도 아닌 아이를 자기의 자식이라고 믿고 지금까지 온갖 정성을 다해서 그녀를 보살펴 주었는데, 그녀는 의도적으로 남의 아이를 임신한 채 영순을 이용했던 것이다.
"등신 새끼......"
"호준아... 호준아... 나 어떻게 해야 하는데? 호준아..."
"이년 지금 어디에 있는데."
"이걸 들키고 나서 도망가려고 하니까... 일단 작은 방에다가 가둬두기는 했는데...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이걸 부모님이 아시면 우리 부모님 큰일 나실텐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빗방울에 젖어서 질질 짜고 있는 영순의 모습을 호준은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열쇠 내놔."
영순이 떨리는 손으로 건네주는 열쇠를 받아든 호준은 그대로 그 부인이 갇혀있는 방으로 다가갔다.
쾅쾅거리면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와 안에서 고래고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들으면서, 호준은 혀를 차고 밖에서 걸어둔 자물쇠의 열쇠를 열었다.
무어라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베트남말을 하는 그녀. 이미 다 들켰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믿는 것이라도 있는 것인지 그녀는 평소의 순진해 보이는 연기는 집어치우고 독기어린 표정으로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시발년이......"
"시... 바르년?"
외국에 가서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것이 욕하는 것이다. 욕을 들은 그녀가 호준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뭐라 말하기는 했지만, 호준은 그냥 그녀의 팔을 붙잡고 강제로 끌고 나갔다.
"꺄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고함을 지르는 그녀를 호준은 억지로 끌고 가 영순이 있는 곳 옆으로 밀었다. 부풀어오른 배를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 보면서, 영순은 다시 한번 서러운지 얼굴을 감싸쥐었다.
"이 등신 새끼야. 이런 년한테 그지랄 당하려고 소 팔고 기둥 뽑고 논 팔아가면서 베트남에서 사왔냐? 이런 시골에서 몇천만원짜리 반지 사달라고 하는 이런 년한테 곧이 곧대로 사준 니가 더 병신이야 미친 새끼야."
"이 시발놈아! 뮈... 친너마!"
자신을 욕하는 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그녀가 고래고래 욕을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에 호준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어억!"
따귀를 올려붙인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주먹. 코피를 쏟으면서 뒤로 넘어갈 정도로 호준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그녀를 후려쳤다.
"끄아아아!!"
"버러지 같은 년이 어디서... 시발, 니까짓게 지금 나한테 덤비냐?"
"갯새키야!!"
"뒤지고 싶나 보지?"
다시 한번 발길질이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아아악!!"
"뭐, 뭐하는 짓이야!"
영순이 허겁지겁 막아 섰지만 호준은 영순을 옆으로 한 번 밀어서 쫓아내고 다시 주먹을 들어올렸다.
"싯... 바새..."
"계속 해봐 시발년아. 아주 죽여버리려니까."
"야, 야! 호준아! 여자를 그렇게 패면..."
"이런 시발년이 무슨 여자야 시발. 여자는 이 지랄을 해도 봐줘야 되냐?"
"게... 게다가 임산부인데..."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니 새끼 아니잖아."
차가운 눈빛으로 영순의 어깨를 짓누르는 호준의 모습은, 그야말로 앞으로 닥치고 방관하고 있으라는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고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지금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바닥에 납짝 엎드려서 고개를 숙이고 호준에게 사과했다.
"다... 달못해... 씀미다... 한 범만 바주... 세여..."
"이거 보게? 이 시발년이... 잘못했다는 말도 알고 있는데 평소에 지가 잘못해서 주변 사람이 뭐라고 하면 말 모른다는 듯이 저 새끼 뒤에 숨었던 거냐? 이런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