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부 10장 제발 우리 딸은 안돼 (1) 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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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5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타부 10장 제발 우리 딸은 안돼 (1) 76화
이윽고 집에 도착한 연수는 현관에 엄마의 신발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하늘이 무너질 듯 절망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윤정을 소리 높여 불렀다. 하지만 작고 좁은 집에서 엄마는 끝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 개새끼를 만나러, 그 개새끼가 요구한 대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밖으로 나간 것이었다. 잠시 온 몸에 힘이라는 힘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듯이 심한 허탈감을 맛 본 연수는 불현듯 생각이 나 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책상 서랍을 열어 그 속에 감추어 두었던 소형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뻔뻔하게도 놈이 집 앞까지 찾아와 엄마를 불렀다면 나 또한 네 엄마를 직접 내 발로 찾아가 네 놈이 했던 그대로 은숙 아줌마에게 고스란히 돌려 줄 것이다.
어디 두고 보라고! 연수는 전의를 불태웠다. 소형 녹음기를 주머니 속에 단단히 챙겨둔 연수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어떤 식으로 은숙 아줌마를 따먹을 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놓은 바가 없었다.
아줌마의 사내대장부처럼 시원시원하면서도 괄괄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연수로서는 그저 막막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미 뽑아든 칼이었다. 아줌마가 운영하는 노래방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서 연수는 마음이 복잡했다.
심란한 마음에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연수는 걸음을 재촉했다. 이윽고 은숙 아줌마의 노래방이 있는 유흥가 골목으로 접어든 연수는 시간을 확인했다.
무작정 들이닥치기에는 좀 애매한 시간이었다. 멀리서 아줌마의 노래방이 있는 건물이 보였다. 갑자기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연수는 긴 숨을 내쉬며 마음을 진정 시키려 애를 썼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연수는 뛰는 가슴을 진정 시킬 겸 근처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다지 잘 마시지 못하는 술을 억지로 목구멍 속으로 우겨넣으며 연수는 곰곰이 생각했다.
아줌마를 만나면 일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가 가장 큰 난제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녹음기를 들려주며 협박을 해야 하나, 아니면 그 개 같은 정우 새끼가 내 엄마를 건드렸으니 나도 아줌마랑 한 번 해야 서로 공평하지 않나 하면서 이치를 따지는 게 맞는 순서인지 연수는 속 시원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면서 끙끙거렸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아줌마를 만나는 게 먼저였다. 아줌마가 자신에게 보여줄 반응은 그때 가면 생각해도 될 일이었다. 연수는 술잔을 기울이다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라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 상황은 말 그대로 모자교환이었다. 이미 정우 그 개새끼는 엄마인 윤정과 말대로라면 숱하게 관계를 가진 사이였다. 이제 자신이 은숙 아줌마를 취한다면 서로 상대방의 엄마를 교환해서 따먹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핫핫핫!”
씁쓸하게 웃던 웃음이 자신도 모르게 커다란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한번 터진 웃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하하하……낄낄낄……크크크.”
포장마차의 여주인이 청승맞게 혼자 들어와 술 잘 마시다가 미친놈처럼 웃고 있는 연수를 향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도 웃어서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그렇게 한동안 멈출 줄 모르고 웃고 있던 연수가 웃음을 그치고 주인여자한테 말했다.
“아줌마. 이거 되게 맛있는데요? 이거 한 접시, 따로 포장해주세요.”
“아, 네에……”
연수는 포장이 된 안주거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길로 은숙이의 노래방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제 겁날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이미 마신 술이 두근두근 요란하게 뛰던 심장박동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고, 또 그 술 한 잔이 연수의 마음속에 있던 모든 두려움을 없애주었다. 연수는 건물로 올라갔다. 그리고 전처럼 기웃거림도 없이 바로 노래방 내부로 성큼 들어갔다.
“아줌마!”
카운터는 비어있었고 은숙을 찾기 위해 연수는 큰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아줌마!”
한 번 더 연수는 내부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소리로 은숙을 찾았다.
“어? 연수 왔구나.”
그제야 복도 끝 쪽에 있던 방에서 쟁반에 치울 것들을 가득 담은 은숙이가 연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바쁘신가 봐요? 아줌마.”
“바쁘기는. 지금 막 손님들 빠져나가 한가하다. 얘. 오늘 왜 이렇게 손님이 없는지 모르겠네. 이 시간이면 그래도 빈 방이 없어야 정상인데……”
은숙이 카운터의 벽에 달린 시계를 흘낏거리다가 연수를 보며 빙긋이 웃었다.
“아무래도 손님들이 귀한 사람이 찾아온 것을 아는 모양이다.”
“하하하. 저 때문에 노래방에 손님들이 없다면 안 되지요.”
“설마 너 때문에 손님이 없을까. 그건 그렇고 손에 든 건 뭐니?”
“아, 안 그래도 먹다가 맛이 괜찮기에 아줌마도 드셔보라고 포장해 왔어요. 곱창볶음인데, 매콤한 게 꽤 먹을 만하던데요?”
“어머! 그러니? 아줌마, 곱창 무진장 좋아하는데. 우리 연수 보기보다 센스 있네? 마침 배가 슬슬 고프던 참이었는데 잘 됐다. 얘. 어? 연수야……너 술 마셨니?”
“하하하. 조금 마셨어요.”
“호, 혼자서? 연수 너, 술도 마실 줄 아니?”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은숙이 묻자 연수가 의뭉을 떨며 대답했다.
“하아, 아줌마도 참! 요새 술 못 먹는 젊은 애들이 어디 있어요? 많이는 못하고 조금 해요.”
“어머, 얘 좀 봐. 얘가 오늘 사람 여러 번 놀라게 하네. 그래서 혼자 마셨단 말이야?”
“네에. 요 앞 포장마차에서 그냥 혼자 마셨어요. 아줌마네 가게가 바쁠까봐 시간 좀 보내다보니까 그렇게 됐네요. 이렇게 가게가 한가할 줄 알았다면 혼자서 마시지 말고 곱창, 포장해서 곧장 이리로 오는 건데 잘못 했네요.”
“그러게 말이다. 얘, 연수야. 우리 방으로 들어가자. 방에서 아줌마가 물어볼 것도 있고.”
“그럼 그럴까요?”
연수는 은숙이 가리킨 방으로 들어갔다. 노래방의 방들 중에서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방이었다. 두 사람이 놀면 딱 알맞을 크기의 방에 들어오자 심리적으로 왠지 안정이 되는 기분이었다. 연수는 포장해온 안주거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 은숙이가 쟁반에 캔 맥주 여러 개를 담아 방으로 들어왔다.
“앉으세요. 아줌마.”
연수가 은숙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살갑게 말했다. 워낙 글래머인데다가 풍만하기 그지없는 은숙의 상체가 상당히 도발적이었다. 한눈에도 큼직한 젖가슴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오늘 따라 타이트하게 짝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는 바람에 커다란 그녀의 젖가슴의 윤곽이 밖으로 유난히 도드라진 모습이었다.
은숙은 연수 옆에 앉았다. 그리고 맥주를 따서 큰 컵에 그것을 콸콸 따랐다. 그녀가 술을 컵에 담는 동안, 연수는 포장한 안주거리를 풀어 헤쳐 놓았다. 아직까지 식지 않았는지 안주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자 유난히 강한 식탐을 내보이며 은숙이 호들갑을 떨었다.
“우와! 맛있겠다.”
돼지 같은 년! 연수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연수야. 아줌마랑 건배할까? 자아~ 받아라.”
연수는 은숙이 내민 맥주잔을 받아들면서 일부러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 뭐 잘못 됐어?”
“아, 그게 아니라요. 저기…….제가 술을 마시기는 마시는데, 여태껏 폭탄주라는 것을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어서요. 오늘 그거 한 번 맛보고 싶어서……”
겸연쩍어 하는 연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은숙이 웃음을 터트렸다.
“얘가 점점……진짜 너 때문에 아줌마, 오늘 여러 번 놀란다. 폭탄주를 마셔보고 싶다고? 깔깔깔.”
“그래서 제가 안주 사면서 소주도 몇 병 사왔어요. 소맥이라던가요? 오늘 맨 정신으로는 아줌마에게 제 고민을 털어놓지 못할 것 같아서요.”
연수는 같이 사들고 온 소주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일단은 은숙 아줌마를 술로 완전하게 보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일부러 사온 술이었다. 연수의 속마음을 알 리가 없는 은숙이 소주병의 뚜껑을 따면서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호, 혹시……연수야. 그 고민이라는 게 말이다. 어젯밤에 네가 살짝 말했던 우, 우리 남주에 대한 얘기니?”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말투에 연수는 일부러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대답했다.
“뭐 남주 누나의 얘기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하여간 누나가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그, 그래?”
금방 은숙의 얼굴에 초조함과 긴장감이 어리는 것을 보고나서 연수는 몸을 일으켰다.
“연수야. 어디 가려고?”
“화장실에요. 아줌마랑 본격적으로 마시려면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하하하.”
“연수 너, 못 보던 사이에 진짜 많이 변한 것 같다. 얘. 그래. 빨리 갔다 오렴.”
은숙이 다리를 슬쩍 비켜주었다. 방을 빠져나온 연수는 서둘러 달려가 노래방의 출입구 쪽의 문을 안에서 재빨리 잠가버렸다. 그리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 입구 쪽을 환하게 비추는 조명등의 불빛마저 차단해버렸다.
출입문이 어두컴컴해진 것을 확인한 연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간 연수는 은숙과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줌마. 우리 또 건배해요.”
“호호호. 그래. 내가 살다가 너랑 이렇게 단 둘이 술을 마시는 날이 올지는 생각도 못했다.”
“하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왜 저랑 둘이서 마시니까 싫으세요?”
연수의 물음에 은숙이 눈을 흘기며 술잔을 더 높이 들었다.
“싫기는. 자아~연수야 건배! 짠!”
그런데 술잔을 내려놓자마자 웃음기를 머금고 있던 은숙의 얼굴이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변했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은숙이가 연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연수야. 그건 그렇고 아까 말하다가 만 건데, 우리 남주한테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긴 거니?”
연수는 은숙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방안의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이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근심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