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제안 59장. 전략적 파트너들 (2) 64화
무료소설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거부할 수 없는 제안 59장. 전략적 파트너들 (2) 64화
지금 시간은 정확히 6시 55분. 5분만 더 있으면 은지가 말한 7시였다.
볼 수는 없지만 지금쯤이면 그녀가 밖으로 나와 있어야 했다. 한 치의 어긋남도 있어서는 안 됐다.
잠시 기다리자 드디어 7시가 되었다.
차를 몰아서 CCTV 뒤 쪽으로 이동하고 재빨리 담장 쪽으로 몸을 옮겼다. 누가 올 수도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성공해야 했다.
군대에서 수류탄 던질 때도 지금보다는 덜 떨렸던 것 같다.
호흡을 가다듬고 카메라를 힘껏 던졌다. 안쪽에는 잔디가 있기 때문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은지가 발견할 수 있을까?’
전화를 해서 물어볼 수도 없고, 소리쳐서 물어볼 수도 없으니 정말 답답할 노릇이었다. 서둘러 차로 돌아와 은지에게 메일을 보냈다.
카메라 사용법이나 설치 방법은 이미 다 이야기해 준 상태였고, 은지가 카메라를 잘 받아 들었는지 확인하고, 그걸 언제 설치할지는 나중에 내가 알려 주기만 하면 됐다.
나는 재빨리 그 동네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고 1시간 정도 흘러서야 은지에게서 메일이 왔다.
[떨려서 혼났어. 카메라는 내가 잘 받았어. 모르는 곳에 보관 해 둘 테니까 내가 언제 설치해야 할지, 연락해 줘. 그 사람이 나에게 언제 어떤 일이 있다고 미리 언질을 준다면 내가 먼저 가서 설치 할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알 방법이 없으니까.]
준비는 대충 끝난 것 같았다. 지금부터는 당분간 오 실장의 움직임을 보면서 대응해야 했다.
강 총장과의 대화를 복기해 보면 다음번 모임에서는 거물급 정치권 인사가 참여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건 곧 있을 선거를 대비하기 위함일 테고 그러려면 날짜는 그 일정에 맞춰서 잡을 게 분명했다.
어떤 식의 공천을 받을 건지는 예상할 수 없지만 아직 정치적 기반이 없는 오 실장임을 미루어 예상해 보면 비례대표로 나갈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리고 오 실장이 정계에 발을 들여 놓는 그 순간부터 모든 눈은 그에게 쏠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천문학적인 자산을 가진 재벌 출신 정치인이 될 것이다. 거기에다가 톱스타 출신의 미모의 아내가 있었다. 어디를 가도 화제를 몰고 다닐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와 거래를 하는 것이 더 쉬워질지도 몰랐다. 오 실장이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동안 그는 더 내려오기 힘들어질 테니까 말이다.
가진 것이 많은 자와 협상하는 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유리했다. 가진 게 많으면 지켜야 할 것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갈증이 났다. 냉장고를 열어 맥주와 안주 하나를 챙겼을 때 거실에서 휴대폰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띠리리링.
‘뭐지? 모르는 전화번호인데? 거기다가 번호가 뭐 이따위야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인가?’
“여보세요?”
[pronto?]
‘뭐지? 영어도 아니고 불어? 이탈리아어?”
분명한 건 젊은 여자의 음성이었다.
“hello? 여보세요?”
[pronto, buongiorno?]
“아, 뭐라는 거야? Excuse me. May i ask who’s calling please? Can you speak english?”
‘영어권 여자가 아닌가?’
[하하하핫.]
잠시 머뭇거리던 여자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뭐야…… 이 여자…… 요즘은 중국 이외의 나라에서도 보이스피싱을 하는 건가?’
그때 그 여자가 웃음소리를 멈췄다.
60장. 서 마담의 전화 그리고……
“뭐야 이거?”
[벌써 내 목소리 잊어버린 거예요?]
‘한국 사람이잖아?”
“누구신지? 전화 잘못 거신 거 아니에요?”
[와…… 지훈 씨 섭섭하다.]
“어…… 어? 아~!!”
바보처럼 그제야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혜진 씨~”
[언제 들어도 듣기 좋다~ 서 마담이라는 말 대신 지훈 씨가 불러 주는 혜진 씨라는 그 말.]
“놀랐잖아요~ 어디예요? 잘 지내고 있는 거예요? 나는 또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하하.”
[이탈리아어로 보이스피싱 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긴 그러네요. 그나저나 휴대폰은 어디 가고 이 번호예요?
[그냥 지훈 씨 놀래 주려고 그런 거죠. 잘 지내죠?]
“나야 뭐…… 그냥 그렇죠…… 혜진 씨는 그럼 이태리에 있는 거예요?”
[지금은 그렇죠. 이태리 온지 이틀째예요. 그냥 잘 지내나 궁금해서 전화해 봤어요. 한국 떠나오니까 정말 좋은 곳들이 너무 많았는데 이제 우리 아들이 없으니까…… 좋은 걸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어디 같이 기뻐해 줄 사람이 없네요. 유일하게 내가 전화할 수 있는 곳이 지훈 씨더라구요. 내가 혹시 좋은 시간 방해한 건 아니죠?]
“그럼요, 목소리 들으니까 반갑고 안심되네요. 혹시나 하고 걱정했었는데…….”
[그랬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너무 잘 지내고 있으니까…… 지훈 씨는 괜찮아요?]
괜찮냐는 혜진의 말이 단순히 잘 지내냐는 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아직까지 괜찮긴 한데 힘에 부치는 건 사실이에요. 한번 붙어 보려고 해도 이건 뭐 체급 차이가 너무 나니까, 상대가 될지 모르겠어요.”
[이길 방법은 있어요? 도망을 가려고 해도 한 대 때려 놓고 가야 시간이라도 벌죠.]
“그래서 찾아보는 중 이에요.”
[그렇구나…… 꼭 찾아서 지훈 씨가 이겼으면 좋겠어요. 파이팅해요.]
“고마워요, 혜진 씨. 여행 조심히 다녀요. 워낙 예쁘니까 치근덕대는 남자도 많을 텐데 좋은 사람 있으면 연애도 좀 하고~”
[알겠어요. 또 오빠 같은 말 한다. 이만 끊어야겠어요. 잘 자요~]
“그래요. 가끔 전화해요.”
서 마담이 전화를 끊었다. 잘 지내고 있는지 가끔 궁금했었는데 다행히 괜찮은 것 같았다.
다행히 그녀는 예전 밝은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도 한국에서 생각나는 게 나 밖에 없다니 그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아마 그녀가 한국에 있었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
금요일 저녁.
오 실장을 태우고 계열사에 들렀다가 바로 집까지 태워다 주는 길이었다. 오 실장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가 전화를 받았다.
“어, 왜?…… 안 돼! 나 오늘 집에 들어가는 길이야. ……. 멀리하긴 누가 널 멀리한다고 그래?!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그냥 쉬어. ……주말에도 일 있어. ……너 미쳤어? 보자보자 하니까 끝도 없이 기어오르고 있어!! 누구한테 오라가라야? 내가 갈 때까지, 입 닥치고 가만히 찌그러져 있어!”
핸드폰 밖으로 새어 나오는 여자의 목소리가 틀림없는 유정이었다.
‘요새 뭐가 안 좋은가? 둘이 싸웠나?’
그동안 회사 안에서 두 사람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유달리 둘 사이가 싸늘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건 사실이었다.
둘 사이에도 어떤 변화가 생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앉아 있는 오 실장의 표정이 짜증으로 가득했다.
“내일 뭐해? 저녁에 술이나 한잔할래?”
내일은 하루 종일 유연과 함께 있을 계획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실장님…… 내일은 어머님을 찾아뵙기로 해서 일요일 날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뭐.”
“내일 골프 모임 있지 않으십니까?”
“있어. 그 지긋지긋한…… 운동 끝나고 나서도 그놈들 면상 볼 생각하니 벌써 질린다.”
“요새 좀 힘들어 보이십니다…….”
“네가 보기에도 그러냐? 사실 좀 힘들긴 하다. 이럴 줄 모르고 시작한 일도 아닌데 막상 일을 벌여 놓고 보니까 너무 큰일인 거지.”
“지금이라도 그만 가시면…….”
“아니…… 지금 와서 포기하기엔 너무 늦었어. 애초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으면 모를까……. 그리고 일단 이 바닥에 들어왔으니까 정점을 찍어야 하지 않겠니?”
피곤에 지쳐 보였던 그의 눈이 야망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네가 보기엔 어때? 내가 정치인으로서 잘 성장해서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입에 바른 소리가 필요하다면 해 주면 그뿐이었다.
“충분히 잘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러려면 서민 코스프레도 좀 하고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좀 걱정이 되기는 해. 날 때부터 금수저라 서민들을 이해하겠냐는 시선들이 많잖아?”
“그런 것들을 하라고 참모들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지. 그런데 그놈의 이미지가 뭔지, 생 돈 써 가면서 장학사업도 하고, 기업 상생 정책인지 나발인지…… 아휴…….”
“조금 쉬세요. 도착하면 깨워 드리겠습니다.”
오 실장이 거나하게 술이라도 취했다면 그를 데려다주며 잠깐이라도 유연의 얼굴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오늘은 그럴 수도 없을 것 같았다.
항상 오 실장을 데려다줄 때마다 아쉬움이 남았다. 멀지 않은 곳에 유연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같이 있을 수 없다는 걸 매번 실감하기 때문이다.
***
최근에는 거의 매 주말마다 유연을 만나는 것 같다. 아침부터 저녁 시간까지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매번 손꼽아 기다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유연 씨~”
창문을 내리자 유연의 모습이 멀리 보였다.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녀가 냉큼 차로 올라왔다.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내 목에 매달리며 볼에 뽀뽀를 해 주었다.
“요즘 따라 왜 이렇게 더 보고 싶지?”
나에게 실컷 뽀뽀 세례를 하고는 그녀가 정면을 바라보면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지금 그거, 나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아니면 혼잣말하는 거예요?”
“헤헤, 둘 다요…….”
“오늘 나올 때 회장님이 뭐라고 안 하셨어요?”
“하시긴 하시죠, 저번 달에도 실패하고 나서 조금 안 좋은 소리 듣기는 했어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노력하라고…….”
“이제 겨우 두 달째인데 설마 자르기야 하겠어요? 그런데 석 달째부터는 조금 조심은 해야겠다. 언제까지 행운이 우리 편일 리도 없고…….”
“그래서 지금도 조심하고 있잖아요. 오늘도 절대…… 안에는 안 돼요.”
“알았어요…….”
“그런데 남자들은 그런 거…… 있어요? 안에다 못하면 조금 아쉽고 그런 거?”
요새 부쩍 성적으로도 호기심이 많아진 유연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춘기 소녀처럼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뭐 그럴 때도 있고, 안 그럴 때도 있겠죠, 사람마다 다 취향이 다르니까…….”
“그럼 지훈 씨는 어떤 취향인데요?”
“나요? 글쎄요…… 하하…… 그건 좀 어려운 질문이네요.”
“왜요?”
“나는 다 좋으니까 유연 씨랑 하는 거면 다 좋으니까~”
“맨날 저래~”
“진짜라니까요…… 근데 요새 왜 부쩍 그런 쪽으로 관심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싫은 거예요?”
“아니요. 더 좋긴 한데, 왜 그런지 궁금해서요.”
“그냥…… 나는 지훈 씨가 좋아하는 얼굴을 보는 게 좋아요…… 가끔 내가 지훈 씨를 올려다 볼 때가 있는데, 그때 지훈 씨 표정이 너무 좋아할 때가 있어요. 그런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나도 더 좋고, 또…… 흥분도 되고.”
“그랬어요? 나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모르니까……. 그런데 되게 좋은 건 확실해요. 빨리 좀 가야겠네요.”
“그럼…… 빨리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