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노예 (등잔 밑이 어둡다)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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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축사노예 (등잔 밑이 어둡다) 20화
"왜 그러세요?"
"안 댜. 그 놈은 완전히 개새끼여!"
"왜 그런데요?"
순수하게 물어보는 유리를 보면서 삼순이 할머니는 진지한 표정으로 유리의 손을 붙잡으며 이야기했다.
"5년 전에도 홍수가 나서 이 근처 논밭이 다 잠기는데 그 놈은 지 친구인 영순이 놈의 논에 먼저 들르고, 우리 밭에는 늦게 들려서 그 해 농사 다 망쳤어!"
"......예?"
"그리고 그 놈의 새끼 싸가지가 없어서 나랑 마주쳐도 인사도 잘 안 하고, 또 세상에 무슨 그리 불만이 많은지......"
"......풋..."
삼순이 할머니의 말을 듣던 유리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노인분들이 이렇다. 한 번 자신에게 안 좋게 보인 사람은 정말 안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유리도 자신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간병인에 대해서 악담을 하는데 다 듣고나면 아무것도 아니고 할머니의 건강을 생각해서 사탕을 먹지 못하게 했다던가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몸을 뒤집어주는 것을 일부러 괴롭히려고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노인분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소심하고 어떻게 보자면 사소한 것에 안 좋은 이미지가 박히면 그것을 나쁘게 보는 경우가 있었다.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라 오해가 쌓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 우리 할머님. 너무 귀여우세요. 우후후......"
"나는 진지한디......"
삼순이 할머니는 이미 유리가 마음을 굳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삼순이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장롱 안에 들어있던 양철통에서 무언가를 꺼내 유리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게 뭐에요?"
손바닥에 딱 들어올만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작은 도구. 그것에는 손잡이를 잡아당겨서 핀을 뽑아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유리가 그것을 가리키며 묻자 삼순이 할머니가 핀을 잡아당겨주었다.
삐이이이이이!!
그저라 그 도구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잠시 후 삼순이 할머니의 방이 열리면서 형준이 고개를 내밀었다.
"할미! 무슨 일 있어?"
"아녀 이눔아. 잘못한겨. 들어가."
"응, 알았어 할미."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는 형준을 보고, 삼순이 할머니는 형준을 돌려보냈고 형준은 군말없이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원래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 짜증을 내거나 불평을 이야기하겠지만 형준은 순수했기에, 나쁘게 말하자면 단순했기에 이렇게 헛수고를 한 경우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
"가져가. 이걸 열면 소리가 크게 나는데, 강금리에서는 조용허니까 이 소리가 다 들려. 이거 울리면 형준이가 바로 달려갈겨."
"그렇지만... 이거 할머님 물건 아닌가요?"
"원래 나 아프면 형준이보고 바로 달려가라고 형준이 놈이 사온 물건인디, 나야 어차피 아프면 죽으면 그만인 거 아니겄어? 그리고 위험한 곳에 가는 사람에게 이 할미가 해줄 수 있는게 이 정도밖에 없어서 그랴."
"......"
솔직히 말해서 유리의 휴대전화에도 비상용 신고 버튼이 있었다. 버튼을 길게 누르고 말이 없으면 알아서 근처 경찰서로 연락이 가게 되어있는 시스템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배려인데 그냥 거절하기는 싫었기에 유리는 할머니가 건네준 벨을 받아들었다.
"네."
"그럼 내일부터 가는겨?"
"네. 내일 낮에 이야기를 하려고요."
유리에게 있어서는 삼순이 할머니 집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고 있었다.
* * *
"아 시벌! 니미 뭐여 이 소똥은!"
길바닥에 있던 소똥을 밟은 영순은 화를 내면서 길바닥에 자신의 장화를 비비고 있었지만 말라붙은 똥인지라 장화 바닥에서 쉽게 제거되지는 않았다.
"이 놈의 소 새끼들 똥구멍을 다 막아버리던가 해야지! 매번 지나갈 때마다 똥을 싸재끼니 말이여......"
"지금 나한테 시비거는 거냐?"
이 근방에서 소를 기르는 것은 몇 되지 않았으니 호준의 입장에서는 영순이 하는 말이 자신이 하는 말처럼 들리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 유정에게 시간을 쏟다가 송아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죽게 만들어서 본 손해가 꽤 컸기에 호준은 꽤나 신경질적으로 화난 상태였고, 그런 호준의 모습을 보면서 영순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이런 씌불, 요즘 그 젊은 년이 오고 나서부터 마을이 제대로 안 굴러가잖어! 그 년 하나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
필사적으로 말을 돌리는 영순의 투덜거림을 호준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고 요망한 것이 궁뎅이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걸어다니는데, 이 촌구석에 뭐 얻어먹을 것이 있다고 여기서 돌아댕겨? 막 그년도 땅투기하려는 사람이 보내고 우리 같은 농촌 총각들 후려쳐서 집문서를 들고 튀려는 그런 년이 아니겄어?"
요즘 세상에 단순히 집문서를 들고 도주한다고 집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전이야 문서만 남아있었지 요새는 직접 본인의 신원이 확인되어야 하니 집문서를 들고 도망치고 통장을 들고 도망쳐도 자신의 돈으로 만들 수가 없었다.
실제로 이 근방은 티켓다방에서도 아가씨라고는 30대가 넘은 중국인 조선족 아줌마 한 명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돈이 나올만한 건덕지가 없으니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정말로 다른 곳에서 성매매를 하고 싶다면 그냥 차를 타고 도시로 나가버리는 편이 더 좋았으니... 중요한 것은 강금리는 재개발 예정도 없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돈이 많은 사람도 없었다.
농촌에 알게모르게 알부자들이 많다는 것도 다 땅값이 높을 때 이야기고 1평에 500원이 안 되는 이런 시골 촌구석에서는 1만평을 가지고 있어도 고작해야 500만원인 셈이다. 다른 농촌처럼 부가수익을 올릴 수 있는 비싼 작물을 키우는 것도 아니고 정직하게 벼농사 짓는 마을에 돈이 오갈리가 없었다.
"아니 뭐여. 지금 내 말을 못 믿겠다는겨?"
영순이 하는 말이 헛소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호준이었기에 피식 웃어보였지만, 영순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론은 그 유리가 꼴릿하다는 거지?"
"아니,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말이여... 솔직히 이렇게 삭은 할망구만 있는 동네에 뽀얀 피부에 몸매 매끈한 젊은 지지배가 하나 왔는데 남자라면 꼴리겄어 안 꼴리겄어? 안 그려?"
"......"
호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왜 그려? 너도 사내새끼라면 역시 꼴려야 정상..."
"누구처럼 짐승 같지는 않아서 그런 것 같네요."
뒤에서 들리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 지금 강금리에서는 단 한 명 있는 20대 한국인 여성의 목소리에 영순은 화들짝 놀라면서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한심한 표정을 하고 있는 유리가 있었다.
"시발 뭐여! 왜 인기척도 안 내고 남의 뒤로 오고 지랄이여!"
"굳이 일부러 제가 움직이는 것을 티를 내야 되나요?"
"당연하지! 그게 예의 아니여?"
"그런 예의는 처음 듣네요."
괜히 부끄러워서 화를 내고 있는 영순에게서 시선을 돌린 유리는 어정쩡한 자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호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잠시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인지?"
"제가 사정이 생겨서 삼순이 할머니네 집에서 있을 수가 없을 것 같거든요. 혹시... 호준씨의 집에서 신세질 수 있을까요?"
그 말에 호준과 영순은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