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노예 (시골의 풍경) 5화
무료소설 축사노예: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축사노예 (시골의 풍경) 5화
"아이구 미안혀. 많이 기다렸지?"
문을 열고 들어온 호준은 손때가 묻어 누렇게 변색된 구급상자를 열고 그 안에 들어있던 소독약을 꺼내 지금 생긴 유정의 상처에 발랐다.
"으으으으읍!!"
욱씬거리던 그곳의 상처가 이제는 마치 칼로 후벼파는 것처럼 아파와서 파르르 떨고 있었지만, 호준은 그 솥뚜껑만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킨 뒤 끝까지 약을 발랐다.
섬세한 여성의 점막에 다시 손길이 닿는 것이 싫은 것보다는, 상처가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더 컸기에 유정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에게 자신의 사타구니를 맡기고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안 그려?"
실제로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유정이 거의 탈진하기 전까지 고통이 이어졌다. 억겁의 세월동안 계속될 것만 같았던 고통스러운 소독이 끝났다.
"후욱... 후욱..."
힘겹게 숨을 몰아쉬면서 엎어져 있는 유정을 보면서, 호준은 걱정하는 눈을 하고는 유정의 뒷목을 쓰다듬어주었다.
"흐으으읍......"
"그려그려. 아프지? 내가 미안혀."
따스하고 자비로운 손길에 지금까지 벌어진 일로 몸이나 마음이나 큰 상처를 받은 유정은 자신도 모르게 그 손길에 몸을 맡기며 안정이 되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아팠을꼬. 그려그려. 내가 잘못했어."
"......"
재갈을 문 채로 그 손길을 느끼고 있던 유정은 그 순간, 지금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눈 앞에 있는 호준을 증오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료해주고 쓰다듬어주는 것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게 고마워하고 있고 안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으으읍!!"
스톡홀름 증후군.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해를 가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 가끔 보여주는 친절함에 자신도 모르게 경계가 풀어지는 것이었다. 실제로 극한상황에서 사람의 정신이라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기대고 싶어하는 희망을 만들어내기 마련이었다.
지금 유정이 '알고 보면 착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에게 본인도 모르게 순종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대우를 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그것이 바로 말을 안 듣는 가축을 길들이는 방법이었다. 처음에 자신의 서열을 각인시키고 그 다음 잘 대해주면서 자신을 따르면 이득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점점 길들이는, 아주 단순한 짐승을 기르는 것처럼.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극한상황에 몰리게 된다면 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다고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유정은 자존감이 강하고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기에 이런 저급한 수작에 넘어가지 않았다.
"으읍! 으으으읍!!"
머리를 흔들어서 호준의 손을 튕겨내었다. 이제 어떤 보복이 올지에 대해서 유정이 긴장하면서 그를 노려보았지만 호준은 더 이상 폭력적인 성향은 보이지 않고 자신이 들고왔던 세숫대야와 면도칼, 구급상자를 들고 일어났다.
"그래. 아직 힘도 있고 건강해 보이는구먼."
그리고는 처음에 들고 왔던 음식 쟁반을 그대로 뒤집어버렸다.
"배도 안 고픈 것 같고 말이여."
호준이 나가고 난 뒤, 유정은 재갈을 입에 물고 소리를 죽여 울었다.
* * *
"하아...... 소똥 냄새......"
강금리로 들어오는 좁은 입구에서 누군가 걸음을 멈춘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단발머리의 젊은 여성, 할아버지와 할머니, 농촌 총각들과 외국인 며느리들만 살고 있는 일반적인 농촌인 강금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젊은 여성.
시골마을 특유의 비료냄새를 맡으면서 그곳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망설이는 것을 보니 농활 한번 안 가보거나 친가나 외가가 시골에 있지도 않은 말 그대로 도시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처럼 보였다.
"어이구. 누구신데 이렇게 길을 막고 있으셔?"
탈탈거리면서 경운기에 비료포대를 싣고 오던 영순이 길을 막고 있는 그녀에게 비키라는 의미로 말을 걸었다.
"아... 죄송해요."
그녀는 옆으로 몸을 피해 경운기가 지나갈 수 있게 해주었으나 길 옆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질퍽한 진흙에 운동화가 빠져버리고 말았다.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도로 위로 발을 올린 그녀는, 자신의 운동화에서 올라오는 구릿한 냄새를 맡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 이게 뭐야! 정말... 냄새!"
"오우......"
젊은 여성의 복장은 허벅지의 반도 덮지 못하는 짧은 청바지와 운동화, 그리고 배꼽까지 드러나도록 올려입은 나시티였다. 도시에서는 이렇게 노출있는 복장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기에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대부분 몸빼바지와 머리에는 선캡을 눌러쓰고 목에 수건을 두른 채 돌아다니는 강금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야릇한 복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허벅지가 참 뽀얀게... 튼실하구먼."
아무래도 베트남 출신이라서 까무잡잡한 영순의 부인과는 다른 피부였다. 청바지에 허벅지 살이 살짝 눌리면서 도드라지는 모습을 보며 영순은 침을 삼켰다. 운동화에 묻어있던 흙을 물티슈로 닦아내고 있던 여성은, 경운기가 출발하지 않고 멈춘 상태에서 영순이 자신의 허벅지를 대놓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 불쾌한 기분을 느끼며 한 마디 하려고 했지만 대놓고 침을 꿀떡 삼키는 영순을 보며 그가 말로 해서 통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하... 정말 재수가 없으려니까. 여기가 강금리 맞아요?"
"맞어."
"여기는 왜 이렇게 똥내나요?"
"그건 이 근처에 비료 뿌린지 얼마 안 되서 그랴. 그런데 아가씨는 무슨 일로 온 거여?"
그렇게 물어보는 영순의 눈길은 계속해서 드러나 있는 여성의 속살이 보이는 배와 허벅지를 훑어보고 있었고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허리춤에서 묶어두었던 매듭을 풀어 자신의 몸을 가렸다.
영순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역시 여자는 좀 뽀얀 맛이 있어야지. 남자친구랑 자 봤어? 몇 번 해봤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도 영순을 향해 발끈하며 소리쳤다.
"아 좀 꺼져 미친 새끼야."
"이게 나이도 어린년이 어른한테 욕을 혀? 니 지금 여기서 죽고 싶은겨?"
"죽어? 너야말로 지금 경찰에 잡혀가고 싶어? 아까부터 음흉한 눈빛으로 사람 몸을 구석구석 훑고 이상한 얘기를 하는데 성희롱으로 신고당해 볼래?"
"와, 요즘 어린 것들은 쳐맞고 자라지를 않아서 싸가지가 없구만! 내가 어디 오늘 한 번 버릇 좀 들여줄거니까 한번 교육 좀 받아 봐라."
"오기만 해봐! 지금 당장 경찰을 부를 거니까!"
"이런 미친......"
"무슨 일이야?"
영순과 젊은 여성이 말싸움을 하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올리는 순간, 곰 같은 인상을 주는 덩치 큰 농촌 총각이 다가와서 영순의 손을 낚아챈다.
"이거 놔라고! 이런 싹바가지 없는 샹년은 좀 쳐 맞아야 한다고!"
"쳐봐! 쳐보라고! 폭행죄로 경찰에 잡혀가봐야 정신을 차리지!"
"요즘 아새끼들은 버릇이......"
"그만혀. 농사짓기도 바쁜데 뭐하는 짓이여? 강 이장님네 논에 비료 가져다줘야 되는거 아니여?"
"아오... 너 내 눈에 띄기만 해봐라. 확 다리몽둥이를 뽀사불랑게."
영순이 다시 경운기를 끌고 사라지고,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는 젊은 여성에게 덩치 큰 남성이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허리를 숙이면서 사과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저 놈이 배워먹은게 없어서... 학교 다닐 때부터 저래가지고. 그래도 진짜 사람 때리는 놈은 아니고, 말만 더럽게 하지 순진한 놈이니 좀 봐주십시오."
"아저씨 친구에요?"
"예, 뭐 이 동네에서야 다 친구니."
"......"
경계하는 눈빛으로 덩치 큰 사내를 바라보던 젊은 여성은,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서 약간 경계를 풀고 질문을 건네었다.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혹시 이 근처에서 보신 적이 없으세요?"
"누구인지 말만 하셔유."
"한유정이라고 올해 25살정도 된 젊은 여성인데요."
그 순간 덩치 큰 사내, 호준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