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제의 일기장 (하고 싶어. 지금 여기서.) 42화
무료소설 처제의 일기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처제의 일기장 (하고 싶어. 지금 여기서.) 42화
상중은 침묵을 택했다. 아니 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게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당면한 문제에 대처하는 그만의 방식이기도 했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TV를 보는 도연, 지연 자매처럼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평소처럼 침묵하는 것뿐이었다.
‘셋이서 하는 꿈을 꿨대요.’
대체 도연이 왜? 상중은 지연이 했던 말을 흩어버리듯 머리를 흔들었다.
홀로 소파에 앉은 상중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두 자매가 거실 바닥에서 나란히 TV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내려다 봤다.
보통 상중과 한 칸 떨어진 소파에 앉아 있던 지연이 제 언니와 나란히 앉아 있는 건 그가 기억하는 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도연은 평소처럼 타이트한 옷을 입고 스트레칭 중이었고, 지연은 늘 그렇듯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그 옆에 옆으로 누워있었다.
닮은 듯 다른 두 자매가 나란히 앉아 TV를 보는 그 장면은 TV로 향해야 할 상중의 시선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특히 그의 시선을 빼앗는 건 특히 지연의 불룩 솟은 골반 라인이었다. 살짝 올라간 셔츠와 골반 아래쯤에 걸린 고무줄 바지 사이에 하얀 속살이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무심한 듯 꽤나 집중해서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브래지어를 차고 있지 않았다. 지연 뿐만 아니라 도연까지도.
아내는 처제가 들어온 이래로 브래지어를 벗는 일이 별로 없었다. 생리 때문에 가슴이 커져 브래지어가 맞지 않을 때를 제외하곤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생 지연이 브래지어를 차지 않는다고 구박하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째서 오늘은 입고 있는 걸까? 생리도 아닌데.
그러고 보니 지난 며칠 동안 퇴근한 도연이 브래지어를 찬 일이 있던가? 아니, 없었다.
“나도 운동이나 할까 봐 언니.”
지연이 입을 연 건 늘씬한 여배우가 헬스장에서 운동 하는 장면이 화면에 나오고 있을 때였다.
남자를 꼬시겠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진 옷차림으로 헬스장에서 어슬렁거리던 여자가 다리 운동을 하는 장면이 의도적으로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여자의 쫙 달라붙는 쫄바지에 도톰한 음부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낙타발가락 혹은 도끼자국이라고 부르는 갈라진 자국도 보일 정도였다. 브라운관 구석에 적힌 15라는 숫자를 19라고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민망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었다.
“운동이라면 질색하던 애가 갑자기 웬?”
“아니, 요새 계속 앉아만 있으니까 살찌는 것 같아서.”
지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움푹 들어간 허리를 한 손으로 감쌌다.
도연의 손이 골반에서 허리 쪽으로 미끄럼을 타듯 흘러내려오더니 푹 꺼진 그곳을 꼬집듯이 주물렀다.
지연의 알몸을 이미 몇 번이나 보았던 상중으로서는 지연이 TV에 나오는 여배우에 전혀 뒤지지 않는 몸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살 늘어지는 것 좀 봐. 그래. 좀 해야겠다. 근데 일단 운동 이전에 넌 술 좀 작작 마셔.”
“술은 못 끊지… 아 맞다, 근데 언니, 가슴 커지는 운동도 있어? 언니 같아지고 싶은데.”
지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번엔 가슴을 손으로 감쌌다. 마치 상중이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지연의 행동에 상중은 놀라서 도연의 반응을 살폈다. 평소의 도연이라면 저걸 가만 놔둘 리가 없다. ‘니 형부도 있는데 지금 뭐하는 거야?’ 라고 당장에 한 소리 하겠지.
그런데… 놀랍게도 도연은 그걸 놔뒀다. 아니, 놔두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웃으면서 지연처럼 제 가슴을 감쌌다. 객관적으로 봐도 도연의 가슴은 10살이나 어린 지연보다 탄력이나 크기 면에서 나았다. 그렇다고 지연이 별로인 게 아니라 도연의 가슴이 훌륭한 거였다.
“이건 타고나는 거지. 그런 게 있으면 개발한 사람 떼부자 되고, 천지에 다 가슴 큰 여자만 있게? 아, 전에 들으니까 가슴 커지는 부작용이 있는 위장약이 있다고 했던 것 같긴 하더라.”
“헐, 진짜? 그게 뭐야?”
도연의 말에 지연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바닥에 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야, 근데 너 정도면 훌륭한데, 갑자기 웬 몸매 타령이야? 가슴도 이 정도면 훌륭하잖아.”
도연이 지연의 가슴을 만졌지만, 위장약 검색에 정신이 팔린 지연은 대답도 반응도 없었다.
두 사람 지금 뭐하는 거야?
이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들어갔다.
‘셋이서 하는 꿈을 꿨대요.’
다시 도리도리.
도연이 그런 걸 원할 리가 없잖은가?
어제 있던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성이 없는 일이었다. 지연의 말에 따르면 도연이 그 일을 원했다고 하지만, 그 말은 도연이 바람을 피웠다고 하는 말보다 더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달라진 아내를 몸소 겪어봤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아내의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좋은 변화도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인데, 일단 상중은 도연의 변화가 좋은 변화인지 아닌지조차 판단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어디 가게요?”
상중이 조심스레 일어나 현관으로 향하자 이제껏 상중을 없는 사람 취급하던 도연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잠깐 바람 좀.”
“그러고? 추운데. 잠깐만 있어요!”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던 도연은 10초도 안 되는 사이 외투를 걸치고 손에는 상중의 외투를 들고 나왔다.
“오랜만에 나도 같이 가요.”
머리나 좀 식히려고 했던 상중이었지만, 이미 나올 채비를 마치고 신발장에서 운동화까지 꺼내 신는 도연을 막을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어? 나만 떼놓고? 나도 같이 가!”
휴대폰에 얼굴을 박고 있던 지연이 뒤늦게 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어허, 오랜만에 오붓하게 산책 좀 하려고 그러는데 어딜 끼려고?”
“치사해.”
이제까지의 친근함은 온데 간데 없이 줄을 그어버리는 도연의 말에 샐쭉 토라진 지연이 오므린 입술을 한껏 내밀었는데 상중의 눈에 들어온 건 얇은 티셔츠에 봉긋한 젖꼭지 두 개였다.
+++
12월에 가까워진 밤 공기는 입김이 나올 것처럼 차가웠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이렇게 산책하는 거.”
상중의 팔뚝을 전에 없이 꼭 붙들고 있는 도연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지나가는 찬 바람이 몸을 서늘하게 감쌌지만, 도연의 가슴에 끼인 팔뚝만은 따뜻했다.
“여보.”
상중의 어깨에 고개까지 기대며 말없이 걷던 도연이 상중을 불렀다.
“응?”
도연이 함께 나온 순간부터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중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나 사랑해?”
사귀는 초창기에도 몇 번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을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요즘 들어 자주 묻는 이유가 뭘까?
“그럼. 사랑하지.”
낯 부끄럽게 뭘 그런 걸 다 묻냐고 말하려던 상중은 마음을 고쳐먹고 그렇게 대답했다. 그게 그의 진심이었다.
“나도 알아.”
“알면서 뭘 물어.”
“그냥…”
도연에게 할 말이 남은 것처럼 보였지만 상중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 때 작은 공원처럼 꾸며진 동네 놀이터가 나타났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없어 두 사람 모두 의도적으로 피해 다녔던 길이었기에, 상중은 순간적으로 뒤돌아 가야 하는지 망설였다.
그런데 줄곧 상중이 이끄는 대로 따라왔던 도연이 놀이터 안으로 그를 이끌었다. 밤 11시가 지나 인적이라곤 없이 낡은 가로등만으로 밝혀진 놀이터는 낮의 활기는 잃은 채 귀신이라도 나올 듯 으스스한 기운으로 채워져 있었다.
한 번도 안을 거닐어 본 적은 없었는데, 놀이터인 줄로만 알았던 그곳은 생각보다 규모가 있는 공원이었다.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던 미끄럼틀이나 정글짐 같은 놀이기구를 지나쳐 더 안으로 들어가자 우레탄으로 포장된 산책로가 나타났다.
가로수가 늘어선 산책로에는 군데군데 벤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바람이 차고 시간도 늦었는데 한 사내가 후드티를 입고 조깅을 하고 있었다. 그 사내가 거친 숨을 몰아 쉬며 그들을 지나쳤다.
“잠깐 앉았다 갈래?”
얼마쯤 걸었을까? 관목에 둘러싸인 움푹 들어간 곳 벤치를 가리키며 도연이 말했다. 가로등도 멀어 언뜻 벤치가 있는지도 잘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안 추워? 바람이 찬데. 시간도 늦었고.”
“잠깐만 있다 가자. 오랜만에 나왔는데… 좀 더 있다 가고 싶어.”
슬슬 한기를 느껴 몸이 으슬으슬 떨릴 지경이었지만, 상중은 할 수 없이 벤치에 앉았다. 자리에 앉기 전 도연이 앉을 자리를 후후 불어 먼지를 없애는 몸에 밴 매너도 잊지 않았다. 먼저 앉은 상중이 옆에 도연이 앉기를 기다리는데, 도연은 벤치가 아니라 꼭 아빠 무릎에 앉는 소녀처럼 상중의 무릎 위에 앉더니 팔로 목을 휘감았다.
“하아, 좋다.”
“여… 여보?”
“응? 왜? 무거워?”
“아니, 그건 아닌데… 아직 사람도 있는데.”
“보면 어때. 부부끼리. 이러면 좀 더 따뜻할 거 아냐. 당신 추워서 떨고 있는 거 다 알어.”
떨고 있는 건 상중뿐만이 아니었다.
찬 공기 대신 도연의 달콤하고 따뜻한 살결의 온기가 그의 코로 들어왔다. 도연의 이런 거리낌 없는 애정행각은 신혼 초에도 없던 일이었다.
“있지. 나 뭔가 달라진 것 같애. 당신 눈에는 어때 보여?”
상중은 당장에 고개를 끄덕거려 긍정하고 싶었으나, 도연이 그를 꽉 끌어 안는 바람에 그렇지 못했다.
“글쎄… 무슨 일 있었어?”
변화를 감지하다 못해 그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있는 중이면서도 상중은 애써 태연하게 물었다.
처제 때문이다.
둘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간 건진 모르지만, 이런 아내의 변화가 일어난 건 모두 처제 지연과 관련된 것이라는 걸 상중은 잘 알고 있었다.
그를 끌어안고 있던 도연이 팔을 풀지 않고 고개만 떼서 상중을 바라보았다.
“치… 더 분발해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상중의 입술을 덮쳤다. 도연의 꿈틀거리는 혀가 상중의 입 안을 마구 휘저었다.
무방비 상태로 당한 상중이었지만, 그게 기분이 나쁠 리는 없었다. 도연이 신음까지 흘려대며 입술을 부벼대는데 그의 손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도연의 옷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처음 공원에 들어섰을 때 그들을 지나쳤던 조깅하는 남자의 뜀박질 소리가 다시 가까워진 건 그 때였다. 도연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인지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여 상중이 밀치듯 도연을 떼어냈다.
“하아하아…하아…”
입술을 뗀 도연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상중의 입술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조깅하는 남자는 이미 그들을 지나쳐 멀어져가고 있었다.
“나 하고 싶어. 지금 여기서.”
상중의 가슴을 어루만지던 도연의 손이 아래로 미끄러져 발딱 선 기둥을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