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노예 (찢겨진 옷) 15화
무료소설 축사노예: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축사노예 (찢겨진 옷) 15화
"으어, 아아이아."
입에 쌈을 잔뜩 문 채로 유리에게 아는 척을 하는 형준을 보면서 영순은 다시 한번 핀잔을 주었다.
"저, 저 싸가지 없는 년이 뭐가 좋다고 헤실헤실 거리고 있냐."
마치 지나가던 유리가 들으라는 듯한 말이었다. 정확히는 여기에서 유리와 형준, 영순밖에 사람이 없었으니 유리에게 싸가지 없다고 말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저씨는 또 시비 거시네요. 제가 잘못한거라도 있어요?"
"사람을 여자 훑어보는 변태 취급한게 잘못이 아니야? 하, 조상님들 말이 맞지. 여자랑 북어는 3일에 한 번 패야 하는 건데 말이여."
"요즘 세상에 그랬다가는 인생 끝장나죠. 아저씨가 부인이 없으니까 그나마 폭행을 저지를 부인도 없어서 안 잡혀가고 살고 있는 거구요."
"뭐라고?"
영순이 발끈하며 화를 냈지만 유리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런데 호준씨는요?"
"니가 알아서 뭐하게? 내 친구여! 가까이 가지 마! 가기만 해봐라. 확 다리 몽둥이를......"
"5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제가 찾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에요?"
"이런 나이도 어린게 꼬박꼬박 말대꾸여?"
"나이도 많은 분이 하는 행동은 유치하기 그지 없네요."
영순은 단 한 마디도 유리를 이길 수가 없었다.
"시부럴... 내가 고등학교만 제대로 졸업했어도... 내가 배워쳐먹기만 했어도 저런 버릇없는 년은 콧대를 납짝하게 맏늘어 주는건데 말이여."
실제로 영순은 고등학교를 조금 다니다가 학교를 중퇴했다.
영순이 딱히 학교를 가기 싫어하던 불량학생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그 때 영순의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일손이 부족하고 어차피 글만 읽고 쓸 줄 알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집안 사람들의 만류로 학교를 그만두고 바로 농사를 지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 강금리에서는 학교가 없었고, 저 멀리 읍내에 가야지만 학교가 있었는데 그나마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전문대 맛이라도 본 것은 호준이 전부였다. 어차피 이곳에 젊은 사람들이라고는 영순과 호준, 형준 정도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할아버지 할머니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 영순은 자신이 완전히 학교 공부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속에 남은 것인지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이 교육을 마치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있었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는 고졸로는 의미가 없고, 대학교 물이라도 먹어봐야 들이미니 영순은 틈만 나면 대학교 타령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유리는 영순이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았다. 영순이 솔직히 그녀에게 마음에 드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가 쓰레기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서방- 나 밥."
"어이고, 그래, 어서와. 내 마누라!"
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던 영순의 부인이 다가온다. 딱 봐도 한국인이 아닌 어눌한 말투와 한국사람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외모가 그녀가 농촌에 흔히 있는 외국인 며느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뗘! 내가 너 같은 싸가지 없는 년한테 혹하기는 개뿔, 이렇게 예쁜 내 마누라가 있는데. 안 그려?"
"서방. 배고파."
"그려그려. 어서 먹어."
마치 어린애를 다루듯이 살살 달래가면서 자신이 앉아있던 제일 시원한 자리를 양보하고, 옆에서 밥도 한가득 퍼서 주고, 밥 먹고 있는데 쌈도 직접 싸서 먹여주는 모습을 보면서 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보였다.
그도 입만 조금 걸걸하지 실제로 사람에게는 손 한번 안 치켜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로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나쁘게 말하자면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말이고, 좋은 말로 말하자면 정말 사람을 때릴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입으로는 때리네 죽이네 하지만, 실제로 그럴만한 용기라고는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도시에 있었다면 그냥 허세기운이 조금 있는 어리버리한 아저씨였겠지만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대부분이 어르신)과 한정된 생활을 하다보니 조금씩 물들었던 것이리라.
"그래서 호준씨는 어디에 있는데요?"
"아, 그 놈 그거 점심 먹으러 갔다고 했잖여! 송아지인가 뭔가 지금 돌봐야 한다고 매일 같이 점심 집에 가서 먹는다고 했는데 귓구녕에 뭘 꽂고 다니길래 그걸 못 들은겨?"
"아, 네, 네. 알려줘서 고마워요."
"하여튼 요즘 것들은 맨날 귓구녕에 뭘 꽂고 다녀서 사람 말도 제대로 못 듣고 말이여..."
투덜거리는 영순을 뒤로하고, 유리는 다시 호준이 사는 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나 왔어. 오늘은 시원하게 가지냉국 했는데, 어뗘? 가지 좋아혀?"
웃는 얼굴로 방에 들어온 호준은, 그곳에서 손톱으로 옷을 찢으며 손톱도 엉망이 되는 바람에 피가 곳곳에 배어있고 올이 다 나가서 의복으로써의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하는 옷을 입고 있는 유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여! 어떻게 된겨!"
갑자기 다쳐있는 유정을 보고 어쩔 줄을 몰라하는 호준을 보면서, 유정은 이를 악물고 치를 떨었다.
"어떤 일이 있었던겨! 무슨 일이 있었던겨!"
"......"
"......"
가만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유정을 보면서, 호준은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이내 유정을 달래줘야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조심스럽게 밥상을 내려놓았다.
"우리 유정이가 왜 이렇게 화난겨.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겨? 이거 미안혀. 내가 시골에서 살아서 옷 보는 눈이 없어서 그려. 더 예쁜 옷으로 사다줄테니까 화 풀도록 혀."
"......"
"가지냉국 한 번 먹어보도록 혀. 내가 맛있게 만들었는디, 아니면 가지 싫어혀? 고기라도 구워주는게 더 입맛에 맞는겨? 지금 가서 구워올테니 조금만 기다릴겨?"
"......"
"통 말이 없네 그려. 일단 한 숟가락만 혀봐. 자, 여기 이렇게 혀서 먹으면..."
밥을 한 숟가락 크게 떠서 가지냉국의 국물에 담근 뒤, 숟가락을 들어올려 유정의 입에 넣어주려고 하는 호준을 보면서 유정은 손등으로 숟가락을 쳐냈다.
땡그랑!하면서 바닥을 가르는 금속음에, 지금까지 실실 웃으면서 유정을 달래주려고 했던 호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왜 이러는겨. 좀 버릇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디 말이여."
무겁게 가라앉은 호준의 목소리를 듣고 마치 작은 강아지가 자신을 때리는 주인을 보면서 겁에 질리는 것처럼, 유정은 본능적으로 어깨가 움츠러들었지만 그녀는 강아지가 아니었다. 짐승이 아니었다.
그녀는 인간이었기에 그 공포를 억지로 삼키고 호준을 올려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 나쁜 자식! 날 풀어줘!!"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는겨?"
"왜 나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나를 당장 풀어줘!! 풀어달란 말이야!!"
유정이 소리를 지르고 있자 호준은 주변에 누가 올까 두려워서 걱정이 된 것인지, 아니면 분노를 참지 못한 것인지 자신의 두꺼운 손으로 유정의 입을 억지로 틀어막았다.
턱이 부러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유정이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이를 악물어서 호준의 손을 깨물었다.
"으아아악!!"
아무리 굳은 살이 가득하고 단단하며 노동으로 단련되어 있는 손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악력(顎力)은 이길 수 없는 법. 유정의 입에 호준의 피가 들어오고, 호준은 결국 유정의 턱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