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두꺼비의 활약
무료소설 :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9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성인소설: 두꺼비의 활약
[무료소설] 두꺼비의 활약
「떡 하나 주면」
14. 두꺼비의 활약
두꺼비 섬섬의 등장에 사람들이 조금 주춤했다. 덩치가 커도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가 내뿜는 기운이 워낙 심상치 않은 것이어서, 누구도 섣불리 그를 공격할 수도 없었다. 다만 그를 알아본 선희만이 반가워했다.
“흑, 두껍아……흐윽.”
그 두꺼비가 뭘 할지도 모르면서 선희는 내심 안도가 되어 울음부터 터트렸다. 그냥, 이 순간 나타난 섬섬을 보니 이 사람들한테 붙잡혀 가지 않아도 될 거란 막연한 믿음이 생겨서였다.
역시나 두꺼비는 급한 것도 없이 느리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움직임 하나하나에 기품과 우아함이 넘쳐흘렀다. 한낱 미물임에도 사람들은 어느새 그에게 압도당하고 말았다.
쉬익, 쉬익. 그가 선희 가까이 가면서 그녀를 붙잡고 있는 장정들을 향해 찐득한 액체를 발사했다. 그것이 두꺼비 독이라는 것을 안 사내들은 기겁하고 선희에게서 떨어졌다.
“으악! 저거 독 아녀?!”
“헉! 저거 맞으면 뒤지는 거야!”
사내들은 두꺼비를 피해 김 진사 쪽으로 돌아섰고, 섬섬은 기다렸다는 듯 선희의 앞을 막아섰다. 영험한 두꺼비의 기에 눌린 김 진사 역시 침을 꼴깍 삼키며 쉽게 움직이질 못하고 소리만 질렀다.
“뭐, 뭣들 하는 게야! 저 짐승부터 당장 때려잡지 않고!”
“마, 마님. 저게 독을 쏘아 대서 어떻게 하기가……!”
“저까짓 게 뭐가 무섭다고……!”
김 진사는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두꺼비에게 밀려서 물러날 수 없었다.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보란 듯 선희를 잡아 데려가야 했다. 더구나 이곳은 자신이 사는 마을도 아니었다. 사람들의 입단속을 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소문은 금방 퍼질 것이고, 귀넘이 마을을 나름 제 집처럼 호령하고 있는 그의 체신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섬섬을 잡기 위해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자, 눈이 돌아버린 김 진사는 곁의 호위 무사가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들고 그를 향해 아무렇게나 휘두르기 시작했다.
“네 이놈!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대가리를 들이미느냐! 죽어라! 죽어!”
“두껍아!”
그의 칼날이 섬섬을 향해 가까워지자 선희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녀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섬섬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김 진사가 제 가까이 오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마침내 한 발자국 정도 떨어진 사이에서 김 진사가 칼을 휘두르려는 그때, 섬섬은 그의 눈을 향해 맹독을 날렸다.
“으악! 으아악!”
“나으리!!!!!”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 장면을 보았고, 김 진사의 하인들은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지는 주인을 허둥지둥 부축했다. 쉬익, 쉬이익. 섬섬이 또다시 독 기운을 내뿜으려 하자, 그들은 김 진사를 들쳐 엎고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무리가 그렇게 사라져 버린 뒤 긴장이 풀린 선희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모든 광경을 보며 모여 있던 동네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세상에,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저 대감은 뭐고 저 두꺼비는 또 뭐야?”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그나저나 저 두꺼비 너무 신기한데?”
그들의 호기심은 금세 섬섬에게로 향했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점차 가까워지자 그는 또다시 기분 나쁜 소릴 내며 경계했다. 바로 조금 전 김 진사가 그의 독을 맞고 눈에서 피를 흘리는 걸 본 사람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곧바로 발길을 돌렸다.
섬섬은 더는 주변을 살필 필요가 없어진 뒤에야 선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두껍아……괜찮니?”
그녀의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런 와중에 제 안부를 묻다니, 섬섬은 속으로 선희의 오지랖에 쯧쯧 혀를 찼다.
“어떻게 알고 왔어. 흑, 너 아니면 큰일 날 뻔했다, 정말. 고마워, 정말 고마워. 흐윽.”
섬섬이 슬슬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입을 열려는 그때였다.
“선희야? 선희야!!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 흐엉, 엄마……!”
선희가 그렇게 기다리던 덕분이 나타났다. 선희의 시선이 어미에게 향하는 사이, 섬섬은 묵묵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
오두막에 도착한 문희가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너무 달린 탓인지 숨이 턱까지 찼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제 호흡을 찾은 그가 나무로 만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여우님! 계십니……!”
그러나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어제 그가 미호와 실컷 뒹굴던 짚더미만이 여전히 푹신하게 깔려 있을 뿐이었다.
물론, 여기서 다시 만나잔 약속을 하긴 했지만……하루도 안 돼서 또 만나러 올 줄은 그녀도 몰랐겠지. 이해는 가면서도 밀려오는 허탈함에 문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를 빨리 찾아야 할 텐데, 어디 가서 물어보고 찾아야 한단 말인가.
문희는 짚더미에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세우고 그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누이 앞에서 내색은 하지 못했지만 실은 그 또한 두렵고 무서웠더랬다.
양반에게 보쌈당했다는 어머니가, 호랑이에게 잡혀갔다는 어머니가, 그녀의 안부가 걱정돼 미칠 것만 같았다.
어제 - 자신이 여기서 여우와 교합이란 걸 하고 있을 때 덕분이 험한 꼴을 당하고 있었단 사실을 떠올리니 문희는 더욱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밤이 될 때까지 여자한테 미쳐서 어미의 안부도 모르고 있었던 거냐.
“하아…….”
밀려드는 죄책감에 문희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울컥한 감정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듯했다. 정말 어머니께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자신은 이제 동생과 둘이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 할지도 막막했다. 하고 싶었던 공부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장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문제였다.
선희는 여전히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 같았고, 저라고 세상 이치에 밝은 것도 아니었다. 덕분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들 남매는 고아가 될 것이고, 지금보다 어려우면 더 어려웠지, 결코 쉽지 않을 삶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지금이라도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찾아야 해.
마음은 그렇게 먹었지만, 어깨가 무거운 탓인지 쉽게 몸이 일어나지지 않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어서 다리에 힘을 주어야 해……!
“인간? 오늘도 왔네, 정말?”
그때, 익숙한 음성이 문희의 귓가를 맴돌았다. 그는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희뿌연 시야로 소복을 입은 처녀가 문가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뭐야, 너 울어?”
처녀의 얼굴이 문희의 코앞으로 불쑥 다가왔다. 그가 눈을 몇 번 깜빡이자 미호의 아름다운 얼굴이 선명히 보였다.
“아, 여우님……윽.”
문희는 눈물이 터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미호를 만나지 못했기에 당장 어머니의 소식을 물어볼 데가 없었는데, 그녀가 나타나니 한결 마음이 놓인 탓이었다.
“여어, 사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아서 쓰나. 응?”
“그, 그것이 아니오라……흡. 후으.”
미호는 억지로 눈물을 참는 문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어제는 다 큰 사내처럼 저의 아래를 들쑤시기에 어른인가 싶었더니 이리 울망울망한 얼굴을 보아하니 그는 아직 영락없는 소년에 불과했다.
“왜 그러는데? 바지에 오줌이라도 싼 게야? 풉.”
“노, 놀리지 마십시오!”
“어쭈. 이제 나한테 큰소리친다, 이거지.”
“하아. 그것이 아니오라……실은, 저희 어머니가 산군님께 잡혀갔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그의 말에 미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잖아도 어젯밤 이곳 신령이 밤새 인간 여인을 품었다는 이야기가 산 전체에 떠들썩하게 퍼져 있던 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