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제의 일기장 (안 잡아먹어요) 12화
무료소설 처제의 일기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처제의 일기장 (안 잡아먹어요) 12화
12화)
“어머, 아내분이 젊어졌네?”
인근 마트 청과 코너 아주머니가 상중을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동생이에요! 그리고 우리 언니가 나보다 더 젊어 보이지 않아요?”
“에이, 아무리 젊어보여도 어디 진짜 젊은 사람이랑 같은가? 닮긴 진짜 닮았네.”
“하하, 그쵸?”
“처제랑 형부가 엄청 친한가봐! 누가 보면 단단히 오해하겄어.”
―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미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있었다. 걸을 때마다 무거운 비닐봉지가 부스럭거렸다.
“형부, 계속 그렇게 얼어 있을 거예요? 데이트하려고 따라 나왔더니 이게 무슨 데이트야.”
한 손에 장 본 봉지를 든 상중이 지연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걷고 있었다. 골목 어딘가에서 개가 컹컹 짓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부터 내 얼굴도 안 보고… 안 잡아먹어요. 치… 이미 본 걸 어떻게 못 본 걸로 하느냐고 멋있게 말할 땐 언제고….”
“처제….”
“알았어요. 얘기 안 해도 알아요. 언니 때문인 거. 형부가 언니를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제가 그럴 일도 없었을 테니까…. 언니 생각해서 그러시는 거 이해해요.”
봉지를 들지 않은 쪽 주머니에 차가운 지연의 손이 들어와, 상중의 손등을 감쌌다.
“그래도, 그래도 있잖아요 형부. 나 언니한테서 형부 뺏을 생각 하나도 없으니까, 나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돼요? 언니 없을 때만이라도… 나 안아주면 안 돼요? 그렇게 나한테서 고개 돌리고 있지 말구…. 그 때 형부가 나 붙잡아줘서 얼마나 좋았는데…”
고개를 떨어뜨린 채 진지하게 말하는 지연을 보며 상중은 그날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니 사실 상중은 지난 며칠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미 벌어지고 만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일이 또 가능할지…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결론은 쉽사리 나지 않았다.
본능과 이성, 윤리와 불륜 사이에서 그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었다.
“난… 아무래도 우리가 거기서 멈추길 잘 한 것 같아. 도연이가 예정보다 빨리 오게 된 것도 어쩌면 우리가 거기서 멈추어야 했기 때문인지도 몰라….”
진심과는 상관없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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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제 오는 거야? 뭐 이리 오래 걸려? 어? 지연이도 같이 오네? 오다 만났어?”
도연이 안방에서 나오면서 상중과 지연을 맞이했다. 막 옷을 갈아입은 참인지 머리를 질끈 묶고 있는 중이었다.
“응, 언니! 형부랑 오랜만에 데이트 좀 했어.”
“그래, 니 형부 지금까지 바람도 한 번 못 피고 살았는데 니가 가끔 데이트 좀 해주면 좋아하겠네.”
“어머, 형부! 진짜예요? 바람 한 번도 안 피고 뭐 했어요 이제까지? 울 언니 어디가 그렇게 좋다고.”
“호호호, 내가 또 한 매력 하잖니.”
상중이 식탁 위에서 사온 물건을 하나씩 꺼내고 있는데, 양 옆에 선 자매가 신나서 수다를 떨었다. 가운데 끼인 상중은 괜히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처젠 대체 어쩔 셈인 거지?
―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이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도연이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 날인가 처음 시작한 드라마인데, 오랜만에 셋이 있다가 보게 된 참이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오늘도 자연스레 함께 TV앞에 모여 있었다.
상중은 평소 본인이 늘 앉는 소파 끄트머리에 반쯤 몸을 기대 앉아있었고, 지연은 반대쪽 끝에 두 다리를 올려 반만 접은 상태로 기대있었다. 도연은 소파 가운데 쪽 바닥에 앉아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저거 봐. 잘 생긴 것들은 역시 얼굴값을 한다니까? 이래서 잘 생긴 남자랑은 결혼을 하면 안 돼.”
“그럼 형부는? 기억 안나? 언니 처음엔 형부 얼굴 보고 만났잖아.”
“니 형부는 내 눈에 잘 생긴 거고. 넌 형부 얼굴 별로라고 했었잖아?”
“그… 그땐 어렸으니까….”
지연은 괜히 상중의 눈치를 보는 듯했지만 상중은 못 들은 척 TV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에이 설마설마 했는데 이것도 불륜으로 가네 역시. 어째 드라마가 하나같이 다 불륜이야?”
“그걸 좋다고 보고 있잖아.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러게나 말이다.”
“참, 내가 얼마 전에 증권가에서 일하는 친구한테 들었는데, 저 배우 진짜 어린 애랑 바람나서 지금 별거 중이라던데? 그런데도 어떻게 이런 드라마를 찍지? 생각이 없는 건가?”
그렇게 말하면서 지연이 다리를 쭉 뻗었다. 발바닥이 상중의 허벅지에 닿았다. 상중이 놀라서 지연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지연은 고개만 돌린 상태로 TV에 집중해 있을 뿐이었다.
지연이 입고 있는 핫팬츠 아래로 길게 뻗어 나온 다리 끝에서 발바닥 두개가 번갈아가며 그의 허벅지를 지긋이 압박했다.
“진짜? 그럼 감정이입은 확실하게 되겠네.”
감정이입 되고 있는 건 오히려 상중이었다. 허벅지에 처제의 발바닥이 닿은 정도는 사실 평소에 장난도 종종 치곤했던 둘 사이에선 별 게 아닐 수도 있는 접촉이었다.
그런데 열흘 전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에는 더 이상 별 게 아닌 일이 아니었다. 상중은 결코 대담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제껏 바람 한 번 피지 못한 것도 아내를 사랑해서이기도 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대담하지 못한 그의 성격 탓이 더 컸다.
지연의 발바닥이 닿은 순간부터 상중은 도무지 드라마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혹시 아내가 돌아볼까 눈치를 보느라…
불륜이라는 소재를 담은 드라마를 보는 것도 양심에 찔리는 판에 아내가 있는 앞에서 대담하게 신체접촉을 해오는 처제와 있는 자리가 불편해서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상중은 끝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가? 안 봐?”
“거 불륜드라마가 뭐가 재밌다고.”
“지난주엔 재밌을 것 같다고 보더니 왜?”
“이런 드라마인 줄 알았으면 안 봤지.”
상중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그럼 나가는 김에 맥주나 사와! 오랜만에 셋이서 맥주나 한 잔 하자.”
“언니가 웬일이야? 술을 다 먹자 그러고?”
“이유가 있어야 먹냐? 지난주에도 먹고 싶던 걸 간신히 참았는데, 오늘은 못 참겠네. 맥주 몇 병만 사와요. 치킨 시켜 놓을게.”
“아싸아!”
―
봄의 끝자락에 접어들고 있는 밤의 공기는 벌써 온기를 한껏 머금고 있었다.
‘하아, 어떻게 해야 하나 이걸…. 언제까지 이렇게 불편하게 지낼 수도 없고…’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이라고는 해도 끝까지 참지 못했던 상중에게도 책임은 있었다.
그날 밤, 뒤돌아선 지연이 그대로 방을 나가도록 놔두었었다면 지금과 다르게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을까?
처제가 자위하는 모습을 보고도? 그냥 자위하고 있는 걸 봤어도 불편할 판에… 형부 혼자 자고 있는 방에까지 와서 그러는 걸 봤는데?
형부에게 자위하는 모습을 들켜버린 처제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그 때 형부가 나 붙잡아줘서 얼마나 좋았는데…’
소심한 상중과는 달리 처제는 너무 적극적이었다. 그게 상중은 두려웠다. 상중은 여지껏 무모한 모험을 피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날은 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처제를 붙잡도록 만든 걸까?
아내에게 상처를 주기도,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처제를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또다시 지연이 그의 방에 찾아와 ‘형부’를 부르며 자기 몸을 만지고 있는 걸 보게 된다면… 다시 지연을 안고 말 것이라는 걸 그는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건 이제껏 경험했던 그 어떤 유혹보다 강렬한 유혹이었다.
그래, 그 날 새벽 아내의 전화가 없었다면 이미 둘은 막장 불륜 드라마를 한창 찍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처제의 제안… 아내가 없을 때만이라도 안아달라는 그 제안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선악과 같은 제안이었다.
그런 말을 해놓고 아무렇지 않게 불륜 드라마를 보고 있는 처제는 대체 어떤 마음인 걸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의미 없는 물음표들만이 차오를 뿐.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마트를 지나쳐 걷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 해보려 나온 상중은 결국 돌아가는 길에도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더 복잡해진 마음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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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맞춰 왔네? 막 드라마 끝난 참인데. 치킨도 곧 올 거야. 상 펴 여보. 거실에서 먹게.”
지연과 나란히 소파에 앉아 있던 도연이 일어나 잔을 챙기러 부엌으로 갔다.
상중은 상을 펴다가 봉지에서 맥주를 꺼내며 그를 올려다보는 지연과 눈이 마주쳤다. 입을 삐죽 내민 지연의 눈빛은 장난스러웠지만, 한편 무언갈 갈망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한순간이었지만, 상중은 그런 처제의 눈빛에 빠져들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지연의 날카로운 턱 아래 펑퍼짐한 박스 티 안으로 탐스러운 가슴을 머금은 브라라인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