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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소설: 미련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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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4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성인소설: 미련한 관계

[무료소설] 미련한 관계

소녀를 재워줘


30. 미련한 관계


윤정이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태선과 나미는 당연히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었다. 태선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나미야, 먼저 차에 가 있을래? 금방 얘기하고 갈게.”


“……빨리 와요.”


나미 또한 그를 윤정의 곁에 남겨두고 홀로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이번엔 태선이 저에게 가 있으라고 한 바람에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미는 차로 가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태선이 그녀에게 어떤 마음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역사를 알기에,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멀어지는 나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선이 고개를 돌려 윤정을 응시했다.


“나한테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데. 아니, 우리 사이에 더 말할 거리가 남아 있긴 한가?”


“…….”


날카로운 태선의 말에 윤정은 숨을 참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또 다시 이성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잃은 지금, 태선 앞에서 더 이상의 추태는 그만 부려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제게 정이 떨어진 남자를 조금이라도 붙잡기 위해서는 모든 자존심을 다 버려야만 했다.


그녀의 침묵을 참지 못한 남자가 다시 한 번 재촉했다.


“할 말, 없어?”


“……어머닌, 좀 괜찮으셔?”


“응.”


“……입원하셨어?”


“찾아가려고? 미리 말하는데, 우리 어머니 통해서 뭘 어떻게 할 생각은 하지 마. 오늘 어머니께 나미 정식으로 인사시켰으니까.”


결국 윤정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말았다. 예상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몇 번이고 카운터펀치를 맞은 것 같았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그런다고 당신이 걔랑 뭘 어쩔 수 있을 것 같은데?”


“…….”


“그래, 지금이야 좋겠지. 근데 그게 언제까지 갈까? 어차피 모든 남녀 사이는 다 똑같아. 우리도 그랬잖아. 좋고 설레는 건 한때뿐이야. 끝에는 다 질리고 시들어 버리는 거 몰라?”


“질리고 시들어 버리는 거 잘 아는 애가 나한텐 왜 아직까지 이러니.”


정곡을 찌르는 소리에 윤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 자신은 그에게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것일까. 고작 홍태선에게, 자신은 왜.


“……아직 안 질렸나 보지. 내가 너한테.”


“하아. 여태 네가 나를 몇 번이나 버리고, 비참하게 만들고, 얼마나 짓밟았는지는 생각 안 해?”


그녀의 뻔뻔한 답에 태선은 분노를 누르며 어절을 끊어 말했다.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그는 한걸음씩 윤정에게 다가갔다. 그의 흉흉한 기세에 윤정은 조금씩 주춤거렸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너- 아직도, 나를 많이 미워해?”


“……!”


“태선아, 그건 네가 여전히 내게 마음이 남아 있단 거야.”


윤정은 제게 바짝 다가온 그에게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었다. 그녀의 손이 태선의 뺨에 닿으려는 순간, 그가 더 빠르게 그 손을 쳐냈다.


“착각하지 마. 너도, 나도, 우린 서로에게 더 이상 남아 있는 감정 따위 없어. 네가 나한테 이렇게 질척거리는 이유를 알려줄까?”


“…….”


“심심해서 그래. 제일 만만한 나를 또 데리고 놀려고.”


“홍태선.”


“그러니까 그만 좀 해. 진짜 지긋지긋하다.”


태선은 마지막으로 일갈한 뒤 윤정에게서 돌아섰다. 그녀가 몇 번이고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태선은 끝까지 돌아보지 않았다.


*


향미의 명령으로 태선을 전담 마크하는 장 실장은 본인이 찍은 사진을 두루 보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처음엔 그 또한 알지 못했다. 태선에게 진짜 애인이 생겼으리라고는 말이다. 하지만 나미가 태선의 연구실에 들어가서 한밤중에 둘이 같이 퇴근하는 걸 본 순간, 그는 알아차렸다.


다시 돌아온 윤정이 문제가 아니라, 저 여자애가 향미에게 진짜 표적이 되리란 것을.


여태껏 일하면서 한 번도 누군가에게 사적인 감정을 넣어 본 적 없던 그였지만, 태선을 감시했던 지난 2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을 하는 그를 보며 장 실장 역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 저 사람. 저 여자애를 진짜 많이 사랑하고 있구나.


그건 묘한 기분이었다. 그 또한 지금의 아내와 연애를 해서 결혼했기 때문에 같은 남자로서 느낄 수 있는 동질감 같은 거였다.


“허…참….”


더구나 태선이 나미랑 있을 때와 윤정과 있을 때의 온도 차이는 사진으로 봐도 차이가 심했다. 만약 그가 나미에게 웃어주는 사진을 향미에게 건넨다면…….


생각만으로도 피곤해지는 기분에, 장 실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결국 나미의 사진을 전부 뺐다. 어쨌든, 그도 박향미라는 여자를 썩 좋아하지 않았고, 오랜만에 웃는 남자에게서 그 웃음을 빼앗고 싶지 않은,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리하여 향미에게 전해지는 사진은 오직 윤정과 있는 사진들뿐이었다.


“하, 이 년이 정말 미쳤구나?”


늦은 밤 윤정과 가까이 있는 태선의 모습에(물론 그 장면은 태선의 분노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향미는 자신의 화를 참지 못했다. 그녀의 거친 언사에 장 실장은 뒤로 한 발짝 슬쩍 물러섰다.


“……하지만 분위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자 쪽만 매달리는 상황입니다. 홍 교수는 철벽 치고 있는 상태고요.”


“누가 당신더러 홍 교수 편들랬어? 판단은 내가 해.”


“……죄송합니다.”


향미는 누가 봐도 윤정 혼자만 태선에게 미련 남아 보이는 듯한 사진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아직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것일까.


지금 제가 그의 뒤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향미는 곧장 휴대폰으로 석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석훈아. 오랜만이야. 너 혹시 윤정이랑 요즘도 연락 하니? 아,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


향미의 부름으로 호텔 레스토랑을 찾은 태선은 입구에서부터 직원의 안내를 받았다. 먼저 와 있던 향미가 그를 보자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했다.


“홍 교수! 여기.”


태선은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묵례를 했다. 지난 번 그렇게 안 좋게 헤어진 이후 처음 만나는 자리라 그는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그런 그의 기색을 읽은 향미가 눈치 좋게 웃으며 태선에게 친한 척을 했다.


“오는 데 차 안 막혔어?”


“네, 별로.”


“다행이다. 난 혹시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히면 어쩌나, 그런 걱정을 했지 뭐야.”


“네.”


태선은 그녀의 말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으며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에게 사랑하는 연인이 생긴 지금, 다른 모든 여자에게 흥미가 확연히 떨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심드렁한 기색이 지난 번 자신과 다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향미는 그가 모르게 지배인에게 눈짓을 했다. 신호를 알아들은 지배인이 디시 커버를 씌운 접시를 트레이 카트에 담아 가져오는 것이 보였다. 향미는 타이밍을 맞춰 태선에게 말을 꺼냈다.


“나 오늘 자기한테 정말 중요한 얘길 하려고 해.”


“네? 어떤…….”


그 순간, 그녀의 시야로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함께 레스토랑 홀에 들어서는 윤정의 모습이 보였다. 향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태선을 바라보았다.


“지난 번 일, 사과도 하고 싶고…….”


“…….”


“홍 교수가 나에 대해 오해 하고 있는 것도, 이번 기회에 풀고 싶어 난.”


아직 윤정이 온 것을 모르는 태선이 의아한 표정을 했다.


“오해요?”


마침내 윤정이 직원의 안내에 따라 그들의 테이블과 가까운 곳에 앉았다. 뒤이어 트레이 카트가 태선의 테이블 옆에 와 멈췄다.


그의 시선이 접시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트레이 카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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