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제의 일기장 (속마음) 4화
무료소설 처제의 일기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처제의 일기장 (속마음) 4화
상중은 하청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에서 소리치며 매달리는 업체 대표를 뒤로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 이러면 되는 거다. 상중은 낭떠러지에 한 손만 걸고 매달려 있다. 결단을 할 때였다. 제 몸 하나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을 위한다고 고집만 부리다가 동료들처럼 사라질 수는 없었다. 그는 방금 전, 다른 한 손에 쥐고 있던 사람을 놓아버렸다.
그 날 오후 하청업자 대표는 지방에서 올라왔고, 상중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보다 스무 살은 많아 보이는 머리가 희끗한 사내였다. 사무실에 있는 눈들이 상중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를 일으킬 수 없었던 상중은 그를 놔둔 채 화장실로 숨어버렸다.
상중은 터벅터벅 걸어 집 근처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상중이 회사에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들르는 곳이었다.
“형부!”
상중이 자리에 앉아 첫 잔을 채우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지연이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처제?”
아직 8시밖에 안 되어있었다. 지연이 술잔을 직접 가지고 와 그에게 내밀었다.
“저도 한 잔 주세요.”
상중은 얼떨결에 지연의 잔에 술을 따랐고, 제 잔을 들어 지연의 잔과 부딪쳤다. 쓴 소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문득 어젯밤에 홀딱 벗고 지연과 마주쳤던 순간이 떠올랐다.
“처음이네요.”
지연이 오뎅 국물을 뜨며 말했다. 지연은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단둘이 마시는 건.”
지연은 숟가락을 입에 문 채 상중을 바라보았다.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고 미심쩍어 하는 눈빛이었다.
“집으로 안 가고 딴 길로 가길래 바람났나 싶어서 따라와 봤어요.”
그렇게 말한 지연이 술병을 들어 상중의 잔을 채웠다.
“근데 진짜 바람이 났을 줄이야…”
지연은 말을 하다말고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걱정 마세요. 못 본 걸로 해드릴 테니까.”
그러더니 누가 듣기라도 하는 듯, 한 손으로 입을 가리는 시늉을 해서 속삭이고는 키득거렸다. 안주를 가지고 온 포장마차 주인이 그들을 힐끔 쳐다보고는 되돌아갔다.
석잔 만에 지연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상중이 연달아 잔을 들이키는 동안 지연도 합을 맞추며 들이킨 참이었다.
“처제 술 못 마시는구나?”
“아닌데요? 저 술 엄청 잘 마시는데요?”
“얼굴이 그렇게 빨간데?”
“에이, 이건 제가 형부를 좋아하니까 부끄러워서 그런 거죠.”
발음도 꼬여 있었다.
“형부! 회사일이 많이 힘든가 봐요. 얼굴 많이 상했어요.”
“늙어서 그렇지 뭐.”
“에이, 아직 쌩쌩하시던데 뭘.”
손사래까지 치며 말을 내뱉고 난 지연이 놀라 입을 막았다.
아직 취하지 않은 상중은 지연의 입에서 방금 나온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제 저녁, 첫 경험이 적힌 지연의 일기장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흥분해서는, 격렬하게 도연을 범하면서 지연을 의식했던 그였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샤워가 끝나고 마주친 지연의 시선이 그의 물건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도 상중은 잘 알고 있었다.
지연은 목이 타는지 빈 술잔을 들었다가 비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급하게 술을 따른 다음 들이켰다.
“처제는 남자친구 없어? 결혼해야지 처제도.”
둘 사이를 채워버린 어색함을 좇아내려는 듯 상중이 말을 꺼냈다.
“남자친구는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요. 결혼은 뭐, 못할 것 같지만.”
“왜? 어떤 사람이길래?”
둘의 긴장감은 술이라는 이완제로 인해 금방 풀어졌고 자연스러운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비밀이에요 그건.”
“처제도 얼른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야 할 텐데.”
상중은 진심이었다. 비록 처제인 지연의 일기장을 읽으며 금기시 된 마음을 품고는 있었지만 처제의 진정한 행복을 바라는 것 또한 형부로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면서도 처제가 좋아한다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궁금해졌다.
상중은 웃고만 있는 지연의 잔과 자기 잔에 술을 채웠고, 술잔을 비우며 생각했다. 처제가 좋다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형부, 저 못 걷겠어요.”
조금 비틀거린다 싶던 지연이 갑자기 길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상중은 주저앉은 지연에게 다가가 지연의 팔뚝을 잡고 일으켰지만 몇 번을 쓰러졌다. 간신히 일으켰다 싶었는데도 곧바로 중심을 잃고 상중의 품에 안겨버렸다.
“에궁, 형부가 나 첨으로 안아줬당…”
지연은 품 안에 안겨서도 중심을 잡느라 애를 먹었고, 그러는 통에 푹신한 가슴이 상중의 가슴팍에서 물컹거렸다. 손아귀에 잡혀있는 지연의 팔뚝은 도연의 팔보다 말랑거렸다.
“배 째요. 못 걸어요, 전.”
얼굴을 묻은 지연의 숨결로 인해 상중의 어깨가 뜨듯해졌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상중도 취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간신히 지연을 등에 업은 상중이 헉헉거리면서 힘겹게 걸음을 뗐다. 상중의 손은 지연이 엉덩이와 허벅지 께를 있는 힘껏 움켜쥔 채였다.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상중이 눈을 떴을 때 아내는 옆에 없었다. 머리도 머리였지만, 허리가 끊어지게 아팠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무래도 말만한 처녀를 업은 게 너무 오랜만이라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허리를 부여잡고 간신히 부엌으로 가서 물을 꺼내려다가 냉장고에 붙은 아내의 메모를 발견했다.
「북어해장국 끓여놨으니까 지연이랑 같이 해장국 챙겨먹어. 6시 전에는 올 거야. 이따 연락할게.」
차갑게 식은 냄비를 데우기 위해 가스에 불을 붙인 상중이 현관 옆에 있는 지연의 방문을 열었다. 지연이 방에 있을 때 방문을 여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웬일인지 그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처제….”
방문을 열자 지연의 달콤한 향기와 술 냄새가 뒤섞인 묘하게 야릇한 냄새가 상중의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더욱더 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 광경에 놀란 상중은 순간적으로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상중은 닫힌 문의 문고리를 잡은 채 문에 머리를 대고 굳어버렸다.
잠시 고민에 빠졌던 상중은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굳이 다시 열지 않아도 방금 전에 보았던 그 장면이 이미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아있었지만, 문고리를 돌리는 손을 상중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옷가지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었다. 어제 지연이 입었던 티셔츠와 면바지가 구겨져있었고, 팬티와 브래지어도 있었다. 팬티는 구겨진 면바지 사이에서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브래지어는 침대에 반쯤 걸쳐 있었다.
그리고 그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옷가지들 옆 침대 위에는 이불도 덮지 않고 엎드려 잠들어 있는 처제가 있었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허리와 동그랗게 솟은 엉덩이가 햇살을 받아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거리고 있었다. 화사하게 빛나고 있는 엉덩이와 허벅지에는 데인 것처럼 빨간 멍 자국 같은 게 있었다. 몸에 눌린 가슴이 흘러넘친 망고젤리처럼 겨드랑이 아래로 삐져나와 있었다.
상중은 침을 꼴깍 삼켰다. 들어가서 만지고 싶었다. 딱 세 발짝만 다가서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된다. 선을 넘을 수는 없다. 그의 이성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고, 더더구나 그에게는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다.
끓는 북어해장국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는 문을 닫았다.
“똑똑똑, 처제! 일어나 밥 먹어!”
처제는 늦었다며 부랴부랴 나가버렸다. 밥도 못 뜨고 말이다. 그래서 결국 상중은 혼자 밥을 먹어야 했다. 자식이라도 있으면 같이 먹을 텐데. 그는 무섭도록 조용한 주말을 견디려고 티브이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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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5일
이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나의 맘을 얻기 위해 몇 달을 기다렸다던 그가 뒤돌아서는 건 한순간이었다. 아니 한순간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사귀고 나면 끝날 줄 알았던 기다림이 사귄 후에도 계속 되다보니 견디지 못해 나가떨어져 버리고 만 거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는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무척이나 많이 했고, 나는 그 말을 듣는 게 싫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되돌려줄 수가 없었다. 그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응, 고마워.’라고 밖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나의 사랑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확신할 수도 없는 것을 확신한 것처럼 말할 수는 없었다. 그가 고마웠지만, 분명히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섹스도 조금씩 나아졌지만, 도저히 내 입에선 사랑한다는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게 헤어진 이유였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앞으로도 사랑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결국 내게 이별을 고했다. 나는 그를 붙잡지도 않았다.
왜였을까? 왜 난 그를 사랑할 수가 없었을까?
떠나가기 전 그가 내게 한 말….
“네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건지도 모르지.”
정말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안 그래도 애늙은이였는데 고작 2년 만에 나 너무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다. 복잡하다.
오늘은 언니가 보고 싶다. 형부를 사랑해 결혼까지 한 언니에게서 형부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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