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모자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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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성인소설: 모자의 위기
[무료소설] 모자의 위기
「떡 하나 주면」
06. 모자의 위기
발목이 잡혀 놀란 문희가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돌렸다. 누워서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는 처녀는 분명……바로 그 구미호가 맞았다.
“이, 이, 이것 좀, 노, 노, 놓아 주세요.”
“으응? 싫은데?”
“억!”
놔달라는 문희의 말에 미호는 오히려 잡고 있던 발을 확 잡아당겼다. 힘이 어찌나 센지 장정 하나가 그녀의 품으로 철퍼덕 넘어졌다. 물론 그녀는 그런 그를 가뿐히 받아 안았고, 말이다.
얼떨결에 여우의 품에 안기게 된 문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제기랄, 왜 이렇게 예쁜 거야! 무서워 죽을 지경이던 와중에도 저를 바라보는 여우의 얼굴이 선녀처럼 고와서 문희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그러나 함부로 시선을 피하거나 눈을 감거나 그랬다간 요망한 여우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에, 문희는 어떻게든 두 눈 똑바로 뜨고 정신 줄을 붙잡고 있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속내를 훤히 꿰고 있는 미호의 눈빛은 그저 장난기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인간, 나한테서 이상한 풀 냄새가 나는데.”
“아, 그게, 그러니까, 다, 다치신 거 같아서, 그, 약초를…….”
“풉. 귀엽네.”
실은 부상이 있던 그녀가 이렇게 빨리 회복한 이유는 문희와 몸이 닿았기 때문이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질 때 그의 품으로 쓰러진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의 정기를 흡수했기 때문에 그나마 빨리 정신을 차리고 인간의 모습으로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고작 그런 정도로 몸이 완전히 다 나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 귀여운 인간은 꼴에 저를 치료해준답시고 이런저런 약초를 캐다가 요런 깜찍한 짓을 한 듯했다. 이 운치 있는 오두막까지 데려온 것도 그렇고.
으음, 이 애를 어떡할까나.
“저, 저기, 그러면, 저는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자신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보는 미호의 시선을 조금 피해 문희가 자신 없이 물었다. 그녀의 눈빛은 그러니까, 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하는 눈빛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아, 어머니. 이 산에 호랑이는 없고 대신 구미호가 있었습니다. 저도 이렇게 구미호에게 붙들릴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요…….
문희는 아까 덕분과 헤어지기 전 그녀가 말한 당부를 떠올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마음 같아서는 울고 싶었지만, 사내대장부가 돼서 여인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것이 비록 인간이 아니라 요물이라 할지라도.
“인간, 도망을 가려면 아까 진작 갔어야지. 여태 뭐 하다 이제 간대?”
“네? 아, 그, 그건…….”
“숲에 아무렇게나 버려뒀어도 살았을 거야, 난. 근데 굳이 이 으슥한데로 날 데려온 이유가 뭐지?”
미호의 눈빛이 갑자기 은근해졌다. 거기다 ‘으슥한’ 이란 단어에 묘하게 힘을 주는 것 같기도 했다. 문희는 지금 자신이 몹시 위험한 상황임을 직감하며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렸다.
“오, 오해십니다! 그, 그냥 저는 그쪽이 많이 다치신 것 같아서, 이, 일단 어떻게든, 치료해드리려고……!”
솔직히, 그냥 버리고 갔다가 나중에 살아 돌아와서 왜 그때 버리고 갔냐고 복수 당할까봐 무서웠단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아는 인간은, 그런 귀찮은 일을 스스로 나서서 할 인덕 같은 건 없던데? 뭐야, 너도 인간이 아닌 거 아냐?”
“읏……!”
미호가 짓궂게 검지와 중지 사이에 문희의 코를 끼우고 힘을 주었다. 그는 눈물이 핑 돌만큼 아릿한 통증을 느끼며 인상을 썼다. 코뼈가 부러진 건 아닐까. 그런데도 제게 선뜻 해코지할 생각은 하지 않는 문희의 모습에, 미호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순박한 총각이로군. 흥.
미호는 괜히 심술이 일었다.
“……인간. 내 겉모습이 지금 멀쩡하다고 해서, 완전히 다 나은 건 아니야.”
“으……네?”
“내상을 좀 크게 입었거든. 그 망할 영감탱이 때문에.”
“…….”
미호는 저를 쫓는 사냥꾼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갑자기 분노로 눈을 번뜩이는 그녀의 모습에 모골이 송연해진 문희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너, 날 치료해주고 싶다고 했지?”
문희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며 미호가 다시 물었다. 문희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저, 저는, 한낱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게 없는데요…….”
“아니? 너만이 해줄 수 있는 게 있어.”
미호의 눈가가 야살스럽게 휘어졌다. 사람을 홀리는 웃음이었다. 문희는 홀리지 않기 위해 고개를 필사적으로 흔들었다.
“제 간은 안 돼요!!! 목숨도 안 돼요!!!!!”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 저는 그저 목숨이 위태로워 보이는 한 여인을 구조해 준 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것이 죄가 되어 결국 간과 목숨을 빼앗기고 만단 말인가. 문희는 차오르는 억울함에 가슴을 쾅쾅 내려치고 싶었다.
“……하. 자꾸 누가 그런 헛소문을 내고 다니는 거야.”
“……네?”
미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헛소문? 헛소문이라고?
“난 그런 징그러운 내장 같은 거 말고, 인간의 정기가 필요해.”
“……?!”
“그러니까, 너와 지금 당장 합방이란 걸 좀 해야겠어.”
“……!”
미호가 어느새 순식간에 문희를 짚더미 위에 눕힌 뒤 그의 배에 올라탔다. 위치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었다. 난데없이 벌어진 상황에, 문희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지고 말았다.
*
오늘도 덕분의 떡 장사는 무척 성공적이었다. 거기다 어떻게 입소문까지 났는지, 지난번보다 더 많은 주문 또한 들어왔다. 덕분은 지금 사는 곳보다는 훨씬 규모가 큰 이 마을로 이사를 와야 하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 정도로 그녀의 떡은 아주 잘 팔리고 있었다.
김 진사,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어험, 어험. 이 집 떡이 그렇게 맛있다던데.”
척 봐도 양반 차림인 남자가 나타나 덕분에게 말을 걸었다. 덕분은 갑자기 자기 종 하나를 데리고 나타난, 귀해 보이는 손님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벌벌 기었다.
“아, 아이고. 이렇게 누추한 떡을 어떻게 알아보시고…….”
“지난번 장이 열리고 나서부터 소문이 자자하더구먼. 그래, 이 고을에서 못 보던 얼굴인데……?”
“아, 저는 옆 마을에서 넘어왔습니다. 말씀하셨던 대로 지난번 장에서 예약받은 떡을 드리러 온 것입니다.”
“허어, 여인 혼자 몸으로 고생이 많았으이.”
김 진사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슬그머니 덕분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등을 토닥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덕분은 움찔하며 그에게 잡힌 손을 빼내었다.
“떡을 만져서 손이 지저분합니다, 나으리.”
“음? 그런 거야 뭐……어디, 떡 하나 맛 좀 볼까?”
김 진사의 말에 덕분은 얼른 떡 하나를 집어 기름종이에 싸 건넸다. 그것을 옆에 있던 몸종이 받아 그의 입가로 갖다 댔다.
“음. 아주 맛이 좋구먼. 이렇게 맛있는 떡은 내 생전 처음일세.”
맛이 좋다는 김 진사의 눈이 덕분의 몸매를 음흉하게 훑었다. 사내의 노골적인 눈빛에 그녀는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떡을 드릴까요, 나으리?”
기분이 나빴지만, 영업용 미소를 억지로 지은 채 덕분이 그에게 물었고, 김 진사는 잘 다듬어진 자신의 수염을 손끝으로 쓸며 답했다.
“떡 말고……내 자네를 사고 싶은데. 어떤가?”
“예? 그게 무슨……앗!”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장정 셋이 나타나 덕분에게 흰 자루를 뒤집어씌웠다. 대낮에, 그것도 길거리 한복판에서 여인이 보쌈을 당하는데 누구 하나 그것을 말리는 이가 없었다.
김 진사가 그 마을에서 행사하는 권력과 돈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게 아무도 없습니까?! 아악!”
덕분이 앉아 장사하던 거리에는 그녀의 안타까운 비명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