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노예 (축사의 암소)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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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축사노예 (축사의 암소) 25화
제대로 먹지 못한지 며칠이나 되었을까. 괜히 고집을 부리고 호준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바람에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한지도 며칠이나 지났다.
그렇기에 지금 유정은 눈 앞에 음식이 있다면 그것이 음식물 쓰레기라고 할지라도 허겁지겁 입에 밀어넣을 것만 같았다.
'이 소리는......'
주변에서 시끄러운 기계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방에 있는 여물통 앞에 사료가 쏟아져내렸다. 반으로 갈라져있는 여물통을, 유정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물, 왼쪽에는 사료가 있었다.
센서가 자동으로 유정을 소로 인지하고 사료를 배분한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 이곳에서는 송아지가 있었는지 양은 다른 곳보다 적었지만, 사람인 그녀에게 있어서 이 정도의 양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아아... 하아아..."
재갈 사이로 침이 질질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이것이 소가 먹는 사료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벌써 며칠간 제대로 먹지 못한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냥 입으로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흙이라도 집어넣을 수가 있었다.
양손 가득히 사료를 집어든 그녀는 바로 입에 넣으려고 했지만, 입은 재갈로 막혀 있었다. 하지만 숨을 쉬라고 있는 구멍은 있었기에 그곳으로 동그란 사료를 밀어넣었다.
"커헉! 카하아아악!!"
하지만 이를 제대로 움직여 씹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목구멍에 바로 연결되어 있는 이 재갈로 사료를 먹는 것은 그야말로 자신의 목구멍을 사료로 틀어막는 멍청한 짓이나 다름이 없었다.
"우으... 우으으으으...!!"
살기 위해 구역질을 하면서 사료를 뱉어낸 유정은 눈 앞에 놓여있는 사료를 보면서 절망에 빠져 있었다.
"우아아아!! 우으으으......."
허기가 진다. 머리는 돌아가지 않고 먹고 싶은데, 차라리 혀 위에라도 굴러간다면 혀로 입천장에 대고 녹여서 먹기라도 할 텐데......
"우으... 우!!"
그제야 유정은 머리를 써서 사료를 양손으로 가득 퍼올리고 그것을 옆에 담겨있는 물이 담긴 여물통에 풀었다. 그것을 몇 번을 반복하고 손으로 꾹꾹 눌러서 사료를 곤죽처럼 만든다.
그리고는 정말 소처럼 얼굴을 여물통에 처박고서 곤죽이 된 사료를 먹기 시작한다.
그렇게 짐승처럼 먹는다는 행동에 대한 거부감이나 비참함을 느끼기 보다는, 그녀는 지금 자신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음식물에 대해서 너무나도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가장 처음, 그녀가 잡혀오자 마자 이런 상황으로 만들었다면 유정은 그냥 굶어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단계, 한 단계 그녀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타협시키다 보니 이제 그녀는 살기 위해서,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짐승처럼 여물통에 얼굴을 쳐박고 밥을 먹으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수준까지 떨어졌던 것이다.
더욱 슬픈 일은, 이렇게 타락한 자신에 대해서 유정이 슬퍼하거나 자괴감을 느끼기 보다는 배를 채운다는 행동에 대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더 컸다는 것이다.
* * *
"하아암... 안녕히 주무셨어요?"
"잠 자리는 괜찮았습니까?"
"예, 딱 좋았어요."
유리의 경우 처음에는 잠을 자던 장소가 변해서 잠이 오지 않았지만 새벽이 되자 푹 잠들어서 깨어나지도 않았다.
만약 지금도 이 맛있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직도 꿈나라에 있을지도 모를 정도로 꿀 잠을 자고 있었다.
"이 이불 어쩐지 그리운 향기가 나서... 잠이 잘 왔어요."
"그리운 향기?"
"마치...... 예전에, 언니랑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어린 시절에 느꼈던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요?"
그 말에 호준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설마 예전에 유정에게 덮어줬던 이불을 세탁해서 건네주었음에도 유정의 흔적을 느끼는 일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남자 혼자 사는 집에서... 이상하죠? 그냥 기분이 편해서 그렇게 느꼈나봐요."
"하하하...... 아침 준비 다 됐는데, 같이 드시겠습니까?"
"이 냄새는... 토스트네요?"
"이런 것 좋아하실 것 같아서."
"한식도 좋아하는데... 뭐라도 주시면 고맙게 먹지만요."
자신의 언니인 유정이 소처럼 곤죽이 된 사료를 허겁지겁 빨아먹고 있는 동안, 유리는 호준이 타준 믹스 커피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브런치를 즐기고 있었다.
"오늘은 어디 가세요?"
"축사에 가야죠."
"저도 뭐 도와드릴까요?"
"어차피 자동화 설비가 되어 있어서, 게다가 주인이 아닌 사람이 오면 소들이 놀라니까......"
"아. 네, 알겠어요."
* * *
"후욱... 후욱......"
아침으로 주어진 사료와 물을 거의 다 마신 유정은 자신의 부른 배를 움켜쥐고 행복감에 취해 있었다.
소의 사료는 꽤 맛있었다. 곡물로 만들어진 사료였기에 사람이 먹기에는 약간 고소한 곡물가루를 먹는 기분으로 먹을 수 있었다. 물론 평범한 사람은 사료의 냄새만 맡고도 먹을 생각을 못하겠지만 극단적으로 몰려있는 유정에게 있어서 이 정도면 행복한 식사였다.
다른 소들이 그러는 것처럼 벽에 기대어 잠들어있다가 다시 일어나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옆 자리에 있는 암소와 송아지가 보였지만, 손이 닿지 않아서 소들을 만지거나 할 수는 없었다.
지난 밤과는 다르게 소들은 유정의 행동을 보고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몸에 남아있던 사람의 냄새가 지워지고 자신들과 같은 사료 냄새, 축사의 냄새가 배어서 그런 것인지 얌전하게 자신들이 해야 할 일... 사료를 먹고 살을 찌우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사료를 먹고 꾸벅꾸벅 졸다가, 등에서 따스한 햇살이 느껴지는 한 낮이 되었을 때였다.
"워뗘. 먹고살만 혀?"
소들의 울음소리가 아닌 사람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유정은 벌떡 일어나서 출구로 향했다. 마치 다른 소들이 먹이를 달라는 것처럼 얼굴을 내밀듯이, 그녀는 예전의 사람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고 알몸으로 달려나가 주인을 맞이하는...
이미 그녀는 노예도 아닌, 하나의 가축이 되어 있었다.
"밥은 잘 먹었고?"
"우으......"
유정이 대답은 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재갈에 묻어있는 사료의 흔적을 보고 있는 호준은 싱글벙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고 있었다.
"어디 볼까?"
호준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가자 유정이 마치 애교를 부리는 애완동물처럼 호준의 가랑이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비비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소리를 지르고 반항을 하면서 발버둥치던 유정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지금 망가져 있었다.
"자, 입 벌려봐."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재갈이 풀어진다. 목젖을 찌르던 재갈을 제거하면서 다시 한번 목젖을 건드리자 유정은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애써 참으면서 호준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곤죽이 된 사료가 뺨과 입가에 묻어있는 모습, 한쪽 눈은 눈병으로 인해 충혈된 모습, 게다가 왼손의 손가락 두 개는 이상하게 꺾여서 호준은 매달리고 있는 손을 쳐내고 싶은 충동을 받고 있었다.
"그래도 얼굴이 뜨끈뜨끈한 것을 보니, 어디 아픈가벼?"
그래도 나름 신경이 쓰인 것일까. 주머니에서 항생제를 꺼내든다. 몇 년 전에 산 구급상자에 있던 물건이라 지금 먹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호준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이 먹을 물건도 아니었으니까. 가지고 온 2L짜리 생수를 들고 약을 주려던 호준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유정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
"어푸푸!"
"가만히 있어."
코에 물이 들어가자 깜짝 놀라며 얼굴을 빼려고 했지만 호준의 말에 유정은 입을 앙다물고 숨을 참았다. 호준은 유정의 얼굴에 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거친 손으로 얼굴에 묻은 검뎅과 사료를 닦아내었다.
"뜨끈뜨끈하니까 만지니 기분이 좋구만."
"하아... 하아..."
이미 재갈이 벗겨졌음에도 유정은 말을 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호준은 자신의 지퍼를 열었다.
"니 입 속도 뜨끈뜨끈하면 기분이 좋겠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