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한밤중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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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6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성인소설: 한밤중의 손님
[무료소설] 한밤중의 손님
소녀를 재워줘
02. 한밤중의 손님
“저 잠깐만, 여기 있다 가면 안 돼요?”
바로 방금 전 본의 아니게 태선의 추한 모습을 다 보여주고도 뭘 보냐며 되레 민망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소녀가 그에게 묻고 있었다. 그는 당혹스러웠지만 아직도 옆집에서 요란하게 들리는 소리에 마른침을 삼켰다.
“……잠깐만, 있다 가던지.”
태선은 그렇게 얼떨결에 소녀를 집안으로 들였다. 교복 재킷도 카디건도 없이, 춘추복만 걸치고 가방을 메고 있는 그 애가 퍽 추워 보였다.
“감사해요.”
소녀는 가방끈을 꼭 쥔 채로 그의 집에 들어와 신발을 벗었다. 무심코 태선의 시선이 그 애의 신발에 닿았다. 눈처럼 하얬을 그 운동화는 군데군데 떨어지고 색도 바래진 채로 꽤 낡아 있었다. 부모님은 저렇게 싸우고 소녀는 갈 데가 없고. 태선은 자신도 모르게 연민의 감정이 생기는 걸 느꼈다.
“……나 라면 먹을 건데, 너도 먹을래?”
태선은 오늘 처음 본 소녀이지만 나름 친근하게 물었다. 그녀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태선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교양 과목의 시간 강사였다. 그래도 꼴에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다는 직업의식 때문인지, 어린 학생을 보니 마음이 꽤나 너그러워져 있었다. 바로 몇 분 전까지 윤정 때문에 그렇게나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었는데도 말이다. 그는 말했던 대로 냄비에 금세 푸짐하게 라면을 끓여 냈다.
“이리 와서 먹어. 별로 차린 건 없지만.”
“……네.”
그가 라면을 끓이는 동안 별로 볼 것도 없는 집안을 휙 둘러보던 소녀가 쪼르르 달려와 의자에 앉았다. 태선은 그녀의 앞으로 적당한 양의 면을 접시에 덜어 건넸다.
“이사 왔니? 그동안 한 번도 못 봤던 거 같은데.”
“……일주일 전에.”
“그랬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모르는 아저씨 집에 덥석 덥석 들어오고 그러면 안 돼.”
“……바로 옆집에 엄마 아빠가 있는데요, 뭐.”
소녀는 태평했다. 그것이 순수해 보여 태선은 모처럼 입매를 휘었다.
“에이. 나니까 다행이지 만약에 나쁜 사람이었어 봐. 큰일 난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설마요. 방금 섹스했는데 또 하고 싶을까.”
“켁! 켁!! 쿨럭!”
소녀는 얼굴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덕분에 라면이 목에 걸린 태선이 켁켁 거리며 급히 물을 찾아 마셨다.
“괜찮아요?”
“아, 너, 그게 무슨…….”
“아저씨도 우리 엄마 아빠 싸우는 소리 들었잖아요. 나라고 아저씨 섹스 하는 소리 못 들었을 까봐요?”
“……!”
“원래 배부른 사자들은 눈앞에 먹잇감이 왔다 갔다 해도 안 먹는다면서요. 나도 그 말 믿고 잠시 신세지러 들어온 거예요.”
소녀는 당돌했다. 그녀의 되바라진 말에 태선은 제 안에 피어올랐던 연민이 빠르게 식는 것을 알았다.
“……그래, 그래. 참 똑똑한 친구구나. 라면이나 먹자.”
윤정이나 이 소녀나, 전부 자신을 멍청이로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태선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미예요, 내 이름. 반 나 미.”
한동안 말없이 라면을 먹던 소녀, 나미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제 이름을 툭 말했다. 태선은 고개를 들고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어……이름 예쁘네. 나미.”
“난 내 이름이 싫어요. 한 번 들으면 어지간해서 까먹질 않잖아.”
“그게 좋은 거지. 상대방한테 단번에 각인될 수도 있고.”
“……그럼 지금도 나 아저씨한테 각인 됐어요?”
나미가 그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기에, 태선은 눈썹을 찡그렸다. 아무런 의도 없이 그냥 한 말인데, 저렇게 의미를 갖고 돌아오면 할 말이 없어진다.
“어……아마?”
“……그렇구나. 아저씨 이름은 뭔데요?”
“……태선. 홍태선.”
“홍, 태, 선. 나도 아저씨 이름 내 머리에 각인시킬게요. 그럼 공평하죠?”
대체 뭐 어디가 어떻게 공평한지는 모르겠지만 태선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애들의 화법을 그는 도무지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앗! 아저씨, 저 휴지 좀……!”
그 순간 나미가 입고 있는 흰 셔츠 위로 라면 국물이 떨어졌다. 태선이 휴지를 집어 그녀에게 건네자 나미는 곧장 셔츠를 당겨 국물을 찍어 닦았다. 그 전까진 몰랐는데, 그 바람에 소녀의 가슴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음…요즘 애들은 발육 상태가 원래 저렇게 다 좋은가.’
성인 여성 못지않은 풍만한 곡선에 태선은 황급히 눈을 돌렸다. 저 소녀는 아무래도 경계심이 부족한 아이인 것 같았다. 겁도 없고, 당돌하고. 태선은 그런 소녀가 어딘지 위태로워 보였다.
“넌 참……겁이 없구나?”
“아닌데. 나 겁 많아요.”
“그…래…?”
“네. 무서워서 놀이기구도 못 타요.”
“어…….”
“물론 아직까지 한 번도 놀이공원에 가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태선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눈앞의 이 소녀는 꽤나 사연이 많은 것 같았다.
“……별 거 없어. TV에 나온 게 다야.”
“알아요.”
새침하고 도도한 대답에 태선은 피식 웃었다. 어느 새 냄비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혹시 몰라 3개는 끓였는데, 자신도 그녀도 퍽 많이 시장했었나 보다.
“아, 배불러. 잘 먹었어요, 아저씨.”
“그래. 잘 먹었다니 다행이네.”
“설거진 제가 할게요.”
나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냄비와 그릇들을 챙겨 싱크대로 가져갔다. 당황한 태선이 그녀를 말렸다.
“아니야, 안 해도 돼. 내가 할게.”
“이 정돈 저도 할 수 있어요.”
“괜찮대도. 손님한테 이런 걸 시킬 수는 없지.”
“아. 계속 생각하고 있던 건데, 아저씨 좀 호구 타입?”
꽤 핵심적인 질문에 태선은 멈칫했다. 그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부정을 하기가 민망했다.
“……그래도 너무 대놓고 그렇게 말하면 내가 상처 받지 않을까?”
“풉. 네, 속으로만 생각할게요.”
그 순간, 나미가 태선을 만나고 처음으로 웃었다. 그것은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었던 꽃망울이 한 번에 팍, 터지며 만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잠시 그 무해한 웃음을 바라보던 태선이 여상하게 말을 건넸다.
“자주 웃어라, 너. 웃는 모습이 참 예쁘네.”
“…….”
태선이 선하게 웃으며 나미를 칭찬하자, 그녀는 대번에 정색했다. 언제 그렇게 예쁘게 웃었냐는 듯,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며 싸늘한 얼굴이 되었다. 태선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내가 뭐 실수한 건가?”
“……그런 말 처음 들었어요.”
“정말? 난 너처럼 웃는 얼굴이 그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 보는데. 우리 둘 다 서로한테 처음이네.”
태선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냥 가볍게 던지는 그의 말들이, 아직 어린 나미의 차갑게 얼어붙었던 마음을 톡, 톡, 두드리는 것 같았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전 가볼게요.”
이런 게 익숙하지 않았던 나미는 금세 태선에게 떨어져 가방을 챙겨 들었다. 좀 전까지 잘 얘기하고 있다가 갑자기 후다닥 사라지려는 그녀를 태선이 급히 붙잡았다.
“집에 가려고? 괜찮겠어?”
“…….”
자신의 질문에 나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태선은 혹시나 자신이 실수한 것일까 사과부터 했다.
“아, 미안. 그러니까 내 말은…….”
“이제 싸우는 소리 안 나잖아요. 들어가도 돼요.”
“…어…그래. 그렇구나.”
“……진짜 호구 맞네. 안녕히 계세요, 홍태선 아저씨.”
나미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그의 집을 나섰다. 뒤이어 옆집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태선은 야심한 시간에 갑자기 찾아왔다 순식간에 사라진 밤손님의 존재를 가만히 곱씹다, 이내 멈췄던 설거지를 다시 시작했다.
낮보다 밤이 더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