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두꺼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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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성인소설: 두꺼비 왕국
[무료소설] 두꺼비 왕국
「떡 하나 주면」
32. 두꺼비 왕국
세 사람의 해후가 끝나고 그들은 모두 선희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섬섬이 들어왔다.
“절 받으십시오, 어머니.”
“예? 아, 아니……아이구.”
덕분은 생각보다도 더 훤칠하고 귀티 나게 생긴 남자가 공손히 예의를 차리자 당황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두꺼비 총각이라기에 훨씬 징그럽게 생겼을 줄 알았더니, 왕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풍채며 외모며 뭐 하나 빠지는 데가 없었다. 그런 사람이 어머니, 어머니, 하며 절을 올리겠다 하니 덕분은 황송하면서도 난처한 기분이었다.
이런 그녀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섬섬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예의를 갖췄다.
“사양 말고 받으십시오.”
“아, 그, 저……예, 예.”
섬섬이 절을 하자 덕분도 마주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문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예의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가 멋대로 남의 동생을 납치해 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선희의 상태는 썩 괜찮아 보였지만 말이다.
“제가 직접 찾아뵀어야 했는데, 이렇게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다 저녁때에 이런 실례를 범하게 돼서 저희가 송구스럽지요.”
“일단 시장하실 텐데 식사부터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섬섬이 그런 말을 하는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 왕자님, 전하와 왕비 마마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그 묵직한 단어에 섬섬을 제외한 세 사람의 낯빛은 창백해지고 말았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었다.
*
네 사람은 결국 왕과 왕비가 기다리고 있다는 객실로 향했다. 선희는 제가 이곳에 온 지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이때까지 잠잠했던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쯤 되니 보자 할 줄 알았던 것이다.
다시 시작된 긴장으로 배가 고프단 생각마저 싹 가실 때쯤 섬섬이 어느 방문을 열었다. 그 안엔 여태 보지 못했던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중년의 부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시지요, 사부인.”
“환영합니다, 사돈.”
왕족이라기에 무척 근엄하고 딱딱할 거란 예상과 달리 그들은 덕분네 식구들 모두를 전부터 알던 사이인 양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하지만 덕분은 벌써 ‘사돈’ 소릴 듣는 것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 실례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실례라니요. 우리가 이날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섬섬의 어머니가 먼저 덕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보통 사람보다 훨씬 낮은 체온에 덕분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어설프게 웃어 보였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인 것을요. 아들놈이 나이가 다 차고도 혼인할 생각이 없어 저희가 무척 걱정이 많았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리따운 처자를 데려와 아내로 맞이하겠다 하니, 이보다 더한 경사가 어디 있나 싶습니다.”
왕비 여와는 선희가 몹시도 마음에 든 눈치였다. 무려 인간 세상의 여인을 신붓감으로 데려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으니 말이다. 거기다 저렇게 예쁘고 참한 색시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것은 왕 섬와의 생각도 같았다. 그는 그저 아들이 무사히 혼례를 치르고 어서 손주나 낳아줬으면 했다. 그렇게만 되면 그의 인생에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아니, 실은 저희는 아직……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덕분은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지만 이러다 홀랑 선희를 빼앗길 것 같은 마음에 부랴부랴 속내를 말했다. 그녀의 말에 여와와 섬와는 눈짓을 주고받았다.
“암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고민해 보셔도 됩니다.”
“듣자 하니 낭자의 오라버니가 아직 혼례 전이라면서요? 그러니 사돈께서도 마음이 불편하시겠지요. 제가 그 마음을 아주 잘 안답니다.”
“……배려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새 아가가 시장하다 들었던 것 같은데, 식사부터 할까요? 여봐라, 준비해 온 것을 내오너라.”
여와의 명령으로 넓은 상 가득 온갖 맛있는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덕분은 아직 완전히 허락한 것도 아닌데 벌써 이 집 식구처럼 대하는 그들 내외의 태도에 뭐라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이내 화려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에 온 정신과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많이 드시오, 낭자.”
섬섬은 선희의 앞으로 맛있는 음식들을 밀어주었다. 그녀는 괜히 제게 잘해주는 그를 흘겨보다, 자리가 자리임을 인지하고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덕분과 선희가 허기진 배를 채우는 동안 문희는 여러모로 마음이 불편했다.
자신이 아직 미혼인 것이 누이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미호가 준 삼삼을 내다 팔면 선희의 혼수를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생각은 자연스레 미호에게로 흘러갔다. 그녀는 이제 다른 사내의 정기를 취하며 살겠지. 미호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라도 저 아닌 다른 남자와 합방을 해야 한다는 걸 떠올리자, 그의 기분은 급격히 나빠졌다. 알고 있던 사실인데, 누누이 인지하고 있던 사실인데 새삼 감정이 상하는 것이었다.
사내대장부가 이리도 줏대가 없어서야, 원.
문희는 스스로 이런 제가 못마땅해 미간을 찌푸리고 혀를 찼다. 그의 반응에 섬섬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형님, 혹시 찬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식사를 영 시원찮게 하는 문희를 향해 섬섬이 넉살 좋게 물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다른 생각을 하는 중이었던 그는 헛기침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다 맛있습니다.”
“더 드시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많이 있습니다.”
“예……감사합니다.”
문희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젓가락을 느리게 움직였다. 이런저런 생각의 결론은 또다시……미호가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
그 후 여러 날이 지났다. 두꺼비 왕국에서의 나날은 놀랍도록 평화롭고 편안했다. 여태 먹고 사는 것에 바빠 아등바등 살아왔던 지난 세월이 아득하게 느껴질 만큼, 이곳에서 며칠 지내는 것만으로 덕분과 선희, 문희 모두 얼굴이 피고 태가 달라져 있었다.
이들의 달라진 모습에 가장 기뻐하는 것은 선희와 섬섬이었다. 인간 세상에서 살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으니 덕분은 특히나 건강해져 혈색마저 돌아온 상태였다.
“엄마, 기분이 어때?”
선희는 덕분의 팔짱을 끼고 후원을 산책하며 물었다. 덕분은 그저 웃으며 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어떻긴, 사는 게 요즘만 같았으면 좋겠구나.”
“그동안 우리 먹여 살리느라 고생 많았지?”
“고생은 무슨. 내 새끼들 내가 잘 키우겠다는데, 그게 어떻게 고생이야.”
“그래도……. 요즘 우리 엄마 얼굴이 너무 좋아 보여서 내가 다 행복해.”
“선희야.”
“그래서 말인데- 우리 여기서 쭉 살자. 응?”
선희의 제안에 덕분은 걸음을 멈췄다. 딸이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너 지금…….”
“나, 그 사람하고 혼인할까 봐.”
“선희야!”
선희의 말에 덕분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확 돌아오는 것 같았다. 섬섬의 집안이 주는 안락하고 평온한 일상에 젖어 딸이 볼모로 잡혀 있다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었다.
선희는 그런 덕분의 생각을 다 안다는 듯, 모친의 두 손을 꼭 붙잡았다.
“나 괜찮아, 엄마. 우리 세 식구 이렇게 단란하고 오붓하게, 편안하게 살 수만 있다면- 그 사람하고 혼인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이미 굳은 결심을 마친 선희가 덕분을 향해 따스하게 미소 지었다.